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52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52화
052 다른 기업들에도 투자를/백기
서면으로 진행된 투표 결과방송은 다음 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대부분 1위를 옐친으로 예상했었다.
그의 득표수는 2,660만 표로, 35.28%였다.
대통령 관저에서 TV를 보고 있던 타냐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국….”
옐친이 1위를 한 건 맞았다.
그러나 ‘당선을 위한 요구 득표치’엔 도달하지 못했다.
타냐가 피하고 싶었던 결과가 나오고야 만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마카르 행정실장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주가노프의 지지율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주가노프는 선거 초반엔 옐친의 턱밑까지 추격했었다.
2등을 달리던 그는 후반엔 3등으로 내려앉으며 1,070만 표를 얻어 14.52%의 지지율을 얻었을 뿐이었다.
타냐가 TV에 시선을 둔 채 머리를 흔들었다.
“주가노프의 지지율이 떨어진 게 아니라 자하르의 지지율이 오른 거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자하르가 2,420만 표나 얻다니.”
32.03%의 득표율로 옐친과는 3.25%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당선을 위한 요구 득표치’를 얻지 못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처참한 결과였다.
설마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에 자하르 후보 캠프에 방해 공작을 펼쳤는데도 이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버렸다.
“2차 투표를 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단 얘긴데….”
자하르는 각자의 길로 가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었다.
그런 마당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옐친의 지지율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 자하르의 지지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는 거였다.
“그때, 그것만큼은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쪽으로 붙으면 모든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자하르가 서면 투표를 요구한 거 말이에요.”
전자투표를 시행했으면 정부 차원에서 강압적으로라도 이런 결과를 막았을 것이다.
‘전자투표로 시행했어야 했어.’
역사의 평가는 둘째 문제다.
현실에서 살아남아 당장 이기고 봐야 한다.
재집권하면 역사의 기록도 바꿀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 그녀는 후회가 막심했다.
자하르를 쓰고 버릴 희생양으로만 생각했기에 그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었는데 그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저는 그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라….”
“설마 니콜라이 그자가 이것까지 내다본 걸까요?”
그 젊은 나이에 선대 위원장을 맡았을 정도면 그전부터 자하르에게 조언을 했다는 말이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어쩌다 보니 맞아떨어진 거겠지요.”
자하르가 2등할 거란 걸 내다봤다는 건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옐친과 근소한 차이로.
옐친과 협상하기 위해 후보로 나왔으니 많은 요구 조건을 내밀었겠지.
행정실장과는 달리 타냐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다.
‘결과가 너무 공교로워. 그들이 현 대통령에게 선전포고를 했을 정도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거야.’
그들이 믿었던 게 지금의 결과라면?
만일 여기까지 내다보고 서면 투표를 요구한 거라면?
니콜라이는 정말 무서운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행정실장의 말대로 어쩌다 맞았을 수 있다.
‘지금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
그녀의 불안감을 키우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2차 투표에 가서 강압적으로라도 전자투표를 진행하면 당선될 수 있다.
국민의 반발을 사긴 하겠지만 낙선하는 것보단 나으니.
반발이 너무 심할 경우엔, 서면 투표를 해도 승리할 방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옐친과 타냐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 터져버렸다.
그녀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굳게 닫혀 있는 문. 옐친의 방이었다.
“아버지는 언제 깨어나실지….”
옐친은 어제 갑자기 쓰러진 후로 지금까지 의식이 없었다.
심근경색.
주치의는 당장 오늘 목숨을 잃어도 이상할 게 없는 병이라고 했었다.
옐친의 지나친 보드카 사랑이 이런 비극을 불러왔다.
그때, 조용한 거실에 전화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은 행정실장의 표정이 점점 구겨져 갔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자하르 후보한테서 온 전화였습니다.”
“무슨 일로요?”
“대통령님을 만나고 싶답니다. 그리고 TV토론을 제안했고요.”
“네?”
“일단 나중에 연락하겠다고는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아버지가 의식이 없다는 건 아무도 몰라야죠.”
특히, 자하르 쪽은 더욱 몰라야 한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숨겨지겠습니까? 2차 투표일 전까지 다시 유세를 나가셔야 하고, 당선되시면 얼굴을 비춰야 하는데요. 만나지 않고 TV토론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으음….”
