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 Returned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이쯤이면 화가 나기보다는 당황스럽군.’
약속한 주제에 일 하나 제대로 못한 성좌들에 대한 분노보다는, 성좌들의 요청을 씹은 일본 정부의 깡에 더 감탄했다.
지금 성좌들의 도움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때에 저런 거절이라니.
성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는 강대국 특유의 자신감인가?
‘아무리 그래도 성좌들 요청을 저렇게 거절하진 않는데.’
지구의 국가들과 선신 성좌들의 관계는 멀면서 가까운 기묘한 관계였다.
각국 정부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막대한 신비와 어비스의 지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성좌에게서 얻어내고 싶어했지만, 성좌들에게 내정을 간섭당하는 걸 싫어했다.
성좌들은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휘둘리는 걸 경멸했지만, 권속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협력이 필요했다.
결국 둘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어느 정도 들어주는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잘라 내다니.
“다들 나서줘서 고맙군. 저쪽 상황이 안 좋은 모양이니 내가 나서서 확인하겠다.”
[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제안합니다.] [이…]‘성좌들이 이렇게 친절했나?’
최연승은 친절하게 구는 선신 성좌들의 모습에 낯설어했다.
물론 선신 성좌들이 악신 성좌들에 비하면 훨씬 더 인격적인 존재긴 했다.
그래도 이들은 성좌였다.
다른 성좌의 권속인 최연승을 어느 정도 견제하고 밀어내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하게 굴다니.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어비스의 질서지. 지금 권속들이 그만큼 손발이 묶인 게 분명하구나.
-그렇군.
선신 성좌들이 친절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선신 성좌들을 섬기는 권속들과 하수인들이 전부 지구의 각국에서 정신없이 싸우느라 손발이 묶여 있는 게 분명했다.
나설 수 있는 믿을 만한 인간이 최연승밖에 없는 상황!
이렇게 생각하니…
‘여기서 버티면서 더 뜯어낼 수도 있겠다 싶군.’
[이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농담이었습니다.
-농담 아니었잖니?
-조용히 해라.
* * *
일본의 A급 헌터, 나카오 코헤이는 오랜만에 걸려 온 연락에 깜짝 놀라서 달려갔다.
“최연승 헌터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예.”
나카오는 반가운 표정으로 클랜 직원에게 말했다.
“이리 주십시오.”
러시아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본 공격대를 구해준 건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감사하게 됩니까?”
“군침이… 아. 물론 감사하게 되죠.”
‘방금 군침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예. 최연승 헌터.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군. 그쪽은 괜찮나?
최연승의 질문에 나카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괜찮을 리 없었다.
당장 최연승이 직접 나섰던 한국도 정치권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에서 ‘대침공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준비 방해를 했는데, 다른 나라는 더욱 심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개 헌터의 근거 없는 말에 움직일 정도로 정부의 일은 가볍지 않다! 애초에 무엇하러 한국 헌터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다른 나라에서 펼치는 속임수이면 어쩌려고?
-최연승 헌터는 그런 사람이 아닌…
-나카오 코헤이 헌터! 당신이 A급 헌터인 건 존중하지만, 국방과 외교, 그리고 정치는 우리 관료들의 일이오. 멋대로 참견하지 말아주시오. 쓸데없는 의견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지도 말고!
-…알겠습니다.
몇몇 클랜들은 ‘야 이거 최연승 헌터 성격상 다른 헌터처럼 허언할 사람은 아닌데 큰 일 터지는 거 아니냐?’하며 웅성거렸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앞장서서 나설 간 큰 클랜은 없었다.
그 결과는 헌터들이 직접 감당해야 했다.
-클랜들의 무사안일주의가 일을 키웠다! 클랜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일본 헌터들은 언제부터 사무라이 정신을 잃어버렸나?
