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66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66화
066 러시아 결혼정보회사/닷컴(IT)버블의 시작
모스크바 굼 백화점 블랙홀 사무실.
‘월드 볼’ 1등 당첨자는 설명을 들으며 서류를 작성했다.
통역은 니콜라이가 해 주었다.
이번이 첫 번째 1등 당첨자가 나온 거라 니콜라이가 특별히 통역해 주기로 했다.
“김민준 씨. 당첨금은 외화 통장 계좌로 20년간 매달 달러로 입금됩니다. 원화로는 대략 37억 원이 넘겠군요. 정확한 금액은 서류에 나와 있습니다.”
“아 네.”
“그리고 입금 은행 계좌가 바뀌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인터넷으로 하셔도 되고 직접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 우리가 확인한 후에 조치해 드릴 겁니다.”
“네.”
“이제 다 끝났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첨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
김민준은 잠에서 덜 깬 것처럼 아직도 멍해 있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든요.”
“그렇겠죠. 통장에서 돈을 뽑아 보고 다음 달에도 입금되는 걸 보면 실감이 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요?”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러시아 루블로 돈을 좀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럼요. 직원과 함께 은행으로 가시면 원하시는 만큼 찾아 드릴 겁니다. 러시아에서 조금 보내다가 가시려고요?”
“사실….”
김민준은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봤었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검색해 봤었기에.
니콜라이의 삶은 사내가 그렇게도 꿈꾸던 삶 그 자체였다.
직접 만나보니 남자라도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런 이유로 사내는 니콜라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이혼하고 왔습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요.”
“이런….”
“지금 들어가 봤자 누구 만날 사람도 없고 반겨 줄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님은요?”
“군대 있을 때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친척들과는 거의 남처럼 지냅니다.”
부모님 얘기가 나오니 니콜라이는 한국에 계신 분들이 떠올랐다.
전에 한국 지사장을 통해 따로 좀 도와주라는 지시를 내린 뒤론 더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 니콜라이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완벽히 러시아인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몇 년간은 전생의 인연들과 오래도록 몸에 밴 사상, 생각, 습관, 행동 등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걸 떨쳐 냈다.
이젠 온전히 러시아인으로 살기로 한 것이다.
앞의 당첨자를 보고 있자니 옛 생각이 잠시 떠올랐으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김민준이 냉수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 반쪽을 찾아볼까 합니다. 러시아에서요.”
“반쪽?”
“진정으로 평생을 함께할 여자 말입니다.”
“아!”
니콜라이는 사내를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멋진 사람이군. 기자 생활을 하던 때였으면 내가 이 사람을 부러워했겠지.’
이제 돈은 넘치도록 있고 나이도 31살밖에 안 되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인연을 찾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두 달 동안은 러시아에서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원하시면 영주권을 드릴 수 있습니다. 1등 당첨자에게 돌아가는 혜택 중 하나죠. 국적은 그대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로 신청하고 싶습니다.”
“필요한 서류가 몇 가지 있거든요. 일 다 보시고 들어가셔서 서류를 가져오시면 바로 처리해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영주권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김민준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준 나라가 러시아고,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러시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셨나요?”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면 여자 보는 눈이 있겠… 아 미안합니다.”
니콜라이는 말하다가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서 끊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2년 만에 이혼했잖은가.
“괜찮습니다. 경험을 살려서 앞으로 결혼정보회사를 차리고 싶습니다.”
그는 자기처럼 결혼에 실패하지 않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돈은 충분하니 돈 벌 생각은 아니고, 커플들이 맺어져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려했다.
“제 꿈이 러시아에서 이뤄졌으니까 러시아 사람과 한국 사람을 이어 주고 싶습니다.”
“오우, 정말 괜찮은 생각입니다. 많은 커플이 김민준 씨의 도움을 받게 되겠군요. 그러면 국내에 계신 동안엔 통역사와 경호원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통역사에 경호원까지요?”
사내가 이런 혜택도 있냐는 얼굴로 물었다.
