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카르디아 대륙을 가로로 접으면, 북으로는 마수의 숲과 신성제국이. 그리고 남으로는 신성제국에 저항하는 연맹국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 바다 위에는 퍼니시 군도가 하나의 나라처럼 군림하고 있었고 말이다.
척박한 북부와 풍요로운 남부의 기후가 갈리듯이, 그에 따른 제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는 일.
그중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바로 노예제도였다.
교황청을 따르는 신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신성제국은 공공연히 노예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인족들이나 연맹국의 포로들 같은 이교도들을 제국의 신민들과 같은 선상에서 대할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
30년 정도 되었나.
연맹국들은 이런 신성제국의 정책을 야만적이라 비난하며 노예제도를 대대적으로 폐지했다.
왕국의 품에 안긴 모든 이들을 자유의사를 가진 평민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저 악마 같은 신성제국과 다를 것이 하나 없다는 이유였다.
뭐. 말처럼 사람들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이러한 연유로 연맹국들의 영토에 노예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었다.
그래.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심리가 으레 그러하듯이, 억누르고 통제할수록 더욱 튀어 오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하물며 남부는 북부와 달리 온건한 기후로 인하여 농업이 발달한 지역.
어떤 면에서 볼 때 남부는 북부보다 노예의 수요가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을 수가 없던 것이다.
신성제국처럼 공공연한 노예시장이 자취를 감추자, 연맹국들 곳곳의 음지에서는 과거보다 더욱 은밀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노예시장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번지기 시작한 노예시장은 권력자들의 뒤를 닦아주며 공생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성장해 나갔고.
이후 밝혀진 노예시장의 규모와 음험함에는 그 신성제국조차 혀를 내둘렀었다.
오죽했으면, 신성제국이 대륙의 많은 왕국들을 병탄한 후에 그 방식들을 자신들의 노예시장에 채택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샤론 왕국의 메르카도(Mercado)는 그런 연맹국들의 노예시장 가운데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인 시장이었다.
“윽, 시발. 여기는 언제 와도 참… 적응이 안 되네. 올 때마다 역겹다니까.”
“뭐야? ‘언제 와도’라고? 이 자식, 인형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노예 취향까지 있었어?”
내가 살라딘과의 거리를 슬쩍 벌리며 되묻자, 살라딘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뭔 개소리야! 의뢰 때문에 몇 번 왔다 갔다 했을 뿐이지, 그런 취향 따위는 없다고!”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는 오직 이 하늘 아래 미미와 네네뿐이니, 그런 오해는 불쾌하다만!”
“…그, 그래. 미안하다.”
그 박력(?)에, 에드윈 자작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 이해가 되었다.
다른 의미로 살라딘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싶어졌지만, 옆에서 초조함에 미쳐버릴 것 같은 표정의 애쉬 때문에 아쉽게도 그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다.
“바, 방패가의 삼공자여. 저, 정말 이곳에 우리 공주마마께서 계신단 말인가?”
애쉬가 품이 넓은 후드로 귀를 가린 채 내게 물어왔다.
따귀를 마지막으로, 여정 내내 공적인 이야기 말고는 따로 말을 나눈 적은 없었지만.
이 엘프가 이토록 핏기 없는 얼굴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말했던 대로 그 공주인 엘프가 그토록 아름답다면, 아마 이런 대우를 받지는 않고 있을 테니.”
메르카도에 도착한 이후, 살라딘이 얼굴을 찌푸리고, 애쉬의 표정이 창백해진 이유.
그 이유는, 메르카도에 도착한 이후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흠, 확실히 다시 보아도 그다지 좋은 광경은 아니네.’
과거,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상단을 운영했던 나였던 만큼. 메르카도라는 큰 시장에 오지 않았을 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은 여전히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메르카도의 거리에는 철창으로 된 우리가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우리에는 쇠사슬로 손발이 구속된 노예들이 적게는 몇 명, 많게는 몇십 명씩 뒤엉켜 있었다.
대체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씻었던 것이 언제인지, 하나같이 지저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초췌했었고, 피골 또한 상접해 있었다.
일반적인 저잣거리의 시장에서 팔리는 개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
그 악랄한 신성제국에서조차 노예들에게도 최소한 삼시 세끼의 식사와 3일에 한 번씩 목욕의 기회는 제공했었건만.
