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대머리 무로지는 아직 마흔이 넘지 않았지만 극심한 탈모로 인해 머리를 깎은 것이 아니라 빠진 것이다.
그는 첫사랑이 대머리라서 싫다고 거절하자 그녀를 강제로 겁탈하고 산 채로 머리 가죽을 밀어 버린 죄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무로지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가브를 보았다.
“너, 너 바, 방금 뭐라고 지껄였어!”
가브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소변은 어디서 보지?”
그의 말에 다른 대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무로지는 이를 악물며 벌떡 일어났다.
“이 미친 새끼가! 오늘 한번 오줌 지릴 때까지 처맞아 보자!”
무로지는 가브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했다. 그사이 가브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가 눈에 불을 켜고 가브의 뒤를 쫓아갈 때, 다른 대원이 소리쳤다.
“대장! 대장, 떴다! 떴어!”
그 소리에 초소에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장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로지 역시 가브에게 향하던 발을 멈추고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오크 한 마리가 장벽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처음 발견한 대원이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휴대용 망원경으로 놈을 살폈다.
“뭐야, 어린 놈이네. 정찰병도…… 아니고, 그냥 호기심 많은 돼지새끼구만.”
“줘 봐.”
생각이 전환되며 화가 가라앉은 무로지는 바로 대원의 망원경을 빼앗아 오크를 살펴보았다.
“잘됐네. 야, 내 석궁 가져와.”
“아, 예.”
무로지는 석궁에 화살을 장전하고 아래에서 두리번거리는 오크에게 겨눴다. 그러곤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퓽-.
-쿠렉!
“에이 씨!”
화살이 오크의 팔을 스치고 바닥에 박혔다. 오크는 화들짝 놀라 위를 한 번 보고는 하얀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퓽- 퓩-!
장벽에 딱 달라붙어 있어도 50미터 거리다. 그곳에서 더 멀어지자 정확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석궁이었다.
무로지는 세 발을 더 날리고는 아쉬워하며 석궁을 거뒀다.
“썅, 더럽게 안 맞네.”
그러다가 소변을 해결하고 온 가브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바로 가브에게 석궁을 겨눴다.
“야, 외팔이. 너 거기 딱 있어라. 아쉬워서 너라도 잡아야겠다.”
가브는 말을 듣는 것인지 건조한 눈으로 그를 보며 가만히 그곳에 있었다. 무로지는 방아쇠에 손까지 올렸다가 석궁을 거두고 이죽거렸다.
“씨팔 놈, 쫄긴.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한 번만 더 그 개 같은 소리 하면 이걸로 대가리 뚫릴 줄 알아.”
가브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무로지는 일어나 그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초소로 들어갔다.
이틀이 지나, 1중대가 교대를 해 주어 전초기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50미터 장벽 위에서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와 칼바람을 맞으며 경계 근무를 서다가 전초기지로 오게 되면 삶에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된다.
한 대원은 전초기지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오늘도 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비아님께 영광을…….”
“미친놈, 너 솔직히 말해 봐, 여신 꼬시려고 맨날 아부 떠는 거지?”
“네비아님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천벌받습니다.”
“천벌은 개뿔, 지금보다 더한 벌이 있냐? 썅, 퉤.”
그가 가자 기도하던 대원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주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모가지를 따 버릴 마음은 가라앉혀 주시고…….”
가브가 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 린이 다가와 첨언했다.
“전직 네비아 신전의 사제였대요. 여사제와 잠자리를 했다가 쫓겨났다고…….”
작게 얘기했지만 사제는 귀가 밝은지 바로 뒤돌아서 대답했다.
“사랑이었습니다. 사제들끼리는 사랑을 하지 말라는 교단의 법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예…….”
전초기지에서의 생활은 아하리트 요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창녀가 없을 뿐이다.
대머리 무로지가 중대장 레이븐과 대화를 나누며 가브를 힐끔힐끔 본다. 곧이어 레이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외팔이. 너 이거로 불붙여 봐.”
턱.
그가 바닥에 던진 것은 부싯돌과 기름 먹인 종이였다. 가브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 무로지가 냉큼 와서 이죽거렸다.
