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 Returned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팔년 쯤 전이었나?”
“?”
갑자기 클랜의 헌터, 래인이 입을 열었다.
평소 거만하고 성질 더러워서 다른 클랜과 부딪히기만 하면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헌터였다.
“나는 맨하탄의 이스트빌리지를 걷고 있었어. 알다시피 거기는 좋은 레스토랑이 많지. 그 때였을 거야. 내가 처음 한식과 만났을 때가.”
“……”
“…???”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여전히 래인이 왜 저러는지 알지 못해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들 중 몇몇은 래인의 속셈을 깨달았는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설마 밥 한 술 얻어먹자고 사연팔이를 하는 건가???
“거기서 처음 먹은 메뉴를 아직도 기억해. 잡채와 순두부찌개. 그 때부터 나는 한식의 매력에 푹 빠져서…”
“…지금 설마 밥 달라고 그러는 건가?”
최연승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요즘 젊은 헌터들 중에 또라이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밥 한 술 먹자고 자기 8년 전 과거까지 올라가서 떠드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래인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뻔뻔함은 헌터의 능력 중 하나였고, 래인은 그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어쨌든, 여기 있는 놈들은 한식 맛도 모르는 놈들인데 내가 자격이 있지 않을까?”
래인의 폭언에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분노했다.
“뭐라고?”
“난 ■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비빔밥을 먹었어! 뉴욕 맛집 소개 기사나 보고 깔짝대며 들어갔을 자식이 누구를 깔봐!?”
‘지금 이렇게 싸울 상황인가?’
마신 성좌의 권속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냥 여기 있는 헌터들은 볶음밥 먹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냥 먹고 싶으면 모두에게 줄 테니 싸우지 말도록.”
“앗. 진짜?”
“그러면 싸울 이유가 없지.”
헌터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빠르게 진정했다.
[더 많은 숭배를 받아 존재의 힘이 오릅니다!]‘…이 인간들 걸신이 들렸나?’
존재의 힘을 올리기 위해서 잘해주고 있는 최연승 입장에서도 황당할 수준!
* * *
배부르게 먹고 나서 헌터들은 다시 자기 클랜들끼리 흩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한층 더 부드럽고 풀어져 있었다.
서로 시선도 교환 안 하던 헌터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꽤나 너그러워진 것이다.
“최연승 헌터. 클랜의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 여기 있는 건 어때? 저기 애들은 힐러도 없는데.”
“우리 쪽도 힐러 있다! 감히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보니까 저기 클랜은 사냥에 실패하던데 같이 있으면 괜히 휘말릴 수 있을지도.”
“죽고 싶냐? 몬스터 잡기 전에 너희들부터 잡아줘??”
…아니. 분위기만 좀 너그러워진 것이지 오가는 말들은 살벌했다.
게다가 최연승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인지 더 치열해졌다.
여기 온 헌터들은 모두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연승을 우리가 데리고 있고 싶다!
처음에는 특이하고 희귀한, 과거에서 온 헌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성급 요리사처럼 보였다.
마신 성좌와 계약한 줄레스는 살짝 초조해져서 물었다.
“저 최연승 헌터를 꼭 우리가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뭔 헛소리야? 아까 볶음밥 제일 많이 처먹던 놈이?”
“……”
앰비투스 클랜의 다른 헌터들이 하는 말에 줄레스는 민망해서 말문이 막혔다.
상대가 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죽여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하필이면 저 놈 때문에 분위기가 요상해졌어.’
모두 지치고 힘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배불리 처먹고 나니 다들 행복하고 기운 넘쳐 보였다.
심지어 마력까지 회복되지 않았는가!
서로 경계해야 줄레스가 활동하기 쉬웠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살짝 초조해졌다.
“이 던전에서 얼마나 오래 버텨야 할지 모르는데, 가능하면 무조건 데리고 있어야지.”
“맞아. 놈들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겠어? 클랜이라 스카우트는 힘들겠지만서도.”
“클랜 스카우터들은 저런 헌터를 데리고 와야지 왜 흔해 빠진 놈들만 골라 오는 거야?”
이미 클랜의 헌터들은 최연승의 능력에 푹 빠져 있었다.
가능하면 무조건 팀에 합류시키고 싶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줄레스는 더더욱 당황했다.
‘지금 식사 한 끼 먹었다고 이러는 건가??’
까다롭고 거만한 놈들이 이러는 꼴을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줄레스 본인도 그 요리를 생각하면 죽이는 게 아깝기는 했는데…
달칵!
“?”
“!”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모두 시선을 돌렸다.
공터 가운데에 있던 모래시계에서 난 소리였다.
모래시계는 달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하더니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싸울 준비해!”
“예!”
방금까지 쉬고 있던 헌터들도 다급히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줄레스도 허겁지겁 단검을 꺼낼 준비를 했다.
준비만 되면 싸운다!
파아앗!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주변에 있던, 폐허에 가까웠던 석조 기둥들이 사라졌다.
그 대신 소환진 위에서 암석으로 된 기사가 나타났다.
바위 검에, 바위 방패. 바위 투구와 바위 갑옷으로 이뤄진 암석 기사!
“…?!”
처음 보는 몬스터를 보면 헌터들은 일단 긴장하기 마련.
누가 먼저 어떤 마법으로 공격해야 할지 서로의 눈치만 봤다.
심지어 줄레스도.
‘지금 공격해도 되나? 저 놈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단 좀 잡은 다음에 공격해야 할 거 같은데…’
-나는 패배와 나태의 여신을 모시는 기사다. 누가 나의 시험을 가장 먼저 받겠는가?
‘!’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당황해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성좌인 최연승은 가장 먼저 눈치 챘다.
