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7)
나의 악당들 117화
30. 휴일(2)
이게 오해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동네엔 수다스러운 사람이 좀 많은 것 같다.
“영주님께서 얼마 전부터 상처치료 의 물약을 만들라고 어찌나 채근을 하시는지, 남은 검은 머리칼도 모조 리 세어버릴 지경이라니까.”
“부족한 게 있나요?”
“오, 부족한 걸 설명하는 것보다 준비된 걸 말하는 게 더 빠를 지경 이란다. 트롤의 피 없이 상처치료의 물약을 만들라니, 그런 재주가 있었 다면 난 이런 시골 마을이 아니라 왕도에 있었을걸. 영주님은 이쪽 분 야에 상식이 부족하셔서, 어머, 죄송 해요, 부인. 하여튼, 연금술이 무슨 소환술인 줄 아신단 말이야.”
마스터 캐스라이트의 너스레에, 스 콘을 오물거리던 엘렌은 살풋 미소 를 지어 보였다.
엘렌의 미소.
좀처럼 보기 힘든 만큼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다웠다.
“저희 스승님도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어요. 연금술을 소환술로 아는 무식한 놈들이 너무 많다구요.”
“귀족을 위해 연금술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흔히 마주하는 갈등이 지. 연금술이랑 마법은 거의 관련이 없는데.”
“맞아요. 그래서, 성과가 있으신가 요?”
“트롤의 피를 로얄젤리와 구절초, 암소의 뿔로 대체해 보려고 했는데, 상성이 맞질 않더구나. 암소의 뿔이 문제인 것 같은데. 일각수의 뿔이라 도 있어야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것 같은데……
쇼콜라틀을 불어 마시던 엘렌이 미 간을 좁혔다.
“트롤의 피 대신에, 일각수의 뿔이 요‘?”
“그래, 알아. 멍청한 짓이지. 일각 수의 뿔로 상처치료의 물약 따위를 만들 순 없으니까. 요즘 실패하는 과정은 쭉 이런 식이란다.”
마스터 캐스라이트가 어깨를 늘어 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찻잔을 만 지작거리던 엘렌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구절초와 암소의 뿔 대신, 주황 이끼를 넣어보시는 건 어때요?”
“주황 이끼? 그건 좀처럼 약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데.”
“제가 괜찮은 처리법을 알아요. 도 와드릴까요?”
“어머, 친절도 해라. 그래 주겠니? 아, 요즘 연구하고 있는 물약이 있 다고 했지? 혹시 가져왔니?”
“네.”
“그럼 그것도 함께 보자꾸나.”
의기투합한 두 마법사는 나와 남작 부인의 존재를 잊기라도 한 듯 실험 대로 달려갔다.
“음, 참 즐거워 보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에 저러는 녀석이 아닌데.”
남작부인은 날개장식을 번쩍이며 허공을 부유하는 엘렌을 가만히 바 라보았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아 름다운 분이에요. 주님 곁에 있는 천사가 저렇게 생겼을까, 싶을 만 큼.”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남작부인이 말을 보태었다.
“좋으시겠어요.”
“••••••예?”
“좋으시겠다구요. 저런 아름다운 연인을 둬서.”
“ 아.”
난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인께서 왜 그런 오해 하시는지 잘 알겠는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네. 동료죠. 아-주 돈독한.”
“돈독한 동료……
남작부인이 그렇게 중얼거릴 즈음, 두 마법사가 화덕에 불을 피우기 시 작했다.
마스터 캐스라이트가 주문을 외며 뭔지 모를 가루를 흩뿌리자, 불이 푸른색으로 물들며 순식간에 가마솥 이 끓어올랐다.
주황색 연기가 굴뚝을 통해 연신 빠져나갔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방 안이 연기로 차올랐다.
남작부인은 입을 가리며 약하게 기 침을 하더니,
“음, 저희는 잠시 나가 있는 게 어 떨까요?”
“……음, 그러시죠.”
실험실을 빠져나간 뒤, 남작부인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고개를 내 저었다.
“마스터 캐스라이트는 가끔 무언가 에 몰입하시면 주변을 살피지 못하 는 경향이 있으세요.”
“마법사들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 니까? 엘렌도 집중력이 무척 뛰어난 편이라.”
“그런 걸지도요.”