“거 보십시오. 팔 병신이 어떻게 불을 붙입니까? 한 놈은 두 손이 병신이라서 검도 못 잡고. 우리 소대가 무슨 병신 집합소도 아니고…….”
탁, 탁, 치이익.
그때 가브가 발로 부싯돌 하나를 고정시키고 그 근처에 기름 먹인 종이를 대고는 불을 붙였다. 그 손놀림이 매우 노련했다.
레이븐은 혀로 잇몸을 훑으며 가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로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붙이는데?”
“어, 어…….”
“잘 붙이네. 그럼 불만 없지?”
“아니 대장님, 그게 불만 붙인다고…….”
레이븐은 바로 자리를 떴다. 무로지는 가브를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이틀 뒤, 가브가 속한 3중대가 다시 경계 근무를 나서게 되었다.
경계 근무는 초소 양쪽 봉화대가 있는 곳만이 아니라 초소 바로 앞에서도 한다. 다만 이곳은 초소 안에 항상 인원이 머무르고 있어서 한 명만 세웠다.
가브는 밤 근무자로 초소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카로네 장벽이 위치한 최북 전선은 눈보라로 인해 낮에도 태양을 보기가 힘들다. 밤에는 장벽 특성상 불을 피울 수 없어 칠흑 같은 어둠이 일대를 집어삼킨다.
초소 안에만 작은 촛불 하나를 구석에 놓고 지낸다.
어둠이 천천히 장벽을 집어삼킬 때쯤, 초소 경계 근무자가 창문을 두드렸다.
“떴습니다. 떴어.”
잠을 쉬이 청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던 무로지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석궁을 챙겨 초소 밖으로 나갔다.
“썅, 잠도 못 자네. 헐.”
“아울 베어다…….”
아울 베어, 노란 부리가 있는 부엉이 얼굴에 곰의 몸을 지니고 있는 마물이다. 크기는 3미터가 조금 넘는 중형 마물로, 사람을 갑옷째로 찢어발기는 괴력을 소유하고 있다.
아울 베어가 장벽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큰 몸집만큼이나 가죽과 지방층도 두꺼워 화살로 죽이기 쉽지 않은 놈이다.
“훠이, 가라. 얼른 가라잉.”
전의 오크는 재미 삼아서 잡으려고 했지만 아울 베어는 급이 다른 마물이다. 무로지는 손을 휘휘 저어 댔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 어? 저거 뭐 하냐?”
아울 베어는 장벽을 보곤 뒷발로 땅바닥을 긁다가, 이내 장벽을 향해 달렸다.
투둥, 투둥, 투둥, 쿠웅!
아울 베어가 장벽에 강하게 박치기를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 온 장벽이니만큼 멀쩡했지만, 그 울림은 일대를 흔들었다.
“이런 씨펄!”
아울 베어는 대가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뒤로 가서 달려올 준비를 했다. 이대로라면 아울 베어의 대가리가 터져 죽기 전에 수많은 마물들이 몰려올 것이다.
무로지는 욕을 내뱉으며 다른 대원들에게 외쳤다.
“야, 야! 다 석궁 장전해! 저 새끼 죽인다! 빨리!”
“예, 예!”
퓽 퓽! 푸슉, 퓽!
수십 발의 화살이 아울 베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놈은 그것을 개의치 않고 장벽을 향해 달려왔다.
쿠우웅!
전보다 더 큰 울림에 대원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가리를 맞히라고, 대가리를! 이 새끼들아!”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함께 온다. 아울 베어가 장벽에 대가리를 박아 멈춰 선 그 순간에 정확도가 올라간다.
“지금이다! 쏟아부어!”
푸푹, 푸슉! 푹!
지금까지 가죽만 스쳤던 화살이 아울 베어의 몸통에 쑤셔 박히기 시작했다. 장벽 위에서 쏘는 만큼 화살은 중력의 힘을 빌려 두꺼운 아울 베어의 가죽도 쉽게 뚫었다.
-꾸우어어어!
이윽고, 아울 베어는 세 번째 박치기는 시도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로지는 석궁을 겨눈 채 중얼거렸다.
“뒈졌나? 뒈졌나? 시팔, 맷집이 아주 그냥…….”
“죽은 것 같은데요?”
“마물 새끼들은 혹시 몰라. 뒈져!”
