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정령(精靈).
카르디아 대륙 위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중간계가 아닌, 전설 속의 천계, 마계와 같은 정령계(精靈界)에 살아가는 신비로운 영혼들.
선택받은 인간들이 마법이라는 학문을 통해 다루는 각종 원소들을, 정령들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룬다.
그러니, 만약 그런 정령들을 다룰 수 있다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힘이 되겠는가?
그렇기에, 대륙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들은 끊임없이 정령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고.
그 결과, 결론을 내렸다.
-인간들은 정령을 다룰 수 없다.
자연을 파괴하여 문명을 이룩하는 인간들의 특성상,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정령들과의 교우 관계를 다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단 한 종족.
단 한 종족만은, 거의 모든 이들이 정령을 다룰 수 있었으니.
그 종족이 바로 엘프였다.
그렇기에 엘프는 보통 인간들보다 강했고, 인간들은 엘프들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엘프가 다룰 수 있다고 해서, 그 능력마저 같을 수는 없는 일.
당연히, 고위급 엘프일수록 더 고귀한 정령을 다룰 수 있었고.
레나는 그런 엘프들의 정점인 파울로 미네르바의 딸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화살에 기운을 담아준 정령 또한 결코 평범한 정령이 아니었다.
불의 상급 정령, 이프리트였으니까.
-저 인간, 지금 네 화살을 버틴 거야? 상처 하나 없이?
이프리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레나에게 물어왔다.
그의 계약자인 레나는 가장 고귀한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자.
본신의 무력이 낮았다면, 애초에 여왕의 호위라는 직책을 맡을 수도 없었을 터.
그런 그녀의 화살에 자신의 불꽃까지 담았으니, 당연히 그녀의 적은 흔적도 없이 잿더미가 되었어야 마땅하건만.
“그럼, 이제 내 차례네.”
손과 목을 풀며 이를 드러내며 웃은 인간이, 다가온다.
자신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 * *
‘제법 위험했어.’
아무래도 엘프들의 전력에 대해 평가를 상향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설마 파울로 미네르바나 은거한 장로들도 아닌, 호위에 불과한 엘프의 화살이 이렇게 매서울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하나.
‘그래도 안 돼.’
봄의 축제가 끝난 이후, 내 강철의 성취는 어느덧 3단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즉, 어설프게나마 3단계, 아이언 오르간(Iron Organ)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아직 완전한 3단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지간한 오러를 담은 공격이 아니고서야 내게 치명타를 익히기는 지난한 일이었다.
형과 누나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기술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어쩌면 형이나 누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방패가의 차기 주인이라는 자리를 놓고 싸우는 이들이다. 한 수, 두 수 정도는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볼 일이고, 지금은.
‘이 싸움을 끝내는 게 먼저지.’
“조심해. 딱히 봐주지는 않을 거니까.”
팟!
가벼운 걸음으로 레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팟!
가벼운 걸음으로 레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판크라티온의 보법, 월보(月步).
고고한 달빛은 만월이 되면 온 하늘을 빛내며, 달빛이 가려졌을 때는 온 밤이 암흑 속에 물들듯이.
발걸음은 조용히, 하지만 주먹에는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담은 채 빠르게 레나를 향해 다가갔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아이언 피스트를 운용한 주먹을 레나를 향해 뻗었다.
“흥!”
레나가 코웃음을 치며 활을 들어 내 주먹을 막아냈다.
쩌어엉!
내 주먹의 충격을 이용해 오히려 빠르게 거리를 벌린 레나가 다시금 화살을 꺼내 나를 겨냥했다.
“아직 모르겠나? 나한테 네 화살은 소용이 없어.”
탓!
월보를 통해 다시금 거리를 좁혀갔지만.
“화살 한 번 막아냈다고 기고만장하기는!”
-이 괴물! 저리 꺼져!
레나의 외침과 정령의 의념이 함께 내 머릿속을 울려왔다.
그리고 그 의념과 함께.
화르르르르륵!
뜨거운 불꽃을 감은 화살이 나를 덮쳐왔다.
명색이 상급 정령이 다루는 불꽃. 그 온도가 결코 낮지 않았다.
얼마 전 신성제국에서 보냈던 난쟁이 마법사의 불꽃보다도 뜨거운 불.
당연히 쉬이 경시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3단계에 오르기 전의 나였다면 말이다.
“소용없어!”
나는 아이언 오르간을 펼쳐 이프리트의 불꽃을 몸으로 받으며 무시한 채.
부아아악!
