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5)
〈 255화 〉 비밀 연구 (1)
* * *
“느리다.”
“으헉!”
“느려.”
“끅!”
“느리군.”
“크윽!”
아침. 나비 정원 구석.
아이작은 제랄드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한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랄드는 보법으로 움직이며, 아이작이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때마다 목검으로 가격했다.
목검을 진심으로 휘두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작은 [기초 보호 마법]을 일부러 두르지 않았기에 순수한 고통을 느꼈다. 교육을 위한 제랄드의 지시였다.
육체에 고통을 가해 ‘어서 빨리 기술을 성공시켜야 한다’라는 강박감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법이었다.
폭력적이지만 한편으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아이작은 신체에 흘러드는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서서히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한편, 나비 정원 구석이 보이는 학사 건물 옥상.
도로시는 하얀 고양이 사역마 엘라와 함께 난간에 앉아 아이작과 제랄드를 지켜보았다.
아이작을 만나러 날아가다 제랄드를 발견하곤 건물 위에서 멈춘 것이었다.
“저 사람, 검성 맞지? 아이작이랑 뭐 하는 거야?”
[무슨 훈련이라도 하나 본데?]“으, 아프겠다….”
아이작이 목검으로 맞는 모습을 보고 도로시는 질색했다.
이어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관찰하듯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근데 아이작, 움직임이 되게 불규칙적이네. 술 취한 사람 같다가도 막 쉭쉭 예리하게 움직여.”
[뭔가 새로운 걸 익히려나 본데?]도로시가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몹시 넓다. 그러나 아이작이나 제랄드에게선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을 발산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아이작은 신체 강화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만 같은 움직임을 이따금씩 보였다.
고작 손 한 번 휘두를 때, 반 발자국 움직일 때, 몸을 돌릴 때.
“신체 안쪽에…, 그러니까 움직이는 데 필요한 부분에만 마력을 불어넣는 훈련인가? 저러면 기동력이 올라가긴 하겠지만….”
도로시는 단번에 파악했다.
해보려고 상상한 적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었지만, 자신은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저런 기술은 마력 운용력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어려운 걸 하고 있구만.”
[우리가 가봤자 방해만 되겠네. 어쩔래, 도로시?]“흠.”
도로시는 잠깐 고민했다.
아이작은 힘들게 단련하고 있다. 그럼 얼마 안 가 출출해지겠지.
좋아, 결정했다.
“몰래 간식이나 챙겨줄까?”
도로시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간단했지만, 엘라는 그렇게까지 간단할 줄 모르고 도로시의 속뜻을 추측했다.
[이 남자는 내 것이라고 경고하려고?]도로시는 엘라를 째려보았다.
“거참, 어이가 없구만…. 설마 그런 거겠니? 이 고양이가, 자꾸 사람을 음습하게 만들고 있네?”
[흥, 그래애?]엘라는 능청맞게 웃었다.
* * *
누군가 샌드위치가 든 바구니를 몰래 놔두고 떠났다. ‘아이작! 맛있게 먹어!’라는 쪽지와 함께.
악필을 보아하니 도로시가 남기고 간 게 분명했다.
제랄드가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절로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이건 누가 보냈느냐?”
“이건….”
“다시 묻지. 어느 ‘여자’가 보냈느냐?”
자연스럽게 시작된 추궁.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 딸 맡기려는 사위한테 알고 보니 여자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잖아.
내 의지를 호도할 생각도 없어서 꾸물거리고 있자니, 제랄드가 한숨을 내뱉었다.
“됐다.”
“예?”
“네 신분을 생각한다면 여자를 몇이나 품든 이상하지 않으니. 애초부터 카야만 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의외로 쉽게 넘어가네?
고지식해 보였던 선입견과는 달리 포용해주려는 분위기였다.
“그렇습니까…?”
“어째 석연찮은 반응이군.”
“혹시 감정이 상하시지 않았나 해서요.”
“내가 네게 뭐라 할 수 있는 건 카야 문제에 한정해서다. 주제 넘는 언행은 하지 않아.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해라.”
제랄드는 냉막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내가 몇이 되든, 카야를 평생 소중히 여기겠다고.”
“…그건 당연합니다.”
“그럼 됐다.”
예상과는 달리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제랄드.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고 카야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다시 단련에 돌입했다.
제랄드가 감정을 실어 목검을 더 강하게 휘두르지 않을까, 하고 살짝 긴장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아오, 개아파….’
하늘은 아늑한 노을빛을 흩뿌렸다.
몸 군데군데에 멍이 들었다. 목검으로 하도 처맞은 까닭이었다.
제랄드의 보법을 익히려면 근육과 관절에 적절히 마력을 흘려 내고 유지하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 기술이 가능케 될 때까지 제랄드는 더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즉, 신경 써주는 건 오늘까지였다.
제랄드가 떠나기 전까지 기술을 성공하고 보법을 전수 받아야 한다. 그게 지금의 내 목표였다.
화이트를 만나 멘토링을 마치고 교정을 달리는 중이었다. 멍이 든 부위가 많아 뜀박질이 불편했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이 갈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리아는 밤늦게 도착할 테니 남는 시간엔 단련하면 될 터였다.
휘우우우!
돌연 하늘에서 바람 마력이 느껴졌다. 발을 멈추었다.
온화한 연녹빛 바람이 주위로 흐르며 피부를 쓰다듬었고.
한 여학생이 사뿐히 착지해 날 뒤에서 껴안았다.
“카야?”
