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47)
유명한 이야기다.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 가난한 가정집에서 태어났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던 그 어린 남매를, 부모는 숲속에 버리고 온다.
어린 소녀, 그레텔은 오는 길에 돌멩이 여러 개를 떨어뜨리는 기지를 발휘해 헨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지만.
남매는 또 한 번 버림받는다.
다음엔 돌멩이를 준비할 틈이 없어서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며 길을 표시했으나.
빵 부스러기는 이미 숲속에 살던 새들의 먹이가 되어 버려 돌아갈 길을 알 수 없게 돼 버린다.
공복이 찾아온다. 어린 남매는 먹을 걸 찾으러 숲속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과자로 이루어진 집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먹다가 그 안에 살던 매부리코 마녀를 만나게 된다.
마녀는 부모에게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을 거두어 주었으며.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으나, 그 속셈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첫 번째 에피소드, 「비하인드 스토리 – 헨젤과 그레텔」.
거기서 동화 속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의 궤도가 뒤틀린다.
헨젤은 골골댄다. 과자집 마녀는 매일 헨젤의 손목을 붙잡으며 상태를 체크한다.
그리고 어느 날, 헨젤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헨젤뿐만 아니라 저마다 다른 곳에서 살던 어린아이들의 몸이 흉물스럽게 부풀어 오른다.
악룡의 제물 각인이 발동된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가, 어느 고위 귀족에게 고기 한 덩이를 받는 조건으로 자기 자식들에게 순차적으로 악룡의 제물 각인을 새기게 둔 것이었다.
악룡의 제물 각인이 새겨지는 곳은 눈과 뇌의 일부.
처음 과자집 마녀가 헨젤과 그레텔을 발견했을 때는, 헨젤은 이미 손을 쓰기 힘들 만큼 늦은 상태였고.
그레텔은 다행히 늦지 않아, 틈을 봐서 제물 각인이 새겨져 있던 뇌 일부와 안구를 바꿔 주며 가까스로 악룡의 제물이 되는 일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레텔이 시력이 급격히 좋아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기억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전부 자기 몸을 불사른 과자집 마녀의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대처였다.
과자집 마녀는 악룡-오르키스가 현현할 줄 알고 미리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었다. 자기 집을 과자집으로 만든 것도 악룡에게 당한 어린아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으니.
이윽고, 하늘이 붉게 물들며.
새까맣게 썩은 대량의 사람 시체로 이루어진 검은 용의 형상이 구름을 뚫고 튀어나왔다.
나라멸망급 재앙의 마수, 악룡-오르키스였다.
과자집 마녀는 8성급 사역마, 뇌신조-갈리아를 소환해 악룡에게 대항하고 끝내 승리를 거두지만….
악룡의 저주가 뇌신조에게 임하고.
과자집 마녀는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악룡을 소환한 혐의를 뒤집어쓴 채 과자집 앞에서 황국에게 사살당한다.
그레텔은 수많은 전투 병력 앞에서 과자집 마녀를 껴안고 슬피 운다. 과자집 마녀는 그 어린 소녀에게 뇌신조를 맡기고, 숨을 거둔다.
그레텔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 악룡-오르키스를 소환한 진범이었던 고위 귀족은 황실에 붙잡혀 처형당한다. 그러나 국가는 영웅이라 불러야 할 과자집 마녀를 악녀라고 역사에 기록해 버린다.
그 어떤 정치적 실타래도 엮여 있지 않은 과자집 마녀만큼 이용해 먹기 좋은 먹잇감도 없었을 터다.
애초에 많은 어린아이를 사살한 혐의를 받고 있던 여자였다. 사실은 그 또한 누명에 불과했지만, 그녀 자신의 신체를 이용했던 잔혹한 실험 공간이 드러나며 그 혐의에 잘 어울리는 근거가 생겨났다.
그렇게, 온갖 해괴한 악행들을 갖다 붙여 과자집 마녀를 ‘천앙의 대마녀’라 명명하며 만민의 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나마 과자집 마녀에게 은혜를 입었던 엘타니아 가문만큼은 천앙의 대마녀라는 악명을 부정했다.
그들은 과자집 마녀로부터 사전에 부탁 받았던 대로 그레텔을 거두어 주었고.
과거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그 아이에게 루체 엘타니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자색 번개로 휘감겨 있던 결계는 빛나는 가루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미 심각하게 반파되어 건물이라고도 볼 수 없는 카를리관, 그 꼭대기 층에 있는 제단 위.
루체의 몸은 뇌신조의 보호막이 풀려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턱─.
한 남자가 그녀를 받아 냈다.
