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81)
나의 악당들 481화
66. 은왕자(36)
나를 비롯한 일행이 상황을 낙관적 으로, 혹은 안일하게 판단하고 있음 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꾸르르륵-
제국군의 머리 위를 부유하던 끔찍 한 차원문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헤 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체와 백골을 구정물에 섞어 뱉어낸 비정 형의 마기 덩어리는, 방금까지만 해 도 그 분줄이 잦아들고 있었다. 그 러다 특유의 기분 나쁜 굉음을 내더 니 살아있는 내장처럼 크게 맥동했 고, 또다시 기세를 올리며 물을 쏟 아내었다.
콰아아아—
바로 그 순간 무언가 달라졌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폭포수처럼 쏟아 지는 물줄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 른 색이었다. 뼈와 살점을 머금고 있던 똥물이, 보기만 해도 청량함이 느껴지는 맑은 물줄기로 변화한 것 이다.
“이번엔 또 뭐지?”
아마 제국군도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을 것이나, 그 변화를 멍청히 올려다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는지 반격에 나섰다.
“Kutechen driihon!”
노파의 짜랑짜랑한 목소리에 이어 창백한 백광이 터졌다. 흰빛은 거대 한 손 모양을 이루어 끔찍한 차원문 을 향해 쇄도했다. 최고위급 파괴술 중 하나인 ‘린하우의 손길’이다.
꽈르릉-!
대기를 떨어 울리는 마나와 기세를 보아하니 어지간한 성벽 정도는 레 고블록처럼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 다. 분명 이시디린, 그 늙은 마법사 의 솜씨일 것이다.
파괴의 마나를 잔뜩 머금은 거대한 손을 향해, 명계와 암혹계 사이의 존재가 양손검을 뻗었다. 전령의 주 변을 배회하던 시체 와이번들이 일 제히 날갯짓했다.
린하우의 종정(宗正)이 만들어낸 거대한 손은 마치 귀찮은 파리를 쫓 아내듯 허공을 갈랐다. 그 손길에 닿은 여남은 구는 멀리 튕겨 나가거 나 바닥에 세차게 내팽개쳐졌고, 비 슷한 수의 와이번은 손아귀에 잡혀 찰흙처럼 짓뭉개졌다.
“워어••••••
“……대단하군. 모든 파괴술사들의 정점이라 불릴 만해.”
대가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만 해 도 대략 4미터에, 무게가 1톤은 가 뿐히 넘어가는 거대한 괴물들이 벌 레처럼 터져 나가는 광경…….
그 인상적인 장면을 구경하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데, 지면에서 여러 줄기의 빛이 솟구쳤다. 이시디린에 이어 다른 전투마법사들이 공격 주 문을 구사한 것이다.
‘힘의 창’이나 ‘파괴의 구’ 같은 파 괴술 주문을 주축으로 하여 ‘불타는 원추(圓B)’, ‘영원계의 사냥개’ 따위 가 하늘로 치솟았다. 덩달아 칼란다 리의 사제들 역시 빛으로 빚어낸 신 성한 기호를 쏘아내는 ‘퇴거’의 권 능을 구사했다.
Gubae-
전령은 낮고 음울한 고함을 내지르 며 왼손을 뻗었다. 어느새 놈의 왼 손에는 시커먼 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투두둥.’
검은 기류에서 창처럼 길쭉한 덩어 리가 열댓 개쯤 떨어져 나오더니 드 럼을 두드리듯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연달아 쏘아졌다.
데스나이트의 유일한 원거리 공격 수단인 ‘명계의 화살’이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화살을 연속 적으로 쏘아내어 솟구치는 공격 주 문을 절반 가까이 격추한 전령은, 이어서 무언가를 쥐어짜듯 주먹을 쥐었다.
꾸웅.
묵직한 진동과 함께 검은 기류가 걸쭉하고 끈적한 재질로 변해 흩뿌 려 졌다.
이번엔 암흑계의 전령이 즐겨 사용 하는 주문인 ‘마기 분출’이다.
넓게 뿌려진 마기는 전령에게 향하 던 마나와 신성력의 산물을 순식간 에 지워 버렸다. 마치 눈을 뭉쳐 만 든 공들이 뜨거운 물에 녹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과연 내 예상대로, 저놈은 죽음의 기사와 암흑계의 전령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존재인 게 분명하다.
“와, 미친.”
죽음의 왕이라 불리던 강령술사, 루크의 데스나이트와 본디 챕터의 보스 노릇을 하는 암흑계의 전령이 퓨전을 했으니 강력해지는 거야 이 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 지, 사기와 마기를 모두 다루다니. 완전 개사기잖아…….
내가 경악하거나 말거나, 제국의 마법사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죽음의 전령’-내가 방금 지어낸 명칭이다-이 아무리 예상 밖의 힘 을 뽐낸다 한들 황제가 거느린 전투 마법사는 그 수가 족히 삼백 명도 넘었다. 하늘을 온통 수놓을 기세로 날아드는 마법의 세례를 막아내는 건 그야말로 턱도 없는 일이었다.
