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아렌의 말을 못 들은 자들은 없었다.
야영을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기도 했었지만, 대부분이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의 청력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가 없었으니까.
마스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위대한 초인의 길목에 들어서는 그 영광스러운 이름에 흥분하지 않는다면 기사가 아니다.
강렬한 열의를 담은 눈빛이 일순간 아렌에게로 모아졌고, 아렌은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조건을 알 수 있겠습니까?”
모두의 기대를 담은 목소리로 드웨인이 물었다.
드웨인의 정의는 그라인드의 영광에 있다.
일평생 가문을 위해 몸을 바쳐왔으며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가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기사의 표본 같은 사내이다.
그런 드웨인이니 가문의 전력을 한순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비법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후끈한 열기마저 느껴지는 분위기에 아렌이 입을 열었다.
“조건이라.”
모두의 시선이 아렌의 입 끝으로 모였다.
“까다롭다면 까다롭고, 간단하다면 간단하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주시하고 있는 인원들을 바라보며 아렌이 답했다.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면 된다.”
“······ 예?”
너무나도 당연한 답변에 일순 모두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야기나 해 줘야겠군.”
후끈하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말 한마디로 잠재운 아렌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마스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검의 궁극을 향해 다가가는 구도자입니다.”
하일의 묵직한 목소리가 야영지에 퍼져나갔고, 모두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아렌은 그들이 상상할 수 도 없는 경지에 도달한 초인이다.
그런 초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기사의 길을 걷는 그들에게 있어서 금과옥조나 마찬가지이니, 진지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군. 다른 의견은 없나?”
하일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물었고, 드웨인이 입을 열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지나한 세월을 거쳐 마스터에 도달한 드웨인의 목소리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있었다.
“비교적 정확하군.”
고개를 숙여 보이는 드웨인을 일변한 아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을 갈고 닦아서 마스터에 도달하게 되면 개성이 생긴다.”
똑같은 검술을 익히고, 같은 마나운용법을 수련했다고 하더라도 마스터에 이르는 순간, 각자가 발현하는 오러의 기질이 달라진다.
드웨인의 경우에는 마스터에 올라서며 오러의 기질 자체가 단단하고 질겨져서 어지간한 오러로는 상대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익힌 검술, 마나운용법, 그 외의 요건이 모두 합쳐져서 한 인간이 걸어온 인생과 철학의 결정체로 나타나는 것이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다.”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내용은 천금을 내고도 듣기 어려운 이야기다.
“오러 블레이드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러 블레이드도 요령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렇게 만든 오러 블레이드가 인생을 녹여낸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들와 같을까?”
기사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조건과 마스터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다르지 않아. 애초에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면 되는 거다. 거기에 우직하게 수련할 수 있는 끈기와 많은 경험이 있으면 언젠가는 마스터가 되는 거지.”
아렌의 시선이 기사들을 훑었다.
“그냥 놔둬도 되는 마스터를 강제로 마스터로 끌어올렸다고 치자. 그럼 그것을 진정한 마스터라고 할 수 있을까?”
“······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으면 마스터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아렌이 피식 웃었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마스터는 개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자다. 타인이 이끌어준 길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기사들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이었지만, 드웨인과 하일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둘이었으니 아렌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진정한 마스터의 오러를 상대하기도 힘들고, 발전도 없겠군요.”
드웨인의 말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무리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스터에 이른 자를 계속 끌어올린다는 건 무리가 있지. 그러면 결국 정체되고, 정체되다보면 퇴보하기 마련이다.”
찻잔으로 목을 축인 아렌이 말을 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마스터가 될 텐데 그 시간을 조금 앞당기자고 반쪽짜리를 만드는 꼴이다.”
아렌이 단언했다.
“그러니까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기사들도 있었고,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은 기사들도 있었지만, 드웨인과 하일은 뭔가 크게 깨달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마스터의 재능이란 무엇입니까?”
묵묵히 듣고 있던 벡스터의 물음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언젠가는 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재능.
꾸준히 노력만한다면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마스터를 양산할 수 도 있지 않겠는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비밀일 될 수 도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 기사들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적당히 건강한 몸, 적당히 유연한 신체, 마나 감응력이 높은 편이 좋겠지. 거기에 체력까지 좋으면 더욱 좋고.”
아렌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모두의 표정이 허탈해졌다.
“정신력도 중요하다. 무기를 다루는 자에게 있어서 단단한 정신력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 그런 조건이라면 여기에 있는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왔고, 그 순간 아렌이 웃었다.
“맞다. 너희 전부가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예?”
소리 없는 경악이 야영지를 휩쓸었지만 아렌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재능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결국 타인보다 조금 튼튼한 정도면 되지. 피렌사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다만 ······. 거기는 거기대로 문제가 있으니까 출발선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천재가 분명하게 있지 않습니까. 제국에만 하더라도 젊은 나이에 마스터에 이른 천재들이 있습니다.”
