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각자의 생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밤이 지나 아침이 밝았다.
아렌의 이야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지 대부분 잠을 설친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정을 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일행은 묵묵히 길을 나섰다.
주기적인 토벌로 인해서 가도 근처에는 몬스터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지만, 대신에 자리 잡은 것은 도적들이고, 여행자들의 위협이 되였지만, 도적들도 사람을 봐 가면서 영업을 한다.
기사들이 다수 포진된 아렌의 일행은 철저한 기피대상이었고, 로랑 자작가를 습격한 일행들처럼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이상은 도적들도 몸을 사리기 마련.
그렇게 별일 없이 여행이 이어졌고, 7일째 되는 날, 일행은 그라인드 백작의 영지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
가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석성이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백 명 정도의 병사들은 너끈히 수용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석성의 앞에는 영지로 진입하기 위해 검문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엄격한 자세로 주변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관문은 영지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그런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엄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라인드 백작가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었고, 어쭙잖은 수작을 부리는 방문자는 없었다.
병사들의 모습에 드웨인이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베로아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왔군요.”
온갖 감정이 들어 있는 한 마디에 벡스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망치듯이 영지를 탈출한 것이 얼마 전의 일인데, 그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영지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목숨을 걸어가며 강행했던 길은 금의환향으로 바뀌었으니 감개가 무량한 것이다.
가도 한가운데를 마차와 일행이 가로질렀으니,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갈라섰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차의 문양과 기사단을 보고서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몇몇은 눈을 빛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자들도 있었고, 자신의 일행에게 속삭이는 자들도 있었다.
소문은 바람과 같아서 이미 제국 전역에 아렌에 대한 이야기가 퍼질 대로 퍼진 상황.
그런 상황에서 영지로 돌아오는 가문의 마차라고 한다면 그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좁혀지지 않겠는가.
비참하게 쫓겨났지만, 화려하게 돌아온 탕아의 모습에 모두들 침을 삼켰다.
“드웨인 경.”
“오늘은 자네가 담당인가 보군.”
어느덧 일행이 관문 앞에 도착하고, 앞을 막아선 기사를 향해 드웨인이 나섰다.
“모시고 오신 분은 …….”
“아렌 도련님이네.”
드웨인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짐작하고 있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었고, 영지에서 명망 높은 기사가 선언했으니 그 사실이 피부로 와 닿은 것이다.
“드웨인 경의 말을 믿지만 저는 확인해야 합니다.”
권위를 중시하는 기사라면 인상을 찡그리겠지만, 드웨인은 실리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따라오게나.”
자신의 일을 명확히 하려는 기사의 태도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로 인도했다.
“도련님. 드웨인입니다. 문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공손하기 짝이 없는 드웨인의 모습에 기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라인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사이자, 원로원에서도 중립에 가까운 인물이 이런 태도라면 그의 의중은 아렌에게로 완전히 돌아섰다는 의미가 된다.
‘2부인이 곤란해 하시겠군.’
신입기사도 아니고 관문을 맡을 정도의 지위에 있는 기사라면 가문의 정치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2부인 쪽으로 선을 대려던 그의 마음이 슬며시 기울어졌다.
“열어라.”
나직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앳된 목소리의 도련님이 아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나직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그의 귀에 너무나도 생생히 박힌 것에 놀랐고, 관문에 있는 모두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에 경악했다.
그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오러 컨트롤의 발현에 기사의 마음이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화사하기 짝이 없는 백금발과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거 같은 이목구비는 귀공자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지만, 표정 없는 얼굴과 깊은 눈빛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훌쩍 커 버려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선이 굵어진 것 외에는 그다지 변한 외모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현 백작과 1부인의 외모를 적절하게 섞은 것 같은 외모가 그에게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기억이 나는구나. 거스라는 이름이었던가?”
“……기억하시는군요. 도련님.”
고개숙인 기사를 바라보던 아렌이 중얼거리자 거스의 입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문을 보니까 기억이 돌아오는 거 같군. 기억한다. 거스. 네가 문을 열어 줬었지.”
“……그라인드에서 도련님을 막아서는 것은 없습니다.”
몇 달 전 아렌의 일행이 그라인드를 나설 때, 관문을 맡았던 기사가 거스였고, 거스는 관문을 잠그라는 2부인 측의 요구를 거절했었다.
아렌의 처지가 측은하기도 했고, 그라인드에서 적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행한 일이었다.
그 후로 2부인 측에서 험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거스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다만 요즘 돌아가는 모양이 2부인 측으로 거의 기울어져 있어서 마음이 조금 다급했는데, 아렌이 돌아와 자신을 알아주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 잘했네.”
드웨인이 의외라는 눈으로 거스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두들겼다.
“그럼 직분에 충실해라. 충실한 자에게는 보상을 아끼지 않는 것이 그라인드의 방식이니까.”
아렌의 말에 더욱 고개를 숙인 거스가 조심스레 마차 문을 닫았다.
