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35)
나의 악당들 235화
48. 예술가(2)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후회 때문이다. 조금 더 대화하고, 꼭 안아줄걸, 하는 후회.
검은 원반, 아니, 꿈의 관문은 내 게 괴로워할 시간도, 지원이와의 짧 은 만남을 되새길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앞장서서 관문을 통과했던 이전의 꿈들과는 달리, 이번엔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발을 내디뎠다.
판석을 깐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습 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즈넉한 파도 소리에 이어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다음으로 익 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지러진 그믐달, 유리 조각을 뿌 린 것처럼 반짝이는 밤바다, 일부는 허물어지고 일부는 검게 그을린 성 곽, 환한 불빛을 뿜어대는 임시 등 대, 천을 씌워둔 노점들.
새벽마다 가슴 깊은 곳의 어둠에, 욕망에 잠식된 채 침을 흘리며 방황 하곤 했던 그곳…….
“사우스하버다.”
“……그렇네.”
우테콰이가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찰 나, 노점 사이의 그림자에서 웬 자 그만 인영이 튀어나왔다.
“포이!”
커다란 고깔모자와 펑퍼짐한 로브, 황금 양털 같은 머리칼과 보석을 박 은 듯한 벽안. 어둠이 성큼 물러날 만큼 아름다운 소녀.
“••••••엘렌!”
엘렌은 내게로 곧장 달려들었고, 난 품속을 파고드는 녀석을 단박에 안아 들었다.
“포이一”
“엘렌. 미안, 늦었지?”
“응, 응. 늦었어.”
엘렌의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 스며 있었다.
“미안해.”
“아냐. 왔으니까, 왔으니까 됐어.”
마침내 이루어진 엘렌과의 재회에 기쁨과 안도감이 솟구쳤고, 거기에 지원이와의 만남으로 격해진 감정이 더해졌다.
떨리는 어깨와 가녀린 등을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으, 수, 숨.”
“아, 미안. 얼마나 기다렸어?”
“잘, 정확히는 모르겠어. 며칠이나 기다린 것 같기도 하고, 한 시간도 안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내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린 엘렌은 한참 동안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 었다. 나는 녀석이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 랜만에 맡는 라임 향기에 들끓던 가 슴이 평온해진다.
“움직여야 해.”
고요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헤일 라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꿈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이 꿈도?”
그 말에 엘렌이 슬쩍 고개를 들었 다.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눈꺼풀이 퉁퉁 불어 있다.
“저게 무슨 소리야?”
“음, 그게.”
여기는 우리의 악몽 내지는 나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꿈의 세 상이라는 것, 난 벌써 꿈의 관문을 일곱 번이나 넘었다는 것, 그리고 지나온 꿈들 중 태반은 무너져 내리 며 끝났다는 것 등을 이야기해 주었 다.
짤막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엘렌은 줄곧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서 떨어질 생각이 전 혀 없는 모양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우스하버의 정경을 살피던 뭉치는, 어느새 나와 엘렌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 면서 부러운 눈으로 엘렌을 흘긋거 렸지만…….
미안하다, 뭉치야. 지금은 엘렌을 달래는 게 우선이라서.
“……꿈의 영지라는 게 그런 식으 로 구축되는 거였구나.”
내 설명에 켈센느의 말을 떠올렸는 지 엘렌은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새파란 눈빛이 향한 건, 다 름 아닌 헤일라였다.
“왜 마력이 느껴지는 거지? 물약을 먹인지 얼마 안 됐는데.”
“포이가 치료를 해줬어.”
시선을 받은 헤일라는 양손에 나눠 낀 은하수의 장갑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마력억제의 물약은 그 치료 과정 에서 효과를 다했고.”
“••••••뭐?”
엘렌이 내 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 자 난 어깨를 으쓱였다.
“헤일라가 부상을 심하게 입어서 치료를 해줬는데, 부작용인지 뭔지 마력도 회복되더라고.”
“대체 무슨 치료를 했길래?”
“수혈. 네가 루크에게 당했을 때도 쓴 적 있는 방법인데, 기억 안 나?”
“그걸, 저 여자한테 똑같이 했다고?”
«으 » 흐*
“아니, 그게……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던 엘렌은 어 째 굳은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그때 그건 급한 상황이라 임기응 변으로 쓴 거 아니었어?”
“어, 그치. 이번에도 급한 상황이었 어. 헤일라의 부상이 워낙,”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엘렌이 화가 난 기색으로 쏘아붙였다.
