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도련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놀란 것도 잠시, 집사가 아렌에게 예를 표하자 시종과 시녀들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둘째이지만 실질적인 후계자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던 아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극진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기억이 나는군.”
“다행이군요.”
총집사 에드워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총집사 정도 되면 가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중책인 자리다.
당연히 그라인드의 비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고, 아렌이 기억이 돌아온다고 하자 기꺼운 마음이 든 것이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혹시라도 집 내부의 기억이 불완전할 것을 대비해 앞서겠다는 배려가 아렌은 마음에 들었다.
“베로아. 벡스터.”
“예. 도련님.”
“시중을 들어라.”
“알겠습니다.”
아렌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둘을 보면서 에드워드가 이채를 발했다.
시선을 받는 사람이 결코 불쾌하지 않은 정도로 아렌의 일행을 살핀 에드워드가 납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종들과 벡스터 경도 좋은 경험이 있었던 것 같군요. 조치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행의 변화를 파악한 에드워드의 눈썰미와 대처가 아렌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한 것이고, 에드워드는 아렌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에드워드가 시녀장을 불러 몇 마디 건네는 것을 본 아렌이 입을 열었다.
“앞장서라.”
“예. 도련님.”
에드워드가 앞장서자, 저택의 문이 열렸다.
* * *
뚜벅뚜벅.
커다란 저택의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소음이 없었고, 아렌의 발소리만이 저택 내부에 울리고 있었다.
간혹 가다 지나가는 시종들과 시녀들은 발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소리 자체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조금 소란스럽습니다만, 도련님이 돌아오신 날이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것입니다.”
에드워드의 말에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인드는 그 위세에 비해서 혈족의 숫자가 적은 편이다.
몇 세대만 지나면 무섭게 불어나는 다른 귀족가에 비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적은 숫자였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그라인드의 가풍이었고, 이러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점점 그 숫자를 늘려나갔다.
저택에도 기억을 자극하는 마법진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고, 그에 따라 눈덩이처럼 가속화된 기억들이 아렌의 뇌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커다란 복도 좌우로 조각품과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결코 과하지 않은 모습이 그라인드의 검박한 가풍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은근하지만 기품이 있는 그림과 조각, 단단해 보이는 벽의 문양, 웅장한 맛이 느껴지는 샹들리에까지.
하나하나가 아렌의 기억을 자극하는 도구였고, 두 명의 기사가 지키는 고풍스런 문 앞에 다다를 때쯤에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거의 일치되어 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렌 도련님이십니다.”
에드워드의 말에 집무실을 지키던 두 기사가 흠칫 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이어 기사가 가볍게 문을 노크했고, 방 안쪽에서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아렌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꽤나 지쳐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아렌은 가만히 문을 응시했다.
습관적으로 펼쳐 놓은 감각은 이미 그라인드 영지 성 전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이 저택의 모든 것은 아렌의 감각 속에 들어와 있었고,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집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작과 호위가 넷. 괜찮은 실력이군.’
커다란 집무실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호위들의 위치를 파악한 아렌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이기에 쉽게 파악한 것이지 어지간한 마스터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은신 능력을 가진 호위들의 모습에 저력 있는 가문의 힘을 느낀 것이다.
“……들어와라.”
잠깐의 침묵 끝에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고, 기사가 방문을 열었다.
베로아와 벡스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기했고, 에드워드를 앞장세운 아렌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넓은 방은 커다란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어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책상과 서재가 있었고, 손때가 가득 묻었지만 결코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단단해 보이는 전신갑옷이 장식되어 있었고, 몇 자루의 검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각기 비범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고, 장신된 도자기나 조각등도 범상치 않았다.
이 방안에 있는 것 중에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이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새하얀 새치가 사내의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여서 연륜을 더해주고 있었다.
선이 굵은 얼굴은 미려한 외모의 아렌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 닮은 윤곽은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이 혈연관계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조금은 지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위엄을 보이고 있는 중년인, 현 그라인드 백작 알코르가 놀란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변했구나.”
서로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알코르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이내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본 아들을 상대로 한 첫마디로는 부적절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 둘째부인의 수작을 짐작했으면서도 별다른 손을 쓰지 않은 죄책감과 정을 주지 않았던 아들이 훤칠하게 돌아온 모습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알코르의 마음속을 휘젓고 있었다.
