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32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32화
032 약속은 사람 봐가면서/5개월 후. 전설로 불리게 될
부식 창고는 컨테이너 두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들었다.
끼익.
샤샤가 창고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뒤로 손이 묶인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세 명이 입을 오물거리다가 딱 멈췄다.
“세 놈이야?”
“응. 저것들이 선동했어.”
꽈드득!
“근데 쟤들 뭘 먹는 거야?”
소리가 나서 가 보니 뒤쪽에 라면 두 개가 정석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뜯겨 있었다.
“어? 라면을 생으로 먹네? 이 새끼들이 지금 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니콜라이는 셋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놈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딱!
그 찰진 타격감에 속이 후련하….
“아 손바닥!”
대가리가 얼마나 딴딴한지 돌덩이를 때린 줄 알았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경찰에 신고할까?”
“아니. 그렇게 쉽게 넘겨선 안 돼.”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아무 일이라도 하려는데, 이것들은 현장을 뒤엎으려고 했단 말이지.”
그렇다는 건 이들은 돈이 궁한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여기가 한국처럼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데 이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그랬을 리도 없다.
즉.
‘이놈들 뒤에 누군가 있다는 얘기군.’
니콜라이는 다시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덩치의 멱살을 잡아 세웠다.
그리고 놈의 얼굴을 바짝 당겨서 노려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니 덩치가 라면 부스러기를 뱉어 내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몰라!”
“나 아무것도 안 물었는데?”
“….”
“라면 맛있지? 이게 맛은 있는데 단점이 좀 있거든.”
“…?”
“뜨거운 물을 넣고 3분 정도는 기다려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가 있어. 그리고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도 때론 고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지?”
“…?”
일단 직원들에게 이들이 선동했다는 사실부터 알려야 한다.
이들의 선동에 넘어간 직원들에게 기회를 한 번은 줄 생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것이니.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입에 재갈 물려서 저번 그 장소로 끌고 가.”
샤샤가 놈들을 굴비처럼 줄줄이 묶어서 전에 니콜라이가 올라갔던 그 약간 높은 지대로 끌고 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장면이 연출되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꽤 모였다 생각됐을 때 니콜라이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 세 사람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 현장을 뒤엎으려고 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이 여러분들에게 접근해서 동조하게끔 한 사실이 없었는지.”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건 그의 말이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리 유니콘 건설의 월급은 아시다시피 업계 최고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월급이 적다고 선동했습니다. 또한, 숙소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인데, 마치 그것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받고 있다는 듯이 선동했고요.”
직원들의 동요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맞아. 좀 이상하다 했어.”
“밥 먹을 때마다 옆에 붙어서 떠들어대더니 이런 짓을 벌이려고 했던 거군. 그런데 너는 왜 저런 것들한테 붙었던 거야?”
“나서기 싫었는데 월급을 더 받게 해준다고 해서….”
뒤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나거나 시선을 피하는 직원들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약속된 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약점을 빌미로 잡고 여러분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습니다.”
사실은 알렸으니 이제는 벌을 내려야 할 때였다.
니콜라이는 좌중을 쭉 훑으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이들은 무거운 법적 조치를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동조한 사람들에겐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
“아직도 우리 유니콘 건설에 불만이 있는 분들은 지금 이 현장을 떠나십시오.”
니콜라이의 말이 끝났으나 자리를 뜨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 어딜 가서 지금과 같은 월급과 회사에서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겠나.
“그러면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이번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와 같은 일이 생길 땐 동조한 사람들은 모두 퇴사 조치할 겁니다.”
니콜라이가 세 놈을 끌고 자리를 뜨자 직원들도 본래 하던 일터로 흩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 * *
그날 오후, 세 놈은 그대로 손목이 묶인 채 다른 컨테이너로 옮겨졌다.
니콜라이는 그들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컨테이너 안에 용변을 볼 수 있는 큰 통 하나와 라면만 잔뜩 넣어 두었다.
“어쩌려고 그래?”
“저것들이 입을 열 생각이 있었으면 정체가 탄로 났을 때 벌써 불었겠지.”
“저렇게 한다고 정말 불까?”
