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5)
제35화
“이야, 그 꼬마. 진짜 엄청 불쌍하더라.”
해가 떨어진 늦은 저녁.
미르온의 뒤를 추적하고 돌아온 살라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던진 첫마디였다.
“이건 뭐 딱히 알아볼 필요도 없었어. 그 꼬마가 사과를 훔친 이유? 다른 이유 없어. 먹고살기 위해서야.”
살라딘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미르온은 먹고살기 위해서 거리의 가게들에서 여러 생필품들을 훔쳐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상인들 중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미르온은 이곳에서 좀도둑으로 유명했다.
이 정도면 이미 상인들 모두가 미르온을 알고 있으니 물건을 훔치는 게 불가능할 법도 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르온이 이 거리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아픈 누나’ 때문이었다.
“부모님 없이 몸이 약한 누나를 홀로 보살피고 있다는데, 그 누나의 미모가 보통이 아닌지 처음에는 날파리들도 많이 꼬였다더라.”
빈민가에서 아름다움이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었다. 하물며, 보호자가 고작 아이 한 명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그 꼬마 녀석, 얼마나 독한지, 그렇게 접근한 날파리들 배에 전부 구멍을 내 버렸다더라고.”
거동하지 못할 만큼 아픈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해져야만 했으리라.
“뭐, 지금은 그 꼬마를 알 만큼 아니 빈민가에서도 더 이상 녀석을 건들지 않는다더군.”
살라딘이 가져온 이 정보는 거리의 상인들 역시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 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미르온이 생필품을 훔치는 것을 모른 척 눈감아 주었던 거겠지.
미르온의 성격상 독하게 굴었다 하더라도, 자신과 누이가 먹을 양 이상을 손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요새 그런 분위기가 조금 바뀐 모양이야.”
모두의 마음이 같을 수야 없는 일이다.
개중에는, 남의 것이나 훔쳐서 빌어먹는 인생인 주제에 뭐 그리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냐며 싫어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젊은 상인들을 필두로 그 꼬마를 내쫓자는 의견이 대두되는 모양이야.”
와삭!
살라딘이 어디서 났는지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 상인들 중 가장 앞장서는 놈이 아까 발등에 구멍 난 사과 상인, 브랜든이란 놈이야.”
“너 훔쳤냐?”
살라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운은 분명 척박하고 거친 도시였어요. 그러니 살기 위해 아등바등했을 뿐이었습니다.
미르온이 과거에 했던 발언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살기 위해서 있는 힘껏 버둥거렸었구나.’
-그래도 덕분에 이라는 진귀한 경험도 해봤으니. 제가 지금 밥값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그때의 경험들 덕분이죠. 하하.
각성(覺性). 대륙에 존재하는 소수의 흑사자들 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사례라 볼 수 있었다.
다른 선배 흑사자들의 인도 없이, 오로지 자기 스스로 이종의 힘을 깨치는 이들.
각성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종의 힘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자가 극한의, 극한의 상황까지 몰리고 몰렸을 때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었으니까.
아마도, 녀석은.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였겠지.’
어느새 다 먹어 씨만 남은 사과를 버린 살라딘이 이를 쑤시고 있었다.
“그 브랜든이라는 놈이 지금 사람을 모은다더라고. 오늘 발등에 구멍이 난 참에 반대파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졌나 봐.”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미르온은 분명 의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각성을 할지도 몰랐고.
계기야 안 봐도 뻔했다. 브랜든이라는 상인이 부릴 수작질일 터.
어차피 놔둬도 이종의 힘, ‘광란’은 결국 미르온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스스로 힘을 얻게 내버려두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이왕이면, 은혜를 입게 해두는 게 더 좋겠지.’
노예… 아니, 옛 동료를 얻기 위해서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이미 흑사자였다.
즉.
나 역시, 이종의 힘을 깨치게 해줄 입장이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대삼현들만큼이야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물며 아픈 누나까지 있다니.
‘꽤나 예민해 보여서 어떻게 포섭할지 고민이었는데, 번거로움을 덜었군.’
나는 옆에서 자운의 공기에 늘어져 있던 밀리아에게 말했다.
