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 다렌을 기사들에게 맞기고 아렌은 루갈을 마주했다.
“도련님들.”
루갈이 절도 있는 자세로 고개를 숙여 로렌과 아렌에게 예를 표했고, 로렌이 희미하게 웃으며 아렌에게 자기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손짓했다.
“자리를 옮기자.”
“예.”
연무장 한쪽으로 자리를 옮긴 루갈이 숨을 들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인선이 끝났습니다. 드웨인 님을 중심으로 6, 7기사단에서 인원을 차출했고, 마법사단에서도 노아님이 인원을 정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기사 40명에 마법사 다섯입니다. 거기에 신전에서도 기부를 대가로 신관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실력에 따라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어지간한 소영지 하나는 밀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다.
마법사는 모일수록 강해지는 법이고, 거기에 기사단과 함께 한다면 천단위의 병력을 섬멸하는 것도 가능한 전력.
그러한 병력에 보조를 해 줄 신관까지 합세하고, 지휘관이 마스터인 드웨인이니 침공군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을 구성이다.
“아끼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평소에도 신전에 기부를 많이 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특별히 더 신경 썼으니 신전에서도 입을 닦지는 못할 겁니다.”
제아무리 세속의 영광과 부를 멀리하는 신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믿음만으로 생명을 이어나갈 수는 없으니 일정 수준 이상의 재화는 분명히 필요했고, 그러한 점에서 그라인드 백작가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최소 주교급이 파견 될 겁니다.”
덕분에 헤르메스에서 신전의 위세는 적지 않은 편이니 그간의 성의를 보아서라도 고위급 신관이 파견될 것이 분명했다.
“주교급이라면 괜찮겠군.”
소규모의 교구를 책임지는 고위 신관이 주교다.
믿는 신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주교급이라면 즉사가 아닌 이상 목숨을 붙여 놓는 것이 가능한 수준의 신성력을 발휘하는 자들이다.
고개를 끄덕인 아렌이 생각에 잠겼다.
혈연과 가문에 대한 심상의 변화가 생긴 이래, 그라인드 백작가의 모두는 아렌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잉그리드의 소생이라고는 하지만 다렌은 엄연히 아렌의 동생이고, 그가 엄중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니 호위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 예지에 가까워진 아렌의 감각이 이번 다렌의 행보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경고를 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 정도면 괜찮겠군. 수고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묵직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는 루갈을 보면서 아렌이 미소 지었다.
영지 제일의 기사는 드웨인이지만 드웨인은 이미 일선에서 은퇴한 원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문의 상황에서 1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루갈은 그라인드 백작가 기사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사다.
익스퍼트 최상급에 발을 들여 놓고 계기만 있다면 마스터로도 올라설 수 있는 출중한 기사인데다가 일처리도 확실하니 아렌은 만족했다.
“알겠지만 이번 다렌의 제도행은 꽤나 중요하다.”
미소를 지은 아렌의 목소리에 루갈이 몸을 반듯이 했다.
“숙조부의 시신을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제도의 귀족들과 황제에게 그라인드의 세가 건제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자리야.”
“물론입니다.”
소문은 말보다 빠르다.
게하르 자작가의 수작질과 그 결과는 이미 어지간한 귀족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단호하게 물리쳤으니 다행이지만, 그러한 도전을 용납했다는 것 자체가 명예에 흠이 간 상황이 된 것이다.
8대 귀족의 일원이고 황금의 그라인드라고 불리는 명망 높은 고위 귀족으로서의 체면이 떨어진 상태.
때문에 가문의 건제함을 여기저기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알아서 잘 했겠지만 출발하는 그 시간까지 신경을 써다오.”
“걱정 마십시오.”
절도 있게 예를 표하고 멀어지는 루갈을 보면서 아렌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바인드.”
“예. 도련님.”
거짓말처럼 아렌의 그림자에서 나타난 바인드가 공손한 모습으로 아렌의 뒤에 시립했다.
“네가 쫓아가라. 최우선 목표는 다렌의 생존이다.”
“알겠습니다.”
“드웨인한테는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 그렇게 알고.”
“예.”
말과 함께 바인드가 사라졌고, 그 잔향을 아렌은 무심한 눈으로 보았다.
사실상 아렌을 제외하고 영지 제일의 무력이라 할 수 있는 바인드다.
바인드의 합류를 확정지으니 그간 아렌을 쿡쿡 쑤셔 오던 불길한 감각이 그제야 가시는 것을 느꼈다.
안심할 만도 하건만 아렌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제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냐.”
바인드와 드웨인이라는 두 명의 마스터와 수십 명의 베테랑 기사들, 경지에 이른 다섯의 마법사와 주교급의 신관을 투입하고서야 겨우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고가 다렌에게 벌어진 다는 일이다.
그리고 아렌이 생각하기에 이 제국에서 그 정도의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 되지 않았다.
“8대 귀족과 황자들, 그리고 황제 정도.”
어쩌면 그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렌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기사들에게 자세를 교정 받고 있는 다렌을 보았다.
제법 다부진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다렌과 그것을 푸근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로렌, 눈을 빛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엘렌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인상이 풀리는 것 같았다.
