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소문이 참 빠르구나. 며칠 지나지도 않았거늘.”
“그만큼 황제에게 불만이 많았다는 소리도 되겠지.”
아렌의 중얼거림에 도리안이 바로 대답했다.
이렇게될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에 조금은 놀란 것이다.
여기에는 마르틴과 알코르의 숨은 조력이 있었다.
아렌의 이야기를 옳다고 여긴 둘은 두 가문의 합의가 이루어지자마자 자신들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온 사방에 이 소식을 떠들었다.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들이라면 메카니와 그라인드의 혼인 소식을 들었을 정도였으니 두 사람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공작에 가까운 선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혼인이라는 경사를 사방에 알리고 다닌 모양이니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전쟁은 많은 기술의 발달을 가속화시키기 마련이고, 수십 년 동안 발달한 마법통신 기술은 제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상황.
덕분에 제국의 귀족치고 두 가문의 혼사를 모르는 이들은 이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법전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라인드와 메카니 영지로 찾아가고 있었고, 늘어나는 방문객에 두 가문의 집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외부에서 지내고 있던 나에게 바로 연락이 오더군. 그래도 자네와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저 없이 이 자리에 나를 보냈네. 덕분에 공략하던 던전을 버려두고 왔어.”
투덜거리는 말투였지만, 도리안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표정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감정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피렌사 공작가의 대외적인 얼굴마담이기는 하지만 실상 도리안은 가문 내에서 입지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가문을 대표하는 자리에 나온 것이 못내 유쾌한 것이다.
“조금 의외긴 하군.”
그런 도리안의 모습을 보며 잠시 침묵하던 아렌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확실히 의외긴 하지.”
아렌의 말에 도리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피렌사 공작가.
제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귀족 가문보다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이다.
현 제국을 다스리는 황가보다도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니, 비록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는 가문이기는 하지만 피렌사를 무시하는 귀족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래된 가문은 저력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런 면에서 피렌사의 저력은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딱히 세력을 넓히려고 하지도 않고, 정치에도 관심 없다.
오로지 우월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품종계량만을 거듭해오며 은둔하던 피렌사가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부분이 아렌에게는 의외였고, 그것은 피렌사의 혈족인 도리안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유를 듣기 전까지는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만하다고 납득이 가더군.”
그림 같은 자세로 찻잔을 들어 올리는 도리안의 말에 아렌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괜찮겠나?”
“시간은 넉넉하다.”
아렌의 시선이 엘레나와 놀고 있는 엘렌에게로 향했다.
“엘렌이 잠들기 전까지면 충분해.”
“그러면 괜찮겠군.”
아렌의 말에 도리안이 슬쩍 웃더니 표정을 굳혔다.
“피렌사는 오래된 가문이지. 그건 알고 있나?”
“그래.”
유피테르의 별장에서 쉬던 시절 베로아는 아렌에게 최대한의 상식을 주입하려 애썼고, 그 중에는 유력한 귀족가문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비록 간단한 내용뿐이었지만, 각 가문을 특징하는 내용은 빠지지 않았고, 그 중에는 피렌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것이다.
“괴짜들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푸하하핫! 괴짜라니 신랄하군. 그걸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 재미있어.”
아렌의 말에 도리안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갑작스런 웃음에 엘레나와 엘렌의 시선이 모였다.
“뭐야아?”
귀를 쫑긋거리며 귀엽게 조잘거리는 엘렌의 모습에 다시금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와아아아!”
그 순간 유나가 재치를 발휘해 운디네를 엘렌의 눈앞에 소환했고, 엘렌의 관심은 금세 다른 곳으로 넘어가 버렸다.
“히히히.”
환하게 웃으며 운디네의 뒤를 쫓는 엘렌의 모습에 푸근한 미소를 짓던 도리안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그래. 아이라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맞겠지. 그런 면에서 피렌사는 인간미가 없어.”
복잡한 감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엘렌을 바라보던 도리안이 이내 자세를 바로 했다.
“확실히 타인의 관점에서는 괴짜들이 맞아. 공작가라는 자들이 외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우생학이라는 것에 매달려서 가문의 힘을 깎아먹는 것처럼 보이겠지.”
우월한 혈통의 후손을 만들기 위한 피렌사의 집착은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우수한 재능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내줄 각오가 되어있는 곳이 피렌사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 오며 가문이 휘청거리던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하니 다른 귀족들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가문인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피렌사인데. 덕분에 나나 엘레나가 태어나기도 했고.”
자조적인 미소가 도리안의 입가에 떠올랐지만, 아렌의 생각은 달랐다.
“너 정도의 재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피렌사의 지난날이 헛되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
“…… 그건 고마운 이야기군. 무엇보다 자네에게서 인정받았다는 게 뿌듯해.”
도리안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피렌사의 후손으로 태어난 도리안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아렌이 감탄할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정작 피렌사가 원하는 재능을 가지지 못한 도리안은 가문 내에서 겉돌며 한미한 취급을 받았고, 그러한 가문의 취급에 반발하며 최소한 자신과 엘레나를 건사하기 위한 힘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했었기 때문이다.
유피테르에서 세력을 쌓고자 한 것도 그 일환이었고, 그 와중에 아렌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친분을 쌓아 이 자리에까지 왔으니 세상사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격동이 휘몰아쳤지만 도리안은 빠르게 진정을 되찾았다.
