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274)
제274화
오시리스의 국경지대, 얀.
그곳에 한 무리의 일행이 도착했다.
“이야, 여기가 말로만 듣던 오시리스 왕국인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색다르구만!”
두리번두리번!
“어휴, 살라딘 아저씨. 창피하니까 그만 좀 해요.”
시골에서 갓 도시로 상경한 촌뜨기 같은 살라딘의 모습을 보다 못한 미샤가 핀잔을 날렸지만, 살라딘은 콧방귀를 흘렸다.
“헹! 입에 흐르는 침이나 닦고 말해라. 너, 저 간식 보고 있었던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뭣…!”
그렇다. 살라딘이 유독 오두방정을 떨기는 했지만, 세트와 제롬을 제외한 다른 이들 모두가 신비한 오시리스 왕국의 풍경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심지어 람팡마저도 말이다.
“난 오히려 저놈이 더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색다른 광경을 보면서 저렇게 태연하지? 혹시 여기 와본 적 있냐?”
살라딘이 제롬에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시리스 왕국은 그만큼 대륙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문화나 건축 양식은 말할 것도 없었고, 하물며 신화나 전설마저도 독자적으로 파생되었으니 볼거리가 넘쳐났다.
그러니 대륙 곳곳을 돌아다닌 살라딘이나 람팡마저도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공적인 일로 방문했다손 치더라도, 외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건만.
제롬은 마치 현지인처럼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있던 것이다.
‘와본 적은 없지, 당연히.’
하지만 오시리스 왕국에 대한 묘사는, 전생에 지겹도록 들어왔었다.
-그거 아나? 우리 왕국은 다른 왕국들과 정말 그 모습이 달랐어. 크으… 언젠가, 제국을 무너뜨리고 왕국을 재건하면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군.
스티그마 용병단에 합류했던 세트가, 술만 마시면 하던 이야기가 멸망하기 전 오시리스 왕국의 모습이었으니까.
제롬은 태연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과거의 동료이자 현재 옆에 있는 세트가 질리도록 말했던 왕국의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고 있었던 것뿐.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롬은 본심을 숨기고 괜히 살라딘에게 핀잔을 날렸다.
“…어휴, 촌뜨기.”
“뭐, 뭠마?”
그런 우리의 반응이 재미있던 걸까, 아니면 고향에 돌아와서 마음이 편안해진 걸까.
“하하하! 괜찮아, 제롬 남작. 우리 가문을 처음 찾아온 대부분의 외지인들이 보이는 반응이니까.”
일행들의 반응에, 세트는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다시피 우리 왕국은 타 왕국들과 달리 이종의 힘을 받아들인 시간이 제법 오래되었지. 그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 한때는 교류가 끊어졌던 시절들도 있었어. 그 시절 독자적으로 발달한 문화 덕분에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지. 이 풍경은 우리의 자부심이야.”
뿌듯한 얼굴로 국경지대를 바라본 세트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기왕 시간도 이렇게 되었으니, 오늘은 얀에서 묵고 가는 것이 어떻겠나?”
“엥? 굳이 국경지대에서?”
세트의 말에 살라딘이 의문을 표했다.
오시리스 왕국의 모습이 워낙 독특해서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국경지대는 일반적으로 타국의 첩자를 막기 위해 그 분위기가 삭막한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히 음식이나 시설 등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없다면 곧장 마법진을 통해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 하지만, 지금 가려는 가게는 이 지역, 얀에서도 명물로 손꼽히는 가게야. 수도에서도 이런 가게는 찾기 힘들 정도지.”
“그런 가게가 왜 국경지대에 있는 거야? 불칸 후작가나 수도 같은 번화가로 가면 돈을 쓸어 담을 텐데, 굳이?”
세트가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가게 주인이 좀 재밌는 사람이라 말이야. 오시리스 왕국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며 국경지대인 얀으로 발걸음을 자처한 인물이지. 아마,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이야, 정말 멋진 분이네요. 누구처럼 돈만 생각하지도 않구.”
“미샤, 자꾸 까불래?”
살라딘과 미샤가 투닥거리는 사이, 제롬이 세트에게 조용히 물었다.
“괜찮겠어? 이슈바르 님의 건강이….”
“하루 정도는 괜찮아. 게다가 이 지역은 청류 계파의 영역이니까, 갈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 그렇다면야.”
