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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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 352화
59. 고원(12)
아슈르.
갈까마귀를 닮은 차림새를 한, 어 쩐지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남 자.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현상금사 냥꾼 패거리의 우두머리이자, 아탈 란테와 짝을 이루는 비전사냥꾼.
그는 입매만 슬쩍 끌어올렸다.
“날 기억하는 건가.”
“……당연하지.”
아슈르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 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번 모도스에서 만났을 땐 저 해진 마법 망토를 이용해 비행하는 모습을 봤 던 게 전부니까.
그러므로 내가 지금 느끼는 익숙함 은 김승수로서 게임을 즐겼던 기억 에서 비롯된 것일 터였다.
“상상했던 대로군. 그 반응도, 그 눈빛도.”
아슈르가 재밌다는 듯 중얼거릴 즈 음에야, 난동을 피우던 부하들은 그 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저, 저, 저 새끼! 그때 그, 날아다 니며 활 쏘던 새끼잖아!”
“그래, ‘검은 늑대들’의 대가리.”
퉁퉁한 에손이 호들갑을 떨며 손가 락질을 해대자 베테랑 컨휘어는 슬 쩍 미간을 좁혔다. 경계하며 무기에 손을 얹는 건 물론이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임마.”
모도스 이후에 합류한 맥케이그, 헨리크, 딜런, 카바스 등은 아슈르를 처음 본 것이었으나 대충 상황을 눈 치채고 기세를 가다듬었다.
“……어, 어어?”
반면 테오도라는 이게 무슨 영문인 지 모르겠다는 듯 풀린 눈을 깜빡였 다. 그러다 취중에도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테이블을 짚 으며 얼른 일어나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갖춘 부 하들과 어리둥절한 얼굴로 벽에 기 대어 선 공녀를 일별하며, 난 아슈 르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이런 선술 집에서 만날 사이는 아닌 것 같은 데.”
“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뭐?”
그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겨 내 쪽으로 다가왔다.
스릉.
부하들의 기세가 좀 더 날카로워졌 고, 데르비쉬나 헨리크 등은 무기까 지 꺼내 들었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선술집 주인과 점 원들은 소리 없이 난리를 피우며 장 내를 빠져나갔다.
“우리 같은 놈들이 원래 그렇잖아? 이익이 걸려 있으면 아군도 적이 되 고 적도 아군이 되는 거지.”
“우리 같은 놈들?”
“그래. 난 고급인력인 척 하지만 사실 농노사냥꾼과 별 다를 바가 없 고, 넌 기사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 상 용병 나부랭이에 불과해. 신세를 따지자면 거기서 거기라는 거야.”
“개소리!”
고함을 친 건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던 기돈이었다. 그는 치아와 피가 섞인 침을 뱉더니 중쇠뇌를 들 어 아슈르를 겨누었다.
“황금 때문에 제 민족을 팔아먹은 놈이 나리랑 맞먹으려 들어? 우습 지도 않군!”
검은 늑대들의 원래 리더는 ‘외눈 의 더크’라는 놈이라고 들었다. 아 슈르가 나타나 더크의 자리를 차지 한 게 불과 2, 3년 전이라던가.
검은 늑대들이야 이전부터 대륙에 서 이름을 떨치던 집단이니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고, 거기 우두머리가 되기 전의 아슈르도 만만찮게 유명 한 놈■이었다.
“왜, 칭찬 아닌가? 나처럼 결단력 있는 지도자는 드물다고.”
“미친놈.”
“칭찬 고맙지만 송사리는 빠져줬으 면 좋겠어. 보다시피 너희 주인이랑 대화를 나누려던 참이거든.” 팽팽하게 당겨진 강철 시위와 그 위에 얹어진 길쭉한 쇠뇌살이 가슴 한복판을 겨누고 있음에도 아슈르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눈매가 날카 롭긴 했지만 입엔 미소마저 띄고 있 었다.
짙은 피부로 대충 유추할 수 있지 만, 그는 아탈란테와 같은 누데인 족이었다. 회색 머리칼과 호박색 눈 동자를 지닌 걸로 보아 아마 꽤 고 귀한 혈통을 타고났을 거다.
그런 아슈르가 현상금사냥꾼으로서 악명을 떨치게 된 건 한 누데인 씨 족을 저 멀리 아미르 연합국의 어느 술탄에게 통째로 팔아넘기면서부터
였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때 아미르 연합국으로 넘어간 누 데인족이 천 명도 넘는다고 하며, 덕분에 한동안 왕국 동부가 떠들썩 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대화를 나누러 온 건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검은 얼음 의 퍼멀에 손을 얹자, 천천히 다가 오던 아슈르가 우뚝 멈춰 섰다.
