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91)
〈 291화 〉 철의 요정 토벌전 (1)
* * *
기이한 검의 무덤이 있었다.
지면에 꽂힌 수많은 검은, 칼자루를 포함해 오로지 철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저마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무기.
그러나 인간이 만든 무기를 흉내 낸 무기였다.
검의 무덤 중앙엔 유골이 가득한 뼈의 언덕이 있었고, 그곳엔 대검 하나가 우뚝 선 채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대검을 향해 한 남자가 나아갔다. 깨끗하고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였다.
몰아치는 비바람은 광휘에 휘감긴 그 남자에게 닿지 못하고 증발할 뿐이었다. 그 신성함은 고작 빗물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대검 앞에 이르러 발을 멈추었다.
[요정, 라크닐. 네놈이 숨을 죽인 채 무엇을 노리는지 알고 있다.]이윽고, 수많은 검이 진동하며 비명을 지르듯 쇳소리를 냈다.
연이어 대검에 담긴 철의 마력이 흘러나와 괴이한 형상을 갖추더니 새하얀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계획을 조금 앞당겨라.] [네가 뭔데 내게 명령하는 건가요?]새하얀 남자의 머릿속을 울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철의 마력은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무기들의 형상을 갖추어 남자를 찢어발길 듯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 형상을 바라보며 그저 미소만 띄웠다.
[명령이라니, 당치도 않군. 나는 뷔엘이다. 요정 라크닐, 나와 거래하지 않겠나?]이는 수개월 전의 이야기다.
* * *
“저, 저게 뭐야?”
“이 마력은 뭔데…. 뭐냐고!”
“무서워….”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내 눈앞의 노아는 “라크닐…?”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독백하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저게 왜 벌써 나와…?’
무언가가, 어디선가 어그러졌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내 예상대로 흘러가리란 보장이 없더라도 저 하늘의 장대한 대검은 벌써 나와선 안 되는 것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11막 2장, 요정 대전 (1)」.
아카데미 대항전이 마무리되고 철의 요정 라크닐이 등장하며 시작되는 시나리오다.
라크닐은 무대에 남은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대항전과 비슷한 룰을 가진 죽음의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을 클리어 해 나가다 보면 다른 요정들이 찾아와 라크닐과 전투를 벌이는데.
그때 우리의 주인공 이안은 요정들로부터 일시적으로 힘을 물려받아 라크닐에게 일격을 날리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카데미 대항전의 극초반.
‘아직 학생이 너무 많아.’
나름 주위의 녀석들이 황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아카데미의 강자들이라고 해도, 라크닐 상대론 걸어 다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요정은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 자연의 질서와 균형, 평화를 위해 잠잠히 살아갈 뿐, 그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중 라크닐은 「요정 대전」 파트의 최종 보스 답게 특히 더 위험한 놈이다.
범재인 노아조차 철의 마력 하나로 레벨 189로 책정되는 강자가 되어 버릴 정도이니. 철의 마력의 근원지인 라크닐은 대체 어느 수준의 괴물이겠는가.
‘뭐가 꼬인 거냐?’
머릿속에서 기억의 필름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그러자 문득 어제 들었던 의미심장한 격려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아이작 학생. 내일 대항전, 기대하고 있으마.’
‘뷔엘…?’
흔들리는 동공.
눈을 돌리고 [천리안]을 발동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내 눈동자로 멀리 있는 관중석 쪽 론자이너스 강사, 즉 뷔엘을 쳐다보았다.
놈은 내 [천리안]을 눈치챘는지 날 바라보며, 기다란 입꼬리를 찢으며 씨익 웃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마치 내게 ‘이 상황을 타파해 봐라’라고 하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
─ 설마 이런 것도 예측하지 못했나?
뷔엘의 입 모양이 그리 움직였다.
“저 개새끼가…!”
주먹을 쥐고 과거를 돌아본다.
뷔엘은 메르헨 아카데미에 찾아와 내게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저놈은 아직 내게 아무런 짓도 벌이지 않았다.
날 얕잡아 봐서?
아니다. 반대로 뷔엘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내 강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 왜 메르헨 아카데미에 찾아왔지? 왜 내게 자기 정체를 드러냈지?
‘뻔한 거잖아.’
내게 선전포고를 한다면, 당연히 내 감시 하에 아카데미에서 근무하게 되리라는 것을 저놈이 과연 몰랐을까?
‘그럴 리가.’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놈은 내가 자기 정체를 곧바로 알아차리게 했다.
날 죽이겠다는, 최상위 천족이자 불사신인 놈을 감시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내게 있을 리 없었다.
즉.
‘그럼 오히려…, 내가 감시하길 원해서 선전포고를 했단 건가.’
머릿속이 정리되어 간다.
뷔엘은 오히려 내가 자신을 철저히, 역량을 쏟아 감시하길 원했던 게 틀림없었다.
나는 위험한 미래를 어느 정도는 내다볼 수 있는 대마법사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남들이 보기에 내가 가진 힘은 미지 그 자체.
그렇기에 뷔엘은 아카데미에 오기 전부터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에 손을 쓴 뒤, 내 능력의 범위를 시험하고자 한 것일 터.
저 하늘의 대검이, 이곳에서 내 한계가 드러나게 했다.
뷔엘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대치 상황을 이어가야 하거늘. 내게 불리한 정보가 제공되어 버렸다.
‘그런 생각 할 때가 아니야. 일단 애들부터!’
생각은 빠르게 끝마쳤다. 어쨌든 지금은 우선순위가 있었다.
나는 다급히 소리치려 했다.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전부 여기서 도망…!”
[누구 마음대로요?]머릿속을 울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철의 요정 라크닐의 목소리였다.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날 겨냥한 것인가.