“밀리아, 미안하지만 며칠만 더 여기서 참아 줘야겠어.”
물론 밀리아는 내 말에 기겁했다.
“엑?! 왜요?! 찾으려던 사람도 찾은 것 같은데, 그냥 납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너 꽤나 과격해졌구나. 아쉽지만, 그냥 데려가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어.”
“에에엑….”
밀리아가 질색을 하자, 옆에서 같이 늘어져 있던 애쉬가 거들었다.
“우린 지금 쫓기는 상황이 아닌가? 한시라도 빨리 떠나는 게 타당하다고 보네만.”
지난번에 살라딘도 비슷한 걸 묻더니.
“어차피 추격자들이 있어도 자운에 대놓고 침입할 수는 없어. 엄연히 적국이고, 그러면 국제 문제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아직은 제국에서도 전쟁을 치를 때는 아니야.”
나는 삼황녀 이바렐라를 떠올렸다.
“그리고 제국의 황녀라면 우리 동선은 진작 예측해서 이미 자운 밖에 배치해뒀을 거다. 언제 떠나든 싸움은 못 피해.”
“으에에엑….”
더더욱 탈출의 가능성이 없어져 절망하는 밀리아를 나는 조용히 못 본 척했다.
“살라딘, 당분간 그 꼬마 녀석 잘 지켜봐줘. 혹시나 위협하려는 녀석들이 있으면 잘 막아주고.”
“뭐, 그거야 어려운 건 아닌데…. 도대체 그 꼬마가 뭔데 이렇게 시간을 쓰면서까지 챙기는 건데?”
“그 꼬마, 이종의 힘을 익힐 재능이 있어.”
“…뭐?”
뭐야. 눈치채지 못했던 건가. 하긴, 카르마 정도나 되니 나를 보자마자 파악할 수 있던 거지.
어지간한 흑사자들은 흑사자도 아닌, 재능만 가진 이들을 알아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니 흑사자들의 수가 더더욱 적어질 수밖에.
살라딘이 모르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쯧쯧, 허접하기는.”
“캬아악!”
아, 전생에도 그랬지만.
난 왜 이렇게 살라딘을 놀리는 게 재밌는 걸까?
* * *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두운 공간에 모여 있었다.
무리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는 다리가 불편한 것인지, 한쪽 다리에 부목을 댄 상태였다.
“빌어먹을! 미르온 이 개새끼.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남자는 미르온에게 발을 꿰뚫린 사과 상인, 브랜든이었다.
브랜든은 며칠 전, 미르온의 공격으로 불편해진 다리를 쓰다듬으며 이를 갈았다.
허구한 날 도둑질을 하는 것도 모자라 기어코 자신의 발까지 구멍을 낸 쓰레기.
자신처럼 선량한 상인을 공격하다니, 정말이지.
‘이 자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오물덩어리다.’
오물이 버려져 있다면, 치워버리는 것이 시민의 덕목이 아닌가!
그것이 자신과 같이 깨어 있는 시민들의 의무였다.
거리에 계신 인정 많은, 아니 우유부단한 어르신들이야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쥐새끼를 감싸고돌았었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같은 상인인, 그것도 거리의 젊은 피인 자신이 직접적으로 해를 받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 때문에 이번만큼은 자신을 비롯한 젊은 상인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멍청한 애새끼. 그 바보 같은 행동이 네 발목을 잡을 거다.’
브랜든 주위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자신처럼 더러운 오물덩어리를 반대하는 상인들이었다.
“여러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자운에 이런 기생충이 활개 치는 것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한단 말입니까! 이번 기회에, 미르온 이 개새끼를 처리합시다!”
“옳소!”
“미르온, 이 망할 자식! 어르신들이야 그러려니 하실지 몰라도, 이 꼬맹이가 우리 가게에서 훔쳐간 물건들로 받은 손해가 대체 얼만데!”
“이제는 우리를 공격하기까지 해?!”
“다음에는 브랜든 차례가 아니라 우리 차례일지도 몰라!”
지금까지야 나이 지긋한 상회의 어르신들의 체면도 있고, 아직 자신들이 어리다는 뜻으로 불만을 억눌러 왔었지만.
오늘 브랜든의 상처는 분명히 선을 넘은 일이었다.