하일의 반문에 아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마스터 까지는 어찌어찌 갈 수 있겠지. 하지만 천재일수록 그 위를 바라보기 힘들다.”
“예?”
하일의 의문에 아렌이 답했다.
“마스터는 인생과 철학이 녹여진 경지다. 그 중에는 수많은 실패의 경험도 있겠지. 헌데 상대적으로 실패의 경험이 적은 천재들이 그 이상을 바라보기 쉬울 거 같으냐?”
아렌의 시선이 밤하늘로 향했다.
“무수히 많은 벽에 부딪치고, 좌절하고, 극복해서 나아가는 것이 경지라는 것인데 천재라는 자들은 그 벽에 부딪치는 일 자체가 적다. 그러다가 감당 못할 벽을 만나면 대부분 주저앉기 마련이지.”
오직 드웨인만이 굳은 표정으로 아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열심히 수련해라. 무수한 경험을 거치고 궁구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에 기사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겠지. 여하튼 너희들은 재능이 있으니 노력해라.”
노력이라는 말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강제로 마스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이해가 갑니다.”
드웨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바늘구멍보다도 작은 틈을 통과한 선택받은 자들이 마스터인데, 비록 반쪽짜리라고는 하지만 그런 전력을 임의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쓸모는 무궁무진할 것이니 그 필요성은 차고도 넘치는 것을 더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저 녀석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거 같으냐?”
“예?”
이제는 반쯤 숨이 끊어진 중년인을 보면서 아렌이 물었다.
“강제로 경지를 이끌어준다는 게 말은 쉬워 보이지만 그 와중에 어떠한 파탄이 일어날지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많은 숫자의 기사들이 죽어나갔을 거다.”
드웨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녀석들도 정상은 아니지. 당장은 힘이 있어서 날뛰겠지만 결국 파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저 녀석도 잘해봐야 10년 정도였겠지.”
아렌 자신이라면 그 파탄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향으로 마스터로 이끌 수 있겠지만 그래도 파탄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거친 솜씨다. 제자나 기사로도 생각안하고 그냥 소모품삼아 강제로 끌어올린 거야. 그걸 버티고 마스터가 된 저 녀석이 대단한 거다.”
이제는 숨이 끊어진 중년인의 시체를 일변한 아렌이 저 멀리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구나.”
드물게 보이는 아렌의 짜증어린 표정에 드웨인은 침묵했다.
* * *
조직이라는 것은 결국 효율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비밀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제 아무리 스폰서가 빵빵하더라도 비밀조직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소수정예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사내는 자신의 조직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일이 많았지.”
과거를 반추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사내가 추억에 잠겼다.
은밀히 사람을 모으고, 철저하게 세탁한 자금을 이용해서 차명으로 장소를 마련했다.
물자의 이동을 숨기기 위해서 거래처를 복잡하게 꼬는 것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살인으로 입을 막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중삼중의 감시 체계를 만들어서 보안을 유지했던 생각을 하면 우울증이 도질 정도였고, 그 와중에 갈 곳 없는 고아들을 세뇌해서 조직의 중추로 만들었던 것은 백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거물을 초빙하고 거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지만,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조직이었으니 사내가 자부심을 느낄 만도 했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들려온 목소리에 사내가 급하게 표정을 정리했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냉정한 표정을 지은 사내의 앞으로 급하게 다가온 마법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말해라.”
다행히 자신의 풀어진 모습을 보지는 못한 것 같아서 내심 안심한 사내가 싸늘한 목소리를 흘렸고, 마법사의 어깨가 위축되었다.
“13번과 14번의 반응이 끊겼습니다.”
“······ 뭐?”
최대한 상급자의 위엄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내였지만, 마법사의 보고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13번과 14번이라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가 있었다.
“로랑 자작가의 공자를 잡으러 간 녀석들이군. 그런데 반응이 끊겼다고? 이놈들을 상대할만한 전력이 있었나? 마스터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을 텐데?”
마법사가 내민 보고서를 샅샅이 읽은 사내가 의문을 표했지만, 마법사는 더욱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없습니다.”
“······ 골치 아프군.”
방금 전의 기분 좋았던 회상도 멀리 달아나고, 사내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넘버링은 조직의 가장 큰 비밀 중의 하나였고, 조만간 조직의 간판으로 내세울 예정이 되어있던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것이다.
“······ 죽었겠지?”
“저희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금기에 가까운 마법을 걸어서 신체 상태를 상시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반응이 끊겼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로랑 자작가의 일은 일단 접어. 그리고 13번과 14번의 이동 경로를 샅샅이 조사해라.”
“알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물러가는 마법사를 바라본 사내가 뒷목을 잡았다.
이제야 조직이 안정되어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안심하던 차에 일어난 사고는 사내의 혈압을 급상승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왜 세상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 거지.”
세상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끼며 한참 씩씩거리던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다시 한 번 펼쳤다.
스폰서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