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93)
나의 악당들 193화
44. 꿈결(3)
동쪽에서 말간 해가 얼굴을 드러낼 무렵,
“구워어어억-!”
주술사를 잃은 분노에 눈이 뒤집힌 오우거들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오우거는 아주 위험한 괴물이다.
거인의 말예(末畜)답게 커다란 덩 치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적 으면 서넛, 많으면 서른까지 무리를 이루는 놈들이지.
게다가 인육을 선호하여 인간사냥 을 즐기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군대가 없는 시골 영지나 마을을 폐허로 만 드는 주범들이라고 한다.
근데 그거야 일반인들의 인식이 고…….
이름 : 나
레벨 : 25
클래스 : 혈기사
능력치 : 남은 보너스 – 1
근력 – 28(54) 민첩 – 28(54)
건강 – 27(51) 마력 – 24(42)
스킬 :
피의 칼날 7pt, 약탈 5pt,
피의 방패 3pt, 붉은 손아귀 lpt 흐르는 피 5pt, 뜨거운 피 3pt,
전설의 혈통 lpt
갈증 4pt, 피의 갈증 2pt, 피보라 2pt
범인의 수준을 훌쩍 벗어난 괴물이 된 내게 오우거는 그다지 위협적이 지 않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덩치 가 조금 큰 인간 정도로 보일 지경 이다.
그래서 난 흐룬팅을 뽑아 들고 놈 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어! 저, 저-”
“나리!”
파티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용 병들이 아연한 기색으로 새된 소리 를 내었다.
난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뒤따르는 경악을 뿌리쳤다. 그리고 서쪽으로 번져가는 서광을 앞지르며 힘껏 땅을 박찼다.
“구워어!”
선두의 오우거가 통나무에 가까운 곤봉을 휘둘러왔다. 나는 오른편으 로 비스듬히 몸을 날리며 흐룬팅을 내질렀다.
푸욱.
두꺼운 뱃가죽을 뚫은 우윳빛 칼날 이 절반쯤 사라졌다. 그러다 칼 끝 에 무언가 턱, 걸리는 감촉이 느껴 졌다. 난 아귀에 힘을 주며 야구방 망이를 돌리듯 허리를 비틀었다.
투둑,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척 추뼈가 잘렸다. 허리가 절반 이상 잘린 오우거는 피와 내장을 쏟아내 며 땅을 나뒹굴었다.
꿀렁-
새하얗던 칼날은 어느새 누린내 나 는 기름진 피를 가득 머금고 있었 다. 피의 칼날이 혀를 날름거리자, 가뜩이나 한손검치곤 길쭉하던 흐룬 팅이 20센티쯤 더 길어졌다.
주술사에 이어 또 다른 동족이 쓰 러지자, 오우거들은 고함을 지르며 무기를 휘둘러 왔다. 그중 조악하지 만 거대한 돌도끼를 쥔 놈이 나를 가리켰다.
“Koagral—!”
갈색 피부에 붉은 피를 내뿜는 주 제에 그린스킨의 말을 쓰다니, 웃기 는 놈들이군.
난 그리 생각하며 숨을 들이마셨 다.
“후우읍,”
기분 탓인가?
‘갈증’ 스킬을 쓰지도 않았는데 세 상이 조금 느려진 것 같다.
“하아아아—”
느린 호흡으로 숨을 반쯤 빼내었 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인피(人皮)를 걸친 뚱뚱한 오우거 의 울대를 훑어내고, 돌도끼를 들어 올리는 놈의 양 팔꿈치를 자르고, 턱이 튀어나온 놈이 휘두르는 곤봉 아래로 칼끝을 집어넣어 사타구니를 가르고, 경악하여 아가리를 헤 벌린 어린 놈의 목을 왼손으로 잡아채고, 폴댄서가 봉춤을 추듯 360도 휘돌 며 덤벼드는 세 놈의 목과 가슴, 배 를 칼끝으로 헤집고, 폴대 노릇을 하며 목이 쥐어 짜인 어린 놈에게서 피를 한가득 빼내어 도망치는 놈들 에게 피보라를 뿌렸다.
