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61)
나의 악당들 361화
61. 전쟁의 기술(3)
울카르 왕자를 선두로, 크고 작은 영주 열댓과 수십여 명의 기사가 서 쪽 외벽에 올랐다. 이 귀족들을 보 좌하는 장교와 참모, 마법사, 종자 등도 함께였기에 문루는 순식간에 바글바글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이쪽 세상의 성벽은 지구의 중세 성벽에 비해 훨씬 폭이 넓다. 공성에 동원되는 마법이나 주 술 따위를 견디기 위해 성벽을 두껍 게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인파가 성벽 위에 오 르긴 했지만 상석, 그러니까, 울카르 의 주변 자리는 당연히 제한되어 있 었다. 아무리 빽빽이 모여 선다고 해도 왕자와 얼굴을 마주 볼 수 있 는 건 기껏해야 십수 명에 불과했으 니까.
“거, 좀 비켜주시오. 지나갑시다.”
물론 안키르 경과 라이암 경, 그리 고 나 같은 경우는 여기 모인 기사 들 중 가장 명성이 높은 축에 속했 으므로 그 ‘상석’을 차지할 수 있었 다.
……진짜, 이놈의 세상은 별의별 걸로 다 계급을 나눈다니까.
넉살 좋게 인파를 헤치는 안키르 경을 따라 성가퀴 앞에 서니, 이제 야 서쪽 풍경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 온다.
말라붙은 계곡 너머, 드넓은 들판 은 쓰러진 나무와 그루터기 그리고 재로 가득했다.
새끼손톱의 반의반쯤, 아니, 거의 점처럼 보이는 인영들 역시 무수히 도 많았다. 그 수가 적어도 천은 훨 씬 넘는 것 같았으나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경험 많은 장교나 하사관, 척후들 은 척 보면 적의 수가 얼마쯤 되는 지 알던데, 내겐 그런 종류의 능력 이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미테르게란트의 병사들로 보이는 인영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줄로 나무를 끌고, 도끼질을 하고, 잿더미를 치우는 것이다.
안키르 경이 쯧, 혀를 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숲이었는데, 이제는 허허벌판이 돼버렸군.”
“……저놈들, 뭐 하는 겁니까?”
“보이는 대로요. 우거진 수풀에서 는 대군을 움직이기 어려우니 싹 다 밀어버리는 게지.”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원래는 계곡 에서 2, 300미터쯤 떨어진 지점부터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숲이 저 멀리 물 러나서 앙상한 나뭇가지가 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고원 사람들은 저 숲을 ‘젤른트 리’라 부르더군. 제국과 전쟁이 터 질 때마다 불타곤 하는 숲이오.”
머지않은 미래에 전장이 될 벌판을 살피던 라이암 경이 눈매를 좁힌 채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름에 비를 맞으면 이레 만에 새싹과 줄기가 돋아나고, 해가 지날 즈음이면 주목과 층층나무가 사람의 키보다도 높게 자란다고 하 오.”
“일 년 만에요? 엄청 빠른 거 아 닙니까?”
“덕분에 몇몇 촌부들은 저 숲 어딘 가에 요정이 산다고 믿소. 물론 말 도 안 되는 소리지만.”
요정이라…….
이쪽 세상에서도 요정족, 흔히 엘
프라 불리는 유사인종은 전설에나 등장하는 존재다.
고대제국 시절엔 요정족을 포함한 숱한 유사인종이 인간과 더불어 살 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고대제국 이 멸망하고 700년도 넘게 흐른 지 금에 이르러선 진위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난 엘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쪽에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우드엘 프는 몰라도, 다크엘프와 하이엘프 는 지저와 영원계에서 지겹게도 잡 아 죽였거든.
“……알첸버그의 노예병들인 모양 이군.”
울카르 왕자가 뜬금없이 꺼낸 말에 대다수 영주와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전하?”
“피부색이 다른 자들이 여럿 섞여 있소. 조장으로 보이는 겔란족 병사 들도 있고.”
울카르 왕자의 눈에는 저 새끼손톱 반의반만 한 사람들의 피부색이 보 이는 모양이다. 헐벗은 것도 아니고, 사슬조끼와 쇠투구로 완전무장한 차 림새인데도 말이다.