ZorSk-
놈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스스로 와 끔찍한 차원문을 보호하기 위하 여 발버둥 치던 죽음의 전령에게 마 침내 빛나는 손길이 닿았다.
콰드득!
Uka, hak~
이시디린이 내뻗은 ‘린하우의 손 길’은 전령과 놈이 타고 있던 시체 와이번을 한꺼번에 쥐어짰다. 희게 빛나는 손아귀 안에서 검은 연기가 펑 터졌고, 다음 순간 거대한 살점 뭉치가 썩은 핏물을 잔뜩 흩뿌리며 추락했다.
“와, 시발……. 한 방에?”
왜 저 덩치 작은 노파의 별명이 ‘분쇄의 손’인지 알 수 있는 순간이 었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 다가 문득 루얀을 돌아보았다.
“우리 제국후 나리, 한동안 밤길 조심하셔야겠네. 뜬금없이 고기 반 죽이 되기 싫다면 말입니다.”
“••••••홍.”
이시디린의 목에 칼을 겨눈 것으로 모자라, 음식이 흩뿌려진 연단 바닥 에 깔아뭉개기까지 했던 루얀은 같 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잠시 동공이 흔들린 것 같기는 했으나, 선제후의 위신을 보아 넘어가 주기 로 했다.
“우와아아악-!”
“제국 만세!”
적의 수괴로 보이는 전령을 격멸하 자, 제국군 병사들은 기세가 올라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섣불 리 기뻐하는 대신 주변을 훑어보았 다.
“전하, 경계하십시오.”
“경계?”
“예. 방금 그놈과 비슷한 마물을 전에 몇 번 겪어봤는데, 전이술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에 와이번을 버리고 도망쳤을지도 모릅니다.”
울카르 왕자는 설득력이 있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런 괴기한 것을 만들어내 는 존재이니 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왕자는 휠테르 경에게 기병 몇을 붙여 근처를 수색하도록 하는 동시 에, 용감한 친병인 안드로스를 전령 으로 삼아 루일릭스 2세에게 보냈 다.
“포이닉스 경이 말한 바를 그대로 고하게. 황제의 곁에는 강력한 기사 들이 즐비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 는 일이니.”
“예, 전하.”
그러는 동안 마침내 황제의 마법사 들이 끔찍한 차원문을 직접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꾸루루루룩.
거센 폭발과 타격에 휘말린 비정형 의 덩어리는 끈 떨어진 연처럼 상공 을 유영했다. 한창 깨끗한 물을 뿜 던 차원문은 급히 맥동하더니 더욱 거세게 물을 쏟아냈다.
콰콰콰콰-
시체와 백골이 섞인 오수를 포함 해, 끔찍한 차원문은 이미 오 분도 넘게 막대한 양의 물을 쏟아내고 있 었다. 덕분에 더러운 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주둔지 아래의 완만한 경사 를 따라 골을 파내며 흐르고 있었 고, 얕으나마 웅덩이도 여럿 생긴 채였다.
마법사들의 공격 주문에 밀려난 마 기 덩어리가 멈춰 선 위치는, 절묘 하게도 바로 그 웅덩이들 위였다. 이윽고 차원문은 좀 전에 그랬던 것 처럼, 하얀 포말이 이는 물줄기 사 이로 웬 덩어리들을 섞어 뱉어내기 시작했다.
“어라.”
주변을 훑어보기를 멈추고 끔찍한 차원문을 주시하고 있던 나는, 웅덩 이에 떨어진 형체를 알아보고는 눈 을 비비적거렸다.
“••••••저거,”
“어인족이로군.”
울카르 왕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딱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Karrrgh!”
웅덩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괴한 포효를 내지르는 건 구역질 나는 외 모를 가진 유사인종 괴물이었다.
어지간한 장한보다도 큰 덩치에, 전신을 덮은 얼룩덜룩한 비늘, 눈꺼 풀 없이 툭 불거진 커다란 눈알, 턱 근처에 달린 아가미, 관절부와 등에 솟은 반투명한 지느러미…….
녹슨 장검과 뼈를 깎아 만든 방패 로 무장한 물고기가 이족보행을 하 고 있는 듯한 모습. 흔히 농어인간, 혹은 ‘그루퍼’라 불리는 놈이었다.
풍덩!
마치 첫 번째 그루퍼의 울음에 응 답이라도 하듯, 끔찍한 차원문은 그 의 동족을 쉼 없이 쏟아냈다.
조악한 무기로 무장한 그루퍼들이 눈 깜짝할 새 백 마리 이상으로 불 어났고, 이내 환한 붉은 비늘이 달 린 어인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환장하겠네. 니모 새끼들까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젊고 아름다 운 여성의 모습에, 헐벗은 몸 여기 저기에 비늘이 돋아난 괴물. 환동가 리의 변형체로 흔히 ‘크라운’이라 불리는 놈들, 아니, 년들이었다.