손날을 세워 레나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미 강철같이 단단해진 내 손날은 말 그대로 수도(手刀)였으니.
무방비하게 맞는다면 어깨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습게… 보지 마!”
레나는 자신의 화살과 이프리트의 불꽃을 무식하게 맞으며 달려드는 나를 보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내 수도를 활로 막은 채 흘린 레나가 내 복부를 걷어찼다.
걷어찬 힘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허공에 날아오른 레나가 화살을 꺼내 나를 정조준 했다.
“바람이여!”
어느새 레나의 옆에 있던 이프리트는 온데간데없고, 바람의 상급 정령 슈리엘이 모습을 드러내 레나의 화살에 기운을 담는다.
화살촉에 뜨거움 대신 날카로운 기세가 더더욱 배가되는 것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평범한 화살과는 관통력에서 비교도 되지 않겠지.
‘내 강철을 뚫어낼 생각인가?’
열에 내성이 있고, 화살의 물리적인 공격을 막아내는 내 강철에 대응해 떠올린 방책일 것이다.
최상급 엑스퍼트의 오러 정도가 아니고서야 지금 내 몸에 상처를 낼 수 없다.
레나는 아직 최상급 엑스퍼트의 경지를 목전에 둔 상태.
내 강철을 혼자 힘으로 뚫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전략을 즉석에서 본능적으로 뽑아냈다.
“과연, 여왕님의 호위를 카드 게임으로 딴 건 아닌가 보네.”
“이 괴물 자식!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봐라!”
끼리리리릭!
바람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화살이 나선처럼 꼬아진 채, 내 몸통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왔다.
투파아아아앙!
설명은 길었지만,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들.
월보로 피한 채 레나를 제압해도 괜찮겠지만.
저 완고한 엘프를 납득시킬 만큼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쿵!
나는 양발을 땅에 붙인 후, 두 손을 정면으로 내보내 바람을 머금은 레나의 화살을 잡아챘다.
키리리리리리리리리릭!
내 손바닥과 레나의 화살이 마찰되며 불똥을 일으켰지만.
키리리…리릭….
그것도 잠시.
이내 화살은 회전을 멈춘 채 내 손 안에 조용히 안착했다.
땡그랑!
나는 얌전해진 화살을 바닥에 내팽개친 후 레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제길!”
레나는 다시금 화살을 꺼내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장난은 여기까지야.”
월보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내 속도를 떼어낼 수는 없었다.
뻐어어억!
“커헉!”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그녀의 복부를 후려쳤고, 강한 충격에 레나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가볍게 그녀의 목을 내리치자, 내 단단해진 손목을 버텨내지 못하고 기절했다.
“휘유.”
나는 기절한 레나를 어깨에 둘러멘 채 밀리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상당히 재능이 있네요. 건방질 만큼.”
짧게 레나에 대한 평을 내린 뒤 레나의 집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전투를 본 밀리아의 소감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어떻게 레나를 이렇게 순식간에…. 제롬 공자님, 그사이에 더 강해지셨군요.”
밀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2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냥 조금 실력이 는 것뿐, 대단한 건 아니에요.”
나에게야 과거에 이미 다 걸어보았던 길을 다시 되짚으며 가는 것뿐이었지만, 밀리아가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가 언니를 두들겨 패라고 한 건 언니가 기가 센 것도 있지만요.”
밀리아가 나를 신기한 동물 쳐다보듯이 바라보았다.
“언니를 상처 없이 제압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서 그런 거예요. 장로님들이 은거에 들어간 지금, 어머님을 제외하고 젊은 엘프들 가운데에서는 일족 제일의 전사니까요.”
“하하, 아니에요. 제 힘의 상성상 화살을 사용하는 엘프들을 상대하기가 조금 수월한 것뿐이었던 겁니다.”
사실 형이나 누나였다면 박 터지게 싸웠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아무리 속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엘프 여왕의 또 다른 딸이며 우군이 될지도 모르는 이다.
괜히 험악하게 다루어 악감정만 쌓아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나는 비교적 온건하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밀리아의 눈에는 내가 레나를 너무도 간단히 제압해낸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뒤통수에서 나를 묘하게 바라보는 밀리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레나의 집으로 향했다.
“으윽….”
정신을 차린 레나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뒷목을 계속해서 주물럭거리는 것이 꽤나 얼얼한 모양이었다.
아마, 마치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겠지.
“일어났나?”
“!”
내 목소리를 들은 레나가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망막에 내 모습이 맺히자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붉어진 얼굴이, 동생이자 고귀한 혈통인 밀리아의 모습을 바라보자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런가. 제가 진 모양이군요.”