왼팔을 잃긴 했지만 울카르는 여전 히 절정의 기량을 가진 궁수였고, 시력도 범인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 를 뒤늦게 떠올린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감탄한 기색을 보였 다.
“전하, 마침 그에 관련해서 보고드 릴 내용에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금테 두른 은방패 문 양을 새긴 외투와 긴 사슬갑옷, 시 야가 트인 샐릿 투구로 무장하고 있 었는데, 어째 낯이 익었다.
“말해보게, 해럴드.” 아, 이제 기억나네. 사우스하버에서 만난 적 있는 아저씨다. 울카르의 심복 중 하나로, 유능한 지휘관이었 지.
“최초 오천 정도로 예상한 적군의 규모가 만오천까지 뛰었습니다. 주 된 원인은 아빌람버스 공작이 대규 모로 용병을 고용하고 징집병들을 끌어모은 탓이지만, 버카드 부왕도 엄청난 수의 노예병들을 추가로 보 내왔습니다.”
“ 얼마나?”
“대략 사천이 추가되어 총 육천 정 도로 판단됩니다.”
지휘관 해럴드의 단정적인 말에 몇 몇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육천이라니. 아무리 선제후의 힘 이 강력하다지만……
“과연 부왕(副王)이라고 불릴 만하 군.”
“그래봐야 열등한 노예들 아니오? 내 호통 한 번이면 모조리 흩어질 테니 겁먹지들 마시구려.”
웅성거리는 이들 사이에서 새까만 판금 갑옷을 입은 노기사가 너스레 를 떨어댔다. 그는 시릴로 자작의 기사 엑버트 경으로, 깡마르고 단신 인 주군에 비해 너덧 배쯤 커 보이 는 거구였다.
“흩어지긴, 오히려 몰려들겠지.”
짧은 콧수염을 기른, 냉소적인 인 상의 중년기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 렸다. 그는 퍼멀에 커다란 루비를 박은 명검, 뷔다인을 차고 있었다.
“가뜩이나 굶주린 노예들 앞에 경 이 나타나면, 늙은 돼지가 나타난 것으로 착각하지 않겠소?”
“데일레시드. 오늘도 함부로 떠들 어 대는 구나, 이 빌어먹을 놈.”
‘도끼를 쥔 청동’이라 불리며 수십 년간 이름을 날린 엑버트 경이 으르 렁거렸지만, 코번 백작의 대리자이 자 오든록 제일의 기사인 데일레시 드 경은 눈도 깜짝 않고 비웃음을 흘렸다.
“빌어먹기엔 내가 가진 땅이 조금 넓은데. 경이야말로 말년에 밭뙈기 하나 없이 전전할 걱정을 해야 하지 않겠소?”
“뭐라고!”
엑버트 경의 주군, 시릴로 자작은 제 소영주와 향사들을 등쳐먹기로 유명한 자였다. 특히 3년 전 자식이 라곤 사생아 하나 뿐인 늙은 남작을 쫓아내고 영지를 차지한 건 꽤 유명 한 이야기였다.
시릴로 자작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 지 않고 눈썹을 까닥거렸고, 엑버트 경은 얼굴을 검붉게 물들인 채 씩씩 거렸다.
“너무 성내진 마시오. 말년이 되도 록 무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빈궁한 기사가 못내 가여워서 하는 말이 니.”
이어지는 데일레시드 경의 빈정거 림에 반응한 건 시릴로 자작이나 엑 버트 경이 아니었다.
“허. 그건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없 는 말이구먼.”
또 다른 노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어깨를 움츠린 채 주변의 눈치를 살 피던 어린 대영주, 오스 백작의 뒤 에 서 있던 기드발 경이었다.
“퍽 서글픈 일이나, 난 이르게 만 개했다가 금방 스러진 젊은이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네.”
“경은 그러지 않길 바라네.”
에아본 후작이 15년이 넘도록 기 사단장으로 삼고 있는 사내가 바로 기드발 경이다. 왕국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에게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 는 건, 그 자체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금의 검호’라 칭해지는 전설적인 노기사가 미소를 짓자, 입을 다문 데일레시드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 졌다.
“이, 키 큰 고블린 같은 새끼가.”