“흥미로운 얘기였으면 좋겠네. 롱 빌에서 벼락을 맞았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이가 갈리거든.”
“벼락을 떨어뜨린 건 마스터 위달 이었어. 라-팔라이스 궁전의 그랜드 마스터 갈나르의 부하 중 하나였 지.”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 건 가?”
“천만에. 난 그저 내 처지를 설명 하고 싶은 것 뿐이야.”
컨휘어와 딜런 등이 몰래 움직여 그를 포위했지만, 불빛을 받아 황금 색으로 번쩍이는 눈동자는 전혀 흔 들림이 없었다.
“난 의뢰를 받아 일을 한 것 뿐이 야. 부디 유감을 품진 않았으면 좋 겠군.”
“원래 의뢰를 받을 땐 원한을 살 각오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야. 하지만 결국 죽은 건 우리 쪽 애들 뿐이잖아?”
“그런데?”
“‘그런데’ 라니? 목숨이 아닌 건 금으로 값을 치를 수 있,”
채
기회를 노리던 난 재빨리 검을 뽑 으며 앞으로 튀어 나가 아슈르의 목 을 향해 그었다.
스스로 평가해봐도 그야말로 벼락 같은 동작이었으나, 이 날쌘 현상금 사냥꾼은 표범처럼 뒤로 몸을 날려 검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해진 망토 를 펼쳐 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 개새끼!”
포위망에서 튀어 나간 프리츠가 쇠 도리깨를 휘둘렀다.
그 순간 아슈르의 몸이 둘로 나뉘 었다. 하나는 희미했고, 하나는 선명 했다. 프리츠의 철추는 맹렬한 소리 를 내며 선명한 형체를 후려쳤다.
피시식.
철추에 맞은 형체가 연기처럼 흩어 지고, 희미한 형체는 제 모습을 보 이듯 선명해졌다. 아슈르가 비전의 힘으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펄럭, 하고 유영하듯 물러나는 놈 에게 재차 덤벼들려는데-
“멈, 춰!”
아슈르가 망토 안에 숨겨져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에 쥐어진 물건을 본 난 급히 멈춰 서 며 부하들을 만류했다.
“멈춰, 멈춰!”
막 달려들려던 프리츠 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으 나, 난 그저 이를 악물 수 밖에 없 었다.
“••••♦•제길.”
그건 돌조각이었다. 갈라지는 대지 가 새겨진 흰 돌조각.
룬돌, ‘대지진’이었다.
“후, 좋은 시도였어. 기습에 재능이 있는데?”
볼에 얇은 생채기가 새겨진 아슈르 는 얼른 피를 닦아낸 뒤 비전의 힘 을 끌어올렸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며 벌어진 상처가 오므라들었 다.
“혈조술사를 상대할 땐 피를 숨기 는 게 중요하지.”
“룬돌을 알아봐서 다행이야. 하마 터면 이 작고 활기 넘치는 마을이 쑥대밭이 될 뻔했잖아.”
대지진 룬돌에는 일정 범위에 강렬 한 지진을 일으키는 힘이 담겨 있 다. 땅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땅거죽이 뒤집히며 용암이 솟는 수 준의 강렬한 지진 말이다.
아슈르의 말대로, 지금 저 룬돌이 발동된다면 롱데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터였다.
“동반자살을 하러 온 건가?”
“설마.”
내 빈정거림에 그는 망토 자락을 펄럭였다.
“도망치는 건 자신 있거든.”
“그래? 날아가는 정도로 도망칠 수 있을까?”
아슈르는 내 뒤쪽을, 정확히 말하 면 중쇠뇌를 든 기돈과 단궁을 든 카바스를 흘긋 살폈다.
“이 정도야, 뭐.”
지잉
황금색 눈동자를 통해 보랏빛 광채 가 뿜어졌다. 그 광채는 마치 연기 가 피어오르듯 천장을 향해 솟구쳤 고, 곧이어 미세한 충격파가 터졌다.
“억 크으—”
“씨, 씨X, 이거 뭐야?”
아슈르가 일으킨 ‘정신파동’에 부 하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 다. 나 역시 바늘 수백 개가 머릿속 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 O 으” —=r,
“진정해. 대화를 위해 내 능력을 보여준 것 뿐이니까.”