루체는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었다. 뇌신조에게 모든 마나를 빼앗기고, 체력까지 모조리 긁혀 없어진 듯했다.
루체는 슬며시 눈을 떴으나, 시야까지 흐릿해서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한 남자가 자신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루체는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구…?’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입 근육이 움직이질 않았으니.
루체는 부연 시야로 자신을 들고 있는 남자의 옷 색깔과 어깨 윤곽만 간신히 구분해냈다.
군청색 옷, 벌어진 어깨. 은은하게 느껴지는 얼음 마나와 냉기.
‘그릉…이구나.’
뇌신조와 마족을 뚫고 온 군청색 인상착의의 얼음 속성 보유자라면, 그릉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위장이 풀렸는지 루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평범해 보이는 체격이었으나.
그 체격이… 어째 익숙하게 느껴졌다.
─ ‘마나를 원소화하지 말고 일단 편하게 흘려보내 봐. 그리고 그 감각을 기억해. …이제 풀어볼게.’
─ ‘아직!’
─ ‘앗! …푸훕! 아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아, 너무 웃겨…! 배 아파….’
원소꽃 공예를 연습할 때.
청은발 친구의 손등에 자기 손을 포갰던 기억이 떠오르고.
팔과 다리에 닿고 있는 그릉의 손길이 그때의 기억과 겹쳐진다.
옷감을 사이에 둔 감촉이기에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지고 있는 손 크기가 그 남자의 것과 너무도 비슷해서.
루체의 동공은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작…?’
마나를 통째로 빼앗겨 버린 루체에게 더 이상 남아 있는 힘은 없었다.
이내, 그녀의 체력은 한계에 치달았고.
정신은 아득한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 * *
[꾸, 꾸우, 꾸욱…!!]중천 세계에서 나오자마자 내 몸이 얼마나 한계인지 여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제단 위에서 떨어지고 있던 루체를 받아 냈다. 곧 있으면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되리라 짐작하고 다급히 빙결 해제로 내 마법의 흔적들을 지워냈다.
푸른빛 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서 기절해 있는 루체를 바닥에 눕혀놓았다. 이후, 이든을 불러와 그녀를 제단에 기대게 앉혀놓았다.
나는 이든에게 날 데리고 도망쳐 달라고 명령했다. 충분히 가능했다. 이든은 몸체에 바위를 덧대 크기를 키우는 게 가능했으니.
평소보다 훨씬 ‘골렘’이란 종족에 걸맞게 크기를 키운 이든은 나를 든 채 그 육중한 몸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녀석은 굵어진 목소리로 나를 향해 급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빙제]의 부작용과 뇌신조의 뇌격 탓에 내 몸은 이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 하는 상태였다. 전신 구석구석에서 망치로 내리치고 있는 듯한 지독한 통증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그러나 그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울부짖을 여력조차도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든…, 여기서… 내려 줘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시야가 뿌옇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기에.
꽤 멀리 온 건 확실했다. 감각적으로 짐작해 보건대 여긴 카를리관 뒤편, 언덕 아래쪽이리라.
아마도 숲에 들어서기 직전의 위치. 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의 외곽 중 어느 지점인 듯했다.
주변에 생기로운 나무 향과 풀 향이 가득했다. 다행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든은 나를 풀밭에 눕혀놓았다. 녀석의 목소리엔 울먹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괜히 미안해진다.
아직 앞이 보였을 때, 내가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았던 광경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뇌신조의 결계가 해제되어가며, 번개 하피들이 사라져가며, 보랏빛 가루가 밤하늘에 별빛처럼 새겨져 가는 경관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나는 그 경관의 기억 속을 표류하며,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머리를 부여잡고 내가 도망친 연유를 연신 상기했다.
천앙의 대마녀.
그녀는 내 운명을 들여다보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을 선물로 주었다.
즉, 나는 죽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서 토벌대의 눈에 띄지 않도록 도망친 것이었다.
문득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이작에게 빙의되어, 주인공 실력이 형편없단 걸 알아채고,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1학기가.
그렇게 과거를 돌이켜 보니.
이렇게 죽기엔 참으로 허망하겠구나, 싶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아이작. 엑스트라.
이 세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이안 페어리테일이다. 이 세계의 모든 역경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위치에선 내가 주인공이다.
예전부터 내 인생이 아무리 칙칙하고 못 나고 실패한 것처럼 보였어도, 내가 나한테 만큼은 주인공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살아왔었다.
내가 이안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는 아이작이 엑스트라였다고 해도.
내가 아이작으로서 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으면 아이작인 내가 주인공인 것이다.
