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6)
나의 악당들 166화
41. 혈기사(3)
난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속부터 게 워냈다. 아니, 속을 게워내며 깨어났 다고 해야 하나.
“쿨럭, 웨엑-”
“포이닉스 님!”
엎어진 채 검은 피를 죽죽 토해내 고 있자니 스티드먼과 미라가 허겁 지겁 달려왔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 킨 나는 손부터 뻗었다.
“아흐, 물. 물 좀.”
미라가 건넨 물주머니를 끝까지 비 운 뒤에야 타는 듯한 갈증이 좀 진 정 된다.
……근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사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불이 사방으로 번지며 검은 연기를 토해냈고, 야트막한 언덕에 용병과 개의 시체가 무수히 흩어져 있었다.
우리 일행 역시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가까이에는 손을 떨어대는 아미아 스가 가슴에 쇠뇌살이 박힌 제네사 를 돌보고 있었고, 마법사 시렌은 종아리에 붕대를 감은 채 동생인 에 단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시모스는 피가 배어 나오는 옆구리에 천을 덧 대고 있었다.
“끄웅.”
어질어질한 머리를 두어 차례 흔들 고 몸을 일으켰다.
“어어, 괜찮으십니까?”
나는 부축을 해오려는 스티드먼을 물리치며 근처에 떨어져 있던 흐룬 팅을 주워들었다.
“우테콰이랑 엘렌은?”
“하탄카 님은 저쪽에 있고, 엘렌 님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선 우테콰이가 어느 사내의 머리통을 뽑아내고 있 었다. 주변에 서 있는 용병이 없는 걸로 보아 마지막 놈이었나 보다.
기다렸다는 듯 마법사 시렌이 무어 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우테콰이의 근처에 있던 골렘 한 구가 삐거덕거 리며 주저앉았다. 곳곳이 깨지고 피 칠을 한 석상은 그렇게 흙무더기로 무너져내렸다.
“아으, 우우-”
우테콰이는 몸 곳곳에 극심한 부상 을 새긴 채였다. 특히 오금과 가슴, 팔뚝은 언뜻 허연 것이 비칠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놈은 들고 있던 머리통을 내던져버 리곤 경련하는 시체의 가슴팍을 파 헤쳤다. 사슬과 천옷을 벗기고 살점 과 뼈를 뜯더니 심장을 꺼냈다. 끔 찍한 광경이다…….
“우흐, 우으으!”
검은 안광이 점멸했다.
그에 호응하듯, 우테콰이의 오른손 에 끼워진 하얀 뼈 반지가 은근히 마력을 흘렸다. 거칠고 커다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Athar, iya.”
놈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곤 입가로 가져가 던 심장을 툭, 떨어뜨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이런.”
그걸 지켜보던 나는 얼른 우테콰이 에게 달려갔다.
놈을 똑바로 눕힌 뒤 허리춤을 더 듬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포션이 없 다. 엘렌이 마스터 캐스라이트에게 서 두 병을 얻어온 덕에 나도 한 병을 챙겨뒀었는데.
“포션을 찾으시는 거라면, 포이닉 스 님께 썼습니다. 하탄카 님이요.”
“나한테 썼다고?”
“예. 벼락을 맞으셨잖습니까.”
“벼락? 아.”
이제야 기억이 난다.
토비아스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이 야기를 하다가 우리 쪽에서 먼저 화 염구를 갈겼지. 놈은 웬 마도구를 단 쇠뇌살을 쏴서 ‘낙뢰’ 주문을 유 도했고.
문득 왼쪽 장갑을 벗어보니 웬 자 국 같은 것이 손가락 끝에서 시작되 어 손등을 지나 소매 안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뭇가지 내지는 핏줄 모양으로 새 겨진 붉은 흉터……. 아마 벼락이 지나간 흔적이겠지.
피가 바쁘게 흐르며 모양을 흩뜨리 고 색을 빼고 있었지만, 흉터가 완 전히 사라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난 일단 보이는 대로 우테콰이의 상처들을 틀어막으며 절벽 쪽을 흘 긋거렸다.
“그럼 마법사는? 그 낙뢰, 분명히 마법이었는데.”
“좀 전까지 막 번쩍거리면서 벼락 도 치고 불덩이도 날고 하던데, 지 금은 잠잠해졌습니다.”
“음……
스티드먼의 말에 절벽을 살펴보았 지만, 너무 멀어서 딱히 보이는 게 없다.
불덩이라. 엘렌은 괜찮은 걸까?
