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65)
제265화
“호오, 그건 또 무슨 기술이지? 아직도 나한테 보여줄 게 남아 있었나?”
발락의 두 눈이 반짝인다.
마치 생일날 선물 포장지를 뜯어보기 전 기대하는 아이와 같은 눈빛.
“…….”
그 감정이 생생히 전달되자, 제롬은 발락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신은, 아무런 감정도 없나?”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주변 전황을 봐라. 당신이 자랑하던 사령들은 하나둘 쓰러지고 있어. 모든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기울어가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군소 해적단들조차 저 멀리서 람팡이 정리 중이야.”
제롬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발락은 자신에게 동료들이 걱정되지 않는지 초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말했었다.
그땐 그래도 이해했다. 실제로 객관적인 전력은 해적왕 산하 사령들의 전력이 훨씬 더 강했으니까.
그렇기에, 믿었던 이들이 그 어려움을 딛고 승리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말은 거꾸로 말하면.
발락의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은’, ‘전혀 예상치 못한’ 패배를 겪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옥좌에 오른 이라 하여도 절로 조급함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자는.
어째서.
“그럼에도 당신은, 부하들의 죽음에 어떻게 그렇게 평온할 수 있지?”
스스로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의 질문을 멍하니 듣고 있던 발락은 이내 광소를 터뜨렸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고작, 고작 그런 이야기였나?”
“……?”
정말로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까지 보이는 발락. 더더욱 이자에 대한 이질감이 커져갔다.
이자는 단순히 인성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자는, 무언가 인간으로서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사령이니 뭐니 해도, 결국 나를 대신해 움직일 손과 발인 도구일 뿐이다. 하물며, 범선들의 패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모두 다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다. 중요한 건, 바로 이 몸이다.”
대검을 쥐지 않은 손이 스스로를 가리킨다.
“내가 곧 군도이며, 군도가 곧 나다. 하찮은 아랫것들의 전황 따위는 여흥에 지나지 않아.”
“……!!”
발락의 말 속에서, 예전에 경험했던 기시감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오크들의 침략에도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던 숲의 여왕.
당시의 파울로 역시도, 이와 비슷한 선택을 내리지 않았던가.
‘벽…!!’
옥좌에 오른 이라고 모두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그들 사이에도, ‘격’은 존재했다.
그 미세한 격의 차이. 그것을 뚫기 위해서는, 옥좌에 오른 이들 또한 끝없이 노력하고, 계속해서 정점을 궁구해야만 한다.
그 벽을 뚫지 못한 자, 그 벽의 무게에 가로막혀 절망한 자들이 스스로의 욕망에 잡아먹히게 되는 증상.
세상은, 이를 입마(入魔)라 불렀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 발락의 반응들. 그 반응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온 게 아니었다. 발락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슈르르르르르륵!
수면 위의 바닷물이 일어나 발락의 대검을 천천히 휘감았다.
“나는 해적왕이다. 남해의 별처럼 많은 군도의 지배자이며, 남쪽 바다의 주인이 바로 이 몸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나의 승리란 곧 군도의 승리나 마찬가지.”
콰악!
수기(水氣)를 듬뿍 머금은 대검을 발락이 두 손으로 움켜잡자 내 광권과 비견되는, 아니 그 이상의 막대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쿠우우우우우!
“옥좌에 오른다는 건, 이 세상을 이루는 한 축이 된다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절대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라.”
“…….”
역시.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자는, 과거의 파울로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고장 나 있었다.
오랜 세월 남해를 지배하며 기세를 떨쳐왔던 왕. 하지만 더 넓은, 더 높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벽에 가로막힌 끝에 망가져버린 것이다.
“…역시, 당신에게는 옥좌라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아.”
적어도 파울로는, 비록 뒤틀렸다 하더라도 그 저변에는 엘프들의 번영이라는 대의(大義)가 있었다.
하지만 이자는 그보다 더욱 질이 좋지 못했다.
그러니.
부수고, 쟁취해갈 것이다.
우우우우웅!
한층 더 빛을 발하는 주먹과 반대로, 피부는 점점 칠흑처럼 검게 물들어갔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발락 역시 느낀 것일까.
발락의 흉측한 미소가 한층 더 진해진다.
“큭큭큭큭큭! 재미있군. 어디, 가져가 볼 수 있다면 가져가 보아라.”
발락의 대검을 휘감은 바닷물 줄기는 점점 그 크기를 키워 어느새 거대한 한 마리의 뱀이 되어갔다.
“괴, 괴물….”
“다들 대피해라!”