아무리 여기까지 마법진을 통해 움직였다고는 하나, 올리비아에서 필라도르를 거쳐 오시리스 왕국까지 움직였다.
오늘 밤 정도는 여기서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 * *
찬드라의 월광.
오시리스 왕국의 수도 미하르잔에서 알아주던 요리사, 알카프가 직접 왕국의 국경지대인 얀에 차린 여관이었다.
그의 명성이 아깝지 않게, 그가 만드는 모든 요리는 지역을 평정할 정도의 맛과 풍미를 자랑하여 오직 찬드라의 월광만을 위해 오시리스 왕국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있을 정도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던 가게였다.
“…….”
그랬다. 그래야만 할 터인데.
휘이이이잉!
끼익, 끼익!
오래도록 관리가 되지 않은 탓에, 미풍의 작은 바람에도 입구의 문이 듣기 싫은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세트 공자, 여기가 정말 그렇게 맛집….”
“쉿. 아저씨, 제발 분위기 좀.”
세트는 생각도 못 했던 가게의 모습에 망연자실해 있었다.
“…이, 게. 도대체….”
자신이 올리비아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뜨끈한 항아리 닭요리를 차려주며 잘하고 오라고 응원해주던 가게였다.
벌컥!
“알카프! 어디 있습니까!”
가게 문을 거칠게 밀어젖히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세트.
그의 목소리가 온 가게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탓일까.
주방 안쪽 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요?”
힘, 아니 생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세트가 다급히 주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주방에서 술 냄새가 확 밀려왔다.
바닥을 나뒹구는 수많은 술병들, 그리고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의 노인이 주방을 채우고 있었다.
“알카프?! 이게 대체 무슨 꼴입니까?!”
세트는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알카프는 오시리스 왕국을 방문하는 타국 사람들에게 오시리스의 미식과 문화를 보여 주겠다는 이유로 스스로 국경지대, 얀이라는 험지에 자처해서 가게를 차린 이였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이 목소리는… 세트 공자님…?”
흐리멍덩하게 취기가 가득했던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세, 세트 공자님! 오오, 지, 진정 세트 공자님이십니까!”
세트의 얼굴을 확인하고 격앙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던 노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흐흐흐흐흑! 공자님, 어찌 이리 늦게 돌아오신 겝니까.”
“알카프, 대체 무슨 일입니까? 천천히, 천천히 얘기해 보세요.”
세트가 손수 떠온 물을 마신 알카프는 한참 동안이나 감정을 다스린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공자님.”
“어떻게 된 겁니까? 가게는 왜 이 모양이고, 알카프 당신은 또 왜….”
‘이렇게 망가진 겁니까.’라는 말을 차마 잇지 못하는 세트.
하지만 알카프라고 숨겨진 뒷말을 모를까.
“허허허, 많이 보기 흉하지요?”
알카프가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침묵을 지키자, 세트가 답답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그쳤다.
“말을 좀 해봐요. 아부다르 백작님은 당신이 이렇게 될 동안 대체 뭘 한 겁니까? 백작님이 당신이 이렇게 될 동안 가만히 계셨을 리가 없는데.”
아부다르 백작. 불칸 후작가와 마찬가지로 청류 계파의 뜻을 지지하는 변경백이었다.
비록 이종의 힘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대대로 왕국의 국경지대, 얀을 지켜온 역사 깊은 명가 중 하나였기에 불칸 후작가에서도 중히 여기는 가문이었다.
자애롭고 정이 많은 그가, 알카프가 이리 망가질 동안 방치해 두었을 리가 없었기에, 세트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흘흘, 아부다르 백작님 말씀이십니까….”
알카프의 표정이 더욱 슬퍼졌다.
“공자님이 떠나 계신 동안,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얀의 주인이 아니십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얀의 주인은, 이제….”
쾅! 끼이이이이익!
세트의 질문에 알카프가 대답하려던 그 순간.
녹이 슨 가게 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온 소음이 들려왔다.
“하, 이 엿 같은 문은 열 때마다 기분이 거지 같다니까.”
“연 게 아니라 찬 거 아니야?”
“뭐, 그게 그거지. 애초에 이걸 문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건 그렇지.”
낄낄낄!
딱 듣기에도 거북한 불한당들의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이놈의 영감탱이는 또 어디 처박혀 있는 거야?”
“뭐, 보나 마나 주방에 처박혀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겠지. 안 그래?”
