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6)
〈 256화 〉 비밀 연구 (2)
* * *
예상했다는 투다.
아리아 릴리아스는 내가 왜 자신을 찾았는지 알고 있었다. 단지 자기 생각이 맞는지 확인차 왜 찾았냐고 물어본 것뿐.
그럼 이야기가 빠르다.
“저한테 숨기시는 거 있죠?”
키 차이를 신경 쓰게 만드는 배려를 아리아가 싫어하는 듯하여 무릎을 펴고 물었다.
아리아는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깊은 숨을 내쉬더니 나를 제치고 지나갔다.
“따라올 것.”
아리아와 함께 헤겔 마탑에 들어갔다. 우리는 마탑 마법사의 인사를 받으며 승강기에 탑승했다.
승강기가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가는 중에도 아리아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비밀’과 관련된 언급을 주의하려는 것일까. 일부러 나도 말을 아꼈다.
꼭대기 층에 도달했다. 나와 아리아는 마탑주 연구실에 들어갔다.
높은 벽에 자리 잡은 램프의 빛 가리개를 염동력으로 조절하고 연구실을 밝힌다. 대형 도서관 같은 넓은 연구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책장에 손을 대고 결계부터 점검하는 아리아.
“역시…, 손상이 있었나.”
결계에 손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말투.
추론하건대, 아리아가 숨기고 있는 걸 추궁한 이가 나 말고 또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황실 마탑이겠지.
“결계가요? 누가 침입했었어요?”
아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부순 흔적은 아닌 것. 단순한 마도구의 결함 문제일 뿐. 학술 포럼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
심리를 읽는다. 아무래도 최근에 부서진 결계 틈으로 보여선 안 될 것이 잠깐이나마 새나간 모양이었다.
마력을 불어넣어 단숨에 결계를 수복하는 아리아. 방음 마법의 기능을 지닌 결계도 펼쳐졌다.
“아이작.”
“예.”
“네 말대로 내겐 비밀이 있는 것. 비밀스러운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아리아는 드넓은 책장 어딘가를 향해 염동력으로 날아가며 말했다.
은밀하게 진행하던 연구가 있었나.
“그런 거 그냥 보여 줘도 됩니까?”
“어차피 너한테서 쭉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너한테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던 것. 하지만… 이건 내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 내 비밀을 보여 줄 테니, 그 전에 너도 네 비밀을 알려줄 것.”
“예를 들면요?”
“네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궁극적인 이유. 아직도 여기에 남아서 뭘 기다리고 있는지, 그걸 내게 밝힐 것.”
아리아는 아카데미 편에서 사람들을 지켜왔고, 엄밀히 따지자면 여태 내 편이기도 했다. 즉, 아군이었다.
정체불명의 도로시 게일이 아리아를 찾아가라고 했을 정도이니, 아리아의 비밀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아예 대놓고 이 분이 내 편 될 거라고 미지의 책에서 단언해줬잖아.
비밀 밝히자고 험한 방식으로 아군을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인 건 당연하고.
어차피 아리아도 악신 토벌전에서 인간 편이 되면 됐지, 마족 편을 들진 않을 터.
내 목표를 숨길 필요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아리아의 담담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고요. 적막. 잠깐의 시간이 흘러, 아리아 앞에 선 나는 입을 열었다.
“악신이 부활할 겁니다.”
아리아의 눈살이 흠칫 떨렸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때가 임박하면 제가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악신….”
저번에도 얘기를 나눴듯, 아리아는 마족이나 신적인 존재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악신 네피드의 위험성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 악신이 봉인된 장소가…?”
“이 근처예요.”
처음으로 아리아가 놀란 모습을 보았다. 눈이 잠깐 동그랗게 뜨였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악신은 부활하기 전에 방해 요소를 없애려고 발악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사고를 터뜨렸고, 이젠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위험한 놈들을 하나둘씩 깨우려 하고 있고요.”
“부유섬이나, 전에 하늘을 흉내 냈던 그 마족 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들은 악신이 직접 깨운 건 아니지만, 악신이 깨우려는 게 그런 위험한 놈들인 건 맞습니다. 그리고, 전 아카데미가 좋아요. 그래서 여길 지키려 하는 거고. 악신의 부활 시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 그 사실을 학생들이 미리 알면 정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질 테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질 테니까….”