범선조차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뱀. 저 뱀의 몸이 모두 오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주변의 배들이 허겁지겁 대피하는 것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감히, 이 내가 있는 군도를 정벌코자 한 오만함과, 권태로움에 빠져 있던 나를 흔들어 일깨운 죄. 이 모든 것을 후회하며, 사라져라.”
발락의 대검을 중심으로 똬리를 튼 뱀은, 그의 검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락과 내 사이에 있던 바다가 갈라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인식 영역을 벗어난 굉음이었기에. 똬리를 푼 뱀이 광포한 기운을 흩뿌리며 나를 잡아먹기 위해 그 독니를 드러냈다.
-샤아아아아아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귓가에는 실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발락의 심상기(心想技), 우로보로스인가.’
아버지께서 하늘마저 막아낼 방패를 가지고 있듯이.
카밀 공작이 빛마저 잘라낼 검을 가지고 있듯이.
파울로가 바람마저 꿰뚫어낼 화살을 가지고 있듯이.
옥좌에 오른 이들이, 자신의 심상 속 벽을 무너뜨렸을 때 비로소 손에 얻을 수 있다는 필살의 기예.
심상기(心想技).
발락의 심상기는, 바로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뱀이었다.
우로보로스(Uroboros).
너무 강해 적수를 찾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탐욕과 권태를 이기지 못해 끝끝내 스스로를 잡아먹고 자멸해버린 신화 속 거대한 뱀.
실로 발락에게 어울리는 심상기이지 않은가.
권태에 빠져 웅크리고 있던 그가, 델로라는 호적수가 움직임에 따라 오랜 잠에서 깨어나 나를 만났고.
마침내 자신을 제외한 군도의 해적들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가오는 거대한 뱀의 머리를 보며 두 주먹을 움켜쥔다.
‘보여주지.’
내가, 심상의 세계에서 벽을 깨며 얻어낸 것들을.
짓쳐들어오는 우로보로스의 두 이빨을, 빛나는 두 손으로 틀어막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해수면을 쓸다시피 하며 속절없이 밀려나는 육체.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쿠우우우우!
두 주먹에 모인 빛은, 한층 더 밝아진 채 점차 압축되어 종래에는 손 위에 한 꺼풀의 막을 씌운 것과 같이 정제되었다.
오러로 만들어진 거대한 뱀이 독니를 드러내며, 내 손과 육체를 탐하려 했다.
짓쳐들던 몸의 방향을 바꾸어 수면 아래로 몸을 강하하는 뱀.
뱀의 이빨을 잡고 있던 나 또한 자연스럽게 바다 안쪽으로 끌려들어 갔다.
쿠르르르륵!
밀려오는 물살과 온몸을 짓누르는 수압. 호흡을 멈춘 채 눈을 반개하며, 벽을 깼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벽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깰 수 있는 건가.
-애초에, 깰 수는 있는 것인가.
-나는 옥좌에도, 4단계에도 오르지 못하는 한낱 범부(凡夫)인가.
-그렇다면,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끝없는 번뇌. 계속되는 자괴감.
그 끝에서, 나는 마침내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아니, 이 대륙이 생긴 이래로,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카밀 공작보다 검을 잘 다루지 못하고.
카밀은 파울로 여왕보다 활을 잘 쏘지 못하고.
파울로는 바쿠스 백작보다 굳건한 방어를 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보다 강하지만, 나보다 이종의 힘을 잘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절대 방어를 손에 넣었고, 카밀은 빛조차 벨 수 있는 검을 얻었으며, 파울로는 신기에 다다른 궁술을 손에 넣었다.
그들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답은 뻔했다.
과거로 돌아와, 무려 대륙 역사상 최고의 괴물로 평가되는 이바렐라를 막는 일이었다.
그녀야말로, 현존하는 대륙의 인간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
나는 그런 그녀를 막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세상에 완벽한 이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완벽해져야만’ 한다.
금강역사로 두른 황금빛의 오러가, 발락의 대검을 감싼 오러, 우로보로스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형상화해 간다.
대륙 최고의 인재인 이바렐라를 막고자 하는 나의 마음.
나 또한, 대륙의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그 마음.
대륙의 최고가 될 자가, 고작해야 이런 성벽 하나도 무너뜨리지 못해서야 안 될 말이었다.
그러니.
나의 심상이, ‘완벽한 나’라는 인간을 그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 왕국, 나아가 이 대륙에서 가장 완벽한 인재가 되고자 하는 심상.
그것이, 바로 벽을 넘으며 내가 찾아낸 해답이었다.
‘심상기, 국사무쌍(國士無雙).’
터어억!
우로보로스에 밀리지 않는 거대한 철탑 거인의 형상이, 우로보로스의 입을 위아래로 움켜쥔다.
찌지직!
