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기사라는 것은 말을 타고 싸우는 사람을 말하지만 언젠가부터 기사들은 말 대신 두 다리로 전쟁터에 서기 시작했다.
물론 승마술은 기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지만, 기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말을 중요시 했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그 원인은 오러.
마나를 몸에 받아들이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기사들에게 더 이상 말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저 멀리 밤의 어둠을 뚫고서 말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드웨인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피식 웃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여유가 생기니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군.”
마스터에 이르지 못했던 노년의 기사.
경지가 고만고만하다면 자신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인정하고 포기할 만도 하건만 드웨인은 익스퍼트 최상급의 문턱에 걸쳐 있었던 기사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재능이 발목을 잡는다고 여겨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었고,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은 점차 조급해져서 자신이 망가지고 있음을 인지했었다.
그런 그를 아렌이 한마디로 잡아 주었고, 결국 마스터에 이르게 되었으니 세상사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을 두루 경험하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드웨인을 존경하지 않는 그라인드의 기사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와는 반대되는 자로군.”
“무엇이 말인가?”
진형의 바깥쪽에서 조용히 대기하며 중얼거리던 드웨인의 말을 어느새 나타난 중년의 기사가 받았다.
어둠을 가르는 습격자이건만 눈앞의 기사는 전혀 습격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전신갑옷은 어둠속에서도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고,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검과 검 집은 한눈에 봐도 주인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 복면은커녕 자신의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드웨인은 대번에 눈앞의 기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별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나저나 당신이 나타날 줄은 몰랐군.”
“호오.”
중년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를 아는가?”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중년인의 얼굴에는 당연히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소문이 전혀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드웨인은 피식 웃었다.
“기도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가문의 문장을 숨기지도 않았잖소. 자코프 자작.”
길 드 자코프 자작이 환하게 웃었다.
“떠버리 자코프라는 별명이 전혀 이상하지 않군.”
길 드 자코프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 * *
제국은 넓고 신민은 넘쳐흐른다.
황제가 정복전쟁을 시작했을 무렵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인구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죽어나가는 병사보다 충원되는 병사가 더 늘어날 정도였으니, 제국의 광대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구가 많으면 자연히 인재도 늘어나기 마련.
길 드 자코프는 그런 인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재능의 소유자다.
30대 초반에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 그 천재성을 증명했고, 40대가 되기 전에 마스터에 오른 그야말로 검의 천재.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황제조차도 자코프의 재능에 감탄했고, 남작가문의 차남이었던 자코프는 단번에 자작에 임명되었으니, 무수히 많은 자들이 자코프를 영입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사 장점만 있지는 않은 법.
그 재능만큼이나 자코프는 오만했고, 허영심이 심했으니, 항시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자코프를 향해 언젠가부터 떠버리 자코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면전에서 그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떠버리라고 부른 대부분의 사람이 그의 검에 두 동강이 났으니까.
* * *
“……영감이 늘그막에 마스터가 되더니 겁이 없어졌나 보군.”
다시금 자코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지만, 방금 전과 같지는 않았다.
푸스스.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차가운 미소는 마스터의 역량과 합쳐져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니, 자코프 주변의 풀들이 누렇게 말라 죽어갔다.
“원래 노인은 겁이 별로 없지.”
은밀하지만 송곳처럼 찔러 오는 자코프의 기세를 드웨인이 받아쳤다.
자코프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자코프가 마스터가 된 것은 30대 후반이고 지금의 나이는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성격과는 별개로 멈추지 않는 검의 재능은 자코프를 원숙한 마스터로 만들어놓았는데, 마스터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드웨인이 그의 기세를 받아넘기니 놀란 것이다.
자코프의 감정 변화가 느껴졌지만, 드웨인은 자코프를 상대하면서도 주변을 훑고 있었다.
자코프가 데려온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넓게 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정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만치 않은 영감이군. 그라인드에서 좋은 거라도 먹였나?”
“당연히 우리 백작님께서는 이 늙은이를 섭섭하게 대하시지 않지.”
조소어린 미소에 자코프가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제 아무리 마스터가 되어서 오러의 수발이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오러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부지런한 수련과 뛰어난 마나연공법을 가지고 있다면 오러의 절대치를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고, 일반적인 기사에 비해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것보다 더욱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영약이다.
단순히 먹고 소화시키는 것만으로 오러의 양을 크게 늘릴 수 있는 영약은 그 값어치가 절대 낮지 않았고, 제아무리 자코프라고 하더라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인데, 눈앞의 영감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배알이 꼴렸다.
“그러는 자네는 2황자님이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야.”
“……닥쳐.”
무수히 많은 영입 제의가 자코프에게 쇄도했었고, 젊은 날의 자코프는 고민 끝에 2황자의 막하에 들어섰다.
죽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황제가 버티고 있었지만, 그래도 황자는 황자.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상대를 주인으로 삼은 자코프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2황자 밑에서 부족함 없이 대우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 의문이 들었다.
“하긴 주머니가 비어간다는 소문은 들었지. 그래서 자네가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군.”
황자의 숫자는 열이 넘고, 공주들을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많아진다.
중년을 넘어서 노년을 바라보는 황자들도 있을 만큼 황제가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후계경쟁을 멈출 수는 없는 법.
