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33)
〈 333화 〉 비밀 상점
* * *
이 세계에 빙의된 후 유례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학기가 지나갔다.
여전히 메피스토는 찾지 못했다. 어디에 숨은 채 숨죽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녀석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명백했다.
악신이 부활할 때, 메피스토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악신이 죽으면 마족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며, 악신과 함께하는 것 말고는 메피스토에게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배수의 진인 셈이다.
내가 모르는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겠으나, 수시로 [천리안]을 발동해 황국 영토를 살피거나 주의를 기울여도 여태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하고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특이한 징후가 발견되었을 때 내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이토록 잔잔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 3학년 1학기 파트인 「제14막」부터 「제16막」까지 전부 패스되어서.
둘째는 악신이 부활할 때까지 힘을 비축하는 중이어서.
폭풍이 오기 전이 가장 날씨가 맑고 고요하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대륙에서 떨어진 섬에 카야 아스트레앙과 함께 도착했다.
내가 아이작이 된 후 2년간 머물렀던 메르헨 아카데미 제1캠퍼스였다.
빙설룡-힐드를 타고 왔기에 금방 올 수 있었다.
폐허처럼 텅 비어 있진 않았다. 파견 온 황실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작 님, 어디 가십니까?”
“음…, 내 비밀 친구가 있는 곳?”
“비밀 친구?”
카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정 출구로 나가고, 접근 금지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이 있는 숲 입구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가다 어느 구간에서 방향을 틀어 후미진 곳으로 들어갔다.
둔덕 아래로 넘어가 특정한 십자 표시가 있는 나무 뒤편으로 향했다.
보인다. 작고 허름한 상점 하나가 큰 나무와 함께 있었다.
“어, 언제부터 이런 곳이…?”
“옛날부터. 말했잖아, 비밀 친구라고.”
우리는 그 상점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모논 공방입니다.]마법사 로브를 뒤집어쓴 너구리 형태의 마수가 카운터에서 우릴 맞이했다.
“너구리…?”
카야는 당황했다.
이곳은 비밀 상점.
>메르헨의 마법 기사> 후반부에나 진입할 수 있으며, 게임 시나리오에 구애 받지 않는 나는 초반부부터 이용해 마법 위장 복식-버서커를 구입했던 곳이었다.
선반엔 독특한 각종 마도구가 진열되어 있거나, 여러 마법 위장 복식 따위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상품에 있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너구리 마수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모논.”
[어? 와! 너구나, 아이작. 오랜만이네. 위장복 수선하러 왔어?]너구리 마수, 모논은 작은 손으로 후드를 들쳐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아예 후드를 벗고 활짝 웃었다.
모논은 화염 속성의 갈색 너구리 마수였다.
“그런 건 아니고. 아마 그거 수선하러 올 일은 이제 없을 거야.”
[그래? 아쉽네. 나름 네 상징 같은 거였잖아.]“이젠 쓸 일이 없어서.”
안경을 한 차례 들치며 미소 지었다.
마법 위장복은 앨리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수단이었다.
당연히 이젠 입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작 님, 비밀 친구라는 게 혹시…?”
“응, 쟤야.”
카야가 내 귀에 대고 몰래 속삭이자 모논 쪽으로 턱짓하며 대답했다.
[걔는 여자 친구야?]“응.”
“에, 예? 에?”
내 단답에 카야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녀의 머리 위로 온천 마크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 여자친구…? 여자…. 아얏!”
터덜터덜 뒷걸음질 치다 벽에 쿵 부딪치는 카야.
되게 부끄러워한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 그리 대답한 것뿐이었다.
[너도 할 건 다하고 사는구나?]“그건 됐고. 아직도 주인 안 왔지?”
모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응…. 아직 바쁜 것 같아. 언젠가 돌아오겠지.]모논에겐 기다리는 주인이 있었다.
먼 옛적, 모논이 누군가의 사역마였던 시절. 주인은 이곳에서 모논과의 사역마 계약을 끊었다.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전부 해결하고 오겠다고 했고, 그동안 모논에게 이 상점의 운영을 맡기겠다고 했다.
모논은 각종 공방 지식이 담긴 서적과 재료들을 선물로 받았다. 덕분에 지금의 모논은 마도구 제작, 연금술 등에 조예가 깊었다. 재료들도 스스로 채집하러 다니거나 섬을 나가서 수집할 줄도 알았다.
나름 수완도 있어서 아르마나의 완드 같은 마도 무기도 제작할 수 있는 귀한 재료를 구할 줄도 알았다.
이 상점은 남의 땅에 지은 불법 점포나 다름없었기에 메르헨 아카데미에 들키면 철거해야 할 처지였고, 모논은 오가는 손님마다 좋은 퀄리티의 상품을 값싸게 제공하겠다며 상점의 존재를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카데미가 아는지 모르는진 모르겠지만.’
아카데미가 이 비밀 상점을 알면서 방관하는지, 아예 모르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게임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뭐,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쨌든 모논이 주인을 기다린 지도 어느덧 60년이 넘었다.
주인이 나타났으면 좋았겠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논.”
모논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여기 뜨자.”
[응?]모논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손님 없었지?”
[아, 응…. 밖에 무슨 일이라도 났어? 상가도 텅 비고 조용하던데.]“얼마 안 가 이 섬에 지랄 맞게 강한 놈이 나타날 거야. 손가락만 휘둘러도 일대를 전부 태워 버릴 수 있는 괴물이.”
[그, 그게 정말이야?]모논은 크게 놀랐다.
“어떻게든 우리가 그 괴물을 막긴 할 건데, 이 섬이 전장 되는 건 못 피한다. 여기 있겠다는 건 그냥 죽겠다는 거랑 다를 게 없어.”