8월의 태양이 뜨거웠다. 나는 풀어 헤친 튜닉을 펄럭거리다가, 문득 남 작부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덥지 않으세요?”
그렇게 물어본 이유는, 남작부인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한여름에 머릿수건을 두른 것만 해 도 답답해 보이는데, 하얀 커틀과 녹색 튜닉으로 전신을 꽁꽁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부드러 운 천으로 만든 한 쌍의 장갑까지, 여름에 어울리는 옷차림은 절대 아 니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적응이 돼 서.”
“장갑이라도 벗으시는 게 낫지 않 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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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부인은 손에 낀 장갑을 잠시 만지작거렸다. 그러곤 천천히 장갑 을 벗는데.
양 손바닥과 손목이 시퍼렇게 멍들 어 있었다.
“……어. 죄송합니다. 제가 결례를 저질렀네요.”
“아뇨, 결례는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면 안 되는데.
“어쩌다 그러셨습니까?”
“……별일 아니에요.”
꼬리가 축 처진 시선이 바닥을 향 했다. 처연한 얼굴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동정심이 두 배로 인 다.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시다시피, 제가 혈조술사라서요. 부인께서 괜찮으시다면 잠시 살펴봐 드리고 싶습니다.”
남작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조심스레 마주 잡았다.
이틀 전 레벨이 오르면서, 나는 ‘뜨거운 피’에 점수를 투자했다. ‘뜨 거운 피’는 내 것이 아닌 근처의 피 에 대해 통제력을 뻗게 해주는 스킬 이었다.
어느새 숙련도가 3점에 이르렀기 에, 얇은 피부를 통해 꽤 선명하게 피의 흐름이 느껴졌다.
정신을 집중하니, 피부 아래 퍼진 피가 내 통제하에 들어왔다. 나는 그 피들을 조심스럽게 흩어내고, 혈 기를 끌어올려 피가 빠져나간 부분 을 청소했다.
“어머.”
마치 씻겨 내려가듯 멍이 빠져나가 자, 남작부인은 숨을 삼켰다.
와, 실제로 성공해 본 건 처음인 데? 뿌듯한걸.
난 어두운 초록색 눈동자를 내려다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어떠십니까? 이제 아프지 않죠?”
태양이 뜨거운 탓일까?
남작부인의 백옥같은 얼굴이 새빨 갛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열기를 가하고, 다시 냉기를 가하는 식으로 반복하면 오 히려 약성이 살아난다는 걸 알아챈 거야.”
엘렌은 내 팔에 앉은 채 종달새처 럼 조잘거렸다.
“그래서? 성과가 있었어?”
“아직 며칠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 냄새나 색만 봐도 어느 정도는 결과를 유추 할 수 있거든.”
마스터 캐스라이트와 물약을 만드 는 일이 꽤 즐거웠나 보다. 선술집 으로 돌아가는 내내, 엘렌의 목소리 가 좀 밝아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모습은 정 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전에는 가끔, 아주 가끔 밝게 웃거 나 농담을 하곤 했는데, 사우스하버 를 떠난 이후로는 이런 모습을 통 보이질 않았던 탓이다.
“마스터 캐스라이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
“말했잖아. 나쁜 분은 아닌 것 같 다고.”
“자주 놀러 가자. 롱빌에 있는 동 안은.”
“하지만, 아직 점수가.”
“괜찮아. 영주가 움직이기 전까지 는 좀 쉬엄쉬엄하자.”
지난 일주일 동안 사냥을 한 결과, 나와 엘렌은 각각 레벨이 하나씩 올 랐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고블린, 오크, 아누파드를 잡아서 총 점수가 348 점이 되었다. 아래 두 팀과 별로 차 이는 안 나지만 벌써 3등이니, 조금 쉬엄쉬엄해도 하사품은 받을 수 있 을 거다.
“그런데,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 어. 새로운 레시피라서 효과가 부족 할 수도 있고, 부작용이 너무 클 수 도,”
“상관없어. 네가 즐거우면 됐지.”
“응?”
“너 이렇게 즐거워 보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거면 됐으니까, 자주 놀러 가자.”
엘렌은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가 입을 열었다.
“가끔은.”
“ 응?”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어.”
이래도’라니? 뭐가 어떤데?”