이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한 걸음으로 관문으로 걸어간 거스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아렌 도련님이 돌아오셨다! 문을 열어라!”
“옛!”
복명복창한 병사들이 힘차게 도르래를 돌리자, 거대한 문이 좌우로 열렸다.
평상시에는 한쪽에 자리한 작은 문만을 열어놓지만, 그라인드 백작가의 적자가 돌아왔는데 그럴 수는 없는 법.
거대한 관문이 열리고, 아렌의 일행이 천천히 관문 내부로 들어섰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7기사단이 눈을 빛내며 주변을 살피며 앞장섰고, 그 뒤를 따르는 마차의 문양을 본 영지민들의 얼굴에 안심했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영지민들도 지금 그라인드의 내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대대로 관대한 영주였던 그라인드 백작가였기 때문에 내심 아렌의 처지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귀환하는 모습을 보니 그라인드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든 것이다.
하나하나의 감정은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 감정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그 흐름이 힘이 되어서 세상에 스며든다.
그렇게 세상으로 퍼지려는 흐름이 아렌에게 닿았다.
* * *
“흠.”
“어디 불편하신 곳이 있으신지요?”
“괜찮다.”
아렌의 작은 한숨에 베로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지만 아렌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아렌과 몇 마디라도 말을 나눌 수 있는 인물 중의 하나인 베로아는 그런 아렌의 표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기억이 돌아오셨습니까?”
“조금씩 돌아오는구나.”
아렌의 대답에 베로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소중하기 짝이 없는 도련님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 한 구석에는 일말의 불안이 존재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도련님의 탈을 쓴 다른 무엇이라면?
악마나 이계의 존재가 사람의 몸을 빼앗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닌 세상이니 베로아의 불안은 타당한 것이고, 그간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을 해왔던 것이다.
드웨인에게 그라인드의 혈계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는 그런 불안이 조금 가시기는 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는데 지금 아렌의 대답에 마음속의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런 베로아의 반응을 슬쩍 본 아렌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묘하군. 이게 몸의 기억이라는 것인가.’
기이한 경험을 수도 없이 겪은 아렌으로서도 처음 겪는 상황.
그라인드의 땅에 가까워질수록 나약한 꼬마 아렌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더니 관문에 도달하는 순간 가속화되었고, 영지민들의 염원이 그에게 도달한 순간, 폭발해 버린 것이다.
흐릿한 윤곽이 떠오르는 정도이지만 원래 뼈대가 확실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기억에 뇌가 뜨거워질 정도였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선대는 꽤나 능력이 있었던 모양이군.’
몸의 기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인 반응이었고, 아렌은 이내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관문의 역할을 하던 석성에 숨겨진 마법진과 영지 곳곳에 숨겨진 마법진들이 아렌의 기억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능력이 있어.’
그라인드의 선대를 자신의 그것인양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느끼며 아렌은 헛웃음을 지었다.
한순간에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바뀌게 하는 그라인드의 혈계능력.
혹시라도 능력에 먹혀 버린 핏줄이 폭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배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렌은 기억을 정리했다.
‘나쁘지는 않아.’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걱정하는 영지민들의 염원이 전달되는 것을 느끼며 아렌은 포근한 감정을 느꼈다.
아렌의 기억과 동화되기 시작하는 자신을 경계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아렌은 딱히 저지하지 않았다.
모자랐던 것이 충족되는 기분은 둘째 치고 굳이 저항해야 할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렌 드 그라인드다.’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것이고, 아렌의 기억이 채워진다고 해도 지금의 자신이 흔들리기에는 그의 경지가 너무도 고고했다.
그렇게 아렌의 내면이 변화하는 사이 마차가 그라인드 백작가의 본성에 다다랐다.
* * *
거스가 미리 사람을 보내놓은 덕에 본성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마차가 지나가고 성 내부의 각종 시설물들을 지나니 고풍스러운 저택이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튼튼해 보이는 저택은 유사시에 성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백작가의 위세를 대변하듯 그 규모가 가볍지 않았다.
7 기사단이 말에서 내려 마차 앞에 도열하고, 드웨인이 조심스럽게 마차 문을 열었다.
벡스터가 먼저 내려 좌우를 살피고, 센드와 유나가 내려 공손히 시립했다.
이어서 베로아가 내려 그 옆을 지키니 일행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에 아렌을 맞기 위해 저택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렌과 같이 많은 일을 겪었던 이들이니만큼 일반적인 시종과는 기백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아렌이 발을 내딛었다.
“아!”
“……어쩜!”
당황한 시종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집사장과 시녀장이 당연히 호통을 쳐야 마땅하지만 그들도 멍하니 아렌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웠지만 병약했던 꼬마 도련님은 없었다.
조각 같은 미모의 사내가 훤칠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주변을 훑어보는 모습에 대부분의 시종들은 가슴 한쪽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아렌의 시선이 그라인드의 저택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