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뿌드드드드득.
경매가 진행됨에 따라, 나는 애쉬의 치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잠자코 앉아 있던 엘프, 애쉬의 입가에서 끊임없이 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아니, 자세히 보면 애쉬뿐만 아니라 모든 엘프들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공주마마께서, 저런 취급을 받고 계시단 말인가…!”
처음 등장했던 라이칸스로프를 시작으로, 코삭스 경매장은 그 명성이 결코 헛소문이 아니라는 듯 다양한 상품들을 경매에 올렸다.
바다의 일족이라 불리는 세이렌부터 드워프까지. 심지어 신성제국과의 국지전에서 붙잡은 사제들까지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이들을 노예로 잡은 걸까 싶을 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엘프들이 저렇게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겠지.
경매장의 상품들은, 하나같이 목과 팔다리에 마나를 구속하는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손목, 발목 등이 쇠사슬에 쓸려 피가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대우. 그 때문에, 엘프들은 자신들의 공주 역시 같은 대우를 받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나는 그런 엘프들을 필사적으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경거망동하지 마. 아까도 말했다시피, 가장 좋은 방법은 너희 공주를 낙찰받아서 끝내는 거니까.”
“공주님께서 저런 꼴을 당하실지 모르는데, 보고만 있으라는 소리인가!”
아, 이놈 참. 같은 말을 몇 번씩 하게 만드는 건지.
“그럼 어디 네 마음대로 전부 뒤엎어 보든지. 지금 당장 저 사회자 머리통에 화살 한 방 시원하게 꽂아봐. 내가 장주라면 너희 공주부터 잽싸게 숨길 거야. 가장 귀한 상품이니까. 이 사실을 나중에 너희 공주가 알게 되면 아주 좋아하겠군.”
나직한 나의 말에, 활로 향하던 애쉬의 손이 다시 한번 멈췄다.
“…공주마마를 물건 취급하는 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정녕 공주마마를 가장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길이라면…!!”
초인적인 인내로 다시금 화를 억누르는 애쉬와 엘프들.
그런 그들의 속 끓음이 딱했던 걸까. 머리를 식히라는 뜻인지, 경매장의 사회인 노르만이 1부 경매의 종료를 알렸다.
“자! 경매장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네요! 그럼 이쯤에서 1부 경매를 마치고, 30분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어서 2부 경매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옆에 앉은 애쉬의 어깨를 치며 엘프들을 달랬다.
“방금 들었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왕 지금까지 참은 거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알겠다.”
어휴. 어린애들 달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 * *
“빌어먹을!”
와장창!
코삭스 경매장의 사회인 노르만은 경매장 뒤편에 쌓아둔 박스들을 거칠게 걷어찼다.
라이칸스로프부터, 세이렌, 드워프까지.
평소보다 훨씬 화려한 상품들이 가득해서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성공을 올릴 것이라 여겼건만.
소문난 파티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였던가.
입찰자들은 상품들에 생각보다, 아니 훨씬 박하게, 지갑을 열지 않았다.
“제기랄, 쪼잔한 새끼들. 평소보다 훨씬 좋은 물건들로 준비해 줬으면 알아서 지갑을 처열 것이지, 왜들 이렇게 아끼고 지랄이야?”
이번 경매의 사회를 맡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밑밥을 들였던가.
사회를 보는 대가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은 총경매 대금의 2%.
이번 커리어를 위해 코삭스의 주인에게 바친 금액을 생각하면, 이 상태로는 투자한 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리라.
“안 돼. 이대로 가면… 내 커리어는 끝장이다.”
이런 굵직한 경매에서, 그것도 코삭스에서 흥행을 실패한다면.
메르카도에서 노르만이 설 곳은 없었다.
‘아니, 경매가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분께서 날 가만두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노르만은 자신도 모르게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코삭스의 주인.
그 사람이라면, 자신 정도는 언제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노르만은 무언가 결심한 듯, 천천히 ‘상품’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부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30분이 지나고, 경매가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다.
1부의 경매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2부의 경매 상품은 계속해서 ‘엘프’들만 나왔다는 점이었다.
“500골드!!”
“600골드!!”
1부와는 금액의 단위, 그리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땅!
“네! 600골드, 낙찰되었습니다!”
1부의 침울했던 분위기와 달리 노르만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사회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네.’
오늘 경매에 방문한 이들은 대부분 소문을 듣고 온 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엘프에 모든 자금을 쏟아붓고 싶었겠지.
그러니 1부의 경매가 인기가 없던 것이다.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을 터.
노르만은 그래서 전략을 바꾸어, 2부의 경매를 모두 엘프로 꾸리기로 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아름답다. 그러니, 실제로 보지 않은 이상 미모만으로 어느 엘프가 공주인지는 알 수 없는 일.
그 점을 교묘히 파고든 노르만은 다른 상인들이 보유하고 있던 엘프를 가불하여 와서 경매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프들의 소개를 애매하게 했다. 누가 공주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 결과, 입찰자들은 혹시 자신이 낙찰받은 엘프가 엘프들의 공주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평소보다 높은 금액들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1부에서 본 손해는 메우고도 남았군. 흐흐, 역시 난 천재야.’
그러나 노르만은 미처 몰랐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부린 잔꾀로 인하여, 경매장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아이야?”