저 기사는…
‘성좌의 하수인이다!’
.
그것이 저 기사가 모시는 주인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던전의 이름은 였으니…
‘설마 마신 성좌가 판 함정에 들어온 건가? 아니. 그런 식으로 함정을 파지는 않을 텐데.’
던전을 만드는 건 성좌라도 어마어마한 존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최연승 본인이 성좌였기에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성좌 입장에서 헌터 하나 하나는 개미 같은 존재일 텐데, 그런 개미 하나를 죽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자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이 던전은 뭐지? 그냥 어비스에 있던 곳이 운 나쁘게 소환된 건가?’
최연승이 고민하던 사이 기사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누가 나의 시험을 가장 먼저 받겠는가? 나는 기다리고 있다.
“개소리 하고 있네. 쳐라!”
가장 성질이 급한 헌터가 나왔다. 래인이었다.
기사가 말하는 사이 이미 마법 준비를 끝냈는지 주변에는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클랜의 헌터들이 준비한 마법은 5서클 마법 .
마력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바윗덩이가 날아가 상대를 찢어발기는 파괴적인 마법이었다.
래인은 그걸 혼자서 준비하지 않고 다른 헌터들과 같이 시전하고 있었다.
‘제법이군.’
여럿이서 같이 마법을 쓰면 난이도가 확 뛰었다.
저런 걸 능숙하게 해내는 걸 봤을 때 래인은 이 던전을 공략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물론 볶음밥 한 숟갈 먹자고 자기 과거를 팔던 그 모습은 많이 충격적이었지만…
콰드드드드득!
암석 창은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금방이라도 기사를 부숴버릴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러나 암석 창은 기사 앞에서 멈추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
“!!!!!”
래인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충격을 받았다.
마법을 막았다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그냥 마법을 취소시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동작 없이!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A급, 아니 S급 몬스터?!’
‘대악마나 가능한 거 아닌가?!?’
놀라는 이들과 달리 최연승은 침착했다.
‘존재력이군.’
여기가 의 구역이고, 저 기사가 하수인이라면…
여신의 존재력을 빌려 쓸 수 있으리라.
존재력은 현실을 바꾸는 만능의 힘. 저런 일도 충분히 가능했다.
기사는 시선을 돌렸다. 자존심 강한 래인이었지만 그 시선에는 움찔하고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시험은 여러 명이 동시에 볼 수 없다. 한 번에 한 명만이 가능하다.
“그, 그렇군…”
-너는 선택되었다.
“잠깐! 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래인의 위치가 기사 앞으로 옮겨졌다.
‘강제 텔레포트까지?!’
자신이면 모를까, 남을 강제로 텔레포트시키는 마법은 헌터 중에 아무도 쓰지 못하는 마법이었다.
B급을 명백히 넘는 몬스터의 실력에 헌터들은 단단히 얼어붙었다.
-준비되었는가? 시작하겠다.
기사는 검을 겨눴다. 그러자 래인은 털썩 쓰러졌다.
“!?!?”
-시험에 실패했다. 다음 도전자를 시험하겠다.
기사는 클랜의 헌터들에게 하나씩 불러냈다. 헌터들은 모두 픽픽 쓰러졌다.
-다음 도전자는 누구인가?
“으… 으윽.”
래인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자 헌터들은 다급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멀쩡해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저 놈이 뭘 썼지?!”
“모, 모르겠어. 놈이 검을 겨누니까, 갑자기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움직일 수가 없었어.”
‘패배와 나태의 권능!’
성좌의 이름은 그 성좌의 영역을 상징했다.
패배와 나태. 아마 그 두 개와 관련된 권능 스킬이 분명했다.
“어쩐다? 공격을 해봐?”
“공격했다가는 강제로 시험을 받게 돼.”
“놈의 수준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습니다. 차라리 출구를 찾는 게…”
헌터들은 기사를 둘러싸고 수군거렸다.
그러는 사이 최연승이 나섰다.
“내가 도전하겠다.”
“!”
최연승이 나서자 다른 헌터들은 깜짝 놀랐다.
이 상황을 보고 나서다니?
머리가 없거나 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최연승, 그만둬라! 위험하다. 놈들은 운 좋게 살아났지만 죽을 수도 있다!”
“맞는 말이야. 놈들은 뒤지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네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이 ■새끼들이…’
클랜 헌터들은 분노했다.
물론 헌터란 게 클랜 다르면 눈앞에서 사람 죽어나가도 무시하는 차갑고 냉정한 직업이긴 했지만, 대놓고 들으면 역시 빡치는 것이다.
하지만 최연승한테 저러는 건 이해가 갔다. 그들도 솔직히 최연승이 나섰으면 말렸을 것이다.
다른 클랜이야 뭐 뒤지든 말든 지들 일이고…
그러나 이미 시험은 시작되었다. 기사가 검을 겨눈 것이다.
-좋다. 준비되었는가?
“그래.”
-시작하겠다.
[가 을 사용합니다.]순간 몸에서 의지가 빠져나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움직이겠다는 의지, 싸우겠다는 의지, 이기겠다는 의지…
이런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게으르게 있고 싶은 욕망만 샘솟으려고 했다.
그러나 최연승은 성좌.
그것도 이었다.
‘…생각해보니 속성이 정반대군.’
성좌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이런 상대에게 질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은 마력이나 내공으로 푸는 스킬이 아니었다.
의지력!
강력한 의지력만으로 풀 수 있는 스킬인 것이다.
최연승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한 걸음이었지만, 그 걸음에는 어비스에서 만 년 넘게 헤매는 동안 한 번도 잃지 않은 초심(初心)이 담겨 있었다.
강해지고 싶다.
아직도 강해지고 싶다!
그 순간 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