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82)
파티는 한창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팔라스관 제3관에 있는 파티장이었다.
화려한 파티장 내부, 깔끔한 예복 차림의 학생들이 취기가 올라온 채로 기분 좋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곳에 도로시가 있으리라.
‘도로시 어딨어?’
눈을 빠르게 돌리면서 도로시를 찾아다녔다.
나는 아틀라홀 파티에 참석하기로 다짐한 후로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도로시의 파트너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었다.
도로시와 함께 있으면 눈에 띈다? 뭐, 땅속으로 숨어드는 두더지처럼 아예 나 자신을 꽁꽁 숨겨둘 필요는 없었다.
현재, 앨리스는 내통자 정보가 학사 내에 퍼져 있는 탓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처지.
심지어 나보다 강한 얼음 속성 학생은 널려 있기에, 나를 검은 괴물이라고 특정 짓는 건 무리가 있고.
시나리오는 꼬였고.
하물며 도로시는 내 편이다.
또한, 나와 루체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헛소문이 퍼졌음에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
‘그렇다면.’
굳이 눈에 안 띄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도로시와의 친분을 과시한다.
설령 앨리스가 내게 관심을 갖게 되더라도 내가 도로시의 비호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만연해진다면, 멋대로 내게 해코지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앨리스가 토벌되는 날까지 버티면 될 일.
물론 오늘 파티장에서만 도로시와 친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인 일이었다. 애써 그녀와 붙어 다니며, 앞으로도 그녀를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라는 생각들은 그냥 구실에 불과하고.
‘그냥 좀 지칠 것 같았어.’
솔직히, 잠깐 정도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나도 인간이니, 미친 듯이 단련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시 생활에서도 그러했듯, 적절한 휴식도 필요한 것이다.
말록을 처치하고 나서 상당히 지칠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긴장이 풀리니 힘이 쭉 빠져나가 버렸다. 말록과 벌였던 신경전은 피로감이 상당했다.
이리 될 줄 예상했었기에, 그냥 이번 기회에 내게 처음으로 파트너 제안을 했던 도로시와 함께 하루는 놀기로 다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도로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는데….’
오히려 내가 일찍 와버려서 아직 도로시가 도착을 안 한 건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대뜸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우연이네요. 당신도 파티에 참석했었군요.”
영애답게 우아하지만 날이 서 있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붉은 장미 머리핀을 단 갈색 단발 머리, 붉은 드레스 차림. 로제 레드리베라였다.
그녀 옆에는 정갈한 예복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준수한 외모의 남성이 서 있었다.
로제와 같은 갈색 머리칼. 예복 가슴팍에 달아둔 붉은 장미.
나름 근육이 잡혀 있는 몸집과 허리춤에 찬 수련용 검을 보아하니, 기사학부 학생인 듯 보였다.
‘게임에서 본 것 같은데. 아마 얘가….’
아, 로제의 친오빠. 선배구나.
신장은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편이었다. 내 키가 약 175cm 정도 될 텐데. 엄청 크네.
“어, 반갑다.”
아무튼, 나름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나와 로제는 빈말로도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지난날은 지난날일 뿐.
설마 파티장에서까지 시비를 걸겠나.
…그러나 로제는 거슬리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파트너도 없는 듯 보이고…. 하긴,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이랑 파트너를 맺고 싶어 할까요?”
설마는 역시 설마일 뿐이었다.
아니, 네년도 파트너 없어서 오빠 데려온 거 아니냐?
“로제, 이 녀석은?”
“네에, 레이젤 오라버니. 전에 말했던 그 새끼예요.”
팔짱을 끼는 로제.
그녀의 웃음기 섞인 대답엔 대놓고 악의가 깃들어 있었다. 옆에 든든한 오빠가 있어서 떵떵거리는 모양이었다.
로제의 친오빠, 레이젤은 미간을 찌푸리며 냉소적인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아주 형편없고 건방지기까지 한…, 저를 다치게 하고, 저를 엿 먹였던 바로 그 개돼지 같은 남자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흔한 속담이 떠오른다.
로제와의 갈등은 언제나 그녀가 먼저 원인을 제공해 왔거늘.
“다 지나간 얘기 아니냐. 애초에 원인 제공은 전부 네 쪽에서….”
퍼억─!
돌연 내 뺨에 충격이 덮쳐오더니,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급작스러웠다.
‘뭐야, 갑자기…?’
뺨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로제의 친오빠, 레이젤이 내게 주먹을 휘두른 까닭이었다.
“안 쓰러지는군. 제법이야.”
손수건을 꺼내 내 뺨을 가격한 주먹을 닦는 레이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쳤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파티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악단의 음악 소리가 울리고 있음에도 학생들의 목소리가 단숨에 사그라졌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모두 무슨 일이냐는 듯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기에.
“내 사랑스러운 동생, 로제를 다치게 하고 속상하게 만든 죗값이다. 네놈은 신분에 걸맞은 행실을 보일 필요가 있다.”
[ 레이젤 레드리베라 ]Lv : 78
종족 : 인간
속성 : 불, 번개
위험도 : 하
심리 : [ 당신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감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새끼, 교육 잘 받은 품위 있는 말투라 더 거슬리네.
예의 바른 험담에는 나를 무시하는 인식이 만연했다.