이안 페어리테일.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그 어떤 시련과 역경이 들이닥쳐도 그는 꿋꿋하게 이겨 내 왔다. 그러니 나도, 너를 본받아 내게 닥쳐온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허망하게 뒤질까 보냐. 허망하게 포기할까 보냐.
이를 악물고 악으로 깡으로 목표를 이뤄내는 건 내 주특기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
폐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힘이 다다른다. 서서히 눈이 감겨 간다. 이제 눈을 한번 감아버리면 이 지독한 격통에서 해방될 거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만큼은 절대로 꺼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희뿌옇게 보이던 내 시야엔.
서서히,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광휘의 나무 (식물 속성, ★7)」
온화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마치 새로운 생명력이 몸 안으로 깃드는 듯했다.
눈을 떴다. 결계가 보랏빛 가루가 되어가며 밤하늘을 밝히고 있는 광경이 눈에 비쳤다. 시력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언덕 위에 솟아 있는 카를리관 쪽을 쳐다보았다.
연녹빛 광채를 퍼뜨리고 있는 거대수(巨大樹)가 자리를 잡고서 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에 은은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수많은 반딧불이 군세가 빈틈 없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격통이 사라져간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이든은 우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평소의 크기로 작아지더니 내 품에 껴안겼다.
[꾸…! 꾸웅…!] [ 이든 ]심리 : [ 당신이 살아나서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
카를리관 위로 쭉 뻗어 있는 빛나는 나무.
저 나무가 뭔지 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2학년 파트에 들어서야 나오는 카야 아스트레앙의 식물 마법. 일정 반경 안에 있는 생명체들을 무차별적으로 회복시키는 [광휘의 나무]였다.
‘왜 저게 벌써…?’
[광휘의 나무]로부터 연녹빛 반딧불이가 날아와 내 주위에 있는 식물들에 스며들어 생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그 반딧불이들 틈에서, 나는 머리를 굴리고 상황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3장, 학기말 평가」는 곧바로 「3막 4장, 뇌신조 토벌전」으로 이어진다.
즉, 학기말 평가에서 발생한 변수는 뇌신조 토벌전으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번 학기말 평가에서 변수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었을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건 바로 루체의 이유 모를 학살극과 대격전, 그리고 내가 카야에게 준 선물이었을 터.
루체로 인해 상위권 학생들의 펠 카드 찾기가 지연되었다. 루체라는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데에도 신경을 과하게 쏟은 나머지 마나 감지 및 탐색, 카드 쟁탈에 어려움을 겪었을 터다.
게다가 대격전으로 인해 사역의 베라가 출현하기 전까지 시험을 통과했어야 할 차석과 삼석, 그 외의 A 클래스 학생들, B 클래스 상위권 학생들까지 시험장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본래의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우등생들 대부분이 토벌대에 가세하게 되었으리라.
그들은 도로시와 이안이 좀 더 수월하게 뇌신조의 HP를 깎는 데 일조했을 게 뻔하다. 뇌신조의 HP가 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깎여 있던 까닭일 터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HP가 최소 3, 40% 이상이었을 뇌신조를 상대해야 했을 테고.
그 싸움에서 패배해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카야도 마찬가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뇌신조 토벌전에서 카야는 토벌대에 끼지 못했었다. 펠 카드를 3장째 찾아낸 이후로 마나 감지에 요령이 생겨 단번에 5장째까지 획득하고, 시험에 통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체가 큰 변수로 작용하면서 결국 카야 또한 사역의 베라가 출현할 때까지 시험장에 남아 있게 되었고.
뇌신조 토벌전에 가세하게 되었고, 속출하는 부상자들을 지켜보며 분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걔 성격이면 무조건이다.
그렇게 도로시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자신도 힘이 될 수 있기를 열망했을 터다.
내가 준 선물, 아르마나의 완드는 카야의 최종 무기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초반부에 그 무기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 순전히 돈 문제로. 그러나 나는 조기에 그걸 매입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카야에게 선물로 준 아르마나의 완드는 식물 속성 마나에 감응되는 속도를 급격히 높여줬을 테고.
카야의 열망을 따뜻한 빛을 내뿜는 한 그루의 나무로 실현시킨 것이리라.
‘예쁘네, 진짜로….’
[광휘의 나무].일정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치유해주는 마법. 치유 범위도 아주 넓은 편. 그 어떤 치명상이라 해도 단번에 회복이 되는 마법이기에, 치유 마법 계열에선 최고위 반열에 들어 있다.
하물며 식물 속성이다. 그 속성 마법을 쓰려면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의 도움을 받아 식물 속성 마나에 완전히 감응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백 년이 걸려도 어려울 것이다.
