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80)
나의 악당들 480화
66. 은왕자(35)
키이잉-
고막을 파고드는 듯한 금속성의 근 원지는 울카르 왕자의 장궁이었다. 은빛 의수가 ‘보레앗쿰’의 줌통을 밀자 빈 시위에 빛의 화살이 맺혔 다. 왕자는 남색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내더니 시위를 놓았다.
퉁/
빛살은 꼬리를 길게 늘이며 눈 깜 짝할 새 사오백 미터를 날았다. 상 식을 아득히 벗어난 수준의 속도와 사거리. 선두로 날아든 시체 와이번 은 순식간에 몸통을 관통당하고 말 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타격은 미미하다 못해 없다시피 했다. 빛의 화살은 와이번의 몸통을 깔끔히 꿰뚫었지 만, 놈은 애당초 죽음의 기운을 연 료 삼아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다. 피막이 죄다 찢어져 뼈만 남은 날개 로 날아드는 놈들이 즐비한 판국인 데, 가슴팍에 구멍 하나 더 뚫렸다 고 추락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거 꽤 골치 아프겠는걸.”
왕자는 겸연쩍은 기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돌연 고삐를 당기며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나는 ‘검은 얼음’을 고쳐 쥐는 동시에 바이콘의 허리를 조여 앞으로 달려 나갈 태세 를 취했다. 다른 기사와 친병들 역 시 비슷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선회! 선회한다!”
공격 명령을 내리는 대신, 울카르 왕자는 손으로 원을 그리며 그렇게 외쳤다. 부하들은 어안이 벙벙해진 것도 잠시, 말머리를 돌려 제국군의 주둔지로 향하는 왕자를 따라 말을 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하!”
나는 잽싸게 바이콘을 몰아 울카르 왕자와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이게 뭐- 어디 가시는 겁니까?”
“구태여 우리가 앞장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나?”
“ 예?”
주변에 마기가 들어차며 한결 무거 워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왕 자는 맑은 미소를 지었다.
“황제 폐하의 명대로 마기의 근원 을 찾아내지 않았나? 이제 그 유명 한 황제군의 위용을 한 번 구경해 보세.”
“••••••예에?”
와. 이 인간, 순 양아치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지만, 다 시 생각해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 라 말없이 고삐를 쳤다.
“아슬아슬하게, 구름 위로, 가벼운 걸음을.”
이마에 금속띠를 두른 젊은 마법 사, 에포즈가 주문을 외며 지팡이를 휘저었다. 그러자 은왕자를 따라 달 리던 칠십여 기수들은 구름 위를 달 리듯 가벼운 걸음으로 가속하기 시 작했다.
흥분하여 내달리는 바이콘을 진정 시키며, 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루크의 데스나이트- 아니, 암흑계 의 전령과 짬뽕이 된 정체불명의 괴 물은 양팔을 벌린 채 무어라 웅얼거 리고 있었다.
Terium bedanda, gakil, zakly juil-
그렇게 퍼진 소리는 사람의 음성보 다는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에 가 짜웠다.
한편으로는 노래 같기도 했다. 어 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오싹함은 낯 선 것이었으나, 그 곡조와 가사는 어쩐지 익숙했다.
Huek§eka umbrati, arubyss sui derrail-
난 이윽고 그 주문이 모니터 앞에 서, 스피커를 통해 수백 수천 번이 나 들어본 음성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저 하늘 높이 비행 중인 놈을 방해할 방법은 없었다. 앤트럼 의 대마도사 오그슐리조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겠으나, 그는 지금 아이스보발트에서 요양 중이었 다.
Tothgen, ciso-re!
암흑계의 전령은, 그 명칭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전투를 위한 존재 가 아니다. 암흑계의 주인인 암흑군 주의 수발을 들거나 명령을 전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덕분에 놈의 자체적인 전투력은 별 로 뛰어난 편이 아니다. 시시한 공 격 마법 두어 개와 귀찮은 저주술 서너 개가 전부니까. 하지만 이차원 을 넘나드는 메신저라는 본분에 맞 는 재주, 즉 전이와 차원의 마법만 큼은 수준급이었다.
구르르륵.
명계의 기사인 동시에 암흑계의 전 령인 괴물이 손을 떨치자, 놈과 시 체 와이번들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 가 일렁거렸다. 안개를 이루는 검은 마기의 입자들이 기괴한 소리와 함 께 뭉친 것이다.
직전 테오도라의 신성태양을 막기 위해 장벽을 이루었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 완성된 건 구름 내 지는 거대한 물방울을 닮은 비정형 의 덩어리였다.
꾸루루, 꾸루루룩-!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리기 를 얼마쯤, 비정형의 마기 덩어리가 팍! 하는 작은 굉음과 함께 폭발했 다. 그리고 벌어진 틈을 통해 물을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으악, 씹-”
막 제국군의 주둔지를 지나쳐 달리 던 나는 다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기감을 통해 느껴지던 마기의 기척 과는 다른, 정말로 후각을 파고드는 지독한 악취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후두둑.
비정형의 마기 덩어리-일명 ‘끔찍 한 차원문’이 쏟아내는 것은 사기 (邪氣)를 잔뜩 머금은 구정물이었 다. 미숫가루라도 풀었는지 색이 탁 하다 못해 불투명한 똥물에는 흐물 흐물해진 나뭇가지와 썩은 부평초,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 같은 것 이 잔뜩 섞여 있었다.
쿠구구구구-!
