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처음부터 나와라 (2)
“그분의 뜻대로 ‘관리기관’을 부수는 데 동참해 줬으면 한다.”
데블랑의 입에서 나온 말.
그에 김현우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말 그대로의 뜻이다.”
“……관리기관을 부순다고?”
“그래.”
데블랑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
그곳에 보이는 것은 묘하게 삐뚤어진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우.
데블랑은 성급하게 답변을 바라지 않고 기다렸다.
‘성급하게 답변을 재촉하는 것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니까.’
당장 그에게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김현우가 탑주회의에서 일을 크게 벌인 덕분에 그는 김현우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취하게 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게다가 아직 지금으로서는 관리기관에게 ‘수상하다’라는 낌새를 보여주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 아직은.
허나 그렇게 시간이 없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블랑이 침착하게 김현우를 재촉하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서 최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뜻대로라면 이 녀석은 관리기관을 박살 내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데블랑은 그리 생각하며 김현우를 바라봤다.
아직도 별말은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고민 중인 그.
허나 데블랑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이제 막 탑주의 자리에 올라왔는데 다짜고짜 이런 말을 들으면 좀 그렇겠지.’
관리기관에 존재하는 총 51개의 탑.
그 51개의 탑주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부귀영화를 전부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뜻한다.
그것도 노력 하나 들이지 않고 완벽히 무상으로 말이다.
힘을 얻고 싶다면?
얻으면 된다.
절세미녀를 얻고 싶다면?
얻으면 된다.
최강의 군단을 얻고 싶다면?
얻으면 된다.
끝도 없이 쏟아내 버릴 수 있는 재화를 얻고 싶다면?
얻으면 된다.
탑주에게는 그 모든 것이 허용되었고, 그 무엇 하나 불가능한 게 없었다.
그래, 애초에
‘어떻게?’
라는 전재라는 것을 빼고, 그냥 얻고 싶으면 얻고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탑주는 자신이 관리하는 탑에 한해서는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들이니까.
물론 그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서 머물기 위해서는 관리기관에 ‘업’을 올려 보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탑주들에게 있어서 그것들이 크게 상관있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기관에서 가져가는 업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과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탑주들이 내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탑주의 자리에 오른 그 순간부터 업을 모으는 것은 그들의 노력 여부가 아니었다.
탑주들은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전지전능한 위치에 서서 즐겁고도 무료한 생활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탑주가 내야 하는 업은 모두 ‘탑’에서 자동으로 만들어지니까.
‘확실히…… 탑주회의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이 일반적인 다른 탑주들하고는 다르다고 해도.’
……뭐, 그냥 다른 게 아니라 진짜 정신이 살짝 맛이 갈 정도로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해도 자연스럽게 꿀을 빨 수 있는 탑주의 자리를 그냥 놔버리기에는 참 힘들겠지.’
그렇기에 데블랑은 조금이라도 김현우에게 긍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입을 열지 않고 차분히 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현우의 입이 열렸다.
“그것 참 좋은 제안이네.”
“그래 나도 이해한다. 탑주의 자리라는 것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해도 온갖 부귀……뭐라고?”
“좋은 제안이라고.”
“……혹시 비꼬는 건가?”
“아닌데?”
“그런가?”
“그런데.”
김현우의 대답에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는 데블랑.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미친 건가?”
“……이 새끼가 갑자기 시비를 터네?”
김현우가 인상을 팍 찌푸리자 뒤늦게 핫, 하고 정신을 차린 데블랑은 이내 미안하다는 듯 손을 잠깐 올리고는 이야기했다.
“음…… 미안하군. 솔직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와 버렸다.”
데블랑의 말에 김현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무슨 대답을 하기를 원했는데?”
“보통 탑주에 자리에 앉은 자는 자신이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지 않나? 적어도 탑 안에서라면 딱히 힘을 들이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탑주니까 말이지.”
그의 말에 김현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대답했다.
“딱히 다른 탑주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어째서지?”
“관리기관인지 뭔지 존나게 마음에 안 드니까.”
“……?”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 좀 신기하긴 한데…… 그럼 좀 물어보도록 하지. 뭐 때문에 관리기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 들어.”
“여러 가지로……?”
데블랑이 되묻자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대답했다.
“우선 여기에 업 부채 있으니까 내놓으라는 찾아오는 올백 머저리 새끼 쌍판부터가 더럽게 맘에 안 들어.”
“……그렇군.”
“그다음으로는 내가 지지도 않은 빚을 빚 갚으라고 하는 것도 좆같고.”
“……그런가?”
“업 안내겠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그럼 마력 끊으면 그만이니까 알아서 기어라라고 하는 것도 존나 마음에 안 들어.”
“……그런 말을 했다고?”
데블랑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헤르메스를 떠올려봤다.