아리아는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기가 말한 것 외에도 많은 이유를 떠올리고 납득했다.
물론 실제 이유는 감췄다. 바로 여전히 내가 아카데미에서 배울 게 있다는 점과, 시나리오 클리어의 키가 아카데미에 있다는 점을.
‘그렇기도 하지만….’
빙의하고 쭉 지냈던 곳이다. 메르헨 아카데미를 우선 지키고 싶다는 건 그저 내 의지이기도 했다.
이해득실 따위는 없었다. 그저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장소도, 사람들도.
“…상황은 이해한 것.”
아리아는 악신의 부활 이야기에도 침착했다. 놀라는 것도 잠시였지, 그녀는 금방 평정을 되찾는 성격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네 편인 것. 걱정하지 말 것.”
날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인가. 그건 고맙네. 나는 미소 지었다.
아리아는 책장 어딘가에 꽂힌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이 꺼내진 구간, 책장 안쪽은 텅 비어 있었으나 아리아는 그곳에 손을 넣었다.
위장 마법으로 가려진 열쇠 구멍이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아리아는 열쇠 구멍에 어떤 열쇠를 꽂았다.
드드드득.
“어?”
책장 어느 구간이 갈라지며 꽁꽁 감춰져 있던 통로가 드러났다.
당황스러웠다. 마치 영화 속에, 범죄자 아지트에 쳐들어간 경찰이 비밀 통로를 발견했을 때의 장면 같았다.
“이제 내 비밀을 보여주겠는 것.”
아리아는 빛을 내는 램프를 챙기고 통로 쪽으로 고갯짓 했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안쪽은 어두웠으나, 아리아가 든 램프 덕분에 주위가 분간되었다. 색감이 칙칙하고 폭이 어깨 사이즈로 좁았다.
나선형으로 굽이치는 계단을 올라가자 넓은 방이 나타났다. 아리아의 연구실과 옥상 사이에 감춰진 구간이었다.
“이건… 뭡니까?”
온갖 마석이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다. 연금술에 쓰이는 고위 마수와 마물의 신체 기관 따위가 널려 있고, 방 가운데엔 처음 보는 기이한 형태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 서 있는 건, 기이한 청록빛 마력의 균열.
그것도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아주 작았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마력의 흐름.
결계가 겹겹이 쌓인 탓에 마력이 흐르는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몹시 고요했다.
그것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내 작품. 희대의 걸작이 될.”
아리아는 청록빛 마력의 문 앞으로 다가갔고.
그 앞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명계와 연결된 틈새.”
“……?”
뭔 터무니없는 소릴…?
“예…? 뭐?”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리아가 재미없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직접적으로 느껴지고 있었으니.
피부에 희미하게 와닿는 건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마력의 감각.
부유섬, 지괴의 카발리온과 싸울 때 명계로 가서 느꼈던 그 이질적인 감각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바로 그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네 반응을 보니 내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이 든 것.”
흡족한 표정을 짓는 아리아.
그 균열이 정말로 명계와의 연결점인지 온전히 확신하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가보지 못했을 테니, 당연했다.
“아이작, 난 죽기 전에 명계라는 곳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곳인지 탐구해 보고 싶었던 것. 그곳에 있는 신적인 존재를 관측하고 싶었던 것.”
아리아는 결계를 소중한 물건처럼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죽을 순 없었던 것. 이 세상의 비밀조차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아직 죽을 순 없는 것. 그래도 사후 세계가, 그곳에 있을 신의 존재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말라 비틀어진 온갖 고위 마수와 마물의 신체 기관들이 널브러져 있다.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재료들이다. 바닥엔 대량의 혈흔이 굳은 흔적이 만연하다.
사후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구현하는 방법이 정상적일 리 없다.
이건 분명.
“‘검은 마법’입니까…?”
세상엔 세기 어려울 만큼의 마법이 있으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마법이 많다는 건 상식이다. 마치 인류가 바다 생물을 모두 발견하지 못했듯이.