물론 과거의 연맹국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연맹국들의 노예시장이 사라지고, 음지에서 확장된 노예시장이 주류가 된 이후로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망할 광경도 뿌리를 뽑아 버려야겠군.’
최소한 그 시점과 장소가 지금 이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타국인 샤론 왕국이며, 나는 타국 명문가의 자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공주님께서는 이런 대우를 받지 않을 거라니. 뭐, 뭔가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직도 새하얗게 질려 있는 애쉬가 내게 되물어왔다.
하긴, 숲속에서 살던 엘프들이 언제 이런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겠는가. 아마도 이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겠지.
“간단해. 진정하고, 다시 한번 천천히 주위를 둘러봐라. 저 많은 철창들 안에 너희 같은 엘프나 드워프들이 있나?”
내 반문에 그제야 엘프들이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
“그, 그러고 보니…!”
당연히 없을 수밖에.
귀할수록 비싸게 파는 건 상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이곳에 있는 노예들은 대부분 신성제국과의 국지전에서 사로잡은 제국의 병사들이나, 퍼니시 군도와의 해전에서 나포한 해적선들의 선원들 같은 인간들뿐이야.”
나는 엘프 레인저들을 스윽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본적으로 너희처럼 지성이 있는 아인족들은 저들과는 몸값에 붙는 단위 자체가 달라.”
내 말에 레인저 부대원 중 하나가 애쉬의 귀에 속삭였다.
“대장님, 확실히 철창 안에는 인간들, 그중에서도 남자들 외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후드 안에서 애쉬의 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들었지? 너희들은 그런 아인족들 가운데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엘프들. 그렇다면 이런 짐승 취급은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지.”
나는 메르카도의 중심 광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다면 너희같이 귀한 아인족들은 어떻게 할까. 보다 대대적인 홍보와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흥행성이 높은 경매만 한 게 없겠지.”
“……!!”
“뭐, 또 본의 아니게 물건 취급해 버렸지만.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사회가 흘러가는 구조가 그렇다는 뜻이야.”
애쉬와 레인저들에게 천천히 설명을 해주며 얼마나 발걸음을 옮겼을까.
과연 노예들의 상태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주요 부위만 가리고 있던 짐승이나 다름없던 노예들의 복장이 점차 잘 갖춰졌으며.
각 철창마다 존재하는 노예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입구 측에 인간 남성들만 있던 것과는 달리 여성 노예나 아인족들처럼 점차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단순 노동이 아닌 암살, 기습에 특화된 확실한 쓰임새에 최적화된 노예들 역시 나타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어느덧 메르카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돔형 건물에 도착했다.
경매장, 코삭스(Cossacks).
메르카도의 시작부터 오랜 역사를 함께한, 음지의 노예시장이 얼마나 성업을 이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건물이었다.
“이곳에 우리 공주마마가…!”
애쉬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이 굴자, 나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말렸다.
“기다려. 여기는 메르카도에서도 제일 핵심적인 장소야. 여기에서 거래되는 노예들 하나하나가 저잣거리의 상품들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아.”
애쉬는 내게 잡힌 덜미를 격하게 뿌리쳤다.
“당연히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관리되고 있겠지. 그렇게 무식하게 밀고 들어가봐야 너희 공주마마는 얼굴을 보기도 전에 빼돌려질 거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애쉬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건가!”
“손가락만 빨긴 뭘 빨아.”
나는 품 안의 신분증을 천천히 꺼내 애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당당하게 손님으로 들어가서 우선 상황부터 파악해야지.”
코삭스에서 취급되는 노예들을 사는 이들은 그 가격이 가격인 만큼, 대부분이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귀족들 중에서도 정점에 가까운 집안의 아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코삭스 입구로 천천히 다가가자, 입구의 경비병들이 들고 있던 거대한 헬버드를 교차시키며 입구를 막았다.
“정지! 이곳은 코삭스 경매장. 신원이 불분명한 자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처음 뵙는 얼굴입니다만, 신원을 밝혀 주시겠습니까?”
고작해야 노예시장이나 관리하는 경비병이라 하기에는, 어지간한 영지의 정예병 못지않은 군기.
‘코삭스는 코삭스라는 건가.’
나는 그런 경비병에게 슬쩍 다가가 내 신분증과 함께 품에 있던 작은 주머니를 경비병에게 내밀었다.
