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74
“아니, 아니···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
“왜요···?”
유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살짝 몸을 숙이자, 하인주는 아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유일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체 왜···’
유일은 영문을 모른 채 웃고 있는 스태프들을 둘러보았다.
세컨드 카메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유일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이건··· 짤감이네.’
오랫동안 예능계에서 일한 덕에 감이 살아있는 촬영감독은, 이 장면이 숏폼에서 꽤나 인기를 얻으리라는 직감을 느꼈다.
술기운 탓인지 하인주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런 말 안들어봤어요?”
“무슨···”
“···유죄인간?”
“네?”
하인주의 목소리가 낮아진 탓에 약간 긴장했던 유일은 맥이 풀렸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건, 아직 못 들어봤습니다.”
“어어? 나는 들어봤는데? 일일 형 유죄인간인 거?”
‘···취했네, 이 놈.’
유일은 김하랑의 잔에 있던 술을 조용히 자신의 잔에 따랐다. 다행히 김하랑은 본인 이야기에 빠져 술잔이 비어가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
.
.
40분 정도 진행된 촬영.
나름 천천히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소주 두 병이 비어가고 있었다.
어느 샌가부터 김하랑은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매니저가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고 있어서 정신줄은 잘 잡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하인주는 여전히 높은 텐션을 유지 중이었다. 가히 감탄할만한 체력이었다.
“유일 씨, 원래는 공시 준비할 생각이었다고요? 그럼 학원도 다녔어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학원은 못 다니고, 독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형이 진짜 똑똑해요! 저 연기도 형한테 배웠잖아요~”
‘···.’
유일은 김하랑의 잔에 있던 술을 다시 본인의 잔에 따랐다.
한편, 감탄하던 얼굴로 유일을 바라보던 하인주가 입을 열었다.
“이야··· 진짜, 유일 씨는···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겠다.”
‘···!’
긴장을 푼 채 편안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던 민우진은 순간 벌떡 일어났다. 그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피디에게 뛰어갔다.
한유일의 가정사가 비밀은 아니었으나, 관계자나 그에게 깊은 관심이 없는 이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민우진은 한유일의 멘탈이 가장 걱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질문 받은 적도 없는데!’
급하게 정해진 스케줄인 탓에 꼼꼼하게 전달 사항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필···’
민우진은 자책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김하랑의 표정이 굳은 와중에도, 한유일은 동요 없는 얼굴이었다.
“···네,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유일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모한테 들었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곧잘 따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부모님이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취했나.’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때,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한 하인주가 스태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 하인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사이코패스거든
“···!”
하인주는 뒤늦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의 톤이 순식간에 낮아졌다.
“정말··· 정말 죄송해요, 유일 씨···”
그 뒤로도 하인주는 몇 번이나 사과를 했다. 방금 전까지 알딸딸하게 취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중한 태도였다.
“방금 대화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피디님이 다 편집해주실 거예요.”
그 말에 메인 피디는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유일은 지금껏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부모님과 관련된 질문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신경쓸 필요조차 없도록.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유일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특히 ‘연민’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제작진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연민하거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일의 앞에 놓인 잔에 노란 조명이 따스하게 비쳤다. 그 빛을 바라보던 유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딱히 비밀도 아닌데요.”
“···형.”
유일은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하랑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괜찮다는 의미였다.
“방금 제가 했던 말들도 굳이 편집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유일이 피디와 작가들과 차례로 눈을 맞추며 말하자, 잠시 촬영을 멈춘 메인 피디가 유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최대한 유일 씨가 불편하지 않도록, 잘 담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다시 시작한 촬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끝났다.
중간에 잠시 술이 깬듯 했던 김하랑은 결국 만취한 상태로 매니저에게 끌려가듯 숙소로 돌아갔다. 김하랑의 잔을 몇 번이고 대신 마신 유일 역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었다.
다음 날 아침.
한유일은 오랜만에 숙취에 시달리며 ‘칠밤’의 출연을 결정했던 순간을 잠시 후회했다.
‘···그래도 재밌긴 했다.’
다만, 편집이 어떻게 되었을지가 조금 궁금했다.
