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8)
“용케 지금까지 살아남았구나, E급 평민 주제에. 호오, 시계에 마력 알갱이가 하나···. 하나? 푸훗! 살아보겠다고 계속 숨어 있던 거냐?”
···예리한데?
“거기다 마나 감지력까지 형편없는 수준인가 보군? 한심하도다!”
비겁하게 팩트로 기선제압인가.
뭐, 저 녀석이 븅신 같아 보이긴 해도 실력적으로 나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마법으로 정면승부를 한다면 무조건 내가 진다.
하지만 뚫고 가야만 한다.
이안이 지금 무슨 상황일지 모르니까. 어쩌면 배드 엔딩을 맞이할 위기인지도 모르니까. 저 녀석 때문에 배드 엔딩을 맞이할 순 없으니까···.
나는 몰래 한쪽 손가락을 뒷주머니에 있는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작은 유리병이 잡혔다. 마도구였다.
트리스탄 험프레이의 마법은 마력량 측정 시간 때 보았듯 위력적인 편.
하지만 그에겐 약점이 있다. 바로, 공격에만 치우쳐 자기 몸을 지키는 데 미숙하다는 점이다.
그는 신중하게 방어 마법을 전개하면서 싸워가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단지 ‘공격이 곧 수비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공격 마법만 주구장창 숙달한 놈이다.
실전 경험이 없는 탓에 만들어진 마인드다. 분명 험프레이 가문의 사용인들이 떠받들며 키워줬겠지. 사실상 이번 반 배정 평가가 그의 데뷔 무대인 셈이었다.
“이 몸을 앞에 두고 도망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거냐? E급 평민 따위가? 무슨 자신감이냐? 아니면 설마,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것이냐?”
크하하학─, 하고 호쾌하게 웃는 트리스탄. 그러다 숨을 잘못 삼켜서 컥컥, 하고 헛기침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긴 시간 플레이해온 까닭일까. 어째 트리스탄의 삼류 악당 같은 대사마저도 정겹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너를 쓰러뜨리고 지나갈 셈이다.
‘난 널 잘 알고 있으니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힌 작은 유리병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작은 유리병은 돌멩이에 부딪쳐 깨졌고.
유리병 안에 응축되어 있던 희뿌연 안개가 부우욱 터져 나왔다.
스으으으으으──.
[가공 안개]: 병을 깨뜨리면 즉시 그 자리에 물 속성의 짙은 안개를 발생 시킨다. 효과는 20초간 지속된다.
등급 : 7티어
“안개?”
내가 깨뜨린 마도구는 물 속성 아이템, ‘가공 안개’.
연막탄처럼 순식간에 주위에 희뿌연 안개를 퍼뜨린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집중해서 보면 나나 트리스탄은 서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분간할 수 있다.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새하얀 냉기를 넓게 퍼뜨렸다.
「냉기 발산 (얼음 속성, ★1)」
자욱한 안개는 순식간에 차가워지면서 더욱 희뿌옇게 변해 갔다. 공기가 냉각되어 응결이 일어나 이류안개가 되고, 냉기와 더불어 안개의 농도가 더욱 짙어져 간다.
나는 다른 손으로 얼음 마나를 흘려보내면서.
이안과 루체가 힘을 합쳐 마족과 싸우고 있을 장소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
휘우우우욱──!!
날카로운 연녹빛 바람이 희뿌연 안개를 가르며 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풍검(風劍) (바람 속성, ★3)」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질 뻔했다···.
“푸훗, 이따위 장난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냐?”
트리스탄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손 앞엔 연녹빛을 흩뿌리고 있는 마법진이 구현되어 있었다.
휘우우우우우─.
바람이 사방에서 흐르며 안개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트리스탄이 일으킨 바람이었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바람 속성은 계속 바람을 일으켜 이후의 마법 출력을 높이는 연계가 특징이다.
즉, 놈은 본격적으로 나를 사냥하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안개가 걷혀가고 있을 때, 상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안개가 퍼진 순간부터 이미 얼음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손바닥에 푸른빛이 이는 손을 주먹 쥐었다.
흘려보내고 있던 마나가 끊기고.
트리스탄의 머리 위에 형성되어 있던 굵직한 얼음덩어리가 아래로 추락했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응?”
────퍼억!
얼음덩어리가 중력의 힘을 받으며, 트리스탄의 머리를 직격했다.
둔탁한 소리가 섬뜩하게 울리고.