데일레시드 경이 자신을 상대할 때 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 탓일 까, 엑버트 경은 분노하여 수염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초인적인 기량을 가진 세 기사가 기세를 뿜어댄 탓인지 기온이 몇 도 쯤 떨어진 것만 같다.
일련의 촌극을 보다 못한 안키르 경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긴 채 으르 렁거 렸다.
“……다들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지금 왕자님 앞에서 뭐 하는 짓거리 요?”
“다들 그만 물러나시오. 정 싸우고 싶거든 나중에 대련을 하던가.”
울카르의 이름을 내세운 덕일까, 아니면 안키르 경이 이른바 ‘전국 구’로 무명(武名)을 날리는 기사인 덕일까. 그의 낮은 호통에 세 기사 는 마지못해 물러나고 말았다.
“고맙소, 안키르 경.”
개를 숙이자 울카르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해럴드, 계속하게.”
“ 예.”
지휘관 해럴드는 덤덤한 얼굴로 설 명을 이어갔다.
“몇몇 분들의 고견은 다를 수 있지 만, 저를 포함한 지휘관과 참모들이 판단하기에 저 노예병들은 그리 얕 잡아 볼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알첸버그 부왕 전하와 주의 인도를 받는 군대’.
이런 등신 같은 공식 명칭을 가진 알첸버그의 노예군단은 미테르게란 트 제국의 주된 민족인 겔란족과 여 러 이민족 노예들을 섞어 편성한 군 대였다.
“그들은 열한 명이 한 개 조를 이 룹니다. 조장과 세 명의 궁수는 대 개 겔란족이고, 장창병 셋과 방패병 넷은 이교도 노예들입니다. 이러한 조를 아홉 개 모아 백인대를, 또다 시 백인대를 다섯 개 모아 ‘뒬레티’ 를 이룹니다. 그리고 부왕이나 부왕 이 지명한 사령관이 모든 뒬레티를 지휘합니다.”
가만 들어보니 이교도 노예군단은 꽤 진보된 형태의 군대 같았다.
물론 나도 군대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지만, 별다른 편제 없이 영주나 기사를 중심으로 뭉치거나 가끔 병 과에 따라 나뉠 뿐인 왕국의 군대보 다는 훨씬 체계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봤자 노예들이라 사기나 기량 이 형편없다고 들었는데?”
“과거에는 그랬지만, 오늘날엔 그 렇지 않습니다.”
어느 기사의 질문에 해럴드는 고개 를 저어 보였다.
“듣기로, 마법병을 길러낸 비방을 응용해 노예병들을 세뇌한다더군 요.” “세뇌?” “그렇습니다. 강력한 마약을 잔뜩 사용하는 탓에 반쯤 폐인이 돼버리 니 개인의 기량이야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알첸버그의 부왕을 위해서라 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며, 부대 한 가운데 화염구가 떨어져도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협적이군.”
울카르는 잠시 성가퀴 아래를 내려 다보다가 해럴드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제 적의 전체 규모는 확실 히 파악이 된 건가?”
“현재는 일만오천이 전부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만오천 명이라. 진짜 토 나 오게 많구만.
“이왕 이렇게 모인 거, 적의 전체 적인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게. 미처 숙지하지 못한 이들이 꽤 있으니.”
“예, 전하.”
부왕 버카드가 보낸 군대는 총 칠 천 정도였다. 이 중에서 이교도 노 예군단 육천을 제하면 알첸버그 가 문의 병사들이 오백, 마법병단이 오 백이었다.
“노예군단도 노예군단이지만, 진짜 문제는 마법병단입니다.” 마법병단은 말 그대로 마법병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마법병은 각종 약물과 주문을 동원 해 만들어지는 존재로, 말하자면 주 문을 딱 두 개만 익힌 전투마법사였 다. 그 두 주문 중 하나는 화염구로 대표되는 공격 주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생명력 내지는 수명 을 불태워 마나를 회복하는 ‘연소’ 주문이었다.
“오직 전쟁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 들입니다. 알첸버그의 역대 부왕이 얼마나 미친 자들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지요.”
이교도 노예병은 이지를 상실한 장 난감 병정이고, 마법병은 제 생명을 연료 삼아 공격 주문을 쏘아대는 인 간병기다. 해럴드의 말마따나 이런 비정상적인 부대를 육성해낸 알첸버 그의 선제후가 제정신일 리가 없었 다.