[…….]“이미 섬 주민들도 대부분 피난시켰고, 나머지도 마저 찾아서 내보낼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알려줘서 고맙지만, 그건 어렵겠다.]모논은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고 작은 양손을 소심하게 톡톡 두들겼다.
[그 괴물이란 게 나타나기 전에 주인이 돌아와 줄지도 모르니까….]내 목적은 섬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것.
모논은 이미 수차례 비밀 상점을 드나들며 친분을 쌓은 상대다.
사연까지 아는 처지로서, 이 녀석 또한 무사히 대피하길 바랐다.
“네 주인이 안 온다면?”
[…응?]모논이 품고 있을 불안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녀석은 고개를 치들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인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거나, 이미 수명이 다 했거나, 모논을 버렸거나.
아마 버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당시 메르헨 아카데미는 내가 1학년 1학기 학기말 평가를 치렀던 구(舊) 캠퍼스였다.
거기서 여기까진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아카데미에 들킬 염려도 없다고 판단했을 터.
아마 이런 허름한 장소를 넘긴 건, 모논이 생산적인 생활을 할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논에게 심적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좋은 말로 구슬리자.
“불의의 사고라도 당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뜨자, 모논. 아니면 내가 네 주인 찾는 거 도와줄게. 나라면 누구보다도 도움이 될 거야. 어떻게 생겼는지나, 뭐 이것저것 정보만 알려주면….”
[기억 안 나.]“……?”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모든 게 다 기억이 흐릿해. 다시 보면 분명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주인이랑 같이 살 때 행복했다는 것만 기억이 나.]모논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내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그래서, 여기서 주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난 주인이 보고 싶어. 그러니까 여기 있을게.]“…결국, 못 만나고 죽는다고 해도?”
[그럼 어쩔 수 없지. 그게 내 선택이니까.]모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난 여기가 좋거든. 주인이 내게 남겨준 곳이잖아. 여길 버린다는 건 내 모든 걸 버린다는 것과 같아.]허름한 상점 곳곳엔 수차례 보수한 흔적이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은 모논이 남긴 삶의 자국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난 여기 있을래. 제안해줘서 고마워, 아이작.]“…그러냐.”
눈을 지그시 깜박였다.
모논의 의사는 무척 확고했다. 더는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나는 나대로 위험에 대피할 방안이 있거든. 지하에 나만의 대피소를 만들어 놨어. 그 괴물이란 게 나타나도 아무 문제 없어!]악신 네피드의 힘은 핵폭탄 같은 게 아니다. 소멸의 힘이다. 땅을 태우고 바다마저 증발시킬 수 있다. 지하 벙커 같은 게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다만, 악신이 쉽게 이 섬을 파괴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든 막아낼 거니까.
“아이작 님….”
카야가 곤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녀를 쳐다보았다. 모논을 강제로라도 대피시키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묻는 눈빛.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겐 심리를 읽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모논을 강제로 대피시키는 건 그의 의사를 억압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선택은 존중이었다.
“그래, 그럼 뭔가 위험한 게 터진 것 같으면 곧장 지하에 숨어.”
[괴물이 나타나면 티가 나나?]“엄청. 대놓고 날걸.”
[하하! 좋아, 친절한 괴물이네!]모논은 실실 웃었다.
[아, 줄 게 있어! 이거 받아.]모논은 고급스러운 함을 꺼내고 뚜껑을 열었다.
말끔한 옷이 가지런히 접힌 채 함에 들어가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본 적 없는 상품이었다.
“이게 뭐야?”
[내 회심의 걸작! 마법사들은 왜 거추장스러운 로브나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런 옷을 입는 편이 훨씬 나을 텐데.]“왜 이런걸 주는 건데?”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나라고 해도, 네 이야기까지 못 들었을까 봐?]“…….”
[이름 없는 영웅. 예전에 도시에 나갔다가 방랑 시인의 노랫말을 듣고 네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그 이야기에 영감을 받고 1년 넘게 만든 거야.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기술의 총체지. 한번 입어 봐.]그래서 처음 보는 것이었구나.
모논이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뭐랄까, 깔끔한 느낌이 됐다. 휘랑의 망토와 제법 잘 어울릴 듯했다.
검은 장갑까지 손에 끼웠다.
카야는 넋을 잃고 나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연심이 느껴졌다.
[효과는 마력 회로의 이완, 마력 발산의 강화. 탐나지?]이런 타이밍에 스펙 업을 하게 될 줄 몰랐네.
“얼마야? 살게.”
[그냥 가져.]“왜?”
[날 신경 써 준 보답이니까.]“그래도 공짜는 좀 마음이 불편한데.”
[그럼 최선을 다해서 이 섬을 지켜줘. 그거면 충분해.]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모논의 선물은 함째로 받았다.
녀석은 웃으면서 작은 팔을 흔들었다.
[잘 가, 아이작. 또 보자.]‘또 보자’라….
나는 웃으며 맞인사했다.
“그래, 또 보자.”
카야는 상체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고, 우리는 함께 비밀 상점을 나섰다.
숲길을 걷던 중, 카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이작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친구 분을 피난시키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피난시키는 게 맞겠지. 살길 바란다면.”
내겐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나는 모논의 확고한 의지를 읽었다.
이미 모논은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강압적으로 굴 필요는 없어.”
“예…?”
60년간 모논은 어떤 마음으로 마도구 제작과 연금술에 매진해왔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드높은 경지에 오른 지금에서야 알아챈 게 있다.
모논은 주인을 기다리지 않고 있었다.
혼자서 이 세상을 저버릴 자신이 없으니, 억지로 품은 실낱 같은 희망을 누군가 끊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더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
그러나 모논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가능한 한 이곳을 지킬 작정이었다.
그것이 내 타협점이었다.
「최종막, 악신 토벌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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