-정부는 몇 번이고 클랜에게 요청을 했을지도 모르고 안 했을지도 모르고…
침공이 터지고 몇몇 구역과 도시들이 폐쇄되자 정부의 압력을 받은 언론들은 바로 클랜, 헌터 탓을 했다.
억울해 뒤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싸울 수도 없었다. 헌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싸우고 있었다.
“별로 괜찮지 않습니다. 몇몇 도시들이 폐쇄됐고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는데…”
-그렇군. 지금 짧게 여유가 생겨서 그쪽에 지원을 갈까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 지원을?! 그게 정말입니까?!”
나카오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옆에 있던 클랜 직원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더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 A급 헌터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최연승이 이쪽으로 온다니.
한국도 정치가들이 있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온갖 수단으로 방해하거나 때릴 게 분명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상관없다.
“…!”
나카오는 울컥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높으신 분들은 책임을 서로 미루고, 헌터들과 시민들은 서로 돕는 대신 이 혼란 속에서 한 몫 챙기려고 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이 이렇게 도와주려고 한다니.
정말 숭고한 희생정신이었다.
-…혹시 지금 우나?
“아, 아닙니다. 잠시 감정이 북받쳐서.”
‘사람이 좀 이상하군.’
나카오는 몰랐지만, 최연승은 지금 전화 너머에서 나카오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카오가 생각하는 것처럼 최연승은 정치인들 눈치 보면서 오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때려눕히고 오는 것에 가까운 상황!
-그러면 클랜 이름으로 초대해줄 수 있겠나?
“네? 그래도 됩니다만, 제가 방위성 쪽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최소한 공빈(公賓) 대접을 받으며 오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을 초대할 때는 준비하는 것이 국빈 대접.
그만큼은 아니지만 상대 국가의 거물이나 특사들을 초대할 때 준비하는 것이 공빈 대접이었다.
각종 환영 행사와 간단한 회담으로 상대의 격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급 헌터의 방문은 국빈 대접은 몰라도 공빈 대접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 이미 말해봤는데 일본 정부가 거절했더군.
“…이런 개새끼들이!!”
“?!”
옆에 있던 직원이 다시 놀랐다.
-지금 뭐라고 욕한 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그래서 편법이지만 클랜의 초대를 받아서 가고 싶다. 괜찮겠나?
보통 헌터 클랜들은 다른 나라의 헌터들을 초대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유야 여럿이었다.
레이드나 스킬을 배우거나, 교류를 하거나, 혹은 던전 공략에 힘을 빌리거나.
당연히 외국 헌터를 불러오는 일인 만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정도 되는 대형 클랜은 편법으로 진행시킬 능력이 있었다.
문제는 그 뒷감당이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같은 대형 클랜이 지금 해외 A급 헌터를 초대하는 건 ‘우리는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안 그래도 사방팔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현 집권당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비국민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을 퍼붓고, 클랜한테 각종 제재를 때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정말 괜찮겠나?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생각은 없습니다. 최연승 헌터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헌터의 진정한 가치는 인류를 위한 헌신 아닙니까?”
-…???
전화 너머의 최연승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내가 뭘 보여줬다고?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놈?’
-알… 겠다. 어쨌든 괜찮다면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최연승은 한국 헌터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최연승 본인이 빠지는 상황에서 A급 헌터를 더 빼는 건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 전력을 채운 건 다른 성좌들이 보낸 권속들이었다.
[이 잘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이 성좌들을 대신해서 설득에 나선 것을 고마워합니다.] [가 전투에서 빚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일본 정부가 거절한 탓에 최연승의 일행 자격으로 지원하러 온 권속들.
뒤늦게 정부가 사정을 알게 되면 펄펄 뛸 게 분명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감히 주인님의 호의를 거절하다니.”
일레야는 모처럼 일라파엘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낸 거인 권속, 우란타도 말을 얹었다.
“말,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놈들은 모조리 때려죽이고… 성, 성좌의 명령을 실천해야 한다.”
“……”
“……”
말은 어눌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살기는 진짜였다. 일라파엘은 경악해서 말했다.