휘우우우우!! 쿠구궁!!
“꺄아악!!”
“뭐, 뭐야?!”
철의 마력이 먹구름을 뒤덮었다. 마치 액체 상태의 수은처럼 변해 버린 먹구름은 이내, 검의 비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대항전의 주최 측이 고용한 베테랑 마법사들이 강력한 원소 공격을 퍼붓고 결계도 겹겹이 전개했지만.
와장창!!
검의 비는 모든 공격을 간단히 갈라내고, 결계를 깨부수며 무수히 쏟아져 내렸다.
아무리 황국의 수준 높은 베테랑 마법사들의 마법이라고 해도 급박하게 전개된 결계다. 라크닐 앞에선 종잇장 수준일 수밖에.
시간을 들여 캐스팅하고, 단단한 결계를 전개해야 겨우 라크닐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 라크닐이 작정하고 뚫는다면 무용지물이겠지만, 아직 그럴 염려는 없다.
[천리안]으로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카를로스 황제의 명령 아래, 마법사들은 저마다 캐스팅하며 강력한 결계를 전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빨리 도망쳐!!”
“사, 살려 줘!!”
“제발!!”
“이러다 죽는다고, 빨리!!”
“으아악!!”
관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실력 있는 관중들은 마법을 쏟아 일시적으로나마 검의 비를 막아 내며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힘쓰고 있었다.
속출하는 부상자.
그때, 관중석에 연녹빛 나무가 피어오르며 광범위한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부상자의 상처가 순식간에 치유되어 갔다.
카야 아스트레앙의 식물 마법이었다.
차라라랑!!
동시에 휘황찬란한 별빛 마법이 너울지며, 검의 비를 어그러뜨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요정의 힘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예외적인 부류 중 하나.
‘또 다른 요정의 힘.’
카야와 도로시가 힘쓰고 있었다.
다른 실력 있는 관중들은 막 치료된 사람들을 대피시키거나 마법을 쏟아내며 그녀들을 도왔다.
‘이쪽도 시간을 벌어야 해.’
현재 내 레벨은 157.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되기 전에 레벨이 1 상승했다.
잔여 스탯은 총 73이 있었고,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되기 전에 [대 이종족 전투력]에 69 스탯을 투자했다.
즉, 현재 내 상태는.
[ 잠재력 ]보유 스탯 : 4
◆ 대 종족 전투력
– 대 이종족 전투력(A-) : 70/100 [UP]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92)
[대 이종족 전투력]이 발휘되어 내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나는 바위 마력이 흐르는 얼음의 벽, [화석빙]을 아카데미 대항전의 무대가 감싸지도록 전개했다.
드드드드득!! 쿠구구구구!!
순식간에 영롱한 [화석빙]에 둘러싸인 아카데미의 전장.
[화석빙]이 검의 비와 쉴 새 없이 부딪히는 까닭에 시끄러운 소리가 반복적으로 공기를 울렸다.“역시 빙제님…!”
“굉장해…!”
“감사합니다, 빙제님!!”
학생들의 환호성이 썩 기쁘지 않았다.
내겐 라크닐에게 대항할 수단이 있다. 바로 고유 특성 [밤의 칼날]이다.
하지만 그 특성은 라크닐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효과를 가졌을 뿐.
철의 공격은 순전히 내 원소 마법으로 받아쳐야만 했다.
‘길게는 못 버틸 것 같은데…!’
내 최고의 방어 마법조차 고작 검의 비가 쏟아지는 걸 막아내는 데 힘겨워하고 있었다.
본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검의 비는 관중들의 목숨을 노리며 그들과 참가자들을 떨어뜨려 놓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떨어지는 도중에 궤도를 틀어 무대와 관중석을 갈라 놓는 외벽으로 변모했었지.
‘일단 여기 있는 애들은 당장엔 죽지 않겠지만….’
이건 라크닐이 원하는 무대가 완성되는 걸 늦추기 위한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저흰 이제 어쩌면 좋죠?!”
“이안 페어리테일! 우리 아카데미의, 머리 까만 녀석 있어! 그놈을 찾아!”
한 학생의 질문에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안 페어리테일?”
“아! 빛의 아이! 맞죠?!”
“빨리 찾아오겠습니다!”
학생들은 토를 달지 않고 내 지시에 무작정 따랐다.
이안에겐 요정에 대항할 힘이 있다.
게임에서도 녀석은 팀원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라크닐과 처절하게 싸웠다. 요정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것이다.
고유 특성 [밤의 칼날]을 이안이 가졌다면 데미지 버프의 효과를 거뒀겠지.
‘이안이라면 라크닐에 대항할 수 있고, 적이 마족만 아니라면 죽지도 않아.’
애당초 마족 이외의 존재는 이안을 죽이지 못한다.
이안은 페어리테일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요정의 축복을 받은 사기캐니까.
라크닐이 이곳에 도래한다면, 이안과 함께 최대한 빠르게 그 요정을 처치할 계획이었다.
고유 특성 [밤의 칼날]을 가진 나라고 해도, 라크닐이 개최할 또 다른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이 많은 학생을 전부 지킬 수는 없을 테니까.
“노아.”
내 앞에 있는 노아를 쳐다보았다.
격한 소음 속, 그는 [화석빙]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라크닐이 안겨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겠지.
“노아!”
“예, 예…?”
내가 소리치자 노아는 놀란 얼굴로 내 쪽을 쳐다보았다.
“라크닐이 널 노릴 거야. 그렇게 떨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라크닐을 아십니까…? 그보다, 어떻게 제 이름을?”
“그건 됐고. 정신 단단히 차리고 각오해.”
[화석빙]으로 이루어진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 손 위로 얼음 결정을 피어 올렸다.“오늘 저 요정 토벌할 거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