뭉치는 어딨지? 혹시 이변이 생기 면 가장 위협이 되는 적부터 암살하 라고 했는데, 내 말대로 했을까?
혈조술을 이용해 우테콰이의 상처 를 지혈하고 있는데, 나를 보조하여 천을 대고 있던 스티드먼이 뒤쪽을 흘긋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네사의 상처가 심각합니다. 얼 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제네사는 아까부터 보글거리는 소 리를 내며 입에서 피를 뿜고 있었 다. 폐가 찢어져서 피가 차오르는 모양인데, 한시라도 빨리 치료가 필 요한 상황이었다.
“……아으, 젠장.”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머리가 잘 안 굴러간다.
“포이닉스 님, 저기!” 때마침 수풀 쪽에서 궁수 콜이 나 타났다. 그의 어깨에는 기다란 금발 이 걸쳐져 있었다.
“엘렌?”
콜은 기절한 엘렌을 업은 채였다. 나는 그에게 마주 달려가 엘렌을 안 아 들며 살펴보았다. 녀석의 왼쪽 얼굴에 핏방울이 점점이 튀어있 다…….
“ 엘렌!”
“큰 상처는 *허윽, 허어* 아닙니 다. 나뭇조각 같은 거에 * 후욱* 긁 힌 것 같습니다.”
가쁘게 숨을 고르면서도 콜은 썩 침착한 어조였다.
다시 살펴보니, 귓바퀴 위쪽이 조 금 깊이 베이긴 했지만 그리 큰 상 처는 아니었다.
“이게 대체,”
“마법사들과 싸우다 주문에 맞으셨 습니다. 마법사들은 뭉치라는 분이 처리했습니다.”
“마법사들?”
“벼락을 부리는 자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용병인지 호위병인 지 모를 남자도 함께였습니다.”
엘렌의 상처를 돌보던 나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가 네 명이나?”
“예.”
엘렌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에, 낙 뢰를 부를 정도의 마법사라.
라-팔라이스 궁전의 추적자들이 분명하다.
“설마 그 마법사들, 죽였어?”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둘은 죽였습니다. 각각 벼락과 바람 을 다루는 마법사였습니다.”
“하, 미치겠네.”
궁전의 마법사를 죽여버리다니.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 만, 일이 어떻게 꼬일지 짐작도 안 간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콜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나바스 씨가 뭉치 씨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법사들을 처리하던 뭉치 씨가 쇠뇌에 맞고 수풀 어딘가로 떨어졌 습니다. 그래서 자나바스 씨는 저한 테 엘렌 님을 맡기고 뭉치 씨를 찾 으러 간 겁니다.” 콜은 굳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자나바스 씨가 말하길, 불길한 마 력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불길한 마력?”
“예. 중간계에 존재할 수 없는 마 력이라고, 어서 피해야 한다고 했습 니다.”
……하. 이게 다 무슨 난리야.
나는 일단 고민은 접어두고 얼른 일행을 수습했다. 부상자가 많으니 일행은 롱빌로 내려보내고 콜과 시 모스 정도만 데리고 뭉치를 찾으러 갈 계획이었다.
문제는 우테콰이였다.
놈은 키가 220쯤 되는 데다가, 몸 무게는 체감상 내 2배 정도 된다. 그런 어마무시한 거구가 기절한 채 늘어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상까지 심각하니 밧줄에 묶어다 끌고 가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시렌이 마나를 짜내어 소환한 골렘도 우테콰이를 제대로 못 들더라.
결국 골렘에겐 제네사를 안게 하 고, 미라에겐 엘렌을 업히고, 들것을 급조하여 우테콰이를 실었다. 거기 에 아미아스, 스티드먼, 콜, 시모스 까지 달라붙어서야 간신히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행을 보낼 준비를 마칠 무렵. 수풀 쪽에서 마력이 물씬 풍 겨왔다.
“이건가.”
자나바스가 ‘불길하다’라고 표현한 이유를 확실히 알겠군. 마력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나조차도 막연하게나 마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흘긋 돌아보니 과연, 라오 가문의 남매는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쳐오기에 난 조 용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반면 아미아스를 포함한 다른 이들 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 을 뿐이었다.
“……포이닉스 님?”
“아냐. 출발해, 지금 당장.”
“음,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표정도 잠시, 아미아스는 일행을 이끌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일행이 출발한 것을 확인한 뒤, 나 는 천천히 수풀을 향해 걸음을 옮겼 다.
막연한 불길함이 뇌리를 스친다.
중간계에 존재할 수 없는 마력. 제 물로 마쳐진 아누파드들. 사라진 암 흑계의 전령…….