“사람은 물이 없어도 삼 일은 버틸 수 있어. 하지만 라면을 먹으면 목이 더 말라서 많이 힘들걸? 나는 물은 안 줬어도 먹을 건 줬다.”
“너도 참….”
하루에 한 번씩 용변 통을 꺼내는 것 외에는 온종일 문은 닫혀 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해가 저물어 갈 때, 더는 못 견디겠는지 놈들이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그 자리엔 키릴도 와 있었다.
“거짓말이다 싶으면 다시 집어넣는다. 누가 시켰어?”
“….”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던 놈들의 시선이 맞은편의 키릴 쪽으로 향했다.
니콜라이와 샤샤도 키릴을 쳐다보았다.
그때.
가장 덩치가 큰 놈의 입이 열렸다.
“…이코스 표트르 사장.”
“표트르 사장이?”
이제는 체념했다는 듯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저번 일로 표트르 사장이 앙심을 품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그럴 수 있었다.
표트르 사장이 입은 피해액은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컸으니까.
자신이 직접 나서진 못하니 이놈들을 앞세웠을 수 있었다.
“햐아. 결국 그 사람이 일을 냈네. 뭔가 수를 내야지 않겠어?”
“당연히 갚아 줘야지.”
“그러면 이놈들은 경찰한테 넘겨?”
“일 아직 안 끝났어.”
“응?”
여기서 니콜라이의 뛰어남이 다시 한번 돋보였다.
그는 대답한 놈을 컨테이너 안에 던져놓고 두 놈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거짓 없이 말하면 6개월 치 월급을 지금 주고 바로 보내 준다. 단, 먼저 말한 사람한테만. 나머지 둘은 감옥에서 몇 년은 썩게 될 거야.”
“…!”
“…!”
니콜라이는 표트르 사장이 자신에게 감정이 많긴 해도 이런 일을 지시할 만큼 간이 큰 인물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한국 물건을 추천하긴 했지만 그건 어쨌든 표트르 사장이 선택한 것이었다.
또, 유리 유수포프 회장이 옐친의 최측근인 것도 그는 알고 있으니 이런 일을 저지를 생각은 애당초 하지 못했을 것이다.
“표트르 사장이 지시한 게 아니잖아?”
“…!”
“누구야? 지시한 사람이.”
두 놈의 눈동자가 요동치며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그러다 그중 한 놈이 옆 사내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정말 그 약속… 지키는 겁니까?”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다시 옆 사내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옆의 사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안턴이 시켰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둘의 미래가 바뀌어 버렸다.
기회를 놓친 놈이 옆 사내를 향해 갖은 욕을 다 쏟아냈다.
“말 안 한 이놈도 집어넣어. 며칠 있다가 경찰에 넘길 테니까.”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어!”
“늦었잖아.”
니콜라이는 약속을 지켰다.
그에게 6개월 치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바로 보냈다.
그러나….
“갔다 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저런 나쁜 놈들한테 내가 돈을 왜 줘? 감옥에서 반성하게끔 만들어야지.”
차를 탄 샤샤가 사라진 놈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손이 묶인 놈을 끌고 차에서 내렸다.
“보내 준다고 약속했잖아! 이 새X야! 약속 지켜!”
“나는 약속 지켰어. 저 사람이 잡아 온 거랑 나랑은 다르잖아?”
“이 사기꾼 새X야!”
“사람을 수백 명이나 죽인 너희들에 비하면 나는 천사야.”
“무슨 개소리야?”
“그런 게 있어. 샤샤, 이놈은 따로 넣어놔. 같이 넣었다간 맞아서 죽을지도 모르잖아.”
“돈은?”
“그 돈은….”
이걸 다시 받으면 왠지 찝찝해질 것 같다.
“너 연말 보너스 미리 주는 거로 하자.”
“진짜?”
“너한테는 사기 안 치잖아.”
“고맙다. 잘 쓸게.”
기분이 한껏 좋아진 샤샤가 놈을 다른 컨테이너에 던져 넣고 왔다.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았어? 표트르 사장이 범인이 아니란 거. 난 사실 저기….”
샤샤의 시선을 받은 키릴이 흠칫했다.
