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10)
제310화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조금 이상했다.
싸움의 시작부터,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변환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다리를 변환시켰다.
마치 변환을 ‘보라는’ 것처럼.
실제로 그 전략은 유효했다.
나는 그 여파에 무너진 성벽을 보며, 베라스가 심상기를 사용한 후 어마어마하게 강화된 신체를 절감했으니까.
그 후로도, 굳이 토벽과 흙창을 만들어 자신을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베라스의 연금이 가진 연성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깨달았다.
연성된 무기의 강화된 힘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는 베라스가 가볍게 전설 속의 무기들을 현실화하며 인과율의 법칙을 뛰어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이 모든 과정이 빠르게 이어지자, 나는 그만 속아 넘어간 것이다.
베라스가, 이 ‘모든’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베라스는 오로지 현실화된 신병(神兵)의 힘에 기대고 있었다.
즉.
베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속이기 위해 판을 깔아둔 것이다.
극도로 분노하여 심상기를 이끌어낸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베라스는 단지 분노한 척을 하고 있을 뿐이지, 냉철함을 잃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 계산하며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비로소 움직임에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베라스의 신병들은 분명히 파멸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검도, 화살도.
베라스의 무기술은, 아버지나 카밀, 파울로와 같은 무인들에 미치지 못한다.
심상기를 바탕으로 강화된 신체를 앞세워 지독히도 위력적이었지만, 그 공격의 구조 자체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다.
애초에 베라스는 ‘술사’지, ‘무인’이 아니었다.
직접 전투를 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 그가 다른 옥좌에 오른 무인들처럼 무기를 휘두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제롬이 두려워할 상대는 발락이나 카밀처럼, 스스로의 무도를 극한까지 갈고닦은 무인들이다.
자신의 이종의 힘이 가진 응용력을 최대한 깊게 고찰하여 파악하기 어렵게 전투를 연주하는 술사들이다.
하지만, 저렇게 어설프게 무인을 따라하는 술사의 움직임 따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
제롬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비록 움직임이 단순하다 해도.
베라스가 만들어낸 저 무기들의 힘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실수로라도 정통으로 맞는 순간, 즉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 파고드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베라스의 몸은 아이기스의 보호를 받고 있다.
자신의 주먹이 닿는 초근접 거리에서의 전투 시에, 아이기스에 공격이 막힌다면.
아무리 베라스라도, 그 거리에서 자신에게 무기를 틀어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베라스의 아이기스가 견디지 못하도록.
그러니, 근접 거리에 들어가지 않고도 베라스를 공격할 수 있도록.
단 일격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기술은, 제롬에게 있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국사무쌍.’
제롬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만들어낸, 그만의 심상기.
오직 그 기술만이, 제롬에게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으리라.
* * *
‘…대충 눈치챈 모양이네.’
빌어먹도록 끈질긴 사제의 움직임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이 사라졌다.
지독하리만큼 차분하고, 두 눈은 흡사 뱀 새끼처럼 은밀하게 자신의 빈틈을 찾았다.
누군가는 제롬이 점차 전투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베라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이 꾸몄던 행동들의 진의를 파악했다고 말이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놈들은 싫다니까.’
제롬이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베라스가 연성한 신병들은 굉장히 거대한 대가를 가져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람, 아스트라, 아이기스.
하나하나가 전부 대륙의 신화 속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는 신병들이었다.
아무리 베라스가 심상기를 열었다고 하여, 이만한 무기들을 아무런 대가조차 없이 연성할 수는 없었다.
연금의 기본이자, 가장 절대적인 원칙은 바로 등가교환이다.
인과율의 법칙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그 제약을 무시할 수 있는 대가로.
베라스는 자신이 이룩한 경지의 일부분을 세상에 내놓아야만 했다.
벌써 가슴팍 중앙에 묵직한 벽돌이 올라온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심상기를 열기 전에는 벽의 끝에 서서, 다음 단계의 세상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그 손끝의 앞에 거대한 벽이 생겨 시야를 가린 것 같았다.
아마, 호문쿨루스를 해제하고 나면.
베라스 자신은 필시, 그 상실감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리라.
인과율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막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베라스는 자신이 연성한 무기들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한계는 어디까지나 명확하다.
아무리 연금의 극에 도달한 베라스라고 해도, 이런 신병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일반적인 연성 무기들까지 함께 다룰 수는 없다.
그래.
제롬이라면. 사제라면, 분명히 ‘그렇게’ 결론에 도달하리라 생각했다.