“그래도 그렇지, 너는 혈조술사잖 아. 피를 쏟아붓는 식의 치료가 너 한테 좋을 리 없는데,”
“헤일라랑 똑같은 소릴 하네. 난 완전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금 헤일라를 휙 돌아보았다.
“그래서, 저 여잔 저대로 내버려 두는 거야?”
“……어, 그럼?”
“물약은 지금 가진 게 없으니, 마 도구를 뺏고 묶어 둬야지.”
“ O 으……”
— r그 •
슬쩍 헤일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눈빛 도 평소와 같아서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무 표정함이 무감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헤일라는 표 현이 서툴 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 지로 감정을 느낄 줄 알았다.
헤일라의 감정이 걱정되는 한편으 로, 엘렌이 보이는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녀석은 헤일라가 롱빌에서 벌인 학 살극을 목격했고, 그녀에게 납치까지 당했다. 적개심이 없으면 이상하지. 슬쩍 일행을 돌아보니 다들 나설 기미는 없어 보였다.
우테콰이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사태를 관망하는 중이었고, 뭉치는 똘망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 었으며, 콜은 낯선 항구도시를 경계 심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결국, 예상대로, 이 상황을 수습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음, 엘렌. 헤일라는 걱정하지 않아 도 돼.”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저번 같은 일은 이제 없을 거라는 뜻이야.” 내가 ‘맞지?’ 하는 눈빛을 보내자 헤일라는 엘렌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을 번갈아 살피던 엘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 다.
“하, 그걸 믿어?”
“그, 일단 맹세도 했고, 서로 오해 가 있는 부분도 대화로 풀었고,”
“그래서, 믿는 거냐고 묻잖아.”
“……응. 말하자면 그렇지.”
엘렌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난 얼른 말을 덧붙였다.
“물론, 정말 원한다면 네가 말하는 대로 할 수도 있겠지. 근데 난 그러 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어, 그야……
내가 말을 고르는 人}이, 우테콰이 가 불쑥 끼어들었다.
“배신자 만드는 일이다.”
“……무슨 소리야?”
“네 말과 태도가 배신자, 도둑을 만든다는 소리다.”
엘렌이 미간을 좁히자 우테콰이는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어갔다.
“헤일라 위험하다는 것 안다. 전사 로서 의심하고 경계한다. 의심과 경 계, 전사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포이닉스는 다르다. 그는 전사고, 우두머리다.”
늘 느끼는 건데, 우테콰이는 상당 한 달변가가 틀림없다.
“나쁜 우두머리, 무리를 의심하고 억누른다. 믿음 받지 못한 자는 배 신자, 도둑이 된다.”
물론 밀라놀 어가 좀 서툴긴 하지 만, 명확한 발음이나 군더더기 없는 화법 덕에 말뜻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광전사에겐 썩 어울 리지 않는 재주였다.
“좋은 우두머리는 의심과 경계 숨 긴다. 믿음과 길을 보여준다. 믿음 받은 자는 부하가, 전사가 된다.”
“……그래서, 헤일라를 믿어야 한 다고?”
“옳다. 믿음 줄 수 없으면 쫓아내 거나 죽여야 한다. 그걸 원하나?”
우테콰이의 우묵한 시선에 엘렌은 입술만 삐죽거렸다. 표정을 보아하 니 아무래도 마무리는 내 몫인 것 같다.
“ 엘렌.”
오 O ”
녀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 리며 속닥거리자, 앙증맞은 귀에 돋 아난 솜털들이 바짝 일어난다.
“걱정하는 일 없을 거야. 내가 장 담할게.”
귀가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린 녀 석은, 곧 ‘맘대로 해’ 하고 중얼거리 며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짜식, 귀엽다니까.
어찌어찌 갈등을 봉합한 뒤엔 엘렌 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품 고 있던 의문을 조심스럽게 꺼내놓 았다.
“그런데, 엘렌.”
“응.”
“왜 사우스하버야?”
“••••••뭐가?”
“그러니까, 네 꿈 말이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엘 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헤일라나 아탈란테, 우테콰이의 꿈은 다…… 음, 고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장소가 배경이었거든.
그래서 난 네 꿈은 당연히 티린 멜 이나 라-팔라이스 궁전일 줄 알았 어.”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 자기가 추측 한 바를 꺼내놓았다.
“……아마, 여기가, 꿈에 관련된 공 간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매번 말했잖아. 난 명상을 자주 해서 꿈을 잘 안 꿔. 그러니 꿈의 영지도 남들과는 다르게 구축된 거 겠지.”