생각보다 담담하게 납득하는 레나의 모습에 밀리아의 눈에 작은 희망이 감돌았다.
“그럼, 레나. 어머님께….”
“안 됩니다.”
그런 밀리아의 희망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레나의 단호한 반응.
“저 인간이, 보통 인간처럼 약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여왕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크 로드가 어느 정도 경지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여왕님께서 오크들에게 패배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레나, 하지만….”
“그래, 나도 인정해.”
밀리아의 말을 자른 것은 레나가 아닌 나였다.
“포레스트 퀸, 파울로 미네르바. 무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이상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엘프들을 다스려온 전설적인 지도자. 게다가 언제나 옥좌의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지. 그런 그녀가 오크에게 패배한다는 건 믿기 힘들 만해.”
나는 레나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렇다면, 엘프들은 어떻지?”
레나가 기절하기 전, 밀리아를 통해 물어보았던 질문.
나와의 대결 이후 내 말에 좀 더 무게감이 실린 것일까. 레나의 표정이 아까보다 조금 더 진지해졌다.
“여왕님의 경지 상승. 엘프라는 종족의 정예화. 다 좋지. 좋아. 장기적으로는 어쩌면 엘프들이 더 융성한 세력을 일궈낼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어느 정도는 미네르바의 방식을 존중한다.
장로들이 은거에 들어간 지금, 미네르바가 없다면 엘프들의 전력은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약해질 것이다.
미네르바 또한 옥좌의 상위권에 항상 위치해 있었지만,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옥좌의 ‘정점’에 위치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다.
평화적인 시대였다면 나태해진 일족의 정신을 무장하고, 외부의 적을 통해 일족의 결속력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 역시 옥좌의 정점에 올라 일족의 번영을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 방법에 필연적으로 피가 동반된다고는 하나, 한 개인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엘프라는 종족의 운명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피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평화의 시기가 아니다.
“단, ‘장기적으로’라는 전제부터가 틀렸다면 어떻게 할 거지?”
“…그게 무슨 뜻이야?”
“여왕님이 저토록 경지에 집착하는 이유. 밀리아가 납치되었던 사건이 결정적이었다며?”
“그게 뭐가 어쨌다는 말이지?”
미네르바의 생각은 전제부터가, 틀려 있었다.
“밀리아를 납치하여 엘프들을 강제로 복속시키려 한 신성제국이야. 그런 그들이, 과연 오크와 전쟁을 치르고 약해진 엘프들을 멍청이처럼 가만 내버려둘 것 같아?”
“……!!”
내 말에 레나의 얼굴이 둔기를 맞은 듯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충격을 받았다.
“…뭐야, 설마, 아예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던 건가?”
“감히, 인간들이 이곳, 엘룬하임을 노린다고? 포레스트 퀸이 지키고 있는 이곳을?”
레나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 파울로 미네르바가 대륙 제일이라 여긴 모양이군, 이 녀석.
“이봐, 레나. 포레스트 퀸이 대륙의 초강자 11인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건 분명해. 그리고 자신의 지도자를 믿는 것 또한 올바른 태도이고. 하지만.”
그런 우물 안 개구리에게, 넓은 세상의 시야를 알려준다.
“그 말은 거꾸로 하면, 파울로 여왕과 자웅을 겨루어볼 만한 이가 열 명이나 있다는 소리기도 하지.”
나는 손가락 3개를 편 채 레나에게 내밀었다.
“……?”
“그중, 무려 세 명이 산맥 너머 단일 제국 소속이다.”
영문을 몰라 눈살을 찌푸리는 레나를 향해, 세상의 차가운 진실을 담담하게 선고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어. 오크 로드가 지금은 어느 정도 경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친 드래곤 산맥의 오크를 통합하려 드는 놈이야.”
붉은 도끼, 푸른 검, 검은 낫. 대부락의 족장들조차 그 강함은 최상급 엑스퍼트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즉, 대부락 족장들의 수준이면 레나와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파울로 미네르바를 제외하면 이미 엘프들의 전력이 오크들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 상황.
그렇다면, 왕인 하탄의 경지는 최소한 나와 동급, 아니면 그 이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분명, 도태되게 될 거다.”
이건 사실이었다. 과거 대전의 시기, 마지막까지 차가운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세력들은 모조리 제국의 발아래에 짓밟혔었으니까.
“나는, 엘프들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
내 진심 어린 이야기에 레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고.
잠시간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