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너, 너, 너, 너, 너는…….”
무로지는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가브는 말없이 시선을 레버 쪽으로 옮겼다가 다시 무로지를 보았다.
“아, 아!”
드르륵, 드드드드.
무로지는 다급히 레버를 올렸다. 가브는 성문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턱, 스르르. 턱, 스르르.
피가 많이 빠졌더라도 아울 베어의 사체는 최소 500킬로그램이 넘는다. 바닥에 질질 끄는 것도 절대 한 손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로지는 무표정하게 아울 베어를 끄는 그의 힘에 놀랐고, 그 위에 갈기갈기 찢긴 대원의 시체 조각을 올려서 가져온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성문 옆에는 항상 수레가 배치되어 있다. 마물 사체를 옮기는 역할이다.
“여, 여기 올려놓고……. 가, 같이 올릴…… 헙.”
무로지가 수레를 가까이에 대고 아울 베어 사체를 같이 들어서 싣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사이, 가브가 혼자 사체를 번쩍 들어 수레에 실었다.
그러곤 사체 위에 올려 둔 대원의 시체 조각을 하나하나 내렸다.
그제야 무로지는 가브가 아울 베어를 어떻게 죽였는지 알게 되었다. 아울 베어는 십자 모양으로 배가 갈라져 있고, 내장이 거의 다 쏟아져 나와 있었다.
생식기 부분에는 죽은 대원의 것으로 보이는 부러진 검이 꽂혀 있었다.
가브는 대원의 시체 조각을 구석에 모아 놓고 무로지를 한번 보았다가 초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소로 올라가는 중에 계단을 내려오는 대원들과 마주쳤다.
“헙! 사, 살아 있네. 휴.”
“대장! 어떻게 된 겁니까? 아울 베어 소리가 들리던데?”
“베라트는, 베라트는 어디 있어?”
아울 베어에게 가는 사이 눈보라가 강해져 대원들은 아래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이다.
무로지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아래 수레를 보았다. 그것을 발견한 대원 한 명이 소리쳤다.
“와, 와! 역시 우리 소대장! 아울 베어를 잡은 거야? 아무리 부상당한 놈이라고 해도, 와, 진짜 최고네!”
“베라트는, 아…… 씨, 이 새끼는 살아 왔는데 베라트는 죽었네. 대장, 이 새끼 때문에 베라트 죽은 거 맞죠? 피 뒤집어쓴 거 보니까 옆에서 가만히 처있다가…….”
무로지는 가브의 눈치를 살피며 그 대원을 말렸다.
“야 야. 아니야, 아니야. 올라가 좀, 올라가.”
“예? 아니에요? 에, 예.”
초소로 올라가자 사제 대원이 피를 뒤집어쓴 가브를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왔다.
“이런! 어서 이리 와 보십시오!”
그는 초소 안으로 가브를 데리고 가서 등불로 이리저리 비추며 몸을 살폈다.
가브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는 사제 대원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흠, 아니, 음…… 그, 다친 곳이 어디요?”
가브는 자신의 몸을 살피느라 피가 덕지덕지 묻은 그의 손을 떼어 내며 대답했다.
“없소.”
“아, 아하.”
사제 대원은 정말 운 좋게도 옆에만 있어서 마물의 피를 뒤집어썼다 생각하며 수긍했다.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관심이 없었다.
“헙.”
그러나 한 명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소대장 무로지는 가브의 대답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빠르게 처리하고 온 것도 신기한데 상처 하나 없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가브의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초소 특성상 물로 씻어 내지 못하고 가브는 피를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 봉화대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근무를 하고 있던 린이 가브의 몰골을 발견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혀, 어,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린은 형님이라고 부르려다가 옆의 대원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바꿨다. 가브가 말이 없자 같이 온 대원이 대신 답했다.
“소대장이 아울 베어를 잡았다. 외팔이는 옆에 멍청하게 있다가 놈의 피를 뒤집어썼단다.”
“아…… 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전의 그 강인한 모습이라면 묻지 않았겠지만, 주 무기를 드는 오른팔이 없으니 걱정이 되는 린이었다.
그의 물음에 대원이 한 손을 확 들어 올렸다.
“없어 없어, 새끼야. 빨리 꺼져. 뭔 말이 많아? 병신들끼리 동병상련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에…… 예.”
가브는 린의 어깨에 손을 툭 얹고는 지나쳤다.
* * *
이틀이 지나 1중대와 교대를 하고 전초기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3중대 2소대는 아울 베어의 사체를 가지고 와 대원들의 환대를 받았다.
“와우! 얼마 만에 싱싱한 고기냐!”
“이야, 무로지. 제대로 한 건 했네.”
“아울 베어 이 새끼 겁나 안 잡히던데. 이거 봐라, 가죽 두꺼운 거.”
베라트라는 대원의 죽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시체 조각을 보고도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베라트와 친하게 지내던 대원 한 명만이 조용히 시체 조각을 거둬 어딘가로 가져갈 뿐이다.
다른 중대 대원들의 환영에 2소대 대원 중 한 명이 흥분하여 수레로 올라가 소리쳤다.
“이거! 다시 깨어난 거, 우리 대장이 때려잡은 거야! 대장 최고다! 무로지! 무로지! 무로지!”
대원의 과장된 띄움에 무로지는 그를 다급히 끌어내렸다.
“하지 마, 하지 마, 이 새끼야! 좀!”
“아, 아, 역시 겸손까지! 와, 완벽하네.”
“닥쳐, 좀! 진짜! 아오…….”
무로지는 차마 바로 도망쳤는데 가브가 잡았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있는 가브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탐색이나 봉화가 피어오르지 않는 이상 전초기지에 머물고 있는 백인대장 레이븐, 그는 아울 베어 사체와 무로지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브는 전초기지에 도착하자마자 대형 물통에 가서 몸에 물을 뿌렸다.