“누가 뭐를 하던지 대가를 치를 거다.”
나지막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말에 담겨 있는 의지는 맹세가 되어서 세상에 스며들었고, 아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렌을 담금질하기 위함이고, 일순 다렌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아 보였다.
* * *
“그라인드의 혈족이 제도로 향한 다라.”
스폰서에게서 날아온 서류를 다시 한번 정독한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직의 몇 안 되는 성공작인 13번과 14번을 잃은 사고 이후, 사내는 스폰서에게 말 그대로 대차게 까였었다.
날벼락 같은 사고였지만, 앞뒤 관계를 조사한 결과 충분히 그럴 수 있었고,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는 내용을 상세히 적어서 올렸음에도 성질 더러운 스폰서는 폭언과 비난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어찌 성질을 가라앉힌 스폰서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그 이후로는 별말하지 않았지만, 사내는 그때 빠진 머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쓰렸다.
성공작인 13번과 14번을 잃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이미 데이터는 충분했으니 시간과 자원만 있다면 마스터를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언제나 시간과 자원이 문제지.”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최고의 재능을 가져다놓더라도 절대적인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을 추구해서 어떻게든 쥐어짠다고 하더라도 무려 마스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일인 만큼 상상할 수 없는 재화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스폰서의 주머니가 꽤나 깊다고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에 들어갈 재화를 생각하면 지고한 위치에 자리 잡은 스폰서라고 할지라도 허리가 휠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라인드의 혈족이 영지를 나섰으니, 스폰서의 눈이 돌아갔을 것이고 사내는 스폰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기쁜 마음으로 조직원들을 파견하겠지만, 사내는 망설였다.
“……불안해.”
정확히는 그라인드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불안했다.
13호와 14호를 잃어버린 것도 결국 그라인드와 엮여서가 아닌가.
물론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괴물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한 치를 알 수 없는 것이고, 사내는 조금의 불확실성도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껏 음지의 비밀조직을 큰 잡음 없이 이끌어온 비결이니 사내는 자신의 감각을 무시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그렇다고 스폰서의 명령을 무시했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 판이었으니 사내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민을 거듭한 사내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절충하자. 보나마나 온갖 잡것들이 모여들 것 같은데, 최대한 상황을 본 다음 끼어드는 것으로 해야겠군.”
스폰서의 명령에도 어긋나지 않고, 나름대로 실리를 챙기며 자신의 불안감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사내는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열심히 습격작전을 짜내었고, 제국 각지의 비밀 조직에서는 이와 동일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조심하는 사내와는 다르게 여타의 조직들은 재빠르게 자리를 박찬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 *
“출발!”
드웨인의 외침과 함께 성을 나서는 일행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다렌과 시녀들이 커다란 마차가 그러했고, 하나같이 명마라고 불리기에 아깝지 않은 말들에 올라탄 기사들과 그 뒤를 따르는 시종들, 마법사들과 제자들, 심지어 신관들까지 합류한 일행의 수는 백 명을 가뿐히 넘었다.
“와아!”
“잘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외부로 잘 행차하지 않는 백작가의 사람들이기에 일행의 모습은 헤르메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평민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신사들과 귀족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다렌의 무운장도를 기원했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일행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알코르는 고개를 돌렸다.
“떠났군.”
짧지만 확실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잉그리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다렌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렌은 안전할 거다. 아렌이 조치를 확실히 취했더군. 나도 손을 썼고. 이번 일은 다렌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겠지.”
“힉!”
다렌의 이름에도 반응하지 않던 잉그리드가 아렌의 이름이 나오자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벌벌 떨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과 잔뜩 웅크린 모습이 절로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런 잉그리드를 바라보는 알코르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남아있던 게하르의 기사들은 ‘선물’을 들려서 북부로 보냈다. 엘렌의 유모와 시녀들은 남았으니 말벗은 할 수 있겠지.”
“하악!”
두려움에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도 선물이 무엇인지를 인지한 잉그리드가 더욱 몸을 말았다.
아렌의 손에 불구가 되었던 기사들은 어찌어찌 몸을 회복하자마자 아렌의 선물을 가지고 북부로 쫓겨난 것이다.
여전히 두려운 얼굴로 벌벌 떨고 있는 잉그리드를 지그시 바라본 알코르가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 다만 현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으면 해.”
말과 함께 알코르가 몸을 돌렸다.
“다렌과 엘렌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을 거야. 두 아이는 그라인드의 적통이고, 로렌도 아렌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거기까지다.”
다렌의 계승을 알코르가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잉그리드가 두려운 표정으로 손톱을 깨물었다.
“아렌이 말한 대로 게하르는 가만 둘 수 없어. 사돈을 떠나서 결코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알코르의 눈에 섬뜩한 빛이 떠올랐다.
“몸 조리 잘하고 앞으로는 그저 조용히 지내기를 바란다.”
쿵.
냉정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안에는 잉그리드 혼자만이 남았다.
따다닥.
쉴 새 없이 이빨을 부딪치며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던 잉그리드의 얼굴이 점차 안정되어 가는가 싶더니 이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라인드!”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