“하여튼 노인네 똥고집은. 손님도 하나 없는 주제에 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건지.”
건들거리며 주방으로 향하는 이들. 누가 보아도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어? 뭐야. 손님이 있었네. 당신들, 영감 지인들이오?”
“…알카프. 이들이 관련이 있습니까?”
세트는 불한당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알카프에게 물었다.
자신의 물음이 씹혔다는 걸 안 걸까. 불한당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거, 사람 말이 먹는 것도 아닌데 꿀꺽 삼키는 취미가 있네. 여보쇼, 당신들. 보아하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나 본데, 지금 얌전히 나가시면 봐드릴게.”
“…아니다. 저놈들한테 물어보도록 하죠.”
제롬 일행이 움직이기 전에, 세트의 주먹이 더 빨랐다.
화르륵!
세트가 내민 주먹의 궤적을 따라 뻗어간 불꽃이 불한당의 가슴 한복판을 정통으로 후려쳤다.
“커어억!”
우당탕!
불꽃 주먹에 두들겨 맞은 불한당이 튕겨 나가며 가게의 집기들과 부딪힌 채 나뒹굴었다.
“뭐, 뭐야!”
“이런 씨발! 아디바가 당했어! 죽여버려!”
다른 불한당들이 분기탱천하여 단검을 꺼내 주방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제롬 일행이 조금 더 빨랐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 * *
“…그러니까, 지금 얀의 주인이 파이샬 자작이란 말인가?”
“예, 예! 맞습니다요!”
세트의 나지막한 질문에 불한당들의 고개가 미친 듯이 진자 운동을 반복했다.
‘이런 미친! 얘기가 다르잖아!’
자신들은 그저 이 목 좋은 가게를 꿀꺽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행패를 부린 것뿐이었다.
이런 괴물들이 얽혀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껄떡대지 않았으리라.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
스윽!
세트의 시선이 알카프를 향했다.
이 쓰레기들의 처우에 대한 것을 묻는 눈빛. 그 눈빛에, 알카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꺼져라. 다시 한번 내 눈에 보이면, 숯덩이로 만들어줄 테니.”
“예, 옙!”
우르르르르!
불한당들은 혹시나 세트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
세트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알카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아부다르 백작님이 다스리던 얀이, 파이샬 자작의 손에 넘어간 겁니까?”
“…영지전입니다, 공자님.”
영지전.
영주와 영주 간의 갈등을, 무력이라는 행위를 통해 풀어내는 행위.
지극히 단순한 해결책이지만, 영지전이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패자는 승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실로 가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고위 귀족은 하위 귀족들의 목숨줄을 빼앗았다는 비난에, 하위 귀족들은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기에 어지간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대륙의 상식이건만.
그 상식이 무너진 일이었다.
하물며 아부다르 백작은 변경백으로서,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해 파이샬 자작은 ‘청류’ 계파의 평범하디평범한 귀족.
그런 이가, 아부다르 백작의 얀 영지를 영지전으로 빼앗았다고?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요, 공자님.”
알카프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파이샬 자작이 율란 공작가의 지원을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
율란 공작가.
탁류 계파를 이끌고 있는, 명실상부한 오시리스 왕국의 최강 가문.
그들의 손이 닿았다면, 아무리 아부다르 백작이라도 당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파이샬 자작은, 변절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저희 가문이 견제 중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탁류의 세력이 강성해졌다고 해도, 타 영지에 원군을 보낼 만큼 여유롭지는 않을 터인데.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공자님. 하지만….”
부르르르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탓인지, 알카프의 손이 덜덜덜 떨려왔다.
“이 늙은이가 비록 이종의 힘을 익히지는 못했지만, 수도에서 수많은 흑사자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며 오랜 세월 익혀온 안목만큼은 쓸 만하다고 자부하고 있는바. 파이샬 자작을 도운 율란 공작가의 원군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단 20명.
알카프는 영지전에 나선 고작 20명의 흑사자들이, 아부다르 백작가를 휩쓸었다고 말했다.
그 전장 속, 유독 날뛰던 한 흑사자의 모습을 떠올리자 알카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피를 다루며 아부다르 백작가의 기사들을 미라로 만들어 버리던 그자를…. 율란 공작가에 그런 괴물이 있을 줄은….”
“……!!”
알카프의 마지막 말에, 제롬과 미르온의 눈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