*
유일이 촬영을 끝내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아직도 한유일의 팬덤은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직장인도 그중 하나였다. 특히 ‘유랑극단’에서 직장인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초상’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돌려보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드라마도 좋고 영화도 좋았지만··· 역시 직장인은 한유일의 무대가 좋았다.
‘내 배우··· 역시 연극이 제일 잘 어울려.’
다른 팬들이 들었다면 상당히 논란이 될 만한 생각을 하며 N번째 재탕을 끝낸 직장인은 오튜브 알람에 정신을 차렸다.
“···어?”
‘···!’
드디어 나왔다.
한유일의 ‘칠밤’이···!
직장인은 설레는 얼굴로 링크를 클릭했다. 이것 때문에 한 주를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튜브 라이브톡에선 ‘칠밤’의 기존 애청자들과, 블랙퍼들, 그리고 한유일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 시작한다
┗ ㅠㅠㅠ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 ㅇㄴ 첨부터 쥬쥬 머리띠 시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아아아아아ㅏㅏㅏ
┗ 게스트들 어딨죠? 빛밖에 안 보이는데요
‘칠밤’에서 하인주의 별명은 ‘쥬쥬’ 였다. ‘칠밤’의 기존 애청자들은 주로 하인주를, 게스트들을 보기 위해 영상을 켠 이들은 각자의 덕질 대상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직장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영상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잘생겼냐.’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베를린을 다녀온 뒤 훨씬 선도 굵어진 것 같다.
심플한 캐릭터가 그려진 면 티셔츠에 청자켓을 입은 한유일은 대학교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대학교 선배’ 같았다.
간단한 인사가 지나가고, 하인주가 특유의 우렁찬 발성으로 한유일에게 외치는 장면이 등장했다.
– 어느 별에서 왔어요? 얼른 실토하세요.
그러자 한유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잠시 아래를 바라보던 유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장난스러움과 다정함이 녹아든 눈빛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끊임없이 올라가던 라이브톡이 짜기라도 한듯 잠시 멈췄다.
– ···맞춰보세요.
그 모습을 본 직장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 막았다.
한유일이 하인주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연 직후, 얼어있던 라이브톡이 폭발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 오ㅅㅂ
┗ 여보..?
┗ 엄마 나 결혼할 사람 생겼어
┗ 맞춰보세요..드르륵..탁··· 맞춰보세요..드르륵..탁··· 맞춰보세요..드르륵..탁··· 맞춰보세요..드르륵..탁··· 맞춰보세요..드르륵..탁···
┗ 유일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위험한 사람이었네
라이브톡 반응 역시 직장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직장인은 솟아오른 광대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진짜 제대로 하고 왔네···’
제작진들이 아주 이를 갈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편집이었다.
한유일과 김하랑이 무심코 하는 손장난이나 유일이 하랑의 잔에 있는 술을 계속해서 자신의 잔에 따르는 장면 역시 클로즈업으로 보이며 은근한 재미를 챙겼다.
┗ 아니 한유일 김하랑 흑기사로 나옴?
┗ 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랑아ㅠㅠㅠ지가 술 따르면서도 아무것도 몰라ㅠㅠㅠㅠ
┗ 랑이 진짜 취했나봐.. 저렇게 풀어진 거 오랜만에 봄ㅠㅠㅠ
┗ 둘이 진짜 편한 것 같음
그 와중에 하인주는 MC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 하랑 씨는 부모님한테 물어 봤어요? 본인 어느 별에서 왔는지?
이미 뺨이 발그레한 김하랑은 하인주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 저희 부모님은 신비주의가 심하셔서요~ 저한테도 안 알려주시던데요?
– 아앗! 하지만 여기 증거가 있죠. 저희가 다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하인주는 팬들이 블루챗 계정에 올린 글들을 캡처한 이미지를 들어 보였다.
[김하랑은 천재 강아지 별에서 온 게 아닐까?]글 아래엔 김하랑이 물을 마시거나 뛰고 있는 사진과 강아지 사진을 겹쳐서 배치해 둔 사진이 함께 보였다.
– 아아~! 저 이거 아는데! 팬분들이 보여주셨어요.
– 그래요! 이제 얼른 실토하시죠.
김하랑은 헤헤 웃으며 상큼하게 웃어보였다.
– 이런~ 들켰네요.
그 미소를 본 직장인은 다시 한번 김하랑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