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저쪽이다!”
“물을 더 길어와! 어서 끄지 않으면 큰일 난다!”
“젠장, 이쪽이 아니라고! 군량고부터 끄라고!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평소와 같은 밤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일로 인하여 마지노 요새의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그리고 요새의 뒷골목에는, 요새에서 난 방화로 인해 곳곳이 시끌시끌함에도 불구하고 은밀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다.
“성벽에 있던 경계병들이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인원은?”
“3할 정도인 듯합니다.”
“공자님, 성공입니다.”
맥스가 푸른 들 기사단원에게 보고를 전해 듣고 내게 작전의 성공을 알려왔다.
나도 평소 같았다면 성공이다, 라고 생각했겠지만….
“무언가 이상합니다.”
“응?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 쉬워요.”
그래, 너무 쉬웠다.
근위기사단이 통째로 사라졌음에도 그들을 수색하지 않고, 성벽을 틀어막는 데에만 집중할 만큼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지휘관이다.
불꽃이 아무리 거세게 피어오른다 한들, 그것이 근위기사단의 실종보다 중요할까.
하나, 지휘관은 보란 듯이 병력의 3할을 빼서 수색에 투입했다.
‘3할이란 숫자가 너무 절묘해.’
3할이 빠져나갔다는 뜻은, 반대로 말하면 아직도 7할이 남아 있다는 말이었다.
푸른 들 기사단, 그리고 나와 미르온이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든 제압이야 가능하겠지만. 그 전에 요새의 병력들이 불꽃을 모두 진화하고 성벽에 지원을 올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이대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이 모두 꺼지고, 요새의 인간들은 안정과 냉정을 되찾을 것이다.
‘결국 한 가지 선택뿐이다.’
지휘관 암습.
병력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고, 병력들이 움직인다면 성문을 연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
결국 어찌 되어도 지휘관을 암습하는 길을 ‘선택’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 암습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저희를 초대하려 하는군요, 이 지휘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우리는 결국 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지휘관이, 특히나 내가 생각하는 이라면.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더 이상 개수작 부리지 말고 찾아와라. 한번 붙어보자.
한마디로 이 의미였다.
“그럼, 어찌하시겠습니까? 따르겠습니다, 공자님.”
“계획에 변동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선택할 사항은 하나뿐이니까요.”
나는 마지노 요새 한가운데 있는 가장 높은 첨탑을 노려보며 하얗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예상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서로가 준비한 패를 얼마나 정확히 예상했는가, 이겠죠.”
저 첨탑 위에 있는 아니꼬운 남자가 한 생각은 쉽게 예상이 됐다.
기사 융켄을 사로잡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초대다.
그렇다면, 우리 측의 전력은 소드 엑스퍼트 최상급 이상이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어나는 초대라면, 답은 뻔했다.
그 이상으로 강한 패를 준비해둔 것이겠지.
그 패가 무엇인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필라도르 왕국의 제일 기사, 미하일 쉔.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 마스터를 준비해둔 이상 패배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겠지.’
비록 옥좌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나, 마스터란 경지에 오른 기사는 그 자체로 전략 병기라 불리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는 녀석의 패를 정확히 예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첨탑 위에 있을 남자는 나의 패를 정확히 예상하는 데 실패한 듯했다.
* * *
화르르르르!
요새 곳곳에서 일어난 방화는 몸 안의 암세포처럼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요새를 좀먹고 있었다.
“시작되었는가.”
요새의 외곽.
미다스 후작은 푸른 들 기사단으로부터 전달받은 밀지를 받고 난 후, 요새 내의 희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참, 맹랑도 하지. 아직 젊어서 그런가. 생각이 과감해. 실패한다면 귀빈이고 뭐고 즉결처분 당하겠지만….”
피식.
-제롬 공자가 말하길, ‘성벽을 장악하는 대신, 저쪽의 대가리를 잡아 가지요.’라고 합니다, 각하.
미다스 후작은 밀지의 내용을 다시금 떠올려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성공한다면 이 사람에게 큰 빚을 지우겠군. 그건, 앞으로 그의 행보에도 굉장한 메리트가 되겠지.”
여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는지, 저 멀리 요새에서 아련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자. 어디 한번 지켜보겠네, 제롬 공자. 그대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성공하여 이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줄지, 아니면 실패하여 이 사람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말이야.”
첨탑의 내부.
이곳 또한 불길을 잡기 위해 떠나간 것인지 첨탑을 지키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퍼석!
“괴, 괴물!”
“비켜라, 잔챙이들아. 쓸데없는 희생을 늘리고 싶지 않다.”
거신과도 같은 압도적인 체구에 사람 몸통만 한 해머를 휘두르며 동료들의 머리를 깨는 미르온의 모습은 그 자체로 병사들을 얼어붙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는 나보다 미르온이 훨씬 더 시각적으로 큰 공포를 줄 수 있었다.
주춤, 주춤.
피 칠갑을 한 채 동료들의 머리를 터뜨리는 미르온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병사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난 죽고 싶지 않아!”
쨍그랑!
한 병사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무기를 버린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쨍그랑! 쨍그랑!
미르온의 앞을 가로막았던 병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작태를 보고 있자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게, 필라도르 왕국 병사들의 현재 수준이란 말인가….’
만약 신성제국이었다면, 마지막의 마지막, 최후의 병사가 쓰러질 때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가 부서지면 주먹으로, 몸이 으깨지면 이빨로, 그조차 부러진다면 이마로.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했을 것이다. 그들의 황제와, 교황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왕국 수도를 지키는 최요충지에 포진된 병사들이 이런 수준이라니.