“사람마다 그릇이 있는데 표트르 사장은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배짱이 없어. 전에 만났을 때 알아봤지.”
그럴 배짱이 있었다면 할아버지의 힘에 눌려 그렇게 제냐를 내치진 않았을 테니까.
“안턴 숙부가 지시를 했다라….”
“안턴 숙부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여기 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러?”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
조용히 지내면 할아버지가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을 텐데. 스스로 무덤을 파는군.
키릴이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샤샤에게 물었다.
-녹음은 잘했지?
-깔끔하게 했어.
항상 만일을 대비해 두는 니콜라이었다.
그러면 신문에 나온 기사 내용은 안턴 숙부가 지시한 저놈들이 저질렀다는 말이 된다.
다시 신문을 보았다.
‘역시.’
저번에 옐친 대통령의 탄핵에 관한 기사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진 계속 보였다. 그러다가 탄핵 결과가 나온 후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
신문은 오늘 날짜인 5월 12일로 바뀌어 있었다. 내용도 지면에 가득 채워져 있고.
‘천만다행이야. 그 많은 사람이 사고를 당했으면 어쩔 뻔했어.’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안턴을 완전히 마무리 지어야 할 때였다.
니콜라이는 안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 접니다.”
-우수리스크 현장에서 거는 것이냐?
“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해 보거라.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있었던 얘기를 쭉 풀어 놓자 전화에서는 긴 침묵이 이어지다가 한숨이 들렸다.
-…안턴을 데리고 이틀 후에 현장으로 갈 테니 그 사람들을 준비시켜 두거라.
“알겠습니다.”
* * *
이틀 후 오전.
현장에 도착한 사람은 유리 유수포프와 안턴 그리고 둘째 예고르였다.
유리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지막에 사실을 말했던 놈을 데려오라고 했다. 그리고 안턴을 가리키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안턴이 시킨 게 맞느냐?”
유리는 녹음된 내용을 들었지만, 당사자한테서 직접 듣기를 원했다.
“….”
사내는 한번 당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해도 감옥에 갇힐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에 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당근에 마음이 흔들렸다.
“바른대로 말하면 풀어 주도록 하지.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니콜라이 사장도 같은 말을 했다가 다시 잡아 왔는데.”
“나는 니콜라이와 다르… 아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주면 믿겠나?”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게 해주면 믿겠소. 도피 자금도 주고.”
“그렇게 하지. 이 사람이 대답하면 현금을 주고 바로 보내 주도록 하거라.”
“네.”
니콜라이는 할아버지의 말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안턴이 시킨 게 확실한가?”
“확실해요. 안턴 사장이 돈을 주고 시켰습니다.”
안턴은 여기까지 오면서 유리가 묻기 전엔 그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자신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거짓말입니다! 저는 저자를 여기서 처음 봅니다. 너 이 새끼 똑바로 말 안 해!”
“당신이 그랬잖아! 만일 혹시라도 일이 탄로 나게 되면 이코스의 표트르 사장을 물고 늘어지라고. 그런데 니콜라이 사장이 알아채는 바람에….”
안턴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유리가 매서운 눈빛을 쏘아내며 막았다.
“그 입 다물어!”
“아버지….”
“다물라고 했다.”
유리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니콜라이에게 말했다.
“돈을 주고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데려다주거라.”
니콜라이는 샤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샤샤는 안으로 들어갔다가 현금다발을 가지고 나와 사내에게 건넸다.
“차에 타십시오. 이 직원이 공항까지 데려다줄 겁니다.”
샤샤의 말에 사내는 이 지옥 같은 곳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환해지며 차에 올랐다.
이어, 떠나간 차가 보이지 않자 옆에서 넋이 나간 채 서 있던 안턴에게 유리가 짧게 말했다.
“못난 놈.”
유리의 저 한 마디로 끝났다.
안턴은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도 조용히 지내라 했는데, 또 사고를 쳐?”
“아버지….”
“기회를 줬으면 부를 때까지 조용히 지낼 것이지, 직원들을 앞세워 이런 짓을 저질러!”
“….”
“또 이 모든 게 니콜라이 때문이라고 한번 해 보지 그래?”