“그런가? 근데 너도 일상적인 꿈이 적은 거지, 악몽은 가끔 꾸지 않 냐?”
“그거야 그렇지만……
말끝을 흐리던 엘렌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아, 몰라. 꿈의 영지를 만든 흡혈 귀나 알겠지. 그리고, 여긴 환계의 영향을 받는 준차원이잖아.”
“어, 그건 그렇지.”
“환계의 작용에 규칙성이 없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닌데, 왜 그런 걸 캐 물어?”
심통이 난 듯한, 혹은 정색을 하는 듯한 표정에 난 피식 웃음을 흘리며 녀석의 볼을 꼬집었다.
“아읏-”
“으유, 말 좀 곱게 안 해?”
“애, 애아 멀,”
“얼굴 이쁜 것만 믿고 의기양양한 게, 아주 그냥 얄미워 죽겠어.”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내 손을 뿌리친 엘렌은 얼굴을 붉 힌 채 앙탈을 부렸다. 그 모습이 여 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한편 녀석의 말과는 별개로, 난 엘 렌의 꿈이 이 장소인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사우스하버에 처음 도착한 날 경비병의 창에 찔렸던 일 때문이겠 지. 그때 스승의 유품 중 하나인 ‘서풍의 지휘봉’도 잃어버렸으니 악 몽으로 남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 었다.
근데 그때와 이 꿈을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몇 개쯤 있었다.
그때는 낮이었는데 이 꿈은 밤이라 는 점. 기는 용, 아니, 지하군주가 날뛴 다음에 세워진 임시 등대나 노 포탑 (M 砲塔) 따위가 존재한다는 점…….
뭐, 이 정도 차이점에 의문을 품는 건 엘렌의 말마따나 우스운 일이었 다. 여긴 환계의 영향을 받는 준차 원이니까.
“ 엣,”
그때였다. 거의 울상을 짓고 날 바 라보고 있던 뭉치가, 돌연 눈을 동 그랗게 뜨며 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 렸다.
“……뭉치야?”
“누가 와요.”
녀석의 말에 나도 얼른 감각을 곤 두세워 보았지만, 그건 헛수고였다. 저 멀리 시장 너머로부터 시작된 인 기척이,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발소리, 같습니다.”
콜의 말대로 누군가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자연스럽게 무기를 치켜들며 경계 태세를 갖췄고,
“••••••안돼.”
내 품에 안겨 있던 엘렌은 사색이 되어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건, 이건 안 돼.”
“ 엘렌?”
흠칫 몸을 떤 엘렌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가, 가야 돼, 빨리!”
“가다니, 어디로?”
“어, 흐으.”
주변을 둘러보던 엘렌은 몸부림을 쳐 내 품에서 벗어났다.
“엘렌, 뭐 하는 거야!”
녀석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품에서 완드를 꺼내어 속사포처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Gelidus ventus, ostende te!”
회색 완드의 끄트머리에서 진동이 퍼져나갔다. 이어서 냉기가 모여들 며 주변의 공기를 쩍, 얼리기 시작 했다.
“Viotus, bestial”
엘렌은 마지막 시동어를 뱉으며 완 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쩌엉! 하는 굉음과 함께 웬 하얀 형체가 완드에 서 튀어나온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 었다.
크르르.
서릿발과 눈으로 이루어진 괴물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황소만 한 덩치, 늑대를 닮은 사지 와 머리통, 얼음을 깎아 만든 듯한 날개…….
냉기 계열의 2랭크 주문으로 소환 한 ‘서리야수’였다.
터벅, 터벅.
또다시 발소리가 울렸다.
“Ite!”
엘렌의 다급한 외침에 서리야수가 땅을 박찼다.
괴물은 얼음으로 된 날개를 펄럭이 며 한 번에 4, 5미터씩을 도약했고, 기척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으, 따라와!”
서리야수를 떠나보낸 엘렌은 내 손 목을 붙잡고 어느 부두를 달리기 시 작했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엘렌에 게서 느껴지는 두려움, 불안함, 절박 함 따위가 내 의문을 틀어막았다.
“이대로 쭉 가면 돼?”
“응, 맞아.”
엘렌을 뒤에서 안아 들어 올리며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했다.
여러 꿈을 겪으며 교훈을 얻은 건 지, 일행은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기 보단 일단 우리를 따라 달리고 있었 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때,
“아아, 아-”
마치 소프라노의 그것 같은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 아아, 아-!”