혈색 없이 섬뜩하고 무표정한 얼굴 의 크라운들은 둥근 모양으로 자란 산호를 양손으로 모아 쥐며 한 목소 리로 주문을 뱉었다.
“Shurhaan!”
기이한 음성에 이어, 산호들이 물 을 뿜었다. 분수처럼 솟아난 물줄기 는 무지개를 그리며 물웅덩이를 채 웠다. 시취를 풍기는 구정물이 섞인 탓에 탁하기 그지없던 웅덩이는 바 닥이 비칠 듯 투명해졌다.
바다와 파도의 노래를 부르는 흰동 가리들의 수효가 늘어남에 따라 분 수도 늘어났고, 급속도로 차올라 넘 친 웅덩이들 서로 이어지며 큰 못 을, 아니, 작은 호수를 이루었다.
“제기랄- 뭣들 하는 것이냐! 더 세게 몰아붙여!”
야전원수 나딤은 어느새 오수의 늪 에 뛰어들어 역장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언데드들을 마구 쪼개고 부수던 그 는 수많은 언데드가 뜬금없이 나타 난 데 이어, 이번에는 해변에나 있 어야 할 어인족들까지 나타나자 우 레와 같이 고함을 터뜨렸다.
그의 포효에 자극당한 것인지, 전 투마법사들도 한층 거세게 마법을 쏟아냈다.
꾸루루-
공격 주문을 연거푸 얻어맞은 탓에 끔찍한 차원문은 눈에 띄게 쪼그라 든 채였다. 흉측한 마기 덩어리의 벌어진 틈새로 흘러나오던 물도 멈 추었다.
다만, 물이 멈춘 것이 소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듯, 끔찍한 차원 문은 거대한 형체들을 뱉어대기 시 작했다.
쾅.’
작은 호수를 이룬 웅덩이에 굉음과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
“Kerrrh!”
“Guoooooh-!”
주변을 헤엄치던 그루퍼들은 새로 등장한 전우를 뽐내려는 듯 무기를 치켜들고 괴성을 내질렀다.
동료들의 환호에 화답하듯, 거대한 형체가 몸을 일으켰다. 놈은 호수에 빠졌음에도 헤엄을 치지 않았다. 그 럴 필요가 없었다.
촤아악-
귀 대신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단 머리통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 었다. 그루퍼를 쏙 빼닮은 대가리와 는 다르게, 몸통은 가느다란 촉수가 털처럼 달려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그 덩치가 조금 많이 컸다.
수면 위로 드러난 상반신만 해도 족히 6, 7미터는 넘어 보였다. 심지 어 홀쭉한 체형도 아니라 마치 탑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A-ghrrr!”
‘바다거인’의 우렁한 고함에 그루 퍼들은 광분하여 물장구를 쳤고, 병 사들은 질린 표정이 되었다.
끔찍하게도, 끔찍한 차원문이 뱉은 바다거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여섯 마리의 거인이 호수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치 씨름선수들이 좁은 욕탕에 빽빽이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아름다운 비늘의 크라운들은 수면 아래를 해 엄치며 주문을 외웠다. 갈고리 같은 발이 두 쌍이나 달린 바다뱀과 끈적 한 점액질 피부를 가진 해파리 골렘 이 포말 속에서 솟구쳤다.
“Kutechen driihon!”
적당히 좀 하라는 듯, 노파의 짜증 스러운 주문이 재차 울려 퍼졌다. ‘린하우의 손길’이 다시금 나타났고,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끔찍 한 차원문을 낚아챘다.
뿌드득.
차가운 백광을 뿜는 거대한 손이 비정형의 덩어리를 움켜쥐었다. 끔 찍한 차원문이 슬라임처럼 뭉개지며 손가락 사이를 삐져나오자, 이시디 린은 꼬집는 손길로 그것을 찢어버 렸다.
꾸후우우욱.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마기 덩어리 는 결국 산산이 갈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찢어지기 직전, 마지막 소환 물을 뱉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바다거인 만큼이나 거대했다. 검푸른 등껍질 에 길고 두꺼운 꼬리 그리고 용의 대가리가 달린 괴물이었다.
끄우워어 엉-
뱃고동 소리를 빼닮은 울음에 땅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바다의 용이 뽐내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은 사람들 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시선을 잡 아챈 것은 ‘거북룡’이 아니었다. 그 거대한 대가리 위에 선 가녀린 인영 이었다.
“……씨발, 이게 대체 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에 슬슬 놀라 움이 무뎌질 법도 하건만, 나는 전 보다 몇 배는 더 경악해야만 했다.
“Lu, alkarf.”
중얼거림을 듣고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아탈란테도 덩달아 얼 굴이 창백해졌다.
“찬송의 마녀.”
그 억눌린 비명 같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북룡의 머리 위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마녀가 검게 물든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아아아, 아아,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