“…정말 죄송합니다.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네가 한 짓을 인정하는 것이냐?”
“…네.”
완전히 인정해 버린 안턴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예고르와 키릴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네가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 해도 이번 일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
“네 가족을 데리고 가든 혼자 가든, 이번 달 안으로 우크라이나로 떠나거라.”
“아버지…?”
“다달이 생활할 정도의 돈은 보내 줄 테니 거기서 네 잘못을 뉘우치도록 해.”
“….”
“만일 내 허락 없이 러시아 땅을 밟게 되면… 어디 한번 그렇게 해 보거라. 어떻게 되는지.”
유리 유수포프에게 두 번은 없었다.
러시아를 떠나 반성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안턴은 그의 머리에서 지워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 현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안턴은 쓸쓸히 퇴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리가 어두워진 기색으로 사무실로 가더니 힘겹게 수화기를 들었다.
“사돈. 접니다. 네. 지금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경찰을 좀 보내 주셨으면 해서요. 네. 오른쪽 뺨에 길게 세로 흉터가 있고 우리 유니콘 건설 옷을 입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내일 경찰서로 데리고 갈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과 같은 형량이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그 사람이 돈을 꽤 가지고 있을 텐데 사돈이 쓰시면 됩니다. 딸이 아버지한테 주는 돈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쓰십시오. 네. 그럼.”
유리 유수포프도 나쁜 놈은 절대로 그냥 보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했지만 그건 나쁜 놈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약속이었다.
점심때가 됐을 때, 유리와 일행들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예고르. 네가 보기엔 이 식단이 어떤 것 같으냐?”
“한 끼 단가를 너무 높게 잡은 것 같습니다.”
“네 눈엔 그렇게 보인 모양이구나. 나는 니콜라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만.”
“…!”
“내가 전에 모스크바역에서 한 말을 잊진 않았겠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끼를 해결하지 못해 굶주림에 허덕이던 사람들. 그 모습은 예고르에게도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러시아의 경제 위기를 틈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만 내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
“그러나 내 직원들이 다른 회사들처럼 질 떨어지는 음식을 먹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러시아 국민 모두를 챙길 수는 없어도 내 직원들만큼은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단 말이다. 내 그런 마음을 니콜라이가 아주 잘 따르고 있어서 매우 흡족하구나.”
예고르는 처음 대답과는 달리 지금은 자기도 인정한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그 반대였다.
야채 수프를 한 숟갈 먹은 유리의 시선이 니콜라이에게 향했다.
“공사가 10월쯤에 끝나면 앞으로 5개월쯤 남았는데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이냐?”
“사실 이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를 지어볼까 합니다.”
“네가 전에 말했던 코리아의 아파트처럼?”
“네. 공장들이 들어서면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될 텐데 그들이 살 집이 모자랄 거 같아서요. 나중에 러시아 전역에도 지어야 하니까 시범적으로 지어볼까 해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 반대하진 않으마. 단, 제대로 짓거라. 첫 아파트가 유니콘 건설의 평판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놀랄만한 아파트를 지을게요.”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5개월이 흘러 공장들이 모두 세워지고 한국에서 기계들이 들어와 공장 안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유니콘 건설에서 전국에 내보낸 광고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이, 면접을 거쳐 직원으로 채용 되었다.
동시에, 공장을 세울 때 사용한 중장비들을 이용해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바닥 공사와 일대의 평탄 작업까지 모두 마쳤다.
당장 필요한 자재들과 추가로 필요한 중장비들도 한국과 독일에서 수입해 현장에 가져다 뒀고.
이 아파트는 훗날 러시아 사람들에게 ‘아파트의 전설’로 불리게 될 아파트였다.
니콜라이는 설계도면을 깔아두고, 설계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처음 짓는 거니까 시범 단지 식으로 적당히 가죠.”
아무리 공장 직원들이 많다고 해도 그들이 모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몇 세대나…?”
“소소하게 3,000세대로 합시다.”
“네?”
니콜라이의 담담한 말에 설계사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진 설계사의 말에 이번에는 니콜라이가 눈을 크게 떴다.
“사장님, 3,000세대면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
역시 러시아 스케일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