“국내에 머무시는 경우엔 원래 해 드리는 서비스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머무시는 동안 관광한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보내십시오. 그러다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니콜라이는 만일 이 사람이 짝을 찾지 못했을 땐 자기가 소개해 줘 볼까도 생각했다.
‘유니콘 미스 미스터 선발대회 입상자 중에 괜찮은 여자가 많았지.’
지금 샤샤와 만나고 있는 ‘예바’도 거기 출신으로 니콜라이가 소개해 줬으니 김민준에게 소개해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돈이 넘치도록 많고, 매달 돈이 들어오니 한 방에 날려 먹을 걱정도 없으니까.
쭉 대화해 보니 사람 됨됨이도 괜찮아 보였다.
* * *
데니스는 이번에도 꽤 괜찮은 정보를 물어다 줬다.
여태껏 태국 기업들과 은행들은 미국에서 단기로 자금을 융통해 왔었다.
상환 기간은 보통 1년 내외였는데 이 자금들을 미국 회사들이 빠르게 회수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엘리엇 매니지먼트’라고, 미국의 헤지펀드 회사야.
엘리엇 매니지먼트.
원 역사에서 이 회사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2년 아르헨티나는 디폴트(국가 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당시 엘리엇은 액면가 기준으로 6억 3,000만 달러어치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디폴트 선언 후 국채를 보유한 국가, 또는 주요 투자 기관을 상대로 ‘채무 재조정(부채 스와프)’을 제안했다.
말이 제안이지 심하게 말하면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양아치 짓에 가까웠지만.
그런 제안에도 관련된 곳들 90% 이상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했다.
완전히 망하는 것보다는 몇 푼이라도 건지는 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엘리엇’은 거부했다.
엘리엇은 다른 투자자들을 규합해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투자금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 법원에다가.
아르헨티나 국채지만 영국과 미국 시장을 통해서도 팔았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 엘리엇이 승소했으나,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돈이 없다며 ‘배 째라’를 시전했다.
이에 엘리엇은 초강수를 뒀다.
2012년 10월, 자회사인 NML Capital 사를 통해 가나에 정박해 있던 아르헨티나 해군 소속 훈련함 ARA Libertad 호를 압류해 버린 것이다.
디폴트 선언은 2002년이었는데 배 압류는 2012년이니까 10년 동안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셈이었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결국 UN까지 나서면서 엘리엇의 완승으로 끝났다.
한국과 관련된 일화도 있었다.
오성물산-제이모직 합병 분쟁 이후, 주식을 털고 나갔던 엘리엇이, 2016년 들어서 오성전자의 지배 구조 개선 요구를 들고 나왔다.
그 요구의 골자는 오성전자의 분할이었다.
이처럼 물고 늘어지면서 뒤통수를 곳엔 뒤통수로 갚아 주는 엘리엇에게, 이번엔 니콜라이가 뒤통수를 치려고 계획을 세웠다.
어찌 됐든 지금은 엘리엇의 주도로 투기 세력이 움직인 것이기에.
-엘리엇이 미국의 투자 회사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 같아. 태국에 들어갔던 투자금을 빼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거든. 이런 고급 정보는 뉴욕 증권가에서도 아직 몰라.
“그것도 미국 의원이 말해 준 거야?”
-내가 여태껏 얼마나 관리를 잘해 왔는지 알겠지?
“그런 게 진짜 살아 있는 정보지. 수고했어.”
니콜라이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다.
엘리엇이 선동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형이 조금 더 알아내야 하는 게 있는데. 미국 투기 자본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되는 시점과 태국 정부의 외화 보유액 변화야. 할 수 있겠어?”
-무조건 해야 하는 거잖아?
“맞아.”
-그럼 해야지 뭐.
잠시 말이 없던 데니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너 설마 외환 시장에 개입해서 태국을 도우려는 건 아니지?
“내가 왜 도와줘? 태국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그따위로 만들어 놓은걸. 이럴 땐 절대로 못 도와주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그렇지.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 내가 봐도 잘하면 이번에 크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더라.