“생각보다 강력한 전력이군. 지휘 관은?”
“버카드 부왕의 장남인 사벨라드 방백(方伯)과 ‘검의 달인’ 호프컨 성 백 (城伯) 입니다.”
검의 달인. 일명 ‘소드마스터’.
신비한 심법을 통해 단전에 마나를 쌓아 우윳빛깔 검강을 줄기줄기 쏟 아내는- 그런 존재는 당연히 아니 다.
황제에게 실력을 증명하여 검술 유 파를 창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검객들을 이르는 칭호가 바로 검의 달인이었다.
현재 생존해 있는 검의 달인은 끽 해야 열 명 안팎일 정도로 희귀한 동시에, 검강 같은 걸 쓰진 못하지 만 오직 육신의 기량만으로 인류 정 점의 경지에 이른 만큼 말도 못하게 강력한 존재들이다.
“호프컨이라……. 제자들도 데려왔 나?”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까다롭겠군.”
미간을 좁히는 울카르와는 달리, 기사들은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검의 달인과 그 제자들이라니.”
기사들의 신경전에 얼굴을 구기고 있던 안키르 경도 코를 벌름거리며 내게 속닥거렸다.
“흥분되는데. 그렇지 않소?”
“……지금 엄청 변태 같으니까 표 정 관리 좀 하십쇼.”
“흐흐.”
들뜬 기사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 고 해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후계자를 보낸 버카드와는 달리, 아빌람버스는 친정을 나왔습니다.”
“공작 본인이 나섰다고?”
“예. 스트롬 군은 약 팔천 명으로, 그중 7할이 용병과 징집병입니다. 부족한 사기와 통제력을 선제후로서 의 권위로 메울 생각이겠지요.”
이번 전쟁의 주동자인 아빌람버스 공작은 스트롬 가문의 가병을 무려 이천오백 명이나 동원했다.
상비군인 것은 물론이고 광대한 영 지의 온갖 지원을 한 몸에 받은 정 예병들. 아군 쪽에서 그들을 상대할 만한 부대는 울카르 왕자 직속의 최 정예 병사들 뿐일 거다.
삼천오백에 달하는 징집병은 그 수 준이 그리 대단치 않겠으나, 이천 명도 넘는 용병은 상황에 따라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사기나 전황에 따라 활약이 달라 지는 용병들과 달리, ‘산상의 린하 우’에서 파견된 파괴술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심대한 골칫거리가 될 겁 니다. 뭐, 놈들이야 워낙 유명하니 따로 설명할 것도 없겠지요.” 파괴술사는 순수한 힘과 역장 따위 를 다루는 소서러들이고, ‘산상의 린하우’는 그러한 파괴술사들의 뿌 리에 해당하는 유서 깊은 마법학파 다.
난 산상의 린하우에 속한, 말하자 면, ‘본류’에 해당하는 파괴술사들은 만나본 적이 없지만 ‘아류’와는 싸 워본 적이 있다. 롱빌을 공격하던 뮬린 백작가의 군대에 파괴술사들이 여럿 섞여 있었던 탓이다.
파괴술사들은 분명 위협적이었지 만, 뭉치의 암습으로 손쉽게 처리했 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보니 뭉치는 언제쯤 돌아오 려나. 헤어진 지 벌써 보름은 지난 것 같은데……. 하이캐슬이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재회하길 바랄 뿐이 다.
“그 외에 간혹 성내로 침입해오는 암살자들이 있긴 하지만, 여러 영주 님과 기사분들이 관심을 기울여주신 덕에 큰 피해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적 전력 증 가 장 위험한 건-”
끼이야아아아악—!
“절묘하군.”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에, 해럴 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저 놈들입니다. 전략적으로 나 전술적으로나 아군이 가장 경계 해야 할 대상이지요.”
지평선에서 솟아오른 건 다름 아닌 용기사들이었다. 아빌람버스 공작이 자랑하는, 와이번을 탄 기사들.
지난번, 핏빛갈기 용병단의 야습을 앞두고 본 적이 있는 놈들이지만 오 늘은 그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일제히 포효하며 날아드는 와이번이 족히 쉰 마리도 넘었기 떄문이다.
“내성으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전
하.”