확실히 얼굴이 좀 야비하고 싸가지 없이 생기기는 했으나 탑주들에게 그런 식으로 노골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말은 안 했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그냥 느낌이, 그러니까 어투가 그랬다는 거지.”
“……그, 그렇군.”
김현우의 말에 데블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김현우에 대한 평가를 상세하게 고치기 시작했다.
‘또라이’에서 ‘상태가 짐작이 가지 않는 개또라이’로.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데블랑은 자신의 시선에서 김현우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당장 지금까지의 대화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사람을 잘 파악한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예상이 모두 빗나갔으니까.
물론 김현우는 데블랑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계속했고.
“아무튼, 대충 그런 이유 때문에 네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은 거라는 건 알겠다 이 말이지.”
거기에 덤으로-
“그 눈동자를 떠올려보면, 너희들이 별생각 없이 그렇게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 계획한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맞아?”
김현우의 날카로운 말에 데블랑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완전히 또라인 줄 알았더니 나름 치밀한 점도 있는 것 같군.’
“맞다. 하지만 우선 내가 조금 전에 말했듯이 지금 이 관리기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가볍게 설명을 하도록 하지.”
“시간도 별로 없다며?”
“그래도 이건 들어 놓는 게 좋을 거다. 적어도 현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인지 알게 될 테니까.”
데블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녀석한테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긴 했으나 그는 곧 가볍게 고개를 털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관리기관이 은근히 숨기고 있는 뒷이야기에 대해서.
김현우는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데블랑의 이야기가 시작됨에 따라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의 양옆에 앉아 있던 아브와 노아흐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여기까지가 관리기관이 탑주들에게 숨기고 있는 뒷내용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데블랑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와……. 이 새끼들 봐라?”
김현우는 저도 모르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하고 있었고, 아브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듯하더니 데블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음, 잠시 제가 들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을 좀 해도 될까요?”
“좋다.”
“……그러니까 원래 ‘관리기관’이 저희에게 업을 대가로 나눠주고 있던 마력은 원래라면 자연히 모든 차원에 나눠져야 할 마력이라 이건가요?”
“맞다. 내가 한 이야기는 조금 길기는 하지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핵심이지.”
데블랑이 꽤 오랜 시간을 걸려 그들에게 전해준 ‘관리기관’의 진짜 뒷사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원래 자연스럽게 전 차원에 나눠줘야 할 마력을 그들이 자신 멋대로 업을 받고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바꾸어 버린 것.
“……정말 그게 가능한 건가요?”
아브가 자신이 말해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데블랑은 이야기했다.
“물론 나도 어떻게 그들이 마력과 업이 순환하는 그곳을 뒤틀어서 그렇게 써먹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은 지금 그렇게 해서 탑주들에게 모으지 않아도 될 업을 모으게 만들고 있다 이 말이지.”
데블랑의 말에 아브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것은 노아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건 이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것 같은데…… 그걸 마음대로 뒤틀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니.”
노아흐의 중얼거림.
데블랑은 심각하게 고민을 이어나가기 시작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이런 반응이 정상이지.’
자신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말이 진실인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그저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김현우에게로 돌렸고.
“허, 이런 개새끼들 봐라? 진짜 물장사를 하고 있었네?”
데블랑은 거침없이 욕을 뱉어내는 그를 보며 물었다.
“물장사라니……?”
“아니, 그냥 이거 딱 봐도 물장사잖아, 물장사 몰라? 이 새끼들은 그냥 아무나 퍼마실 수 있는 물에 갑자기 가게 하나 짓고는 무료로 먹을 수 있던 물을 팔고 있는 거잖아?”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데블랑의 대답에 김현우는 몇 번이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탄식을 하며 대답했다.
“심마가 빚을 진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새끼들 자체가 완전 질이 나쁜 개쓰레기들이었네?”
슬슬 살의가 깃드는 목소리.
데블랑은 왠지 여기서 조금만 더 그를 놔둔다면 그가 제멋대로 관리기관으로 뛰어들 것 같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딱히 어쩔 노릇이 없었다.”
“왜?”
“그분이 기다리라고 하셨으니까.”
“그분……? 눈동자 말하는 거야?”
김현우의 말에 데블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분은 지금 당장 관리기관에 반기를 들어봤자 어차피 그들을 관리기관에서 끌어내리기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다.”
“……왜?”
“관리기관은 뒤에 숨기고 있는 게 많다고 하셨으니까. 당장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하셨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분의 말대로 마지막 카드인 네가 왔으니까 말이다.”
“……내가 마지막 카드라고?”
“물론 그 뜻은 나도 제대로 모른다. 하지만 그분은 네가 온 시점부터 이제 슬슬 계획을 진행시켜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데블랑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을 본 김현우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그래,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겠네?”
그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