‘평화의 시대가, 너무 길긴 길었던 모양이군.’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맥스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공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습니다. 가시지요.”
“…그래요. 아마 꼭대기 층에 도착할 때까지는 더 이상 방해꾼이 없을 거예요. 아마 상대는 최상부에 모든 것을 모아뒀을 테니.”
“예, 공자.”
맥스가 푸른 들 기사단과 첨탑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하자, 과연 첩보에 특화되었다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순탄하게 길을 열 수 있었다.
단순히 위층으로 향하는 길뿐만 아니라, 비밀 통로와 마법진까지도 발견하여 파괴하였던 것이다.
“이걸로, 아마 적들의 지원군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늘어날 것입니다.”
맥스의 호언장담처럼, 달아난 병사들이 데리고 올까 염려했던 지원군들은 우리가 최상층에 도착할 때까지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첨탑의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식품도, 바닥을 감싸는 양탄자도, 그렇다고 고급스러운 샹들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사방이 뻥 뚫린 채 아치형으로 놓인 기둥 위에 돔처럼 생긴 지붕만이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오로지 성벽 주변을 둘러보기 위한 목적 하나에만 충실한 장소.
짝, 짝, 짝!
“이야아.”
그 돔의 중앙에서, 낯익은 얼굴을 한 남자가 홀로 서서 감탄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공자가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군요. 뭐, 처음 뵀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 또라이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자, 베르사유는 어느새 박수 치는 것을 멈춘 후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장소에서 저와 마주쳤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외교 문제라는 건 알고 계시지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베르사유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흠, 글쎄요? 그거야 일왕자님께서 저희 신변을 안전하게 보장해준다는 전제하에 따져볼 이야기이겠죠.”
나는 베르사유 뒤편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일왕자님께서 제 모가지를 그대로 붙여둘 생각이었다면, 저런 분을 여기에 대기시키지는 않으셨을 테니까요.”
“호오?”
내 반응에 베르사유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미하일 경의 기척을 느꼈다고? 이제 겨우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애송이가?’
이자가, 진정 대륙의 벌레라 불리던 그 쓰레기가 맞단 말인가.
정신을 차렸다고 평가된 지 고작 몇 년일 뿐이건만.
‘아무래도… 나중에 굉장히 귀찮은 놈이 될 것 같단 말이지.’
왕궁에서 다른 형제들과 오랜 기간 암투를 거치며 단련해온 직감이었다. 그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 남자는, 향후 베르사유 자신이 그리는 계획을 계속해서 방해할 귀찮기 그지없는 방해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놀라움의 감정만 담겨 있던 베르사유의 눈빛이 점차 차가워졌다.
“…과연. 공자의 말대로입니다. 외교적인 문제는, 공자가 이곳에서 역도들을 도왔다는 게 밝혀졌을 때의 일이지요.”
딱!
베르사유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가 가리켰던 장소의 커튼 뒤에서 은빛의 눈부신 갑옷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미하일 쉔.
필라도르 왕국 제1근위기사단의 단장이자, 왕국 제일의 기사.
“공자는 이곳에 오지 않은 겁니다. 수도 베르티에서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을 공자는 영문도 모른 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후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음… 변명치고는 조금 조악하긴 하지만, 뭐 그 정도로 처리해 보기로 하죠. 아무래도, 저도 옥좌의 주인과 척을 지는 것은 무서우니까요.”
베르사유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세 살 먹은 꼬맹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기사, 미하일 쉔은 세 살 먹은 꼬맹이보다 훨씬 더 총명한 이다.
스르릉!
눈부시게 빛나는 은광(銀光)을 뽐내는 검이 뽑혀 나왔다. 대충 훑어만 보아도 명검 중의 명검. 아마, 미스릴을 도금한 수준이 아니라 통째로 미스릴로 만든 검이리라.
“처음 뵙겠습니다, 제롬 공자. 왕국 제1근위기사단장, 미하일 쉔입니다.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면 검이 아닌 술잔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왕국 제일의 기사라 불리는 이의 눈에는, 방심이라는 감정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상, 왕가를 위협하는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제롬 공자. 그대의 목숨, 이 미하일이 가져가도록 하지요.”
기사 미하일이 기운을 일으키자, 그의 존재감이 이 넓은 돔을 가득 채웠다.
어디로 움직이더라도 베일 것만 같은 긴장감.
“글쎄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겠지요.”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2년 전, 옥좌에 이른 이들의 대결투를 본 후.
나는 훈련하고, 훈련하고, 또다시 훈련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과거의 경지에 거의 근접했노라고 말이다.
꽈악!
궁금했다.
과연, 지금의 나는 마스터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겨야만 한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언젠가 옥좌에 계신 아버지의 경지에도 도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겨우 옥좌에 도달하는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
나의 적은 옥좌에 올라 있는 한 명의 무인이 아니다.
옥좌의 주인, 세 명 아니 네 명을 품고 있는 나라 그 자체를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 내가, 고작 마스터를 상대로 버벅여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전의를 다진 나는, 미하일 경과 마찬가지로 기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간을 가득 채운 미하일 경의 존재감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
그 상황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것일까.
미하일 경의 눈동자에 경악의 감정이 드러났다.
“어떻게…?! 제롬 공자, 당신 대체 무슨…!”
“일왕자님, 제가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이라 말하셨지요?”
나는 미하일의 말을 무시하며 베르사유에게 되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동감입니다, 저 역시도 일왕자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나는 일국의 마스터를 보며, 담담하게 선언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미하일 경의 기운을 밀어내며.
“저와 베르사유 일왕자. 둘 중 하나의 존재는 이 자리에서 지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