“…….”
카야였다.
그녀가 날 뒤에서 포옹하기 전에 잠깐 눈을 확인했다. 핏빛 눈동자. 악식의 인격이었다.
만날 때마다 날 꼬시려고 작정했던 애가, 오랜만에 부활했으면서 어째 말이 없었다. 분명 제랄드 문제 때문이겠지.
스으으, 하고 따뜻한 생명의 마력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카야의 손 위로 생겨난 마법진에서 작은 나무가 튀어나와 흩뿌리는 마력이었다.
‘오오.’
멍 때문에 뻐근하던 감각이 사그라져 간다. 피부는 기존의 상태로 되돌아갔고, 식물 마력은 역할을 마치고 시들었다.
“고맙다.”
“…….”
“…뭐라 말 좀 해 봐라.”
“너무 면목이 없는걸요….”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분수대 광장에 가서 벤치에 앉았다. 분수대가 졸졸 흘려내는 물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은근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카야가 말을 꺼낼 때까지 나도 침묵을 지키기로 한 까닭이었다.
이윽고, 카야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작 님.”
“응.”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아버지를 막으려 해봤는데….”
“뭐 큰 일 난 것도 아니고. 괜찮아, 인마.”
“아닙니다, 괜찮다뇨. 말도 안 돼요! 아까 몸에 들었던 멍, 아버지 때문에 생겼던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내 의지로 맞은 거야.”
“네?”
“몸에 부담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셔서. 얻어맞는 건 교육의 일환이었어.”
“아, 그 방법….”
카야는 제랄드의 보법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딸이니까. 하지만 굳이 배우진 않았으리라.
사정을 이해한 카야는 겸연쩍게 웃었다. 안도한 기색이었다.
“아직 잘 안 되긴 하는데, 뭐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저 때문에 맞으신 줄 알고 걱정했어요…. 아버지께선 상대 안 가리고 막 나가는 경향이 있으셔서.”
장인어른 디스인가.
막 나가는 경향이 있긴 했지.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제까지도 아버지께서 아이작 님과 만나는 걸 금하셨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내가 순순히 얻어맞았겠냐. …근데 내 손 계속 만질 거야?”
아까부터 카야는 내 손을 붙잡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쓰다듬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 다루듯.
“이건 제가 애정 결핍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 그런 말, 뻔뻔하게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무렴 상관없었다. 애초에 거짓말인 게 대놓고 티가 났다.
“그래, 더 만져라.”
“그래도 돼요?”
“아니…, 적당히.”
“이런.”
카야는 아쉬워했다. 얘는 절제가 풀리면 정말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여전히 카야는 머리를 푼 모습이었다. 머리칼의 반만 뒤로 묶은 헤어 스타일이다. 귀에 찬 금빛 귀걸이도 머리칼 너머로 얼핏 엿보였다.
“이미지 많이 바꿨네.”
“아, 어떻습니까?”
변화를 알아차려 준 게 기쁜지 카야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새롭다. 항상 양갈래 머리를 하고 다녔던 애라 그런지 더더욱. 평소보다 청순한 인상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비단 변화는 나한테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다들 착실히 성장해 간다. 그 흔적은 외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성숙해진 느낌…? 너도 이제 완전히 어려 보이진 않네.”
“그거 설마, 나이 들어 보인단 소리…?”
“좋은 의미로 말한 거야. 이제 좀 2학년 선배 다운 느낌이 됐다고. 잘 어울려.”
카야가 충격에 빠진 얼굴이 되자 다급히 수습했다.
화제나 돌릴까.
“그리고,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너희 아버지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도움도 많이 받고 있고. 오히려 이렇게라도 만나서 다행이지.”
“…역시 인자하시네요, 아이작 님은.”
카야는 자연스레 내 어깨에 기대곤 내 팔을 꼭 껴안았다.
“…뭐해?”
“애정 표현이요.”
뜬금없네.
너무 맥락 없이 솔직하니 오히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야는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가까이서 날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아이작 님. 저희 아버지 보고 장인어른이라 부르셨던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럽게 묻는 카야.
떠보기였다.
“그렇게 제가 좋으셨습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놀리냐?”
카야는 내 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고, 카야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해요. 보고 싶었어요.”
“…그래.”
예전처럼, 카야는 자기 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 * *
깊은 밤.
마차 한 대가 얼음 기사들을 이끌고 위병소를 지나 헤겔 마탑에 이르렀다.
얼음 기사들의 호위 속. 마차에서 왜소한 체격의 여성이 내렸다. 제 몸집만 한 짐 가방을 염동력으로 가볍게 띄운 채였다.
한쪽으로 묶어 내린 적갈색 머리. 헤겔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였다.
마차를 호위했던 뒤펜도르프의 병력은 일제히 나무 쪽에 서 있는 청은발의 소년을 향해 절도 있게 경례했다.
아리아의 담담한 시선도 그 소년을 향해 돌아갔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친히 마중 나올 줄은 몰랐던 것. 뭐 때문에 날 찾은 것인지?”
청은발의 소년, 아이작은 아리아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키 차이는 상당했기에, 아리아는 뒷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뒤로 젖혀 아이작을 쳐다봐야만 했다.
“…아.”
아차, 싶었던 아이작은 무릎을 굽혀 아리아와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아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눈높이 따윈 맞출 필요 없는 것.”
“예?”
틱틱대는 아리아. 그녀에게 작은 키는 콤플렉스였다.
아이작의 배려심은 의도치 않게 아리아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