촤아아악, 촤아악.
이틀 동안 딱딱하게 굳어 버린 피딱지는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그가 연거푸 몸에 물을 뿌리자 뒤늦게 귀환하던 3소대 대원들이 이죽거렸다.
“저 새끼는 뭐 했다고 저 꼴이냐?”
“귀한 물 다 쓰네, 다 써.”
그들의 눈에도 살 의지도 보이지 않고 외팔이여서 전투에 도움도 안 되는 가브가 눈엣가시인 것이다. 죽음과 가까이 지낼수록 삶의 의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 소대 아니어서 정말 고맙다.”
“아니지, 어쨌건 우리 백인대니까 피해는 주는 거지.”
“야 야, 비켜 봐. 내가 그래서 이거 가져왔잖아.”
한 대원이 가브에게 가까이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진녹색 오크의 팔이었다.
“야, 이거 붙이는 거 어때? 야, 딱이네! 잘 어울리네! 이거 붙이자.”
“와, 미친 새끼. 저걸 여기까지 가지고 왔네.”
그는 가브의 오른팔에 썩은 내가 나는 오크의 팔을 갖다 댔다.
“아 씨, 오른팔이었어? 몰라. 그냥 이렇게 붙이자.”
그가 오크 팔을 돌려서 붙이는 시늉을 하자 근처에 모인 대원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중 지나가던 한 명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물의 왕 카난, 알지? 카난의 몸은 인간하고 매우 흡사해서 왼쪽 다리를 카난의 것으로 붙였다는 사람이 있어.”
“진짜? 그 사람, 어디 있는데?”
“뒈졌지, 다리 썩어서.”
“미친, 크크.”
그때 가브 앞으로 대머리가 튀어나왔다.
“뭐, 뭐야, 이건! 씨펄! 안 치워?”
가브의 소대장, 무로지였다. 그는 가브의 팔 절단면에 붙이고 있던 오크 팔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외팔이 가브가 자신의 소대에 배정됐다는 것에 누구보다 불만을 품던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이자 대원들은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뭐, 이 외팔이한테 약점이라도 잡혔소?”
그 말에 무로지는 뜨끔하여 더욱 버럭 소리 질렀다.
“뭔 개소리야, 씨벌! 그 드러운 오크 팔을 상처에 갖다 붙이면 감염이 되겠냐 안 되겠냐, 이 무식한 새끼들아! 얘 감염돼서 근무도 제대로 못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엉? 대신 서 줄 거야?”
“아이, 알았어. 겁나 지랄이네.”
무로지가 발악하는 사이, 가브는 자신의 몸에 묻은 피딱지를 대충 제거하고는 자리를 떴다.
대원들도 금세 흥미가 떨어져 다들 흩어졌다.
무로지는 저 멀리 가는 가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건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뭐가?”
“아 씹! 깜짝이야……. 아, 대, 대장님.”
레이븐은 무로지의 시선을 따라 가브의 뒷모습을 보았다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쟤가 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
“예?”
“너, 솔직히 말해 봐. 아울 베어, 네가 잡았냐?”
무로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나오는 대답은 달랐다.
“다, 당연히 제가 안 잡으면 누가 잡습니까? 왜, 왜, 왜요?”
레이븐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울 베어의 배를 가른 검상, 그거 가죽이 수축된 거 보니까 살아 있을 때 가른 거야. 네가 그렇게 깔끔하게 베었다고? 누가 그랬냐? 쟤냐?”
무로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니…… 썅! 내가 잡았다니까 왜 안 믿으쇼? 나도 실력 늘었소! 예전의 내가 아니오! 참 내.”
그는 도망치듯이 레이븐에게서 멀어져 숙소로 향했다. 레이븐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외팔이 새끼가 검을 꽤 쓰는 놈이라 이거지? 그래.”
* * *
퀴퀴한 시체 썩는 냄새, 날리는 검은 재, 까맣게 그을린 건물, 당시의 끔찍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협회 본부 정문에 한 사내가 우뚝 서 있다.
평생을 햇빛을 보지 않고 산 것 같은 창백한 피부,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칼에 안이 텅 빈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회색 눈동자.
그는 사해의 태제 셀이 은신술만큼은 자신을 능가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첫 번째 그림자 렘이었다.
-렘, 코르소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카르마 지부에 다녀와라.
-예, 태제.
-납치당했다면 처리해.
-예.
렘은 까만 바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태제의 명령으로 카르마에 다녀오니 모두가 사라졌다.
평생을 셀의 호위로 살아온 렘은 현실을 부정하며 홀로 동분서주하며 알레트 일대를 뒤졌지만 태제 셀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시체 역시 찾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낮은 일에 감정을 개입시켜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것은 금하도록 배웠다.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 있다. 렘의 발끝은 아이드성이 있는 카리온 영지로 향했다.
‘없어.’
렘은 아이드성으로 숨어들어 가 영주의 침실까지 확인하고는 영주가 궁정 귀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방의 영주가 최북 전선으로 종군행을 가게 된 것은 알레트까지 퍼질 만한 소문이 아니었기에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이다.
렘은 가브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카리온의 한 여관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헉, 영주가 붉은달 기사단한테 잡혀가?”
“그렇다니까. 내가 직접 봤다니까, 철창에 갇혀서 끌려가는 걸. 아주 꼴이 가관이던데.”
“아이고,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영주로 부임하자마자 무섭게 치고 올라가더니, 쯧쯧.”
렘은 바로 닭 다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계산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여관 주인이 그를 불렀다.
“어, 손님. 계산하셔…… 응?”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귀신같이 사라진 것이다.
“뭐, 뭐야?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