“흐으.”
정신파를 떨쳐낸 뒤엔 기다렸다는 듯 부글거리는 혈기가 전신 혈관을 채웠다. 그대로 놈을 노려보자, 아슈 르는 표정을 굳히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거기에 더해,
“감히, 사술을.”
눈의 초점을 되찾은 테오도라가 테 이블을 짚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단호한 명령.
“물러, 서라-”
섬광이 터지고, 번쩍이는 빛의 가 루가 나와 부하들의 몸에 스몄다.
아군의 각종 방어적 능력을 증폭시 키는 ‘수호의 빛’이었다.
“으어-”
“어후, 이거, 이상한데……
부하들은 기이한 감각에 오묘한 표 정을 지으면서도 도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빛의 주여-”
쇠뇌수 기돈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묵주를 굴려댔지만, 그러거나 말거 나 부하들은 잽싸게 아슈르를 둘러 쌌다.
“ 흐음••••••
나와 테오도라, 용병들을 둘러본 아슈르는 난처한 기색으로 코끝을 긁적였다.
“엿 됐네. 이래서야 정말 동반자살 을 하러 온 것 같잖아.”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그래, 그런 것 같아.”
“그거 내려 놔, 대가리 터뜨려버리 기 전에.”
“……살벌하구만. 누가 피투성이 검사 아니랄까 봐.”
그는 재차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는 보랏빛 광채가 일렁이는 눈까지 호선을 그렸다.
“뭐, 완벽한 대화의 조건을 갖춘 걸로 생각할까.”
“……또 개소리냐?”
“개소리라니, 이제 평등한 상태가 됐잖아. 서로 목숨을 쥐었으니 진심 어린 대화를 할 차례지. 안 그래?”
일촉즉발의 상황임에도 아슈르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모습에 컨휘어와 데르비쉬 등 은 긴장한 기색으로 무기를 고쳐 쥐 었고, 프리츠와 헨리크 등은 무어라 욕을 지껄여댔다.
“그래, 그런 것 같네. 대신 이젠 헛소리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그러지.”
아슈르는 구겨진 삼각모를 벗어 머 리칼을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거래를 제안하러 왔어.”
“거래?”
“맞아, 거래. 상호 간 이익이 될 만한 거래지.”
“내가 받은 의뢰는 두 개였어. 둘 다 계집애를 잡아 오라는 내용이었 지. 하나는 불의 마녀였고, 하나는 ‘검은 여인(Lady in black)’이었지.”
“……검은 여인?”
“그래, 네 옆에 붙어 있던 그 동대 륙 암살자 말이야.”
당연하지만, 뭉치 얘기다.
뭉치의 성향상 좀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녀석에게도 별명 이 붙은 건가?
“근데 말이야, 지금은 둘 다 빠그 라졌어.”
머리를 정리하고 도로 모자를 눌러 쓴 아슈르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겁나 센 승려 아저씬 말도 없이 사라졌고, 그랜드마스터 갈나르는 재가 되어버렸으니까.”
‘겁나 센 승려 아저씨’는 보나 마 나 제무종의 무승이자 권법가인 ‘일 진’이겠지. 근데,
“갈나르가 죽었다고?”
“……아,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 양이군. 그래, 죽었어. 불의 마녀가 몸소 불태워버 렸다던데?”
엘렌이?
아니, 고작해야 30레벨 조금 넘긴 녀석이 무슨 수로 궁전의 그랜드마 스터를 잡았지?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아슈르 의 말이 이어졌다.
“의뢰는 빠그라졌고, 검은 늑대들 은 울카르의 군벌과 적대하는 단체 라고 소문이 나버렸지. 이대로라면 사업이 멈춰버릴 지도 몰라.”
“그래서‘?”
“우릴 고용해.”
“……뭐라고?”
“고용하라고. 삯은 싸게 쳐줄게.”
잠시 할 말을 잃었던 난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새낀가? 내가 네놈들의 뭘 믿고 고용해?”
“믿기 싫으면 그냥 울카르에게 소 개나 해줘. 그 양반이라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해주겠지.”
아슈르는 짙은 미소를 지은 채 어 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나도 네 밑으로 들어가긴 싫 거든. 잃은 애들이 몇인데.”
“……이거 완전 또라이 같은 놈이 네.”
“그래, 동의해.”
내가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 자, 아슈르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되 물었다.
“그래서? 나처럼 유능한 재원을 무시하시겠다?”
진짜, 순 미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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