잠시 입술을 벙긋거리던 엘렌은 이 내 고개를 내젓더니,
“아니,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 다. 처음 보는, 쓸쓸한 미소였다.
다음 날, 사냥을 나서다가 게시판 에 들렀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 한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다.
1. 아틸리아 –
567점
2. 랜달
523점
3. 노르만
474점
4. 소르길 –
383점
5. 에드윈 –
378점
어제까지만 해도 3등에 박혀있던 내 이름이 고작 하루만에 게시판에 서 내려간 것이다.
나는 이젠 꽤 친해진 젊은 필경사, 벨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틸리아는 며 칠 전까지 200점대였잖아?”
“그 누데인족들, 산 깊은 곳에 다 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산 깊은 곳?”
“네. 거의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는 300점 가까이 얻어갔습니다.”
미친, 헛웃음이 나오네.
“일주일 만에 300점? 그거, 어디 다른 지역 가서 유해를 사 온 거 아냐?”
“상태가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그린스킨이랑 아누파드가 나타나는 건 이 근처뿐 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던 벨딘은 어깨를 으쓱 거렸다.
“그리고, 포이닉스 경이 그런 말씀 을 하시니까 좀 이상한데요. 포이닉 스 경의 무리는 일주일 만에 348점 을 얻으셨잖아요. 인원도 적으신 편 인데.”
“야, 우리야……. 됐고. 저 에드윈 은 뭐야? 처음 보는 이름인데?” “아, 그쪽은 게시판에 이름만 안 올렸지 쭉 활동하던 패거립니다. 이 번에 성과가 꽤 있어서 5등으로 올 라왔죠.”
잠자코 인상을 구기고 있던 우테콰 이가 입을 열었다.
“이건 치욕이다. 어머니의 전사가 사냥으로 밀리는 것은 말이 안 된 다.”
뭐,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나도 좀 열 받는데. 바로 어제 엘렌에게 쉬 엄쉬엄하자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포이닉스. 우리, 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더 많은 괴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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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자코 뒤를 돌아보았다.
아미아스의 패거리들.
놈들은 고작 일주일 만에 많이 변 해 있었다. 눈빛도 조금은 살아났고, 그간 돈을 많이 번 덕에 무장도 상 당히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 다. 솔직히 아누파드 여왕을 상대할 때 고기방패로 쓰기 위해서 받아들 인 놈들인데, 성장세가 좋아서 조금 놀랐다.
뭐, 이 정도 전력이면 산에 더 깊 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겠지.
그때, 벨딘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 을 열었다.
“근데, 최근 들어 소규모로 돌아다 니는 괴물이 많이 줄어들어서요.”
“뭐?”
“잔챙이들은 대부분 처리가 된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큰 뭉치로 돌아 다니는 놈들밖에 없다고 해서 좀 위 험하실까 봐……
우테콰이는 잠자코 서 있다가 불쑥 벨딘에게 물었다.
“트롤은 얼마냐?”
“네? 트롤이요?”
“그래.”
“어, 트롤은 아직 잡힌 적이 없어 서……
벨딘은 문서를 뒤지더니 한쪽을 손 가락으로 집었다.
“우와, 150점이네요.”
“150점, 좋다.”
우테콰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뭐.”
“우리, 트롤 잡아야 한다.”
“……하아.”
트롤이 라.
이 지역에서 나오는 트롤이라면, 아마 챕터 3의 세 번째 픽넴인 ‘부 랑트롤 스퍼그’일텐데.
마우스랑 키보드로 잡는 거면, 20 레벨 혈기사로도 트롤 정돈 껌이다. 근데 지금까지 겪어본바, 현실은 차 원이 다르다.
난 문득 엘렌에게 물었다.
“엘렌, 넌 어떻게 생각해?”
“……음, 트롤을 직접 본 적은 없 어서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 다.
“내가 화염 계열 주문으로 보조하 면 승률이 많이 올라가긴 할 거야. 트롤은 불에 약하니까.”
“으음.”
난 신중히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 덕 거렸다.
“좋아. 그 대신, 절대로 무리하진 말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여 길 떠나면 되니까.”
엘렌과 우테콰이는 고개를 끄덕거 렸다. 하지만, 둘 다 그리 쉽게 포 기할 것 같은 눈치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