“수고가 많아요. 나는 이케니아 왕국 카르비어트 백작가의 삼남, 제롬이라고 해요.”
“카르비어트… 방패가?!”
내가 내민 신분증을 확인한 경비병들이 잽싸게 교차했던 헬버드를 치웠다.
“몰라뵙고 실례를 범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에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런데 제가 듣자 하니.”
나는 웃으며 경비병들의 긴장을 풀어준 후 은근하게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주 끝내주는 엘프가 들어왔다고 해서 이리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헛! 벌써 소문이… 아니, 죄송합니다. 경매장의 매물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스윽.
나는 주머니를 하나 더 내밀며 경비병에게 친근함(?)을 표현했다.
경비병도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조금씩 얼굴에 긴장이 풀려갔다.
“헛! 감사합니다, 공자님…! 흠흠, 원래는 이런 건 말씀드리면 안 되지만, 저희가 범한 무례도 있고 하니 살짝만 말씀드리자면.”
살짝 주변을 둘러본 경비병이 귀엣말을 건넸다.
“코삭스, 아니 메르카도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미모를 가진 엘프가 나온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요?”
빙고. 찾았다.
“예, 장주님께서 그 엘프의 경매가가 대체 얼마까지 오를지 모르겠다며 벌써부터 희희낙락하셨습니다. 공자님께서 아마 낙찰받으시려면 꽤나 고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친근함의 표시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경비병은 묻지도 않은 것까지 술술 불어왔다.
“오호라. 이것 참, 저도 주머니를 털 각오를 해야겠네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스윽.
친절하게도 정보를 준 경비병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내가 한 번 더 경비병에게 성의를 표하자, 경비병 역시 그에 화답했다.
내 뒤의 일행들에 대해 별다른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안으로 들여보내준 것이다.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보여줘야 표시가 된다니까.’
경매장 입구로 들어서자, 하인들이 입구에서 얼굴을 가릴 가면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있었다.
“저희 코삭스 경매장에서는 입찰을 희망하시는 분들의 철저한 신원 보장과 더불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철저히 방지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가면에 대해 항의하는 이들을 보며 하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호구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사실은, 그냥.
뒤가 구린 놈들의 저열한 욕망을 들키는 게 싫었을 뿐일 테니까.
우리 일행이 경매장에 앉은 후, 나머지 자리에도 가면을 쓴 이들이 빽빽하게 자리에 위치하자.
천장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단상 위의 이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다.
“오늘도 코삭스 경매장을 찾아주신 각계각층의 신사숙녀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의 경매 주관을 맡은 사회자, 노르만입니다.”
노르만이라 이름 밝힌 중개인이 좌중에게 우아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자, 환호성 없는 박수 소리가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후후후, 반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경매도 입찰자 여러분을 위한 귀한 매물들로 가득 채워왔으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철그럭!
노르만의 소개가 끝남과 동시에, 조명이 쇠사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옮겨갔다.
“크아아아아아아!!”
눈부신 조명에 자극을 받은 첫 번째 매물, 라이칸스로프는 거친 포효성을 내며 쇠사슬을 끊으려 애썼다.
감히, 위대한 달의 일족인 자신을 한낱 구경거리로 만든 이들을 단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입찰자들은 물론, 라이칸스로프의 바로 옆에 있던 노르만조차 조금도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네! 첫 번째 매물은 바로, 드래곤 산맥 남부 중턱을 지배하는 아인족, 라이칸스로프입니다! 아주 어렵게 포획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요, 보시다시피 상처 하나 없는 상등품입니다!”
라이칸스로프가 날뛰면 날뛸수록, 그 부분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워 가격을 올리기 바빴다.
“달의 일족이라 불리며 오크, 트롤 등도 찢어버리는 강한 전투력을 가진 라이칸스로프!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그 어떤 용병보다 든든한 호위가 아닐 수 없겠군요! 자, 시작가 100골드부터입니다.!”
“150골드!”
입찰자들이 하나씩 카드를 들며 입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180골드!”
“200골드!”
“네! 200골드까지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입찰자분은 안 계십니까?”
“…….”
“…….”
“네! 그럼 200골드 세 번을 외친 후 첫 경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00골드, 200골드, 200골드.”
땅!
경매의 낙찰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라이칸스로프가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미술품 경매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품이 살아 있는, 아인족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게, 엘프들의 공주가 매물일지 모르는 경매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