그녀라고 이런 사실을 왜 모르겠나.
우려하던 일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일단 방송에는 과거에 찍었던 영상들을 내보내세요. 선거 유세는 못 나가니까 아버지가 의식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 입단속 철저히 시키고요.”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선이 되어도 문제다.
* * *
이틀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자하르 후보가 아니라 니콜라이였다.
-방송국 사장을 당장 풀어 주시죠.
“당신이 니콜라이군요. 만나고 싶었는데 직접 전화를 하셨네요.”
-자하르 후보님이 대통령님을 만나길 원하는데 왜 자꾸 피하는 겁니까?
“피하다니요. 우린 그런 적 없어요.”
-우리가 대통령 관저로 가겠습니다. 지금 밖에 와 있거든요.
“아…! 잠깐만요.”
깜짝 놀란 타냐가 급히 물었다.
“무슨 일로 뵈려는 건가요?”
-방송국 사장을 당장 풀어 달라고요.
“이유는 그것밖에 없나요?”
-다른 것도 있지만 지금은 이것 때문에 만나려는 겁니다.
다행이었다.
뭔가를 알고 왔나 싶어서 내심 조마조마하던 참이었다.
“좋아요. 풀어드리죠. 그리고 앞으로 할 얘기가 있으면 저를 찾으세요.”
-뭐 일단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니콜라이의 행동이 미심쩍었다.
“정보가 새어 나간 건 아니겠죠?”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콜라이가 이렇게 당당히 요구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잖아요.”
“방송국 사장과는 친분이 깊어서 그런 걸 겁니다.”
타냐는 행정실장의 말을 믿기로 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데로 믿는 경우가 많기에 그녀도 이 함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방송국 사장실.
“니콜라이 씨, 감사합니다. 저 못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며칠 사이에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 니콜라이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미안합니다. 우리 때문에 이런 봉변을 당하게 해서요.”
“아닙니다. 시작할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걸 예상했잖습니까. 가족들을 미리 피신시켜 놓아서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저들이 언론 통제를 어디까지 하고 있습니까?”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사전 검열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5공 시대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국내 언론을 활용하는 건 이젠 무리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의 목울대가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제가 무,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이 자료만 내보내고 어디 조용한 곳에 숨어 계십시오.”
종이를 받아 든 사장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것만 내보내면 됩니까?”
“네, 이게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들이 설마 직원들까지 잡아들이진 않겠죠?”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이건 제 지시로 내보냈다고 하면 될 테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사장님은 숨어 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흐음… 이틀 후, 저녁 뉴스에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 *
그날, 니콜라이는 영국에 있는 데니스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자하르 후보님이 꼭 당선되어야 하는데. 분위기는 어때?
“분위기는 우리가 만드는 거야. 메일로 자료 보냈으니까 그거 세계 각국 방송국들과 신문사에 쫙 뿌려.”
-잠깐만 기다려봐. 빨리 읽어 볼게.
잠시 후, 데니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확실해? 아니면 뒷감당하기 힘들어.
“확실해. 그러니까 형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쫙 뿌려.”
-선거가 참 재밌게 돌아가네. 나 이러다 정말 할아버지 보려면 크렘린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안 되면 우린 그날로 끝인 거 몰라?”
-당연히 알지. 그런데 현실감이 좀 없어서 그래. 일단 알겠다. 쫙 뿌려 놓을 테니까 나중에 러시아 반응이 어떤지나 좀 알려줘.
“참, 두 번째 메일엔 새로 투자할 회사 명단하고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 포트폴리오를 보냈어.”
-또 투자하게? 너무 공격적으로 나가는 거 아니야?
“야후! 결과 보고도 그래?”
-아 미안. 내가 가끔 깜빡한다니까. 메일 확인하고 바로 진행할게.
니콜라이가 보낸 포트폴리오는 회귀 이전까지 살아남은 기업 중에, 세계에서도 수위를 다퉜던 기업들의 명단이었다.
새로운 IT 기업은 물론,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금이 계속 축적되는 중이라 주가가 쌀 때 공격적으로 매수할 생각으로.