“변하지 않았군요.”
그런 알코르를 보며 아렌도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정신을 차리고서는 처음으로 해보는 존대에 아렌 자신도 조금은 어색했지만, 천륜이라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 어색한 와중에도 아렌은 말을 이었다.
“돌아왔습니다.”
“그래.”
알코르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침묵이 내려앉았고, 에드워드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들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서 에드워드만큼 잘 알고 있는 이도 몇 없었다.
알코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자식들을 냉대하는 알코르를 이해하지 못했다.
백작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에 뿌듯하면서도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모습에 내심 답답했다.
다만 두 아들이 병약하기 그지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애써 마음을 돌렸던 것이 에드워드였는데, 이제 아렌이 건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에드워드의 마음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정말 많이 변했구나.”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아렌을 살피던 알코르가 중얼거렸다.
예전의 아렌은 알코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였음을 기억한 것이다.
일반적인 아버지라면 어떻게든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겠지만 알코르는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데면데면한 관계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 그것이 그라인드라면 더 그렇고.”
아렌의 말에 알코르가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라인드의 혈계능력을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는 알코르로서는 아렌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박혀들은 것이다.
“잘 돌아왔다. 기억은 어떠냐.”
잠시 으르렁거리던 알코르가 이내 표정을 정돈하더니 아렌을 보며 물었다.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기억은 무인의 정체성과 아렌의 정체성을 융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군.”
단 답으로 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알코르는 최대한 말을 이어보려 노력했다.
“로렌은 보았느냐?”
“아직 입니다.”
알코르의 입에서 로렌의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서로를 의지하던 형제의 기억과, 건강했던 나날의 로렌의 모습, 다 죽어가는 로렌의 모습이 교차되며 잠시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아렌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알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가서 쉬거라.”
“물러가겠습니다.”
주저 없이 몸을 돌리며 방을 나서는 에드워드가 급히 따라붙었고, 그런 아렌의 모습을 바라보는 알코르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 * *
쿵.
집무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저택 내부에 울렸다.
일상적인 소리이지만 유달리 묵직한 소리라고 생각한 에드워드가 아렌에게 물었다.
“방으로 가시겠습니까?”
“형에게 안내해라.”
로렌의 이름을 들은 다음부터 집중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때문인지 아렌은 자신도 모르게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이쪽입니다.”
두 형제가 유별난 사이임을 알고 있는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고, 아렌은 심상의 변화에 집중했다.
‘단순한 빙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겠어.’
그라인드의 혈계능력은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정 짓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괴이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일생에 한번 발현할까 말까한 능력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영혼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
신관과 마법사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지 오래.
영혼은 끊임없이 윤회하며 탄생과 사멸을 반복하고 이 행위는 영혼이 불타서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된다.
혹은 충분한 업을 쌓아서 보다 상위의 존재로 재탄생하거나.
신학에서는 이렇게 격이 높아진 영혼이 만신전에서 신으로 탄생한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여하튼 영혼에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이 쌓여있을 것이고, 이러한 기억을 불러와 현세의 영혼에 입히는 것이 그라인드의 능력이다.
단순히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닌, 그러한 기억속에서도 가장 특별한 기억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그라인드의 능력은 특별했다.
다만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고 성격이 변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대부분 특별한 능력과 막강한 무력을 가지게 되니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힘의 총량이 너무 다르다.’
갑자기 강해진 아렌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것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아렌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제 아무리 영혼의 기억을 불러온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본체의 역량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병약한 아렌의 능력으로 지금의 아렌을 감당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렌의 능력과 경지는 지고한 것이다.
심각한 고민거리가 하나 생긴 셈이지만 잠시 고민하던 아렌은 이내 한쪽으로 생각을 밀어 넣었다.
‘중요한 것은 중심이다.’
꼬마 아렌의 재능이 경천동지의 것이었는지, 혹은 외부의 개입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아렌은 생각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렌 자신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 것이고, 종심이 바로 서 있다면 그 어떤 외부의 간섭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렌 드 그라인드다.’
실시간으로 다이아몬드처럼 압축되어가는 심상을 느끼면서 아렌은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입니다.”
에드워드가 멈춰선 방 앞에 두 명의 기사가 문을 지키고 있었고, 방 너머의 인기척을 느낀 아렌의 표정이 드물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