조금의 친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괴물을 눈앞에 두고 방심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너 같은 재능이 다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조금 의아하기는 하더군.”
“피렌사의 목표는 신을 만드는 것이네.”
“신?”
“그래. 신.”
광오하기 짝이 없는 목표에 어지간한 아렌도 표정을 바뀌었다.
* * *
황제의 앞에서 당당히 자기 의견을 피력한 다렌에게 황제는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리지만 당당한 귀족의 모습은 힘을 제일의 가치로 치고 있는 제국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고, 결정적으로 명분에서 완전히 밀리니 딱히 제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렌의 주장과 요구는 정론중의 정론이어서 이를 반대하는 것 자체가 싸움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런저런 일로 골치가 아픈 황제는 더 이상의 문젯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는 황제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육성해낸 수족들의 능력을 믿고 있는 점이 컸다.
드라고는 공안의 모든 힘을 다해서 로티컬의 사인을 조작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공안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제국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황제는 안심한 것이다.
여하튼 황제의 제가를 얻어낸 다렌과 일행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대체적으로 느긋한 기조를 보이는 곳이 그라인드지만 황금을 쫓는 자들에게 있어서 때때로 시간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는 법.
뭐가 그리 급한지 발 빠르게 제도를 들쑤시고 다니는 그라인드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할 정도였다.
대귀족이라고 자칭할 수 있다면 제도에 저택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그라인드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거대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생전의 로티걸이 사용하던 저택에 여장을 푼 다렌의 일행은 일단 요새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민감한 반응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다렌의 마음속에 황제는 확실한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제도는 적진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보름간의 여행 동안 군사적인 안목이 크게 상승한 다렌에게 진지를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드웨인을 비롯한 일행들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게 요새화 된 저택에 마법사들이 공간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그라인드와 연결했다.
원래 허락받지 않은 공간이동은 제도에서 엄격히 금지되어있고, 거미줄 같은 마력망이 제도를 덮고 있어서 공간이동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노아를 비롯한 그라인드의 마법사들 역시 만만한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
마법사의 경지를 높이는 것은 끝없는 연구와 실험이고, 그 연구와 실험에 필요한 것은 결국 황금이다.
황궁 마법사들마저 자금 압박에 시달리며 자신의 연구를 뒤로 미룰 때, 그라인드의 마법사들은 그러한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으니, 대대로 쌓아온 마법은 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꽤 많았고, 축적된 결과물은 천재중의 천재라는 황제의 마법을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노아는 황궁마탑을 완전히 속일 수 있었고, 기어코 제도와 그라인드 사이의 직통 터널을 개통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사실이 향후에 어떤 변수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가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노아를 비롯한 고위 마법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저택에 넘어왔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아티펙트를 동원하니 순식간에 마법공방이 완성되어 버렸다.
여기에 소요된 자금만 계산한다면 어지간한 영지의 일 년 운영비에 맞먹을 정도이니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알코르와 아렌의 의지는 확고했고, 그렇다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 의지를 실행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로티컬의 시신이 정밀분석에 들어갔고, 황제와 공안들은 안심하고 있었겠지만, 그라인드의 가신들은 기어코 공안이 최선을 다해 조작한 시신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입니다. 단숨에 목이 잘렸어요. 아마도 로티컬님은 자신이 죽는 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살은 절대 아니군요.”
노아의 설명에 다렌은 표정을 굳혔다.
그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목을 단숨에 잘라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자기 자신의 인식을 속일 수는 없으니 로티컬은 살해 된 것이 확실했다.
“…… 이 정도 솜씨라면 최하가 소드마스터군. 그 중에서도 쾌검과 기예에 정통한 자가 아니라면 어려울 거야. 일단 나는 무리다.”
잘려나간 단면을 유심히 관찰한 알렉세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너무나도 깨끗이 잘려나가서 이게 검상이 맞나 싶을 정도의 상처를 낸 솜씨는 알렉세이에게 두려움마저 안겨줄 정도였으니 상대의 솜씨가 상식을 넘어서 비상식의 경계에 까지 도달해 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저도 힘듭니다. 아마 아렌 도련님도 이런 기예는 힘드시겠지요.”
드웨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 모를 힘을 소유하고 있는 아렌이지만 기본적으로 그 힘은 운용은 광폭한 편이었으니 이런 섬세한 기예는 아렌과 거리가 있어보였던 것이다.
“자네는?”
“…… 어찌어찌 가능할 것도 한데, 단번에는 힘들어. 꽤나 심력을 쏟아 부어야 할 거 같군.”
세 명의 소드마스터중 가장 섬세한 기교를 가지고 있는 디어뮈드 역시 두 손을 들었다.
“최하가 달인의 경지에 이른 소드마스터, 혹은 초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마스터들의 이야기를 들은 노아가 결론을 내렸고, 그것은 무거운 침묵을 만들었다.
용의자는 좁혀졌지만, 생각지도 못한 적의 솜씨에 모두가 긴장한 것이다.
“…… 그래도 찾아내야 합니다. 최소한 적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야죠. 누구인지만 알 수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단단한 기백이 느껴지는 다렌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황금의 그라인드고 황금은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황금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렌이라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괴물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