이빨을 쥔 손에서 피가 흐르고, 몸을 휘감은 우로보로스의 압력에 철탑거인의 몸 곳곳이 으스러져 간다.
찌지지지직!
거인의 형상에 상처가 생기고, 뼈가 부러지고, 독니가 박힌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움켜쥔 손을 풀지 않는다.
나라에 견줄 이가 없는 인재.
전 대륙에서 가장 완벽한 인재는.
‘나는, 겨우 이런 곳에서 쓰러지지 않는다.’
쫘아아아아아악!
철탑거인의 우악스러운 팔이, 우로보로스의 입부터 꼬리까지 그대로 반으로 찢어버렸다.
“……!!”
자신의 심상기가 부서지자 발락의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신화 속 뱀을 찢어버린 거인의 거대한 일권(一拳)이, 하늘을 수호하는 천계의 장군이 내리는 벌처럼 발락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
비산하는 물방울.
하늘 끝에 닿을 것처럼 높게 튀어 오른 물줄기 속,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뱀과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있던 철탑거인의 모습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이윽고 내려앉은 물줄기와 사라진 형상 속.
나를 향해 대검을 내려친 발락과, 그의 대검을 막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발락의 복부에 수도(手刀)를 관통시킨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러를 두른 주먹에도 무너지지 않던 굴강한 신체를 자랑하던 발락이었지만, 지금 그의 내부는 이미 곤죽이 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즉사, 아니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일격이었다.
단지, 강인한 신체와 심후한 오러로 여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심상기를 얻었던가.”
발락이 입가에 핏줄기를 머금은 채 담담히 물어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큰 발락이었기에, 자연히 고개를 들어야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대화와 행동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맑고 투명한 눈빛.
어째서일까.
“…운이 좋았습니다. 당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거든요.”
지금까지와 달리, 그에게 반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후후후! 단순히 노력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난 만만한 인간이 아니야. 자네의 재능이 출중한 것이지. 과한 겸손은 나와 군도에 대한 모욕이야.”
“…….”
“축하하네. 이제, 내 자리는. 자네가 차지하겠군.”
발락의 목소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평온했다.
“…벗어, 나신 겁니까.”
“후후! 그게 무슨 의미인가.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락한 삶을 살아왔어. 이제 와서 착한 척하며 딱하게 최후를 맞이할 생각은 없네.”
“…….”
“그래도, 삶의 절반 이상을 미몽(迷夢) 속에서 헤매던 나를 깨워 주었으니 자네에게 한 가지 조언은 해주지.”
“…….”
“자신에게… 잡아먹히지 말게. 자네를 가로막고 있는 벽 앞에서 절망하지 마. 찬란한 재능을 가진 자일수록, 마주하는 벽 앞에서 느끼는 절망은 거대해짐이니.”
“명심하겠습니다.”
스윽!
발락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길어진 전투에 어느새 노을이 진 바다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 바다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어쩌다 이렇게 변질된 것인지.”
“…….”
“내,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말씀하시지요.”
“쳐들어간 주제에 면목이 없다만, 군도의 해적들을… 받아줄, 수 있겠나.”
굳건했던 발락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역시 삶의 전부를 군도에서 보내온 이였다.
혼탁한 군도를 바꾸고자 젊은 시절을 다 바쳤지만, 결국 미몽에 빠진 그는 되레 역대 최악의 군도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지금 그는, 자신이 지었던 죄를 나에게 대신 용서해줄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보셨지 않습니까. 마르텔이 당신에게 반기를 든 것을. 이미, 그들과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래도, 자네의 입에서. 듣고 싶군.”
여전히 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발락을 보며, 나는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은 죄가 많은 해적들 전부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군도의 근원을 뽑지는 않겠습니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약속의 전부입니다.”
나를 믿고 따른 해군들과 지원해준 많은 이들 역시 이 바다에 몸을 누였다. 발락의 부탁을 덜컥 들어주는 건,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거면 되네, 그거면.”
씨익!
발락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의 흉악했던 미소가 아닌, 바다를 품은 남자의 시원한 미소였다.
“마르텔… 그 아이는 분명 똑똑한 여인이다. 많은 부침이 있더라도, 그 아이라면. 분명 잘, 해결해, 가겠지.”
발락의 말이 점점 끊어진다.
스윽!
그가 대검을 나에게 내밀었다.
“받아, 주게나.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발락의 대검.
분명 군도의 희귀한 광물로 만들었다는 대륙 절세의 명검이라고 했던가.
턱!
“감사히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내 모든 짐을 벗어던졌다 생각한 발락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비록, 오랫동안 뒤틀린 삶 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제법 나쁘지 않았군.”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발락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중앙 전선. 군도의 왕이자, 옥좌의 주인인 해적왕, 발락.
코란토스 협곡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