우수하니까.
너무 우수해서, 고작 저 어린 나이에 옥좌에 이름을 올린 괴물이니까.
자신의 연금에 대한 파훼법을, 이 짧은 시간에 가지고 올 만큼 뛰어난 놈이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심상기 또한 공략할 파훼법을 찾았을 것이기에.
아직까지 최후의 수단을 보여주지 않았다.
‘슬슬 때가 된 것 같군.’
흔들어볼 때가, 말이다.
화르륵!
베라스의 흑안이, 한층 더 위험하게 타올랐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끼리리리릭!
베라스가 아스트라의 활시위를 당겼다.
파지지지직!
아스트라는, 사용자의 의념과 생각에 따라 화살의 성질이 달라지는 무기.
벼락의 힘을 담은 화살이, 제롬을 향해서 정통으로 날아갔다.
콰우우우우우우!
마치 작은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방금 전까지 제롬이 서 있던 대지가 버섯구름을 만들며 터져 나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과 먼지.
푸화악!
그 사이로, 제롬이 달빛을 거닐 듯이 유려하게 돌진해왔다.
그래.
너라면,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속마음과 달리 당황한 눈빛을 보이며, 제롬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
거미줄 위에 먹잇감이 걸리길 기다리는 거미처럼.
* * *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몇 번이나 이어진 그람의 참격을 연달아 피해내자, 참을성이 다한 베라스가 마침내 그람을 내려놓고 아스트라를 꺼내 들었다.
아무리 그람이 마검으로 이름이 높다 하나,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는 성궁 아스트라의 위력을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파지지지직!
문자 그대로 벼락 그 자체나 다름없는 아스트라의 화살이 정통으로 날아왔다.
아스트라의 화살은, 주인이 한번 노린 적을 끝까지 따라간다는 설화가 얽혀 있다.
그 전설대로라면, 활을 배운 적이 없는 베라스의 궁술이라도 나를 충분히 맞힐 수 있겠지.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아스트라를 꺼내지 않은 건, 그람보다 공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리라.
벼락의 힘을 고른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내가 강철이 아닌 다른 금속으로도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금, 벼락 이상으로 효과적인 선택지는 없었다.
내화성(耐火性), 내열성(耐熱性) 등의 속성을 가진 금속은 있을지언정.
뇌전이 통하지 않는 금속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버틴다.’
이 한 번의 화살을 견뎌내면, 승부를 걸 순간이 온다.
우우우우우웅!
국사무쌍.
몸을 감싸고 있는 황금빛의 오러가 서서히 철탑 거인의 모습으로 화한다.
월보의 움직임에도 놓치지 않고 쫓아오는 화살을, 타이밍을 맞추어 양손으로 붙잡는다.
파지지지지지직!
‘크윽!’
오러로 손을 감쌌음에도 밀려오는 뇌전이 신체 내부를 마구 헤집는다.
‘정신, 차려야… 해.’
주르르륵!
입가에 핏물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집중한 채, 기어코 심상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완성된 철탑 거인의 힘을 두른 채.
버섯구름과 먼지를 뚫고, 베라스를 향해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심상기, 국사무쌍.”
-!
철탑 거인의 거대한 주먹이, 베라스를 향해 그대로 찍어 눌렀다.
코웃음을 친 베라스의 앞으로, 신의 방패인 아이기스가 비스듬히 솟구쳐 거인의 주먹을 막아낸다.
콰아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돌.
충돌이 만들어낸 대기의 흔들림이,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
쿠우웅! 쿠우우웅!
연달아 내리치는 막강한 일격들은, 그 어떤 옥좌의 주인이 와도 쉬이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았다.
쩌적! 쩌저저적!
전쟁의 신이 사용했다 전해지는 아이기스가, 천천히 금이 가고 있었으니까.
콰장창!
철탑 거인의 주먹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기스가 마치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연성한 신의 무기가 부서졌기 때문일까.
아이기스가 소멸하여 찾아온 리바운드에, 베라스의 몸이 움찔하며 떨렸다.
‘거의 다 왔다.’
아스트라는 이미 시위를 한 번 당긴 상태였으니, 남은 것은 그람 하나뿐이었다.
베라스의 발악과도 같은 한 번의 참격만 피해낸다면, 승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누가, 그렇게 쉽게 져준다고 말했냐!]쐐애애애액!
베라스가 아스트라를 사용하며 옆에 박아두었던 그람을 다시 꺼내어 종으로 휘둘렀다.