“으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트리스탄.
그를 공격한 얼음덩어리는 평소에 내가 만들었던 것보다 커다랬다. 가공 안개가 발생 시킨 물 속성 안개로 인해 [원소 시너지]가 발휘된 덕분이었다.
이내, 트리스탄의 바람이 멎어간다.
안개가 사그라지고.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트리스탄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그토록 무시하던 E급 평민 따위한테 당했으니, 이제부턴 방어 마법을 죽어라 연습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체됐어···.’
손목시계를 보면서 시급한 상황임을 상기했다.
포인트 벌이용으로 트리스탄의 시계가 욕심나긴 하지만 그 시계를 뺏어가는 데 소모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나는 마음을 다 잡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배드 엔딩의 트리거는 이안이 죽는 게 아니다.
바로 루체가 마족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역마를 소환하는 때다.
그녀의 사역마는 8성급 마수인 ‘뇌신조-갈리아’.
마법 등급과 마찬가지로 최대 등급인 9성급은 세계멸망 급이고, 갈리아는 바로 그 아랫단계의 나라멸망급 최고위 사역마인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갈리아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본래 사역마가 된 마수는 주인의 말을 충실히 따라야 하지만 통제 불능의 갈리아는 그녀의 명령 따윈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명령 불복종의 페널티도 기꺼이 받아 가면서 말이다.
여기서 갈리아가 현현해 버리면, 지금까지 반 배정 평가에서 살아남은 유능한 학생들이 전부 죽게 된다.
현재 숲속엔 마법학부 1학년생들밖에 없으니, 학사 측에서 대응하기 전에 갈리아의 뇌격이 숲을 완전히 뒤덮는 것이다.
아직 숲속에 남아 있는 주인공, 이안이 죽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 중 하나.
마법학부 2학년생이자 별의 마녀로 불리는 도로시 하트노바가 뇌신조-갈리아를 가까스로 격퇴하면서 사태는 수습된다. 그때는 이미 이안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죽은 뒤다.
즉, 배드 엔딩이다.
‘제발 늦지 말아라···!’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도, 나는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 * *
“감히 이 몸에··· 상처를···!”
트리스탄은 아이작이 떠나간 방향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머리에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져서 온몸이 흙 범벅이 된 채.
그 손 앞엔 연녹빛 마법진이 구현되어 느리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대로 마력을 들이부어 장거리 공격 마법 [돌개바람]을 날린다면 아이작에게 닿을 지도 모른다.
“E급 평민 주제에···, 하찮은 E급 평민 주제에!!”
트리스탄은 정신을 잃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내며.
떠나간 아이작을 향해 마력을 쏟아부었다.
「돌개바람 (바람 속성, ★4)」
휘우우우우우우우우우───!!
연녹빛 바람이 회오리치며 드센 기세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휘우우우우우욱─!!
나무들을 박살 내고, 아이작을 향해 나아가려던 회오리는.
옆에서 튀어나온 더욱 강력한 회오리에 잡아먹혔다.
트리스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돌개바람]에 대항해 훨씬 강한 [돌개바람]을 날렸던 여학생이 숲속 어둠을 뚫고 걸어 나왔다.
담록색 양갈래 머리카락이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찰랑였고.
비취색 눈동자는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숲속에서도 유난히 밝았다.
마법학부 신입생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이었다.
“어, 어째서, 네가···?”
트리스탄의 물음 따윈 관심도 없다는 듯 카야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아.”
카야는 심호흡하듯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생각했다.
자신은 약하다.
아이작 님이 진심을 내보일 가치도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아이작은 위그드라실의 씨앗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감지해냈다.
당장에 그 씨앗을 몸에 품고 있는 자신조차도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발산되고 있지 않은 마나를 감지하는 건 대마법사의 영역으로 유명하다.
아이작은 자신 따위가 넘볼 수 없는 실력자임이 한 번 더 입증된 것이다.
‘굉장하네, 아이작 님은.’
고작 그따위 힘? 시간 낭비?
당연한 얘기였다.
그런 굉장한 사람한테 자신은 얼마나 별 볼일 없게 보였을까.
적어도 본래 실력의 아이작과 겨뤄보고 싶다면 최소한 역치는 갖추는 게 예의인 것이다.
오히려 보잘것 없는 실력으로 그에게 도전하는 것이 그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던 것.
