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296)
297화. 변하는 국내외정세.
2013년 2월 25일.
석은숙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백산그룹에도 초청장이 날아왔지만, 한도영은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백산전자 대표 김혁수를 보냈다.
며칠 후.
한도영은 안의혁과 다시 식사자리를 가졌다.
안의혁의 요청으로 이뤄진 자리였다.
“이번 5년은 정말 힘들 거 같네.”
안의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취임식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는데요.”
한도영은 싱긋 웃으며 안의혁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전생에서는 ‘국정원선거개입의혹’으로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던 석은숙이었지만, 이번에는 국정원선거개입이 없었다.
하진명이 임명한 국정원장이 버젓이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상대후보인 석은숙을 지원하기는 애초에 힘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 하지만 할 일이 많아. 북한도 김정은체제로 바뀌었고, 중국도 3월부터 우융캉체제로 바뀔 거야. 또 미·중갈등도 갈수록 첨예해질 테고. 미국은 중국이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려는 걸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국내외여건이 안 좋은데, 과연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갈까 걱정이야.”
“정치상담을 하려면 번지수를 잘못 선택하신 거 같습니다만.”
“한 회장이 편해서. 솔직히 정치인들과 이런 상담을 못하거든. 바쁜데 시간을 내주었을 텐데, 이 늙은이 푸념이라 생각하고 들어주게. 허허허.”
“계속하시죠. 오늘은 제가 편하게 술동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안의혁은 석은숙과 그 주변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 취임한 지 며칠 만에 이렇게 격정을 토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한도영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여당에서 힘이 있으시죠?”
“당연히. 계파도 있고, 전 대통령으로서 예우도 받고 있지. 나를 적대시하는 의원은 몇 안 돼. 왜 그런 말을 꺼내는가?”
“나중에 중차대한 일이 터질 수 있으니 준비해두십시오.”
“중차대한 일?”
안의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한도영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도영과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행보를 계속 이어간다면 결국 문제가 터지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일이 터진다면 이제까지 일어났던 측근 부정부패 혐의와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안의혁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한도영이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겠는가?”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전대통령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을 저 역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해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가 되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의혁은 한도영의 의도를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상당히 골치 아파질 수 있겠군. 순식간에 우리 당의 신뢰도가 급락할 수 있겠어.”
“그때를 대비하십시오. 그래서 문제가 터졌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고맙네. 한 회장이 우리 대한당에 이렇게 애정을 갖고 있을 줄 몰랐군.”
안의혁이 감사를 표하자, 한도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한도영은 대한당이든 민국당이든 관심은 크지 않았고, 여전히 중립을 지키고 싶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석은숙 탄핵이후, 대한당이 몰락하면서 정치가 크게 혼란스러워지는 부분이었다.
견제세력이 없다면 집권당은 부정부패에 물들게 마련이었다.
본인들은 깨끗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소수이고 집권당 밑바닥부터 썩어 나중에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한도영은 그게 싫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석은숙의 최측근인 간신난이 설쳐댈 테니, 탄핵은 막을 수 없을 거 같았고 그렇다면 정치혼란이라도 막고 싶었다.
견제장치가 작동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독주하지 않는 정치.
그것이 한도영이 바라는 바였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예측이 쉽지 않아 곤란한 면이 많았기에.
“저는 중립입니다.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게 싫을 뿐입니다.”
“큰 혼란을 확신하는군. 이제까지 한 회장을 지켜봤지만, 흰소리를 한 적이 없었고 예측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니 분명 대혼란이 오겠어. 그리고 그걸 나보고 막으라 이 말이고. 맞는가?”
“정치계의 어른이 나서지 않으면 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어느 한쪽 당이 독주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아무튼 묘해. 내가 이래서 한 회장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색깔이 분명하게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한 회장은 아무리 봐도 치우치지 않거든. 장금산 전대통령과 친하게 지낼 때는 무조건 민국당인 줄 알았는데, 하진명 전대통령과는 거리를 둔 걸 보면 그것도 아니고.”
“사업가 입장에서는 변수가 많은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제 판단기준은 사업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이해되실 겁니다.”
“그렇군. 오늘 조언 고맙네. 확실히 큰 도움이 되었어.”
안의혁은 한도영에게 감사를 표했고, 둘의 식사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
3월 14일.
중국 지도부가 대폭 교체되었다.
후진타오가 물러났고, 우융캉이 국가주석에 올랐다.
이제 본격적인 우융캉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반쪽뿐인 권력이라는 평가가 외신을 타고 흘러나왔다.
7개 상임위원 중에서 총리, 중앙군사위원회,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등 핵심 상무위원에 후진타오 계열 인사가 배치되었기 때문이었다.
우융캉은 중앙군사위원회라도 가져오려고 후진타오, 장쩌민과 협상을 벌였지만, 루청의 간계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강력한 견제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것이란 루청의 경고를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백산그룹.
중국의 정치권 변화에 한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서의 독단적인 중국의 모습을 보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중국정치가 조금이라도 투명해진다면 중국투자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홍건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좋은 일 있습니까?”