서걱!
제롬이 일으킨 철탑 거인의 왼팔이, 그람에 담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잘려 나갔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직, 제롬의 국사무쌍은 살아 있었다.
처억!
그람의 검을 비껴 낸 대가로 왼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제롬이 오른손을 움켜쥔 채 허리를 사선으로 숙였다.
“내 승리야.”
부아아아악!
제롬의 국사무쌍의 기운이 응축된 오른손이, 베라스의 턱을 향해 정통으로 치솟았다.
바로 그 순간.
제롬은 분명히 보았다.
신체의 색상이 반전되어 정확하진 않았지만. 베라스의 흑안이, 웃고 있는 것을 말이다.
우우우우웅!
베라스와 제롬의 머리 위.
그람과 아스트라를 연성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이 담긴 연성진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치지지지지직!
그 끝에서, 뇌전을 품은 창의 날이 제롬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었다.
[그래. 너라면 당연히 여기까지 거리를 파고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작 머릿속에서 파훼법을 찾는 걸로 끝났을 리가 없었다.
반드시 종래에는 자신의 심상기가 가진 약점도 찾아내겠지.
그러니, 일부러 대놓고 보여주었다.
그러니, 일부러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버텼다.
바로 지금,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서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뒈져, 사제.]파지지지지직!
그람이나 아스트라에 담긴 고유한 기운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이 창날의 주변을 맴돌았다.
신창(神槍), 궁니르.
주신이 사용했다 전해지는, 호문쿨루스 상태에서 베라스가 연성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펼치지 않고 기다렸던 비장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퍼석!
궁니르의 명성이 아깝지 않게, 궁니르는 순식간에 철탑 거인의 척추를 꿰뚫었다.
점차 옅어지는 국사무쌍의 기운.
바로 지금, 베라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미 모든 힘을 쏟아부은 지금, 제롬에게 더 이상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은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제롬의 눈을 보기 전까지는.
제롬의 눈은, 아직까지도 그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휘류류류류류!
제롬의 손바닥 위로 기운이 휘몰아친다.
그 기운은, 지금껏 제롬이 사용했던 국사무쌍이나 석굴에서 사용했던 금강야차, 금강역사와 같이 강경 일변도의 기운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또 부드러운 기운이었다.
‘…역시나.’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베라스가 내가 자신에게 파고드는 게 성공할 것이라 예상한 것처럼, 나 또한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수많은 밑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이 가진 생각의 틀을 한정 짓는 베라스의 기질이라면.
필경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겨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겼다.
그 한 수는, 자신의 숨통을 단숨에 끊을 수 있을 만큼 실로 위협적인 것이리라고 예상하며 말이다.
그 수단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던가.
없다.
분하지만, 베라스가 만들어낸 무기들의 파괴력 자체는 제롬 스스로보다 강하다.
힘 대 힘으로 맞부딪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승리할 수 있는 길 자체가 없던가.
있다.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압도적으로 강한 ‘무인’들과의 싸움이 계속되었던 탓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자신에게는 있었다.
‘무인’으로서 자신의 경지가 상대보다 높을 때 펼칠 수 있는 기술이.
국사무쌍의 철탑 거인을 박살 내며 지척까지 다가온 궁니르를 향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흐르는 뇌전, 폭발하는 힘의 기운을 하나씩, 하나씩.
마치, 어려운 퍼즐을 풀어내듯이.
이종의 힘과, 오러의 기운이 궁니르의 파멸적인 힘의 흐름을 천천히 역순으로 풀어간다.
과거, 드래곤 산맥의 가이아에서 자신과 멋진 승부를 펼쳤던 외눈박이 거인, 브론테스의 필살기 일점(一點)을 파훼했던 것처럼 말이다.
“…브론테스의 일점보다, 훨씬 더 강하지만.”
무인으로서, 오랜 시간 고뇌하며 쌓아 올렸던 깨달음이.
베라스의 궁니르에는 담겨 있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웅!
“내가 말했지.”
내 목줄을 노리던 궁니르의 창날을 틀어, 베라스의 몸통을 향해 겨냥한다.
“내, 승리라고 말이야.”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베라스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신이 연성한 무기가 자신을 겨냥하다니.
이 황당한 상황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베라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씨발.]단지, 허탈한 감정을 담아 욕을 하는 것뿐이었다.
푸화아아아악!
궁니르의 창날이, 베라스의 강화된 피부와 함께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