“대응할 수단이 없나?”
“활과 쇠뇌로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와이번의 비늘을 뚫을 수 없습니다. 노포(쪼砲; ballista)를 개조해 고각 사격을 시도하고 있긴 합니다만, 조 준이 너무 느려서 용기사가 활대의 움직임만 보고 피할 정도입니다.”
“……마법사들은?”
침중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왕자에 게 근처에 있던 마스터 리몬드가 답 했다.
“어려울 겁니다. 화살보다 멀리 주 문을 쏘아 보내는 건 몇몇 명문 학 파에만 있는 비전 중의 비전이라서 “적어도 이 하이캐슬엔 그런 기술 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마스터 리몬드의 말을 끊어낸 해럴 드가 왕자를 재촉했다.
“전투마법사들이 방어 주문을 펼치 겠지만 완벽히 안전한 건 아닙니다. 어서 내성으로 가시지요, 전하.”
“ O 으”
—— I그 •
와이번은 날개 달린 괴물들 중에서 도 빠른 편이었고, 용기사는 그런 와이번을 전력으로 날게 하는 데 특 화된 자들이었다.
용기사들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날아들자 문루에 모인 자들은 혼란 에 빠졌다. 마법사들은 서둘러 주문 을 외웠고, 영주들은 피신했으며, 기 사들은 분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얼굴을 굳히고 있던 울카르도 마침 내 내성으로 향하고자 돌아섰다. 그 리고,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포이닉스 경‘?”
“잠시만요.”
경계를 서던 어느 병사에게서 창을 빼앗은 나는, 창의 물미 부분을 부 러뜨려 적당한 길이로 만들었다.
“뭘 하는 게요?”
“원래 투척기술은 중갑전사에게 필 수 기술이거든요.”
“뭐라?”
와이번들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커 질 즈음.
“흡.”
짧은 도움닫기 끝에 성가퀴를 딛으 며 창을 던졌다.
쐐액!
병사의 부러진 창은 형체가 흐릿해 질 정도로 빠르게 쏘아져 선두로 날 아들던 와이번의 목을 스쳐지나갔 다.
끼에에엑!
죽음이 뒤따르지 않는 단말마.
목줄기를 얕고 길게 찢긴 와이번은 피를 후두둑 쏟아냈고, 용기사는 몸 을 뒤틀며 발광하는 와이번을 간신 히 진정시켰다.
“……저게 무슨.”
“방금, 뭐였습니까? 설마 던진 겁 니까?”
눈이 휘둥그레진 기사들을 위해, 난 또 다른 병사에게서 창을 빼앗았 다.
두 번째로 날아간 창은 어느 와이 번의 날개 한복판을 꿰뚫었고, 용기 사는 다급히 선회해 서쪽으로 돌아 가야 했다.
어느 용기사가 이쪽을 가리키며 무 어라 고함을 질러댔다. 이에 용기사 들은 일제히 커다란 돌이며 불덩이 따위를 문루에다 쏟아부었다.
“Aurnetren!”
“굳센, 바람이여, 솟으라.”
그러나 문루엔 마스터 리몬드와 마 스터 에포즈를 포함하여 뛰어난 전 투마법사들이 바글거렸으므로, 용기 사들의 폭격은 별소용 없이 스러지 고 말았다.
“나리!”
폭격의 여파가 잦아들 즈음, 퉁퉁 한 에손이 때마침 문루 위로 뛰어와 투창 꾸러미를 건넸다.
“후, 좋아.”
손에 익은 투창은 대충 급조한 창 과는 전혀 다른 명중률을 보였다. 난 연거푸 다섯 개의 투창을 날렸 고, 넷을 명중시켰으며, 그중 둘은 마침내 추락하고 말았다.
끼야아아아악—!
와이번들이 비명을 지르며 선회했
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쉰 마리도 넘는 와이번들이 모두 물러나고 있 었다.
“……하.”
울카르 왕자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성탑 꼭대기에 경의 자리를 마련 해둬야겠군.”
“그래 주시면 뭐, 저야 감사하죠.”
울카르가 휘휘 고개를 저을 즈음, 문루에 남아있던 자들이 함성을 터 뜨렸다.
그날 이후, 난 기사들 사이에서 그 야말로 락스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