온화한 연녹빛이 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를 감싼다. 어부지리로 몸을 회복하게 된 나는 마냥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그저, 실소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저 나무가 내 1학년 1학기 여정의 결과물인 것 같아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함이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광휘의 나무]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뇌신조의 결계가 서서히 사라져가며 흩뿌리는 보랏빛 가루와 홀로 고요하게 빛나는 거대한 나무의 조합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
그렇다고 감상에 빠져 있기만 해선 안 됐다. 혹시 모르니 마법 위장복을 벗어둘 필요가 있었다.
“후아!”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법 위장복을 벗어서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광휘의 나무] 덕분에 상처는 치유됐어도 체력이 온전히 회복된 건 아닌지 외투를 벗는 행위조차 몹시 버거웠다.
적어도 기숙사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는 [광휘의 나무]의 빛 좀 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아이작 광합성이다.
이든은 내 옆에 오더니 내 팔을 흔들었다. 귀여운 녀석. 나는 이든을 내 다리 위에 앉히고 안아주었다.
그때였다.
“회장,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순간,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이 가슴속이 북받쳐 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여학생이 눈에 보였다.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의문을 품은 얼굴로 나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
잠시 죽을 뻔했던 까닭일까.
그 반가운 얼굴을 눈에 담자마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눈물이 핑 도는 감각을 애써 참아내고, 가까스로 얼굴에 오롯이 미소만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재빨리 나지막한 심호흡으로 평정심을 되찾고서.
내 눈에 비치는 연보랏빛 머리칼의 어여쁜 여학생과 눈을 맞추었다.
“선배, 늦으셨네요. 너무 늦게 구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나는 도로시 하트노바에게 일부러 피곤한 기색을 비치며 장난식으로 말했다.
“진짜, 갑자기 전기 새 마물 같은 게 떼거지로 나타나서…. 겨우 도망쳤다고요, 저.”
“그러기엔 너무 안심한 표정 아니야?”
“선배 봐서 그래요.”
“니히히, 역시 내 팬 답군!”
도로시는 “으차.”하고 내 옆에 나란히 앉고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영롱한 비취색 마나를 흩뿌리고 있는 [광휘의 나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상황은 전부 해결됐어. 그 커다란 전기통닭은 저 나무 마법으로 회복되긴 했는데 이제 적이 아니게 됐고, 번개 마물들도 전부 사라졌어. 네 스토커 친구도 무사하고. 죽은 사람도 없고.”
“대체 뭔 일인가 했는데, 진짜 큰일이었나 보네요….”
“응, 완전 큰일이었지~. 진 다 빠졌다구. 사람들 지키랴, 뭐 하랴….”
도로시는 능청맞게 툴툴대다가, 돌연 싱긋 웃으면서 낭창낭창한 손을 자기 가슴께에 올렸다.
“그러니 우리 회장에게 이 누나를 위로할 기회를 주지~. 영광으로 여기도록.”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도로시가 귀여워서 나는 무심코 피식 웃고 말았다.
“고생하셨어요, 선배.”
“오냐!”
“선배는 정말 강하고 멋있네요.”
“으흠!”
“절 구하러 오는 게 너무 늦으셨지만요.”
“흐, 아앗….”
도로시는 당황한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그…, 회장도 제법 고생했나 보네.”
내 쪽을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얼른 화제를 돌리는 도로시. 나는 방금 전의 그녀처럼 능청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네, 시험 때 구르랴, 갑자기 나타난 마물들한테서 도망치랴… 아주 죽을맛이었어요, 그냥. 바로 기숙사나 갈 걸, 괜히 이 기회에 구관이나 구경하자 했다가 이런 봉변이나 당하고….”
마음이 풀리기라도 한 것인지, 거짓말로 이루어진 하소연이 내 입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어째 도로시의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기색이 내비쳤다. 마치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기분 탓일까.
[ 도로시 하트노바 ]심리 : [ ★☆★☆★☆★☆★☆★☆ ]
여전히 [심리 간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읽는 건 관두기로 했다.
“응, 고생했어.”
도로시는 안온한 미소를 흘리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선배.”
“왜에, 회장?”
“저 오늘 좀 많이 뛰어서 그런지 몸이 안 움직이는데, 기숙사까지만 옮겨줄 수 있어요?”
“니히히! 얼마든지. 이 누나한테 맡겨!”
도로시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또 한번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1학년 1학기, 나는 모든 배드 엔딩을 막고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욱 밀려오고 있었다.
한동안 나와 도로시는 나란히 앉은 채로 [광휘의 나무]를 감상하기로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니, 이 기회에 즐기고 가자는 풍류 넘치는 생각이 떠오르고 만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때, 애정하고 있는 네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4장, 뇌신조 토벌전」.
그 막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