‘노키아 주식부터 일단 사들이고 미국, 독일, 일본 기업들을 조져야지.’
그 외의 자금은 모두 달러를 사 모으는 중이었다.
* * *
다음 날.
선거 캠프 안쪽 사무실에는 자하르, 유리, 니콜라이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옐친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 것이냐?”
유리의 물음에 니콜라이는 방송국 사장을 풀어 달라고 했던 걸 말했다.
“사돈이 직접 만나자고 했는데도 안 된다고 했고, 방송국 사장을 풀어 주기까지 했단 말이지?”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강한 압박을 넣어보려고요.”
“어떻게 말이냐?”
“조만간 옐친이 의식불명이라는 내용이 세계 각국 언론들에 나올 겁니다. 국내에서도 제가 좀 흔들어 놓을 거고요. 그때 옐친 쪽 반응을 보면 확신할 수 있겠죠.”
국내 언론은 한 번이면 된다.
그래서 방송국 사장에게 부탁했던 거였다.
“허허, 그 방법이 확실하겠구나. 옐친이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얼굴을 내보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그렇죠.”
“옐친이 의식이 없다는 게 확실시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자하르의 물음에 니콜라이는 씩 웃어 보였다.
“옐친 쪽에서 우리에게 요구했던 걸 이젠 반대로 우리가 요구해야죠.”
너희들이 우리 쪽으로 붙어.
붙으면 옐친과 타냐.
‘살려는 드릴게.’
* * *
옐친이 의식불명이라는 내용의 저녁 뉴스가 러시아 전역을 휩쓸고, 새벽에는 같은 내용을 담은 신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국민은 긴가민가했으나 니콜라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현수막을 죄다 붙이고 융단 폭격을 하다시피 전단지를 날리며, 옐친의 선거 캠프를 압박해 나갔다.
-TV 토론을 제안 했는데 응하지 않는다.
-옐친과의 면담을 제안 했는데 응하지 않는다.
-지금 TV에 나오는 영상들은 모두 옛날에 녹화해 뒀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영상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옐친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등.
때마침 세계 각국의 방송에서도 옐친이 의식불명이 됐다는 내용이 쏟아지면서 옐친의 선거 캠프는 난리가 나버렸다.
“모두 막아요!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없으니까 막으란 말이에요!”
“…역부족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을 속인 게 어디 하루 이틀이에요?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국민의 시선이야 그렇다 해도 문제는 외국 정상들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계속 전화가 오는데 어떡합니까?”
“그건….”
몰릴 대로 몰린 그녀는 위험한 생각까지 떠올렸다.
국민을 속였는데 외국 정상들이라고 못 속일까?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옐친 대통령이 아니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게 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래선 안 됩니다. 지금까지 걸려온 나라만도 70개국이 넘습니다. 만일 이 일이 탄로 나게 되면 그 나라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될 겁니다.”
“그렇겠군요….”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이 방법은 더는 떠올리지 않았다.
그녀와 행정실장이 한참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행정실장의 얼굴이 저번처럼 구겨졌다.
“바꾸랍니다.”
“줘 보세요.”
전화를 받자 니콜라이의 당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일 드리죠. 3일 안에 백기를 들고 우리 쪽으로 붙으세요.
옐친이 반송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자하르는 2차 투표를 할 것도 없이 자동으로 대통령이 된다.
“당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안 그러면 타냐 씨의 훗날은 저도 장담 못 합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믿든가, 아니면 제 말을 믿고 백기를 들든가. 선택은 타냐 씨가 하는 겁니다.
“….”
-전 분명, 3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 자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행정실장님이 보기엔 아버지가 일어나실 가능성이 있을 것 같나요?”
“주치의 말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굳이 주치의 말이 아니더라도 옐친의 모습은 희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산소호흡기를 끼었음에도 숨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휴우….”
창가로 간 그녀는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너무 늦게 알았어. 니콜라이가 어떤 인물인지를….’
그러다 옐친이 잠든 방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백기를 들 수밖에 없겠어.’
아버지는 돌아가시더라도 가족들과 자신은 살아야 했으니까.
기왕 결정했으면 백기를 드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다음 날, 그녀는 살기 위해 니콜라이가 준비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