뒤이어 컴퓨터 모니터로 보았던 장 면이 떠오른다.
어두컴컴해진 화면. 인질들은 물론 이고 제 부하들까지 제물로 바쳐버 린 강도남작. 변절한 천공의 수호 자…….
예감은 금세 확신으로 변했다.
수풀 속에서 웬 거대한 형체가 천 천히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X발.”
성체 트롤보다도 커다란 덩치를 가 진 아누파드였다.
놈은 머리 위에 회색 관을 두르고 있었다. 덕분에 그 정체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챕터 3의 보스, ‘여왕 라마쉬다’.
“냄새.”
괴물이 인간의 음성을 흉내 내었 다. 기이한 마력으로 일렁거리는 눈 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피 냄새.”
분위기로만 느껴지던 이차원의 마 력이 구체적인 재앙으로 화했다. 마 치 검은 연기가 바닥을 타고 퍼져나 가는 것만 같았다.
“카빌다. 운도그.”
마력이 몸과 정신을 옥죄어 왔다. 눈앞이 조금 흐려지려는 찰나, 혈기 를 끌어올려 이에 저항했다.
“아쉬오운. 자리타.”
라마쉬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을 끊임없이 읊조렸다. 언뜻 울먹거 리는 것 같기도 한 듣기 싫은 목소 리였다.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에 주문인 가 싶은 것도 잠시,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쉬트우그. 리우야마.”
……쉬트우그?
‘부관 쉬트우그’를 말하는 건가?
이어서 몇 개의 단어가 더 흐르고, 또다시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프샤키. 솔운.”
‘푸른 프샤키’.
나는 그제야 라마쉬다가 늘어놓고 있는 단어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쉬치구. 우데안.”
이름이었다. 내가 지금껏 죽인 아 누파드들의 이름.
라마쉬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비 탈을 따라 내려왔다. 놈이 다가올수 록 불길한 마력은 더욱 지독해졌다.
“으흐.”
개 형상을 한 거대한 괴물이 꼭 자식 잃은 어미처럼 서럽게 울며 터 벅터벅, 두 발로 걸어 내려오고 있 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오싹한 광경이다.
“••••••하.”
상황을 파악하니 헛웃음이 절로 터 져 나왔다.
암흑의 축복.
게임 속에선 일개 네임드에게 불어 넣어졌던 그 저주받을 것이, 엿 같 은 현실에선 챕터 보스에게 깃든 것 이다.
“우쉬투의, 것.”
우쉬투.
랫맨과 고블린, 오크와 오우거, 아 누파드와 미노타우로스의 신…….
“함께, 가야 해.”
난 거기까지 듣고, 전력을 다해 투 창을 던졌다.
“흡.”
디딤발로부터 시작된 힘이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를 차례로 회전시 키더니 투창에 실려 갔다.
퍽!
“ 아.”
투창은 정확히 이마를 꿰뚫었다.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라마쉬다는 머리에 투창을 꽂은 채 계속 다가왔 다.
“이런 미친.”
소름이 돋아 흐룬팅을 뽑아 든 그 순간, 라마쉬다의 거대한 동체가 허 물어졌다.
우당탕.
괴물의 시체는 비탈을 따라 너덧 바퀴쯤 구르다가 웬 돌부리에 걸리 며 멈춰 섰다.
그러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뭐지? 설마.
“……해치웠나?”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던 나는 깜짝 놀라 입을 합, 다물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건지, 라마쉬다 의 시체가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했 다.
“하아•… •-
손바닥을 그어 흐룬팅에 피를 덧씌 우는데, 라마쉬다의 배가 쩍 갈라졌 다.
구오오-!
불길한 울음소리.
갈라진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오 는 대신 검은 마력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마치 새까만 통로가 뚫린 것만 같았다…….
따다다다닥.
희미하던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마치 벌레가 떼 지어 나오는 것 같 은 요란한 소리…….
“……김포이닉스, 이 멍청한 새끼.”
내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 마쉬다의 배에 뚫린 통로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마구 뛰쳐나왔다.
구오오오!
상반신만 남은 검은 짐승들이 아가 리를 벌리며 합창했다. 황소만 한 덩치에 걸맞게 목청 역시 우렁차기 그지없다.
놈들은, 악신 우쉬투의 권속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통로에서 몸을 빼내자마자 양팔로 땅을 긁으며 이 쪽으로 돌진해 왔다.
“아오, X이팔-!”
고함을 내지르며, 덤벼드는 짐승들 에게 흐룬팅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