“꾸어, 꾸워어-”
학살당하는 동족들을 보고 잽싸게 내빼려던 오우거 중 두엇이 오금이 며 종아리, 발뒤꿈치 등에 혈편이 가득 박힌 채 바닥을 굴렀다.
“흐으음.” 마력이 꽤 강해진 탓에 피보라의 위력은 나름 쓸만해졌지만 사정거리 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그 탓에 세 마리의 오우거는 멀쩡한 몸으로 숲 쪽으로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놈들을 쫓아야 하나 고민하던 바로 그때.
쑤우웅!
살벌한 파공음과 함께 내 팔만 한 길이의 서리송곳 두 개가 허공을 갈 랐다. 투명한 얼음의 창과 그 뒤로 흩어지는 미세한 얼음조각들이 여명 에 번쩍였다.
서리송곳 하나는 덩치가 조금 작은 오우거의 등 한복판에 꽂혔고, 나머 지는 그 옆 놈의 목을 뜯어내 버렸 다. 보나 마나 엘렌의 주문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운 좋게 살아남은 마지막 놈은 소리 없이 날아든 쇠뇌살에 어 깨를 맞았다.
“꾸읅!”
엄니가 유난히 큰 오우거는 두꺼운 피부에 매달린 조그만 쇠뇌살을 무 시하고 숲을 향해 계속 달려갔다. 그렇게 숲 어귀에 들어설 즈음, 돌 연 입에 거품을 문 채 앞으로 나자 빠지는 것이었다.
타닥.
방금 전까지만 해도 뒤편의 나무에 올라가 있던 뭉치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마비독에 당해 쓰 러진 오우거에게 다가가 두꺼운 밧 줄로 목을 졸랐다.
뭉치가 놈을 마무리하는 동안, 난 피보라에 맞아 쓰러진 놈들에게 다 가갔다.
“꺼흙, 꾸어어-!”
다리가 엉망이 된 오우거들은 더러 운 이빨을 드러내며 팔을 휘저어댔 다.
생존을 위한 간절한 몸부림. 별다 른 감흥은 일지 않았다.
하나는 스웨이드 부츠의 튼튼한 굽 을 이용해 머리를 터뜨렸고, 다음 놈은 목을 잘랐으며, 마지막 놈은 심장에 칼을 찔러넣었다.
“꺽, 꺼걹,”
굳게 쥔 흐룬팅을 통해 질긴 생명 이 꺼져가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놈의 컥컥거림이 바람 빠지는 소리로 바뀌고 그 소리마저 도 그친 뒤에야 칼을 뽑았다.
뜨끈한 열기에 돌아보니 동쪽 저 멀리 능선 위로 태양이 절반 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끄으응.”
그리고 칼을 대충 털어낸 뒤 어쩐 지 가벼워진 걸음으로 야영지로 돌 아갔다.
프리츠나 움베르타 등 파티에 합류 한 지 얼마 안 된 용병들은 놀란 건지, 질린 건지, 겁먹은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 다.
“……나리.”
그 와중에도 콜과 함께 숯장이 가 족을 지키고 있던 컨휘어는 썩 침착 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눈썹을 긁적거리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다.
“일단 밥부터 먹자.”
“……식사를, 합니까? 여기서?”
“아침이잖아. 배 안 고파?”
싱긋 웃으며 묻자, 컨휘어는 내 등 뒤를 흘끗거렸다. 그러다 결국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렌이 소환한 춤의 정령이 오우거 들의 피비린내며 체취 등 엿 같은 냄새들을 몰아낼 무렵, 일행은 모닥 불가에 도로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용병들이 각자 염장한 고기나 빵, 말린 과일 등으로 배를 대충 채운 반면, 빡빡이 스티드먼은 파티를 위 해 꽤 정성 들여 식사를 차렸다.
물론 그래 봐야 메뉴는 두 개, 그러 니까, 토끼고기 파이와 ‘도라 수프’뿐 이었지만 물에 불린 빵이나 딱딱한 육포와 비교하면 진수성찬이었다.