“그건 아니지!”
“그, 그래?”
우란타는 놀란 눈빛으로 일라파엘을 쳐다보았다. 일라파엘은 자신과 생각이 같을 줄 알았던 것이다.
“놀, 놀랍군… 인간들은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
“……”
이번에는 최연승과 일레야가 슬쩍 일라파엘한테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일라파엘은 당황해서 변명했다.
“오해야! 오해란 말이다! 이 우란타, 빌어먹을 거인 놈!”
“아. 오해였나?”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
“…넌 저쪽에 가서 앉아라.”
최연승은 일라파엘을 다른 권속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보내버렸다. 일라파엘은 우란타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걸어갔다.
최연승은 우란타를 보며 말했다.
“우란타. 우리가 처음 보는 사이지만, 이번 싸움을 준비하고 지휘하는 건 내가 될 거다. 내 의견을 존중해주겠나?”
“우란타. 실, 실력 있으면 존중한다. 인간. 강하다는 소문 많이 들었다. 눈으로 보고 싶다.”
“그래.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다.”
일레야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비스의 종족인데… 잘 다루네요?”
“아.”
당연히 어비스를 돌아다니면서 거인 놈들과 싸우거나 타협한 적이 여러 번 있어서 대하는 데에 능숙한 것이었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최연승은 당당하게 거짓말을 했다.
“한국 헌터들과 거인들이 비슷한 편이지.”
“…크케 정말이에요??”
일레야는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신기해했다.
최연승은 괜히 이야기했다가 꼬투리를 잡히기 싫어서 화제를 돌렸다.
“성좌한테 많이 사랑받는 것 같은데, 이번 레이드가 끝나면 A급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겠군. A급이 되면 뭘 할 계획이 있나?”
“계속… 이카로스 클랜에 있으려구요. 한국도 좋고요.”
“음.”
최연승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일레야와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 위화감.
처음에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너무 좋아요!’하는 외국인을 만난 어색함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군.’
-확실히 의 지나친 총애를 받고 있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도…
‘아니. 한국의 문화가 너무 좋아서 클랜에 남아 있으려는 외국인이라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그건 말이 되지 않니?
나태의 여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뭐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직감은 아니라고 하고 있군. 가 지금은 아군이긴 하지만, 그 꿍꿍이를 짐작하기 힘든 성좌기도 하지. 안 되겠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확인하고 가야겠군.’
-여신님.
최연승은 천칭의 여신을 불렀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여신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합니다!]-왜 당황을…? 부탁드릴 게 있는데, 혹시 존재력이나 권능을 사용해서 일레야 프세볼로도브나의 정체를 읽어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른 성좌가 권속의 정보를 가리고 있다고 하지만, 천칭의 여신은 예지라는 권능을 갖고 있는 성좌.
그걸 뚫고 뭔가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좋은 생각 같지는 않구나.
나태의 여신은 낮게 중얼거렸다.
-왜지? 역시 너무 존재력을 사용하는 일인가?
-아니… 그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구나. 그보다는 질투심 때문에…
나태의 여신은 말끝을 흐렸다.
천칭의 여신이 최연승에게 접근하는 다른 모든 성좌들에게 질투심을 품고 있다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성좌한테 다른 성좌의 권속을 읽어내라니.
안 그래도 불안정한 예지인데, 질투심 때문에 잘못된 미래를 읽을 수도 있었다.
[이 얼굴을 붉히며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외칩니다!]-맞아. 나태의 여신. 여신님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흥.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나태의 여신은 삐져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 한 번 어떻게 나오나 보자!
[이 최선을 다해서 한 번 읽어보겠다고 말합니다.]여신과 동맹을 맺은 최연승은, 여신이 막대한 존재력을 사용하는 게 느껴졌다.
과연 이걸 쓸 만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 읽은 미래를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일레야 프세볼로도브나는 의 화신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뭐라고 했니? 질투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