“심지어 내 동생에게 못된 짓들을 해 놓고도 ‘어, 반갑다’…? 염치도, 개념도 없군. 인사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레이젤은 주먹을 다 닦았는지, 손수건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피가 묻은 것도, 오물이 묻은 것도 아니었다. 놈이 닦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에 달라붙어 있었던 먼지라면 모를까.
“교육 미비의 산물인가. 필시 가난한 평민 가정에서 온 놈이겠군.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지. 아무리 아카데미라고 해도 본인의 본질을 잊지 마라. 네놈은 자기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냐.”
“존댓말.”
레이젤의 귀족가 도련님다운 고운 말투에 서리가 끼었다.
“선배와 후배 사이에 챙겨야 할 예의범절도 모르는 건가? 어디서 반말이냐?”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레이젤의 의견은 타당했다. 확실히, 나는 로제에게 인사를 잘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적절한 인사법은 이러하겠다.
나는 오른손을 들고, 로제와 레이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반갑습니다, 병신들아.”
식겁하는 로제. 내 인사가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 레이젤 레드리베라 ]심리 : [ 당신에게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
예상했던대로, 레이젤이 무표정으로 주먹을 휘둘러 오기 시작했다.
뭐, 좋다. 오히려 기분 좀 풀 수 있겠네. 한번 신나게 치고 박고 싸워보자.
“……!”
그 순간, 레이젤 머리 주위로 화려한 별 무리가 피어오르더니.
차라라랑──.
쿠우우우우────!!
“으헉!!”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던 레이젤의 모습이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의 몸은 엄청난 속도로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출입문 쪽이었다. 나와 로제는 깜짝 놀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욱──!
차라라랑───!
“으, 으각!”
출입문 앞.
고상한 보라색 드레스 차림의 연보랏빛 머리 여성이 쭉 뻗은 팔로 레이젤의 머리를 붙잡았다. 순간 풍압이 일고 별 무리가 흩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부림치는 레이젤. 그러나 여성은 굳건한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둘의 주위로 형형색색의 별 무리가 떠오른다.
온갖 물리력을 다루는 별빛 마법. 레이젤은 강력한 강제력을 받아 단숨에 여자의 손에 끌려온 것이었다.
인력의 작용까지 겹쳐, 여성의 고운 손은 레이젤은 머리를 터뜨릴 기세로 거세게 쥐어 잡고 있었다.
하물며 [기초 보호 마법]까지 최상급. 레이젤이 아무리 저항하든 여성에겐 흠집조차 낼 수 없으리라.
“…….”
무표정.
여성의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가 레이젤을 향했다.
무거운 마나가 공기를 압도한다. 절로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내달릴 정도의 살기마저 느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닌 듯 보였다.
악단은 연주를 멈추었다. 그들도 당황한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티장을 메우고 있는 건, 오로지 레이젤의 처절한 비명 소리뿐이었다.
“끄, 으악…! 머리, 내 머리…!! 아악!! 사, 살려 줘…!!”
조금 전까지 품위가 넘쳐나던 레이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생존을 위해 발악하는 평범한 동물의 모습만이 내 눈에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신분이 어떠하든, 죽음의 공포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법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난다.
레이젤의 머리를 쥐어 잡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
그녀는 마법학부 2학년 수석이자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누, 누가 저거 멈춰야….”
“도로시, 도로시라고…! 쟬 누가 막을 수 있단 건데…? 꺄악!”
휘익──!
콰앙────!
도로시는 레이젤을 옆으로 툭 던지듯 내다 버리고서, 별빛 마법으로 발생시킨 강한 중력으로 내려찍었다.
지면이 어그러지고, 크레이터가 생기며 레이젤의 몸이 짓눌러졌다.
반짝이는 별 무리 속, 그는 각혈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파티장에 숨 막히는 고요가 찾아들고.
“오, 오라버니…? 흡!”
이어, 도로시는 로제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왜, 왜, 저한테…?!”
짙은 살기가 느껴진다. 도로시의 주위로 차랑, 거리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별 무리는 몹시 위협적이었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드레스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는 로제.
도로시는 차가운 얼굴로 로제를 내려다보았다. 로제는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겠지. 옆에 있는 나조차도 엄청난 공포가 느껴지는데.
“저, 저, 저는… 아무 짓도 안 했, 안 했는데…!”
이윽고.
싸늘했던 도로시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안, 얘 좀 데려갈게. 내 파트너거든.”
파티장이 고요했던 탓에, 도로시의 목소리는 다른 파티 참석자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린 듯했다.
도로시는 별 무리를 거두고서, 내 손목을 붙잡고는 등을 돌렸다.
“예?”
로제는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로시의 파트너?”, “저 애가?” 따위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메르헨 아카데미 최대 전력인 도로시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파트너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가자, 회장~.”
“선배?”
도로시는 내 손목을 잡아끌면서 그 자리를 잰걸음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무 마력도 담겨 있지 않은 연약한 힘이었으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주었다.
“아, 이거 깜박했다.”
도로시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었다.
로제의 머리 주위로 미약한 별 무리가 일고.
화악─!
퍽!
“끄학!”
돌연 중력이 이리저리 작용해 로제의 머리가 옆으로 확 고꾸라져 바닥에 내다 꽂혔다.
로제는 바닥에 쓰러진 채 커헉,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서, 나는 도로시와 함께 파티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