토끼고기 파이는 얼마 전 지나온 마을에서 사둔 것이었는데, 토끼고 기와 양파, 생강 등을 잘게 썬 뒤 밀가루 반죽에 싸서 화덕에 구워낸 요리였다.
스티드먼은 토끼고기 파이들을 모 닥불 근처에서 데우면서 파이의 표 면에 달걀을 발랐다. 그렇게 달걀 코팅이 노릇하게 익으니 굳어있던 파이는 마치 새것처럼 먹음직스럽게 변했다.
회향의 잎자루와 양배추, 염장한 돼지고기 등을 넣고 끓여낸 뒤 파슬 리를 뿌려서 마무리한 ‘도라 수프’ 도 맛이 좋았다. 국물이 더 걸쭉했 으면 좋았겠지만, 수프를 졸이기 위 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벌 써 해까지 뜬 마당이니까.
크게 베어 문 파이를 한참 우물대 던 헤일라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스티드먼을 돌아보았다.
“파이랑 수프가 잘 어울려.”
“그러십니까? 귀한 아가씨께서 입 에 대기엔 좀 거친 음식일 텐데.”
“맛있어. 수프에서 단맛이 나. 신기 해.”
“헤, 그렇죠? 어제 자기 전에 양배 추를 썰어다 소금에 절여뒀거든요.” “소금?”
“예. 그러면 조금만 끓여도 아삭하 고 단맛이 납니다. ‘손 큰 도라’의 비결이죠.”
헤일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라를 타우즈 덴으로 데려가고 싶어.”
“예에? 고작 이 수프 때문에요?”
“전에 만든 꿩 스튜와 사과 프리터 도 네 어미의 조리법이라고 했잖 아.”
“아, 그랬었죠.”
스티드먼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내 저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욕 심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어지간한 조건으로는 꼬실 수 없으실걸요?”
그의 너스레에 주근깨 미라가 어이 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참나, 꼬시고 말고 할 게 뭐 있 어? 공작 가문에서 부르면 가야지.”
“네가 우리 엄마를 몰라서 그래. 고집이 쇠심줄보다 질긴 아줌마라 고.”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엘렌이 토 끼고기 파이의 냄새를 맡더니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O ”
“왜?”
“신 냄새가 더 심해졌잖아. 이젠 정말 못 먹을 지경이야.”
“그래? 난 괜찮은데. 상했나?”
내가 파이에 대고 코를 킁킁대자 미라와 티격태격하던 스티드먼이 손 사래를 치며 말했다.
“상하긴요. 식초 냄새가 조금 더 진해진 겁니다.”
“식초?”
“예. 중부지방에선 적포도주로 만 든 식초를 즐겨 쓰거든요. 고기에 뿌리면 풍미가 살아나긴 하지만 날 이 갈수록 냄새가 심해져서 싫어하 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티드먼은 제 몫의 파이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상큼하니 괜찮은데요?”
“상큼하긴. 그리고 수프에 든 돼지 고기도 좀 질긴데……
엘렌은 입술을 비죽 내민 채 불평 을 하다가 내 눈치를 흘긋 살피더니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식성이 까다로워서 종종 밥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적당히 혼냈더니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다. 요새 들어 또 키가 크면서 입맛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혼낼 건 혼내야지. 스티드 먼이 정성껏 끓여준 건데…….
내가 막 엘렌을 혼내려던 차, 헤일 라가 눈을 두어 차례 깜박이다가 입 을 열었다.
“고기가 질기긴 해. 중부의 돼지들 은 원래 그렇지.”
“맞아요. 돼지도 그렇고, 중부지방 은 영 먹을 게 없다니까요.”
내 눈치를 살피던 엘렌은 얼른 자 리에서 일어나더니 뒤편의 바위 근 처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것이었다.
참나, 눈치는 빨라가지고…….
내가 고소를 짓는 동안 미라가 말 을 이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고향 생각이 간 절해요.”
“리드번은 돼지고기가 맛있지. 고 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
헤일라의 말을 듣곤 옆 모닥불에서 식사를 하던 용병, ‘에손’이 불쑥 고 개를 돌렸다.
