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89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89화
089 북한의 선택/기회를 잡은 클린턴
낮은 덥지만, 밤은 추운 고비사막.
바람과 달빛 하나 없는 사막에서 진한 오렌지빛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틱. 틱.
“어후, 따뜻해. 어릴 때 불장난하던 기분이다.”
샤샤가 뭔가를 한 움큼씩 불에 던져 넣었다.
“너 잘 때 오줌 안 싸게 조심해.”
“별소릴 다한다. 안 잘 거야?”
“자야지.”
“대통령께선 왜 오라고 하신 건데?”
“북한에서 사람이 왔다네.”
“설마 김 위원장이 온 건 아니지?”
“아니, 다른 사람. 그만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 나는 이거 마저 태우고 갈게.”
니콜라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엉덩이를 털었다.
내일 모스크바에 가게 되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할 텐데….’
샤샤는 니콜라이가 텐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남은 것들을 죄다 불 속에 쏟아 넣었다.
“그만 좀 보내라 제발, 일본 애들아. 종이학으로 모닥불을 피운 건 또 첨이네.”
* * *
모스크바 크렘린궁.
자하르 대통령과 니콜라이는 한 사람을 보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사내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핵을 포기하려면 먼저 한반도의 전쟁이 끝났다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합네다. 국제적으로 한반도는 아직 전쟁 중이니까요.”
“그 말을 하려고 약속했던 날보다 몇 개월이나 늦은 겁니까?”
작년 12월까지 연락을 준다고 해 놓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것을 니콜라이가 지적한 것이다.
“크흠. 아시다시피 워낙 중차대한 일인지라.”
김 위원장을 대신해 온 장선택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한반도를 통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전쟁이 끝났다는 걸 국제적으로 승인을 얻어야 할 겁니다.”
“그러자면 미국과 중국의 승인이 있어야겠군요?”
“그렇슴매다. 남조선이야 당연히 반기겠지만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나올지 우린 모르는지라.”
미국과 중국의 승인.
중국은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과연 승인하려 할까?
니콜라이로서도 아리송한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죠. 그럼 됐습니까?”
“그리고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슴매다. 고비사막 텐트촌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고 들었는데….”
장선택이 자하르 대통령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는 위원장 다음의 권력을 가졌지만, 여기에서는 그게 먹히지 않기에 조심했다.
“다른 건 다 괜찮슴매다. 그러나 남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실수한 부분이니 말씀대로 하죠.”
텐트촌에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많았다.
니콜라이는 이 아이들을 마냥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학교를 운영하게 했다.
산수, 국어,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을 시켰는데 거기에 한국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 역사를 가르칠 순 없어서 내린 결정인데 위원장이 그걸 알고 이렇게 반대했다.
그 이후로 대화를 조금 더 하다가 장선택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가 나가자 자하르 대통령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구나.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클린턴도 예민할 텐데 말이야.”
“제가 가 봐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네가 가 줬으면 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잇는 건 우리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꼭 해결을 봐야 한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IT 기업들 주식을 팔았다지?”
자하르 대통령의 눈에는 궁금증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네. 다 팔았습니다.”
“상당히 큰돈을 벌었겠구나?”
“좀 많이 벌었습니다.”
“좀 많이?”
“엄청나게 많이 벌었습니다. 일주일간 잠이 안 왔을 정도로요.”
“허허. 미국 TV 방송이 네 얘기로 떠들썩하던데, 내 주변에서도 네 얘기가 부쩍 늘었고. 미국에 가더라도 경호원들과 항상 붙어 다니거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미국은 니콜라이가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대선이 다가오면 후보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니콜라이가 주목을 받아 정치계에서는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세상은 사람들의 이성만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가끔은 감성이 앞서는 법이 있단 말이지. 그때를 조심해야 한다.”
“제가 들어가면 언론에서 취재하려고 난리일 텐데요.”
“그걸 잘 활용해서 이럴 땐 일부러 모습을 내보이는 게 좋겠구나. 백악관엔 얘길 해 놓도록 할 테니 잘 다녀오거라.”
밖으로 나온 니콜라이는 유리 유수포프의 집으로 향했다.
니콜라이가 왔다는 소식에 유리는 서재에서 거실로 내려왔다.
그는 최근 들어 대부분의 일을 거실에서 처리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고비사막은 물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느냐?”
“지금까지는 지하수를 썼는데 연말쯤엔 강으로 이어지는 관이 연결됩니다. 그 공사가 끝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막이라 물이 가장 문제겠지. 요즘 러시아 내부에서도 네가 벌인 일 때문에 말들이 많다.”
“안 좋은 쪽인가요?”
유리는 미소 땐 얼굴로 니콜라이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좋지 않은 얘기가 대부분이긴 하다. 돈 벌어서 그게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이지.”
“이해는 합니다.”
니콜라이 같은 천재의 생각을 범인들이 어찌 알겠나.
그는 몇 수를 내다보고 일을 시작한 거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는 네가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한다고 믿는다.”
함부로 결단하고 움직이는 손자가 아니다.
니콜라이의 일 처리 스타일은 늘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졌었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그의 머릿속엔 이미 다 그려져 있을 터.
유리는 그런 손자를 믿었다.
“누가 있어 너 같은 생각을 하겠느냐. 그런 말들은 무시하고 네 생각대로 밀고 가거라. 원래 큰일을 하고자 하면 말들이 많은 법이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유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늘 말했듯이 부자에겐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도울 책임이 있단다.”
유리는 손자가 대견스러웠다.
아니, 그 수준을 벗어나 존경스러울 때도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세계의 수많은 부자들 중 누가 이런 생각을 다 하겠나.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서도 환경에 이바지하고, 동시에 기업의 이윤까지도 챙길 수 있는 일.