비정형 덩어리의 균열이 점차 커지 더니 마치 갑문을 연 댐처럼 엄청난 양의 오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게 뭐- 으, 으아아악!”
“우웨엑!”
안개의 형상을 취하고 있을 때보다 는 훨씬 느렸지만, 끔찍한 차원문은 여전히 전령을 따라 비행 중이었다. 덕분에 제국군 주둔지의 외곽을 지 키던 병사들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쏟아지는 똥물을 꼼짝없이 뒤집어써 야만 했다.
괴이한 소리에 뒤를 살피던 울카르 왕자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마른침 을 삼켰다.
“……허어. 무시무시한 수공이군.”
저게 수공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시 무시하다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기증을 일으킬 듯 악취를 머금은 물이 정수리로 쏟아져 발목 에서 찰랑대는 건……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는데도 내가 소름이 다 돋 는다. 저기 담긴 죽음의 기운에 물 들기 전에 온갖 병에 걸려 먼저 죽 을 것 같다.
“그윽, 대열을 지켜라!”
“황제 폐하께서 함께 하신다!”
루일릭스 2세의 직속 호위부대와 비교하면 당연히 손색이 있겠지만, 주둔지의 외곽을 둘러싼 칠천여 명 의 병력 역시 상당한 정예였다.
“제국 만세!”
병사들은 악다구니를 썼다. 개중 절반가량은 제국의 수도인 미텔탕의 시민병이며, 나머지는 루일릭스 2세 를 자신들의 왕으로 받드는 판시티 아 반도의 강병들이다. 드높은 사기 를 품고 엄격한 규율에 따르는 병사 들은 쉼 없이 쏟아지는 오수에도 아 랑곳 않고 대열을 갖추며 전투준비 를 이어갔다.
전령의 끔찍한 차원문이 한참 동안 쏟아내던 똥물에 곧 변화가 생겼다. 조금 더 큼지막한 ‘건더기’들이 섞 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엇- 저, 저기!”
“피해!”
어느 병사가 경악한 얼굴로 가리킨 것은, 언뜻 코끼리만큼이나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더러운 물에 몸이 푹 젖으며 생기는 문제야 이후 성직자 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겠으 나, 저런 덩치에 깔린다면 그걸로 끝장일 것이 분명했다. 병사들은 본 능적으로 놀라 흩어졌고, 묵직한 살 덩이는 땅에 부딪치며 퍽 터져 나갔 다.
그우워어-
흩어진 살점더미 중 가장 큰 덩어 리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 다. 밀가루 반죽을 닮은 창백한 살 덩이는 부글거리듯 솟아났다.
“흉물! 흉물이다!”
“공겨-억!”
오수를 튀기며 일어난 크고 작은 어보미네이션들에게, 병사들은 망설 임 없이 달려들었다. 맹렬히 칼을 그어 살을 자르고, 도끼나 철퇴로 뼈를 부수었다. 그렇게 흉물을 무력 화하면 근처에서 ‘정화’의 권능을 펼치고 있던 칼란다리의 군종사제가 달려왔다.
“주여, 양순한 종들에게 빛을 내리 소서!”
사제의 기도와는 달리 제국군 병사 들은 양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들은 무기에 신성력을 덧씌워지자, 용기백배하다 못해 광분하다시피 하 여 이리떼처럼 흉측한 언데드를 덮 쳤다.
한 무리의 홍물이 불과 두어 호흡 만에 퇴치되었으나, 이는 시작에 불 과했다. 전령이 전개한 끔찍한 차원 문이 본격적으로 언데드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방패애- 높이, 들어!”
묘하게 리듬감 있는 구령. 확성 마 법의 도움을 받은 야전원수 나딤의 고함이었다.
“제자리를 지켜! 저 위에서 무엇이 나타나든 물러서지 않는다!”
제국군의 주둔지는 황제 직속 부대 의 군영을 가운데 언덕 위에 두고, 나머지 세 부대가 삼각형으로 배치 된 형세였다. 고함과 함께 나타난 나딤은 개중 오수의 세례가 집중된, 북쪽으로 툭 불거진 부대를 향해 말 을 몰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 만세!”
허공을 느릿하게 유영하는 비정형 의 마기 덩어리는 이제 물보다 시체 와 백골을 더 많이 쏟아내고 있었 다. 그리하여 제국군의 주둔지 가운 데 족히 천 개체도 넘는 언데드가 몸을 일으켰고, 그 수는 쉬지 않고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제국군은 전혀 위태로워 보 이지 않았다. 잘 훈련된 강병들은 오수를 뒤집어쓴 와중에도 두 눈을 부릅떴고, 녹슨 칼이나 부러진 뼈창 따위는 튼튼한 갑옷으로 튕겨냈으 며, 참격 한 번에 해골병사를 두셋 씩 쓰러뜨렸다.
일반 병사들만 해도 그 정도인데, 그들보다 곱절은 용맹한 장교, 하사 관들도 즐비했다. 이어서 천막에서 휴식 중이던 제국기사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당황한 전투마법사 들도 정신을 차리고 지팡이를 꺼내 들었으며, 진즉 불길함을 느낀 성직 자들은 전령이 등장한 그 순간부터 쉬지 않고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별문제는 없겠는데.”
아탈란테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 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제국군 주둔지를 크게 우회하여 동쪽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피신해 있었다. 끔찍한 차원문이 쏟 아내는 오수가 아무리 막대한 양이 어도 여기까지 차오를 것 같지는 않 았고, 언데드가 저 사나운 군대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후 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