흡사 유아기 어린애가 성인 나잇대의 기사에게 싸움을 건 격이었다. 그럼 상대는 이리 말하겠지.
‘일단 커서 오렴’···.
‘아이작 님께서 조금은 봐줄 만하게 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거야.’
카야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의지가 잉걸불처럼 조용히 불타올랐다.
“어째서··· E급 평민 따위를 감싸는 거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트리스탄.
“그 이유야 당연하죠.”
카야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휘이이이이이잉─────.
카야가 만들어 낸 바람이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트리스탄의 [바람 생성]보다도 마력 농도가 더욱 묵직하며, 드세기까지 한 카야의 [바람 생성].
그녀의 담녹색 양갈래 머리카락과 교복 자락이 사납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숲속 어둠에 그늘진 얼굴. 불쾌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눈빛.
그 모습을, 트리스탄은 의구심과 두려움에 찬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작을 지키고 트리스탄에게 대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감히 건드려보지도 못한 아이작 님께, 당신 따위가 덤빈다고?”
단순한 자존심 문제였다.
주위를 휘감은 카야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내, 땅거미가 내려앉은 숲 위로 트리스탄의 육체가 붕 떠올랐다.
저녁 하늘의 어스름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런 감상과 함께, 그의 의식은 멀리 보이는 수평선처럼 아득한 너머로 떠나버렸다.
한편.
루체 엘타니아의 로즈골드색 머리칼과 입고 있는 교복은 마른 흙으로 범벅이었다.
그녀는 기이하게 생긴 마족을 앞에 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치 동상처럼 서 있는, 느슨한 통자 감색 의복을 입고 있는 남자.
잔근육이 많은 체형, 피부는 회색. 두 눈은 꾹 감고 있다.
한 손을 턱 아래에 받친 채 고개를 살짝 숙인 것이,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아까부터 계속 흠흠, 거리는 소리가 루체의 머릿속을 울려댔다.
함께 저 이상한 마족과 싸웠던 이안 페어리테일은 현재 기절해 있는 상태.
“좀 죽어.”
루체는 팔을 가볍게 휘두르며 마력을 쏟아 냈다.
그러자 마족의 발밑에 파란빛을 내비치는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뜨거운 물이 빠르게 솟구쳤다.
「간헐천 (물 속성, ★4)」
────푸우우우우!!
굳어 있는 듯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려한 움직임으로 루체의 마법을 피하는 마족.
회피 동작 중에도 여전히 생각하는 자세였다.
뜨거운 분수는 하늘을 찌를 듯 위력적으로 솟아 오르기만 했다.
피할 줄 알고 있었다. 일부러 각도를 조절한 것이다.
루체는 괴물이 도망칠 곳을 유도해 그쪽에서도 마법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해수 감옥 (물 속성, ★4)」
삽시간에 물로 이루어진 동그란 [해수 감옥]이 생겨나 마족을 가뒀으나.
[해수 감옥]은 급속도로 얼어 버렸다.쩌저저저저적─────.
[흠─,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 흐음─.]마족은 얼어 버린 [해수 감옥]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고 빠져나왔다.
“내 물 마법만으론 역부족이란 거네···.”
달빛처럼 잔잔한 음성으로 루체는 독백했다
[해수 감옥]을 즉각적으로 얼려서 무력화시킬 정도의 얼음 마법. 마족의 얼음 마법 숙련도와 [원소 시너지]가 매우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저 마족은, 루체의 물 마법만으론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했다.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 흠!]마족이 큰 소리로 흠흠 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커다란 연파란빛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마법진 주위로 우아한 얼음 결정들이 떠다녔다.
루체의 머릿속에 경보가 울렸다. 이건 위험하다─.
돌연,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그의 발끝에서부터 지면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차라라라라라라라락──────!!
냉기가 눈보라처럼 일면서, 지면을 타고 부채골 형태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냉기가 지나간 자리는 꽁꽁 얼어붙어 매끄러운 빙판이 되어 간다.
────────「엄동의 파란 (얼음 속성, ★6)」
루체는 다급히 자기 주위로 물 속성 방어 마법인 [수벽]을 전개했다.
원형의 물 보호막이 형성되어 그녀를 지키기 시작했다.
「수벽(水壁) (물 속성, ★4)」
“으읏!”
냉기는 강력하게 쇄도하며 루체를 감싼 물 보호막을 얼어 붙이려 했으나.
그녀는 전력을 다해 마력을 방출해, [수벽]을 이루는 물의 흐름을 가속시켜가며 냉각에 대응했다.