“…아니, 아니다. 저 아이 역시…평범한 아이다.”
신이 나서 경매를 진행하는 노르만과 달리, 그런 경매를 지켜보는 애쉬의 눈은 붉게 충혈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우리의 동포들이… 이렇게나 많이… 이렇게나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던 것인가.”
애쉬는 동포들의 처참한 현실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직, 그들의 공주가 경매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인간,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그래, 말해.”
애쉬의 눈이, 사회자 노르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놈… 저놈만큼은 벌하게 해다오.”
“…그래.”
엘프 공주가 누구인지 모르는 다른 입찰자들은 계속해서 입찰을 받으며 예산을 소비하는 것과 달리, 우리 일행은 단 한 번도 입찰을 하지 않았다.
저들이 공주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오로지 단 한 번의 입찰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래.
가장 쉬운 방법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율리우스에게 받은 2만 골드 중 아버지께 약속받은 내 지분, 1만 골드.
앞으로 생각해둔 그림을 대비해 마련한 목돈이었지만, 계산 결과 여유분으로는 4,000골드까지는 예산을 쓸 수 있었다.
지금 경매를 봐서도 알겠지만, 통상적으로 엘프들의 평균가는 1,000골드를 넘지 않았다.
공주라는 프리미엄으로 인해 금액이 조금 더 붙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엘프 하나를 사는 데 4,000골드 이상을 부르는 미친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엘프 공주를 인수받고 난 후부터는, 깽판을 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 정도 몸을 내뺄 자신은 있었으니까.
애쉬가 말하는 부탁은, 그 깽판에 저 사회자 머리에 화살을 박는 거 하나를 추가해달란 말이겠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1분이 1시간 같은 2부 경매가 진행된 지 한참이 지나자, 사회자 노르만이 주위를 환기시키며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2부 경매, ‘엘프 특별전’도 슬슬 끝을 향해 가고 있네요! 자. 그러면 슬슬 오늘 경매의 취지에 맞는, 대미를 장식할 메인이벤트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우우우우우우!”
경매가 시작된 후 단 한 번도 큰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경매장에 엄청난 환호성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환호성은 여태껏 엘프들을 낙찰받지 못한 자들로부터.
그리고 야유는 노르만의 공주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소개로 인하여 낙찰을 받은 자들로부터 말이다.
‘어차피 낙찰을 받지도 못했던 이들은 자금이 그 정도도 되지 못할 테니 상관없겠지.’
어차피 환호성이든, 야유든 다 똑같은 저열한 목적을 가진 놈들이었다.
“그러면 소개합니다! 마수의 숲을 지배하는 잠자는 거인, 엘프! 그들의 여왕이 애지중지하는 딸!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신용 하나로 먹고사는 노예사냥꾼들이 직접 보증한 엘프들의 공주, 밀리아 미네르바입니다!”
노르만이 소개했던 ‘상품’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밝혀진 엘프. 그만큼 코삭스 경매장에서 신경을 쓰고 검증해서 진행한다는 뜻이었다.
노르만의 소개가 끝나고.
찰그락.
지금까지 팔렸던 엘프들처럼, 작고 연약한 쇠사슬 소리가 경매장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엘프가 나타나자.
“…….”
“…….”
경매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노르만의 보증이 아니더라도, 경매장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저 엘프는, 공주가 맞노라고.
지금까지 공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던 평범한(?) 엘프들과 달리, 지금 무대에 올라온 밀리아의 미모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으니까.
침묵 속에서 기묘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잠시 음미한 노르만이 선언하듯이 말했다.
“자! 엘프들의 공주라는 프리미엄! 이것은 오직 한 명에게만 내려진 특권입니다! 이 특권의 값어치를 생각하여, 경매가는 2,00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
올라오던 기이했던 열기가 싸하게 식어갔다.
2,000골드라는 금액에 입찰자들은 경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들려던 입찰 카드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방패가라 불리는 우리 가문의 1년 치 예산과도 맞먹는 금액이 시작 금액이었으니 말이다.
쉽사리 호가를 올릴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저 사회자 노르만은 고조된 분위기에 취해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
‘차라리 누가 공주인지 밝히지 않았어야 했어.’
비슷한 나이의 엘프들을 경매장에서 판매한 것처럼, 공주 또한 밝히지 않고 경매를 진행했다면.
아무리 궤를 달리하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저 ‘추측’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왕 역시 쉽게 추궁하지는 못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장소에서 엘프 공주라고 ‘공식적으로’ 공언을 해버린 이상, 아무리 보안을 유지한다고 해도 낙찰받은 이가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과연 몇이나 되는 세력들이 마수의 숲을 지배하는 여왕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좁은 귀족 사회에서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부분만이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좋아. 계획이 훨씬 더 수월해지겠군. 그럼….’
스윽.
나는 천천히 입찰 카드를 들고 밀리아를 낙찰받으려 했다.
어차피 우리야 상관이 없었다.
밀리아를 낙찰받은 후 마수의 숲에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경매장의 사회인이 욕심에 눈이 먼 덕에 좀 더 쉽게 일이 끝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던 그때.
내 손보다, 누군가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입찰 카드를 들어올린 그 누군가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2만 골드!!”
네?
얼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