푹, 푹!
무로지는 놈의 대갈통에 화살을 두 방 더 꽂고는 그제야 안심하며 뒤돌아섰다.
“햐, 돌아가면 오랜만에 고기 좀 먹겠네. 음…….”
무로지는 대원들을 둘러보다가 가브를 검지로 가리켰다.
“너, 그리고 너, 따라와.”
“예, 대장.”
가브와 긴 머리를 묶은 대원이 지목되었다. 무로지는 둘을 데리고 장벽 아래로 내려갔다.
마물이건 사람이건 사체를 놔두면 다른 마물이 몰린다. 피 냄새 때문에도 몰리고, 사체를 뜯어먹으려고도 몰린다.
그래서 잡으면 바로 건져서 장벽 안쪽으로 가져와야 한다. 게다가 마물 자체가 부수적인 돈이 되기도 했고.
무로지는 초소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은 폭 4미터에 높이 3미터로, 대형 마물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크기로 만들었다.
드드드드.
무로지가 옆에 있는 레버를 잡아당기자 두께가 팔뚝 길이만 한 육중한 성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안쪽으로 바깥과 바로 이어지는 곳에 쇠창살로 된 성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무로지는 레버를 올려 쇠창살 성문을 올리며 가브에게 이죽거렸다.
“여기만 열면 놈들의 땅으로 나가는 거야. 오줌 지리지 마라.”
기기기긱.
쇠창살 성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가자, 가브도 기분이 묘했다. 인간의 침범을 불허하는 구역, 그곳으로 나가자마자 반기는 것은 싸늘한 한기였다.
50미터쯤 가자 아울 베어의 사체가 나왔다. 무로지는 한 걸음 물러서 둘에게 지시했다.
“와, 겁나 무거워 보이네. 그래도 끌 수 있지? 피 빠지면 어차피 가벼워. 얼른 끌고 와라.”
“옙! 대장.”
“씹, 큰 소리 내지 말고, 새끼야. 누가 장벽 너머에서…….”
“아, 죄, 죄송합니다.”
대원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아울 베어에게 다가갔다. 놈의 발에 손이 닿았을 때였다.
-꼬오오오!
아울 베어가 돌연 벌떡 일어나 솥뚜껑만 한 앞발을 휘둘렀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대원은 그 한 방에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아울 베어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는지 대원의 팔 한쪽과 다리를 잡아 양쪽으로 당겨 찢어 버렸다.
촤아악!
새하얀 눈밭에 새빨간 피가 그림처럼 흩뿌려졌다.
아울 베어는 그 무식한 힘과 가공할 맷집으로 트롤보다도 상위 마물로 분류한다. 전문 마물 사냥꾼이라도 근거리에서 잡는 것은 절대 금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마물 사냥꾼으로 1년간 일을 했던 무로지는 이를 잘 알고 있다.
타다다다닥-.
“시팔, 시팔, 시팔, 시펄.”
무로지는 아울 베어가 일어나는 것을 본 순간부터 바로 뒤돌아서 달렸다.
드드드드드.
그는 바로 성문 안쪽으로 들어가 고민 없이 레버를 내렸다. 쇠창살 성문이 내려가는 속도가 오늘따라 유독 느려 보였다.
“허억, 허억, 헉, 허억.”
그는 레버를 내린 순간 사고가 정지되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저 구석에 딱 붙어서 성문이 얼른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쿠웅!
성문이 완전히 내려갔음에도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원 둘을 잃었다. 소대장에서 강등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백인대장 레이븐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아니지. 다, 씨펄, 똑같이 생각했는데. 나, 난 잘못 없어, 난…….”
그때 그의 귓가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턱. 스윽, 턱.
무언가 질질 끄는 소리, 아울 베어가 대원들의 시체를 끌고 오는가? 무로지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몇 발자국 가지 못했을 때, 무언가가 쇠창살 성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머리.”
인간의 언어, 인간의 목소리다. 무로지는 기겁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곳에는 아울 베어가 아닌, 아울 베어의 붉은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외팔이 가브가 우뚝 서 있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왼팔에는 아울 베어의 다리가 들려 있었다.
가브는 처음에 봤을 때와 같이 건조한 눈으로 무로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