냉기는 [수벽]를 제치고 지나가, 그 뒤편이 보이던 숲의 풍경을 빙하기의 한때처럼 뒤바꾸었다.
마침내 [엄동의 파란]이 기세를 잃어 잠잠해지고.
루체는 싸늘한 한기 속에서 희뿌연 숨결을 내뱉으며 [수벽]을 풀었다.
“…….”
루체는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서, 푸른 대양을 담은 듯한 눈동자로 괴물을 훑었다.
물 원소 마법만으론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녀의 최대 전력은 ‘번개’ 마법. 그 원소 마법을 쓴다면 상성으론 불리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번개 마법을 제대로 쓰려면 불러와선 안 될 걸 불러와야만 했다. 그녀의 마력 중 2분의 1은 항상 ‘녀석’을 억제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까.
루체는 교복 소매를 걷어 왼쪽 손목에 새겨진 마법진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을 소환한다면 저 재수 없는 회색 피부 마족을 쓰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은 양날의 검. 아직 제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은 많이 강해졌다. 명문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을 정도로. 마력량은 A+급이 나왔을 정도로.
‘갈리아···.’
이제는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아.”
가슴속이 요동친다. 긴장감 속에서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라앉힌다.
마침내 루체는 마음을 굳혔다.
8성급 마수, ‘‘뇌신조-갈리아’. 녀석을 소환하자.
그렇게 루체가 검지와 중지로 손목에 새겨진 마법진을 짚고 소환 주문을 영창 하려던 때.
턱─.
발소리가 들렸다.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마치 들으라는 듯 일부러 낸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루체는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 있는 낮은 절벽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군청색 후드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 온몸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이었고, 신장은 2m는 족히 돼 보였다.
눌러 쓴 후드 안쪽으로, 동그랗고 살벌한 붉은 안광이 비쳤다.
그 아래, 입이 몹시도 큰 편이었다.
훤히 드러난 잇몸. 크고 날카로운 이빨들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위아래로 튀어나온 송곳니와 어금니는 특히 위협적이었다.
눌러쓴 후드 때문에 구분이 잘 안 갔지만, 아마도 칠흑처럼 새까만 피부를 지닌 듯 보였다.
[그르르르르르릉···.]마치 한 마리의 짐승, 마수 같았다.
설마 여기서 또 위험해 보이는 괴물이 튀어나올 줄이야···.
이제는 진짜로 뇌신조-갈리아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어째서일까.
절벽 위에 서 있는 괴물의 눈은 루체가 아닌, 회색 피부의 마족을 향하고 있었다.
마족도 생각하는 자세를 포기하고, 두 눈을 치켜뜬 채 절벽 위 괴물을 쏘아 보고 있었다. 명백히 경계하는 자세였다.
왠지··· 괴물들끼리 싸우려는 분위기였다.
* * *
역시 옷을 잘못 산 것 같다.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비밀상점 주인이 마법 위장복 하나 남았다고 한 거 샀을 뿐인데, 설마 ‘마법 위장 복식 – 버서커’였다니···.
지금 나는 군청색 후트 코트를 입고 있고, 후드를 푹 눌러쓴 채다. 입가엔 날카로운 이빨, 커다란 송곳니와 어금니가 가지런히 나열된 디자인의 마스크를 끼고 있다. 전부 마법 위장복이었다.
내게는 그저 평소의 내 모습 그대로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나는 덩치가 큰 괴물처럼 보일 것이다.
절벽 위에 서서 루체와 마족을 번갈아 봤는데, 어째 루체 쪽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납득이 되는 반응이었다. 지금 내 모습은 섬뜩한 괴물 그 자체일 테니···.
‘근데 이안, 점마 또 기절해 있네.’
이안은 나무에 기댄 채 곤히 기절해 있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게임에서 이안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게다가 루체는 뇌신조-갈리아를 소환하기 직전인 듯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큰일 날 뻔했어···.
“다행이다···.” (그르르르릉···.)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독백하는 타이밍에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내 입에서 나오는 버서커의 울음소리인 것 같았다.
···나도 마족으로 오해 받을 판이네.
어쨌든, 여기까지 오는 데 성공했구나.
이제부터 할 일은 명확하다.
[ 사색의 페르니쿠스 ]Lv : 105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얼음
위험도 : 상
저 마족을 처치하고 배드 엔딩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