“우리와 중국은 끊을 수 없는 관계인데, 이번에 개편된 중국정치를 안심이 됩니다. 올바른 견제가 작동될 테니, 독재국가로 가진 않겠죠. 작년 초에 후진타오가 장쩌민에게 많이 치여 고생했기 때문에 빠르게 권력이양할 거란 소문이 있어서 걱정했거든요.”
“그렇죠. 그 사람이 큰일을 했습니다.”
“중기위 서기를 말하는 겁니까?”
“쉿.”
한도영은 집게손가락을 입에 댔다.
홍건희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이걸 공론화시키는 건 바보짓이었다.
“이제 회장님도 중국에 든든한 빽이 생겼군요.”
“모르죠. 사람의 마음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으니까요. 다만 중국의 권력이 한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고, 견제장치가 발동한다면 그것으로 대만족입니다. 적어도 중국의 환경이 확 바뀌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영웅은 필요 없습니다.”
영웅은 위기상황에 등장하는 것이다.
영웅을 가장한 도둑이 전면에 등장하여 영웅행세를 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은 한도영이었다.
차라리 루청처럼 대놓고 권력욕을 드러내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그럼 난징투자는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합시다.”
한도영은 시원하게 승낙했다.
그는 중국정치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한국정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개성공단에 입주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도 평화가 무르익어간다고 생각했는데, 북한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일지는 몰랐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제를 논의하고, 제제가 결의될 조짐을 보이자 북한은 정전협정파기를 선언하고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폭탄선언을 쏟아냈다.
“석은숙 정부가 개성공단을 어찌 할까요? 선제적으로 폐쇄할까요?”
“글쎄요. 우리 기업이 들어가 있는 상황인 만큼, 쉽게 폐쇄하긴 어려울 겁니다. 다만 북한에서 추가로 어떤 제재를 가하면 자연스럽게 폐쇄되겠지요. 그놈들은 뭔 짓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려우니까요. 앞으로 백산은 남북관계가 호전된다고 하더라도 개성공단 같은 곳에 투자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치가 불안정한 곳은 아무리 메리트가 좋아도 투자할 수 없어요.”
“예. 회장님.”
홍건희는 밝은 얼굴로 한도영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곳에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다수 입주해 있는데, 그 회사의 대표들은 지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네. 회장님.”
“우리 백산에서 골목상권 침해는 없을 테고, 혹 계열사 일감몰아주기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이건 석 대통령님 공약사항이니까, 분명 파고들 겁니다. 괜히 걸려 망신당하고 벌금내고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살펴서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시정조치 하세요.”
“알겠습니다.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겠습니다.”
홍건희는 한도영의 지시사항을 기록한 후, 조심스러운 표정을 질문했다.
“저, 미래그룹 이무룡 회장님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작년 말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조금씩 거동도 하신다고 합니다. 물론 예전처럼 잘 움직이시는 건 아닌데, 그래도 다행입니다.”
한도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룡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랐는데, 전생과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었기에 마음이 슬펐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거인이 또 한명 쓰러지고 있었다.
“비서실에 연락해서 약속 좀 잡아줘요. 한번 병문안을 가고 싶군요.”
“예. 회장님.”
***
미래병원.
차에서 내린 한도영은 곧바로 이무룡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아니 바쁘실 텐데.”
이무룡은 한도영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편히 누워계십시오.”
한도영이 이무룡에게 다가가 만류하자, 이무룡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참을 누워있었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니 답답하군.”
“병명이 뭡니까?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이리 되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폐가 좋지 않았어. 그래도 젊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이제는 몸이 한계에 도달한 거 같군.”
“더 오래 사셔야죠.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무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질병은 유전요인이 강했다.
그의 부친도, 큰형도 모두 폐암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이무룡 역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한 전력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난징에 백산타운을 만들었다면서?”
“하하하. 그냥 공장 몇 개 지었을 뿐입니다. 백산으로 먹고사는 기업과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백산타운은 좀 과장되었습니다.”
한도영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자네가 부럽군. 미래는 시안에 공장을 지었는데 별로야. 난징처럼 파격적인 혜택을 준 것도 아니고.”
이무룡은 입맛을 다시더니 은근하게 물었다.
“한 회장. 루청과 자주 연락하시는가?”
“난징에서의 인연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호오, 부럽군. 든든하겠네.”
“좀 걱정됩니다. 괜히 정치에 말려드는 건 아닐까 하고요. 우융캉 입장에서는 백산이 루청의 정치적 발판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무슨 소리. 그런 논리면 저장성과 상하이에 입주한 기업들은 우융캉의 발판인가? 그저 우리는 좋은 조건을 주면 고마울 뿐이지. 그런 걱정하지 말고, 루청을 이용할 수 있으면 과감하게 이용해서 세를 확장시키게.”
“하하하. 백산의 미래의 경쟁기업입니다.”
“이제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사업할 때 백산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게. 외지에 나가 사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럴 생각입니다만, 지나치게 깊숙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건 말리고 싶네.”
“하노이 핸드폰 및 스마트폰 공장이 활기차가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순건이에게 맡겼는데 아주 잘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야. 한 회장처럼 조금만 더 독했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아닙니다. 잘하실 겁니다.”
한도영은 오랜만에 이무룡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간 안 좋은 일이 많았었기에 그와의 이런 대화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