제도를 비롯해서 제국 각지에서는 타기 황제를 노리는 황자, 황녀들끼리의 경쟁이 빈번했고,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전쟁은 어느덧 그들의 주머니마저 가볍게 만들었던 것이다.
“……긴말 않겠다. 다렌 공자의 신변을 넘겨라. 이제부터 우리가 보호하도록 하겠다.”
스릉.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예기를 발하는 보검을 뽑아든 자코프가 드웨인을 향해 검을 겨눴다.
차차차창!
그리고 그것이 신호인지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삽시간에 충천하는 예기와 살기가 공간을 짓눌렀고, 간간히 들려오던 벌레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떠버리라고 하더니 헛소리를 하는군.”
당장에라도 온몸이 난도질 될 것 같은 살벌함이 공간을 지배했지만, 드웨인은 웃었다.
‘아렌 공자님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지.’
공포는 미지에서 오는 것인데, 이미 아렌이라는 흉악을 경험한 드웨인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위협은 전혀 위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 죽어!”
그 순간 자코프의 검이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드웨인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 * *
“쳐라!”
자코프의 외침과 함께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들의 정체는 2황자가 비밀리에 키운 유격기사들이다.
철저히 비정규전에 투입되는 이들은 기사의 명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인간 도살자들.
지나간 자리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숙련된 살인귀들이고 무수한 실전을 거친 자들답게 이번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방 대귀족에 속해있는 기사들 따위야 온실의 화초 같은 것이고, 몇 번 검을 섞다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서 있는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것에 한 점 의심도 없었다.
캉!
“흡?!”
“별거 아니군.”
생각보다 강한 반발력에 유격기사가 놀랐고, 그라인드 기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우웅.
동시에 검을 맞대고 있는 기사의 몸에서 무수한 마법의 빛이 떠오르더니만, 강대한 압력이 솟아올랐다.
카캉!
“크흡!”
일순간 증가된 힘으로 크게 검을 휘두르니, 유격기사는 균형이 무너졌고, 뒷걸음질 할 수밖에 없었다.
“검이 약하군. 하긴 돈이 없어서 우리 도련님을 노리는 놈들이니 알 만하지.”
혀까지 차며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기사의 모습에 발끈했지만, 유격기사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금 전의 일격 때문인지 들고 있는 검의 날이 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러를 사용하는 익스퍼트가 쓰는 검이니만큼 평범한 검은 절대 아닌데, 마법의 빛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상대의 검을 보니 자신의 검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법 실전도 겪고 능숙해 보인다만.”
그런 상대를 보며 그라인드 기사가 검을 들어올렸다.
“우리 ‘황금’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야!”
오러와 어우러진 휘황한 마법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유격기사의 숨통을 끊기 위해 쇄도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전장의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으니, 유격기사단 전체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지 않군.”
“……상상이상이군요.”
한쪽에 떨어져 전장을 살피던 유격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단번에 쓸어버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라인드 기사들의 저항은 격렬했고, 저항을 넘어서 반격을 해 오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었으니, 이들의 얼굴이 편할 리가 없는 것이다.
“……자코프 자작님도 쉽지 않은가 보군.”
콰콰쾅!
포위망과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먼지 구름은 두 마스터가 대등하게 격전을 벌이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으니, 결과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작전 실패는 물론이고 심대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
백 명이 넘어가는 인원 전체에게 아티펙트를 지급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황금의 그라인드라더니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군. 황궁 근위대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실력과 경험의 차이를 돈으로 메어 버리는 비효율의 극치였지만,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니 단장과 부단장은 어이가 없었다.
“……무조건 손에 넣어야 합니다. 이 정도라면 2황자님에게 절대적인 힘이 될 겁니다.”
그렇기에 단장과 부단장은 결의를 다졌다.
이 막대한 금력의 일부만 흘러들어가더라도 후계경쟁에서 크게 앞서나갈 수 있음을 확신한 것이고, 이들은 주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
“가자!”
굳은 얼굴로 검을 뽑아든 단장이 앞으로 나섰고, 부단장과 호종하던 기사 몇이 그 뒤를 받쳤다.
“막아!”
“……젠장! 이놈들 빨라!”
그러한 이들의 결심을 알아차린 것인지 유격기사들이 몸으로 길을 텄고, 아직 경험이 일천한 그라인드 기사들은 결국 다렌으로 향하는 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못 간다!”
“크흐흐흐. 나랑 계속 놀아줘야지?”
느긋하게 유격기사들을 몰아붙이던 그라인드 기사들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들을 유격기사들이 몸을 붙이며 지척거렸다.
쿠르릉!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린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했지만, 광역 마법은 자칫 잘못하면 아군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상황.
대인 마법이라면 유격기사들에게 큰 장애물은 아니었고, 어느덧 단장과 부단장이 마차 앞까지 다다랐다.
“다렌 공자. 순순히 따라오시오!”
강행 돌파를 한 덕분인지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만, 단장과 부단장은 웃을 수 있었다.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이상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고,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들에게서는 별다른 압력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하얗게 변해 버린 다렌의 얼굴을 바라보며 흉악한 미소를 짓던 단장이 앞으로 나서던 그때.
웅.
어쩐지 노을을 닮은 것 같은 빛이 피어오르더니만 이내 그들을 향해 쏘아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