“리드번 돼지는 키우기가 까다로워 서 엄청 비싼데, 드셔보셨습니까?”
“응. 즐겨 먹었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역시 귀족 아가씨……. 리드번 토 박이인 저도 일 년에 두 번이나 먹 었나 싶은데.”
에손이 퉁퉁한 볼을 긁적이며 그렇 게 말하자, 미라가 놀란 눈으로 되 물었다.
“일 년에 두 번? 에손 아저씨, 꽤 살았나 보네?”
“아,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 가 수도원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서 하셨거든. 그래서 가끔 소시지를 얻 어다 먹었지.” “수도원?”
“그래. ‘성 몬타트라 수도원’이라 고, 레머릭 북쪽에 있는 곳인데-”
전투의 여파로 조금 가라앉은 상태 로 시작했던 아침 식사가 점차 떠들 썩해졌다.
“특이한 재주다.”
내 뒤편의 나무둥치에 앉아 도라 수프를 세 그릇째 비우던 우테콰이 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가?”
놈은 토끼고기 파이를 한입에 삼키 더니 대답했다.
“헤일라 말이다.”
“헤일라?” “옳다. 위엄 잃지 않으면서도 아랫 사람과 잘 친해진다. 특이한 재주 다.”
어느새 헤일라를 중심으로 열 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 우고 있었다.
넉살이 좋은 스티드먼, 미라, 에손 은 물론이고 마적 출신인 시모스, 경계심이 강한 움베르타, 성격이 포 악한 프리츠, 헤일라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는 콜까지.
심지어 어지간하면 내게 붙어 있는 뭉치 역시도 아까부터 헤일라 옆에 쪼그려 앉아 꿀차를 홀짝거리고 있 었다.
“……재주랄 것까지 있나?”
“너와 엘렌 빼고, 모두가 헤일라 좋아한다. 재주 아니면 뭔가.”
“나와 엘렌을 빼면? 그럼 넌?”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우테콰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좋다.”
“넌 왜? 헤일라랑 말도 잘 안 섞 으면서.”
“헤일라, Darran kel 쓴다. 아주 강 력하지. 대전사가 가까이할 수 없다.”
음, Darran kel이 뭐더라……. 아.
“사악한 주술, 아니, 혈조술?”
“옳다. 혈조술 쓰지만, 스스로 통제 잘한다.”
“스스로 통제를 잘하는 사람이 영 지 하나를 통째로 인질로 삼아?”
“툭하면 이성 잃는 너보단 낫다.”
“……이 새끼가, 뼈를 때리네.”
내가 투덜대자 우테콰이는 껄껄 거 리며 말을 이었다.
“너 노력하는 것 안다. 인내하고, 명성하고 있는 것도.” “명상이겠지.” “옳다, 명상. 좋은 방법이다. 하지 만 몇 번 말했다, 헤일라에게 배워 야 한다. Darran kel, 너보다 잘 아 는 여자다.”
«……으 ”
……K
백번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눈썹을 긁적거리다가 문득 의 문이 들어서 우테콰이를 돌아보았 다.
“근데 혈조술 쓰는 놈이랑 말 안 섞는다며? 그럼 난?”
내 질문에 우테콰이가 크게 혀를 찼다.
“포이닉스, 여전히 어리석다. 얼룩 하나쯤 모른척 해주는 것이 친구 다.”
“……이 새끼도 은근히 낯간지러운 소리 잘한다니까.”
놈이 재차 웃음을 터뜨리기에, 나 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년의 용병 컨휘어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는 육포를 뜯어먹으며 눈 치를 보고 있던 숯장이 가족을 일으 켜 내 앞으로 데려왔다.
“자, 이제 배도 채웠겠다.”
나는 흐룬팅의 퍼멀에 손목을 얹으 며 가족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젊은 부부의 안색이 새파랗 게 질렸다. 부모가 그렇게 떨어대는 와중에도, 조그만 여자아이는 무표 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 다.
“어디 설명을 좀 들어볼까?”
그리 말하며 씩 미소를 짓자, 악마 가 빙의되었다는 아이도 마주 미소 를 지어 보였다.
……음, 어쩐지 불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