자칫했으면 브랜든이 병신이 될 뻔했었으니까.
물론 미르온이 브랜든의 발을 사정없이 찍어 버린 데에는 다른 이유도 분명 존재했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브랜든만의 비밀이었다.
‘쓰레기가, 감히 내 발을 후벼? 그깟 병신 누나 하나 잠깐 어떻게 좀 해보려 한 걸 가지고.’
브랜든은 자신의 만행에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저잣거리에서 미르온에게 과하게 손을 쓴 것도, 미르온의 누나에게 못된 짓을 하려 했던 것도 말이다.
자신과 같은 선진 시민이 고작 빈민 쓰레기 계집 하나 데리고 놀려고 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겠는가.
“여러분, 제 발을 좀 보십시오!”
브랜든은 부목을 댄 자신의 발을 상인들이 잘 볼 수 있게 내밀었다.
“미르온은 저희에게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제가 조금 손이 매웠다손 치더라도, 그간의 일을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브랜든이 손을 번쩍 들었다.
“녀석에게 신을 대신하여 벌을 내립시다!”
“와아아아아! 가자!”
브랜든의 선동에 상인들과 고용한 부랑배들이 빈민가 내부를 휘젓기 시작했다.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판잣집 안.
미르온은 표정을 굳힌 채 판자 사이사이의 틈새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먹은 너무 꽉 쥐어 이미 피가 나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브랜든, 이 개도 안 물어갈 새끼!’
미르온은 지금껏 시장의 많은 이들에게 물건을 훔쳐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었다.
그가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오로지 하나의 경우뿐.
바로, 누나를 노리는 파렴치한들을 단죄할 때뿐이었다.
빈민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채 어린 티도 가지 않았던 누나를 노리던 미친 짐승들과 매일같이 싸워왔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이들도, 완력이 강한 이들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미르온은 그 모든 짐승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왔다.
싸움이 독하면 독할수록, 머릿속이 뜨거워지며 자신도 신기할 만큼 불가사의한 힘이 솟아났었다.
미르온은 그렇게, 모든 짐승들을 물리쳐왔다.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지켜야만 했으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족을 말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빈민가에서 싸워왔고, 마침내 이 거리에서 누나를 노리는 짐승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도둑질이 아닌, 떳떳하게 일을 하고자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누나의 몸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해, 간병의 시간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미르온은 결심했다. 누이의 몸이 조금 나으면, 거리의 은인들에게 은혜를 갚으며 일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잠시 잠이 들어 조용히 볼일을 보고 오려 했던 청명했던 어느 날.
저 빌어먹을 짐승인 브랜든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누이를 탐하려 했다.
다행히 일이 빨리 끝나 일찍 도착하여 사고는 막을 수 있었지만.
그날, 자신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브랜든이 시장에서 계속해서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때리고, 모욕하며.
친했던 상인들을 하나둘 선동하여 점차 자신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결국 자신이 물건을 훔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브랜든, 저 개새끼가 두들길 때도 참았다. 사과를 훔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누나를 모욕한 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변태 새끼.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버릴 테다.”
미르온이 이를 박박 갈며 지켜보고 있을 때.
미르온의 뒤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아, 밖에 무슨 일 있어…?”
미르온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누나.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자. 그래야 병도 낫지.”
“넌 뭐 만날 일찍 자래. 일찍 자서 병이 나을 거 같았으면 진작 나았어야지.”
투덜거리는 누나, 미샤에게 미르온이 웃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하하하. 미안, 미안. 누나, 나 잠깐 일이 있어서. 조금 나갔다 올게?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씨, 브랜든 아저씨 때문에 혼자 있으면 무서운데.”
브랜든, 그 빌어먹을 녀석이 했던 사고 때문에 누나는 아직도 밤이 되면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했다.
빠드득.
미샤 몰래 이를 간 미르온이, 천천히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 누나. 나 진짜 금방 다녀올게. 알겠지?”
미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 미르온이 판잣집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브랜든 일행이 미르온의 판잣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딱딱한 표정으로, 오른손에는 작은 단도를 든 채 나온 미르온 앞으로.
군중 속에서 브랜든이 절뚝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