데니스도 이제 돈의 흐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니콜라이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못 미쳤지만, 다른 전문가들보다는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우리가 주식을 사들인 IT 기업들 말인데.
“그게 왜?”
-미국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증권가에 떠도는 네 이야기도 좀 그렇고.
“자세히 얘기해 봐.”
-네가 야후 지분 30%를 사들였던 게 뉴스에 나온 후부터 미국 언론에서 너한테 관심이 커졌거든. 며칠 전에도 ‘월드 볼’ 1등 당첨자가 한 명 나온 거 때문에 네가 뉴스에 나왔잖아.
“그런데?”
-그것 때문에 또 네 얘기가 나왔어. 애플을 시작으로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우리가 투자한 IT 기업들 명단이 뉴스에 쫙 나왔지 뭐야. ‘블랙홀 인베스트먼트’가 사실상 러시아 자금이라는 말을 막 떠들더라고.
그런 내용이 뉴스에 나왔다고?
-좀 어이가 없더라. 얼마 전에 네 지시로 애플에 1억 5,000만 달러를 지원해 주면서, 잡스한테 받은 뉴스에서 봤어. 참 잡스가 그러는데 조만간 ‘Mac OS 8’이 나올 거래. 나는 무슨 말인 줄 몰라서 알았다고만 했어. 근데 미국 뉴스에서 그렇게 막 떠들어도 괜찮을까?
“흐음….”
괜찮다. 미국 방송국이 아주 잘하고 있다.
닷컴버블.
한국에서는 이걸 IT 버블이라 불렀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IT기업들의 주가 폭등. 2000년대 초에는 대폭락.
애플은 물론이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IT 기업들은 모두 포함되었다.
니콜라이는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소비에트가 무너진 연도를 기억하고, 한국의 중장년층이 IMF가 일어난 연도를 기억하는 것처럼.
오래도록 언론사에서 일했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잘 기억했다.
니콜라이는 버블이 터진 그 타이밍에 모두 팔고 나오려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국 방송국들이 이렇게 적절히 움직여 주다니.
‘미국 내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는 것처럼 하면 되겠군. 눈물을 머금고 판다는 식으로.’
그런 후에 대폭락을 하면, 죽어 가는 IT 기업들을 살려 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사들이는 거야.’
양쪽으로 초대박을 먹게 되는 그림이었다.
니콜라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형. 그 뉴스 자료 나한테 좀 보내 줘. 그리고 미국 언론이 날 계속 건드릴 수 있게 자극을 좀 더 주도록 해봐.”
-자극을 더 주라고?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미국 여론이 우리 ‘블랙홀 인베스트먼트’가 IT 기업들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쪽으로 계속 움직여 줘야 해.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안 되니까 적절히 조절을 좀 시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달아올라야 멋진 그림이 그려질 테니 말이다.
-…넌 이럴 때마다 무섭다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 줄 모르겠다. 지금 야후 주가가 몇 배나 뛰었는데 그걸 왜 팔아?
“누가 지금 판대? 나중에.”
-나중에라도 그렇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투자한 다른 IT 기업들 주가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는 거. 나 요즘 차트 보기 무섭단 말이야. 끝도 없이 올라서.
당연히 오르고 있겠지.
닷컴버블이 벌써 시작됐으니까.
-욕 좀 먹고 압력이 들어와도 우리 끝까지 버티자. 응?
“일단 내 말 대로 해. 그 여론이 꺼지지 않게만 잘 조절하면서 끌고 가.”
-네 지시라서 하긴 하겠는데. 나 IT 기업들 주식 파는 거 정말 아까워서 못하겠다.
“지금 파는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참 뉴욕 월스트리트 쪽에다가 미국 지사 만들어 둬.”
-나도 그 생각했어. 알겠다. 그리고 내가 아주 기쁜 소식을 마지막으로 준비해 뒀지.
“뭔데?”
-아마존이 5월에 상장할 거래.
니콜라이가 100만 달러로 지분 30%를 사들인 아마존.
‘3개월 후에 상장을 한다라….’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아마존은 닷컴버블로 인한 주가 폭등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