니콜라이의 최종 목적이 뭔지는 정확히 몰랐으나 손자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밀어 붙였다.
그런 모습이 유리는 존경스러웠다.
“할아버지의 철학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많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겠어요. 한 끼 먹는데 수억 루블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허허, 맞아. 의식주만 더 좋아진다는 것뿐이지. 사실, 북한 주민들을 보고 많이 놀랐어.”
“언제 오셨었어요?”
“영상으로 찍어 온 걸 봤다. 그들에 비하면 과거의 러시아 주민들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더구나.”
“저도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랬겠지.”
니콜라이가 고비사막에서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그는 묻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손자를 믿었기 때문이다.
“네가 고비사막에서 이루고자 하는 걸 반드시 이루길 바란다.”
“다음에 꼭 말씀드릴게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네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것으로 됐다. 네가 남한테 해코지할 것도 아닌데.”
이후로 유리는 IT 기업들에 관해 몇 가지 물은 후 올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올가 하는 일이 영 미덥지가 않아.”
“저도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두 달 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고요?”
“열 개 매장 중 다섯 곳에서 적자가 나기 시작했어.”
“나머지 매장들도 어려워지겠군요. 그런데 고모가 가진 매장 말고는 모두 흑잔데 왜 거기만 적자가 난 걸까요?”
어떻게 딱 거기만 적자인지 니콜라이로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와 이반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기만 해도 최소한 적자는 나지 않았을 텐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뭔가 문제가 있으니 적자가 났겠지.”
“약속한 게 있잖아요. 일단은 지켜보시죠.”
“그럴 수밖에. 한데 곧 미국에 간다고?”
“네. 시베리아 횡단 열차 문제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유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노파심에 하나만 말하도록 하마.”
“…?”
“내가 보기엔 클린턴은 우릴 곤란하게 할 사람이야. NATO 협정이 깨진 것 때문에 대통령에게 감정이 남아 있을 게다. 네가 간다고 해도 쉽진 않을 것 같구나.”
“….”
“문제가 생겼을 때 가끔은 정면 돌파보다 옆으로 살짝 비껴서 다른 걸 이용하면, 오히려 잘 해결될 때가 있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할 때 말이다.”
살짝 비껴서?
니콜라이는 유리의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그도 클린턴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나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는데, 유리의 말을 통해 뭔가 번뜩하고 생각났다.
“여태 네 성향을 보자면 뭔가에 쫓기듯이 일을 빨리 처리해 왔었지. 그러나 멀찍이 물러나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네게 큰 도움을 줄 순 없지만 세상을 오래 산 경험으로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더구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유리는 밖으로 나가는 니콜라이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혼자서 너무 많은 짐을 지려는 것은 아닌지… 니콜라이도 이제 마음을 줄 사람이 있어야겠어.”
그는 수화기를 들고 며느리 마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미국 백악관 대통령실.
자하르 대통령에게 니콜라이가 방문하는 이유를 들은 클린턴.
그는 CIA 국장과 비서실장을 불러 물었다.
“우리가 한반도에 전쟁이 끝났다는 걸 인정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어요?”
“러시아, 일본, 중국, 코리아가 인정하면 마땅한 구실이 없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은 일본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미국은 일본까지도 넣었다.
비서실장의 말에 클린턴이 국장을 바라보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단지 열차로서의 의미가 아닙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한반도의 전쟁이 종식되었다는 걸 세계에 알리게 되는 의미가 될 겁니다. 그리고….”
“…?”
“열차가 연결되면 북한과 남한이 교류를 시작할 텐데,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CIA 국장은 클린턴과 비서실장을 번갈아 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종전선언과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
“독일이 무슨 대단한 일 때문에 통일이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한 기자의 오보로 순식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렇긴 하지요.”
“횡단 열차로 인해 한반도가 본격적으로 교류를 시작하게 되면, 그게 시발점이 되어서 통일의 물꼬가 트이게 될 수 있습니다.”
CIA 국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이 확실히 남다른 인물이다.
클린턴 대통령과 비서실장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니콜라이 경제 고문이 오기 전까지, 우리의 포지션을 어디에 둘 건지를 정확히 결정해야 합니다.”
“흐음….”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면 받아들이시고, 그렇지 않다면 러시아, 일본, 중국, 코리아가 원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셔야죠.”
“만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떤 구실을 내세우면 좋겠어요?”
클린턴의 물음에 CIA 국장과 비서실장은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왜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은 당연히 받아들일 거로 판단했다.
포지션 운운했던 건 예의상 말한 것이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자유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나라지 않나?
거기다 클린턴은 민주당이다.
반대했다간 수많은 언론이 두들겨 댈 테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국장이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통령님. 혹시 받아들이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네?”
CIA 국장이 니콜라이를 조사하면서 뒤를 캤던 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였다.
그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뛰어난 능력을 우러러보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클린턴 대통령이 보이는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러시아를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중히 판단하셔야 합니다. 이 요청은 러시아에서 한 겁니다. 코리아 국가들이 요청한 게 아닙니다.”
“왜 이리 놀라는 거요? 내가 언제 반대한다고 했습니까?”
클린턴은 전에 NATO 협정을 반대해 자기를 코너로 몬 자하르 대통령이 싫었어도, 이건 반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러시아를 곤란하게 하고픈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자하르 대통령이 말했던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순간이었다.
* * *
백악관으로 들어간 니콜라이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어이없는 말을 들었지만, 씩 웃었다.
‘역시 할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니까.’
가끔은 정면 돌파보다 옆으로 살짝 비껴서 다른 걸 이용하면 좋다고 했던 유리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