서글픈 목소리와, 그 음색에 너무 나 잘 어울리는 기묘한 곡조.
발목을 꽉 붙드는, 가히 마법 같은 노랫소리 였다.
“돌아보지 마!”
필사적으로 고함을 내지른 엘렌이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Ventum av~em,”
귀에 익은 주문. ‘춤의 정령’을 소 환하는 게 틀림없다.
“Saltare!”
구오오오.
두 줄기로 나뉜 춤의 정령은 부두 의 좌우로 몸을 던지더니 물보라를, 소용돌이를 끌어올렸다.
“아아, 아아아아. 아, 아-!” 노랫소리는 절정을 향해 치달아갔 다. 전력으로 달음박질을 하고 있음 에도 부두는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 았다.
“……어.”
아니, 아닌가? 지금 나, 뛰고 있는 거 맞나? 가만히 서서 노래만 듣고 있는 것 같은데.
그동안 엘렌은 세 번째 주문을 외 고 있었다. 이번에도 익숙하기 그지 없는 주문이다.
“Lumfere!”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머리 위로 날 아갈 무렵, 난 결국 노랫소리에 이 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아, 아아아아/”
저 멀리 부둣가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풍성한 머리칼과 요염한 몸 매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호흡을 앗 아간다…….
홀린 듯 그녀의 얼굴을 살피려는 찰나.
콰앙!
허공에서 화염구가 터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엘렌이 소환했 던 서리야수가 그 폭발에 휘말려 산 산이 박살 나 있었다.
마침 춤의 정령들이 일으킨 소용돌 이도 부두 위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덕분에 화염구의 폭발은 물보라마저 집어삼켰다.
치이이 익.
폭발의 열기로 인해 허공에 솟구쳐 있던 물줄기가 세차게 끓어올랐다.
“Lumfere!”
두 번째 화염구가 터졌다.
또다시 ‘치이익’ 하며 물이 끓어올 랐고, 시야는 마치 물안개가 낀 것 처럼 흐려졌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허억, X팔.”
엘렌의 고함에 정신 화악, 하고 깨 어났다.
“대체, 저건 뭐야?”
“일단, 일단 뛰어, 제발!”
얼른 뒤돌아보니 수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우테콰이가 비틀거리며 자세 를 다잡고 있었다.
뭉치와 콜은 넋이 나간 채로 부두 위를 나뒹구는 중이었고, 헤일라는 그 둘의 발목을 꽉 붙든 채 소리를 질렀다.
“노래가 다시 시작되기 전에 도망 쳐야 해!”
그 말에 우테콰이가 자신의 얼굴을 쩌억, 후려갈겼다. 그리고 뭉치와 콜 을 양어깨에 들쳐메곤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 빨리!”
나와 우테콰이, 헤일라가 전력으로 달리는 동안 내 품에 안긴 엘렌은 뒤쪽을 향해 연거푸 주문을 쏘아댔 다.
그러기를 잠시.
우리는 마침내 부두의 끝에 도달했 고, 바다 위에 떠오른 검은 원반을 발견했다.
“먼저 가!”
“읏, 포이, 안돼! 잠깐마-”
엘렌이 무어라 다급히 외쳐댔지만, 난 녀석을 꿈의 관문 너머로 냅다 집어 던져 버렸다.
“우테콰이, 서둘러!”
“지금, 간다!”
뭉치와 콜을 매달고 황소처럼 달려 온 우테콰이는 부두가 꺼지도록 발 을 굴러 날아올랐고, 단숨에 검은 원반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흐윽, 허억-”
“헤일라!”
마지막으로 헤일라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며 굼 뜨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거 조금 뛰었다고 죽으려 고 해?”
건강이 11점도 아니고 21점인데?
난 재빨리 달려가 그녀를 낚아채듯 안아 들었다.
내 팔 위에 축 늘어진 헤일라는 숨을 헐떡이며 ‘이런 거, 잘, 못해’ 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잘하는 건 뭐냐? 하고 묻고 싶었지만, 또다시 노래가 시작되었 기에 이를 악물고 다리를 놀렸다.
“아아아, 아아, 아아아.
몇 번이나 들었다고 벌써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서정 적인 곡조로 노래를 불렀다.
난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어 째 저 노래에서는…… 그리움 비스 무리한 감정이 느껴졌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나를—
애절한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관문으로 뛰어 들었다. 이전과는 달리, 어두운 통로 너머로 흐릿한 빛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