유형화되지 않은 마법들도 단연 존재하며, 그중 절대 통용되어선 안 되어 법으로도 엄금되는 마법들을 통틀어 ‘검은 마법’이라고 부른다.
가령 생물을 영원히 쥐로 만들거나, 인간이 마물의 아이를 낳는 걸 가능하게 하거나, 불러선 안 될 존재를 부르거나, 여러 생물의 신체를 마구 뒤섞은 생물을 탄생시키는 마법 따위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었고, 모험가 길드에서 수주할 수 있는 퀘스트 중엔 어느 마법사 집단의 검은 마법을 이용한 흉계를 막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알고 있었다.
아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검은 마법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런 건 악성 이단 종교나 악질적인 흑마법사나 환장하는 분야일 뿐. 이건 내가 직접 고서에서 힌트를 얻고 연구하여 정립한 방법.”
[빙제]의 효과 덕분에, 이런 문제로 감정이 격화되진 않았다.차분하게 받아쳤다.
“그건 선생님 생각이잖아요. 누가 봐도 법이 허용할 게 아닌데. 위험한 짓이에요….”
“사람들한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는 것.”
“만약 명계에서 무언가가 넘어오면 어쩌실 겁니까? 그걸 선생님 의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 넌 명계에 관해서도 알고 있는 눈치인 것.”
망자들이 투닥거리는 명계 구석에 가 본 적이 있으니까, 당연히 알지.
“뭐, 어차피 그럴 일은 없는 것. 통로가 좁으니까. 이것이 내 한계. 난 그저 관측이 목적이니 이 정도면 충분한 것.”
현미경으로 미생물 관찰하듯 사후세계를 관찰하겠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저 균열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저게 사고를 터뜨렸다면 분명 대형 사고가 됐을 테고, 게임에서 언급되지 않았을 리 없었다. 하지만 전술했듯,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저런 건 본 적이 없었다.
엔딩 크레딧에서도 이안은 잘 먹고 잘 살았지. 즉, 균열이 자연스레 사라지거나, 아리아가 평화롭게 관찰만 하고 폐기했을 수도 있다.
물론 희망적으로만 볼 순 없었다. 엑스트라 아리아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뭐가 어쨌든, 황국에 들키면 대역죄였다.
그러나 형벌 따윈 무섭지 않은지 아리아는 내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연구가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안도감만 느꼈다. 지적 호기심 때문에 기어이 건드려선 안 될 영역에 손을 대려는 오만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미지의 책을 적은 도로시 게일은 아리아를 콕 집어 찾아가라고 했다. 그녀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며.
굳이 아리아를 지목한 건 저 균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명계와 악신 해치우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데?
“반응이 공격적이지 않은 건 다행….”
얼마 안 가서였다.
갑자기 결계 안쪽에서 지이잉, 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균열에 소용돌이치던 마력이 울컥거렸다.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듯이.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이.
위기감이 느껴졌다. 다급히 소리쳤다.
“선생님! 피해요!!”
아리아는 크게 놀랐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균열을 쳐다본다.
그리고.
쨍그랑!!
균열이 총을 발사하듯 무언가를 쏘아냈다.
그것은 단숨에 겹겹이 쌓인 결계에 구멍이 뚫으며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와르르, 유리창 깨지는 소리.
“……!!”
균열이 발사한 무언가가 내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을씨년스럽고 시린 무언가가 뇌를 차갑게 적신다.
그 순간.
눈 깜짝할 새에 얼음으로 장식된 호수가 내 시야에 내비쳤다. 하늘에선 피의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몸의 감각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내가 이동된 게 아니다.
이것은 환각.
그것도 내가 의지만 품으면 풀어낼 수 있는 부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환각을 곧장 풀어내지 못했다.
얼음 호수 중간에 있는 작은 집. 그 앞에 서 있는 한 여성이 보였기에.
몸이 굳었다. 두 눈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 여성은 색이 희멀겋게 변해 버린 연보랏빛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채다. 날 바라보며, 사근사근하게 웃음 지으면서.
성숙한 외형이었으나 그녀를 못 알아볼 순 없었다.
‘도로시…?’
곧바로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도로시 게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