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 !
인간의 가청영역을 벗어난 포효가 사방으로 번졌다.
귀로 들리지는 않지만, 끔찍하고 섬뜩한 느낌이 모두의 전신을 울렸고, 몇몇은 어지러움과 함께 헛구역질을 했지만, 물러서는 이들은 없었다.
“죽어라 악마!”
사방이 검게 오염되어 버려서 마기가 넘실거리는 대지를 수많은 기사들이 질주했다.
제각각 오러를 넘실거리며 심신을 보호하고, 무기를 치켜든 모습이 용맹하기 그지없었지만, 전신에는 상처가 가득한 것이 이들이 얼마나 악전고투를 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악의 종자가 설 땅은 없다!”
창노한 목소리와 함께 일대의 땅이 융기하며 마기에 물들어 검게 오염된 대지에 빛이 솟아났다.
대지 여신의 사제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낸 이적이 발현된 것이다.
…… !
신성한 대지가 소환되고 마계의 존재들을 약화시켰고, 인간들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니 기사들은 용기백배하며 더욱 무기를 강하게 거머쥐었다.
콰르르릉!
전신에서 마기를 흘리는 악마를 향해 마법사들의 공격이 작렬했고, 대부분은 악마의 항마력을 뚫지 못했지만, 마법사들은 개의치 않았다.
촤아아아악!
오러를 잔뜩 머금은 무기들이 그 사이를 뚫고서 악마의 몸에 작렬한 것이다.
…… !
거칠게 포효하며 다섯 개의 팔과 구멍이 숭숭 뚫린 날개를 휘두르는 악마의 공격에 몇몇의 기사가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모두들 핏발을 세우며 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노옴!”
악귀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케로베가 검을 찔러 넣었다.
시퍼런 오러에 휘감긴 케로베의 검이 악마의 몸에 작렬했고, 동시에 케로베의 주변을 맴돌던 열 개의 무기가 동시에 악마의 몸에 파고들었다.
“공작님을 도와라!”
얼굴에 커다란 자상을 입어 피를 철철 흘리는 기사단장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외쳤고, 기사들이 이를 악물며 악마의 몸에 무기를 쑤셔 넣었다.
마기가 일렁이며 기사들의 오염시키려 덤벼들었지만, 독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기사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흐아아압!”
한 소리 기합과 함께 케로베의 주변에 있던 무기들에도 시퍼런 기운이 솟아올랐다.
란체스의 혈계능력은 강철을 다룬다.
강철로 만들어지기만 했다면 그 무엇이든 란체스의 혈족은 자신의 몸인 양 다룰 수 있었고, 당대의 공작인 케로베는 항시 열 개 이상의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소드마스터에 도달한 케로베는 동시에 열 개의 무기 전부에 강기를 피어올린 것이다.
무려 열 명의 소드마스터가 협공한 것 같은 모양이 되었으니, 제 아무리 악마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 .
악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 같더니만 서서히 그 몸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 !
최후의 발악인지 강력하기 짝이 없는 의념이 저주가 되어서 모두에게 파고들려 했지만, 란체스 공작가의 인원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림없다! 악마!”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빛이 일었고, 집중된 신성력에 악마의 마지막 발악은 성공하지 못했다.
“…… 미리 듣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당했겠군.”
케로베의 중얼거림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악마가 소환되었다는 소식이 울리자마자, 아렌과 마르틴은 전투 기록을 귀족들에게 공개했다.
원래 전투 기록은 기밀로 지정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이 귀족급 악마와의 전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지만, 아렌과 마르틴은 주저하지 않고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당연히 이 같은 행동은 갑작스런 악마 소환에 당황에 있던 귀족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 지금의 케로베처럼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는 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사소한 저주도 귀찮기 그지없는데, 악마가 건 최후의 저주라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었으니, 케로베는 놀란 가슴을 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공작님!”
“결국 악마를 물리치셨군요. 대단한 업적입니다!”
마기로 오염 된 대지에 인간들이 두 발로 서서 기쁨의 환성을 내지르는 장면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지만, 모두는 상관하지 않았다.
악마를 물리친 것이다.
비록 아렌처럼 단신으로 악마를 패퇴시킨 위업을 달성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렌이 너무 규격 외인 것이고, 이 또한 불멸의 업적이니 이들은 기뻐할 자격이 충분했다.
당연히 전장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케로베도 뿌듯한 기분이 차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지만 이내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표정을 굳혔다.
“보고해라!”
신경질적인 음성에 들떠 있던 모두의 기분이 가라앉았고, 관측을 담당하던 마법사가 수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른다섯 명의 기사가 전사했습니다. 그 외 자잘한 부상자는 다수. 중상자는 오십 명입니다.”
모두의 얼굴이 깊게 가라앉았다.
고작 서른다섯 명의 희생으로 악마를 막아냈다면 충분히 분전했다고 할 만하지만, 이들은 란체스 공작가의 일원들이다.
강철의 란체스라 불리는 이들은 전 대륙에서 가장 무장이 잘 된 집단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들이다.
강철을 다루는 혈계능력을 지닌 란체스의 특성과 풍부한 광물 자원을 바탕으로 뽑아내는 무기들은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무장들을 휘하의 병력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하니 같은 숫자의 병력으로 맞붙었을 때, 이들을 압도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들은 전 대륙을 뒤져봐도 거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충분한 사전정보가 주어졌음에도 이러한 희생이 일어났다는 것은 악마가 절대로 만만치 않은 적이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주변의 영지들은 어떻지?”
란체스는 북서부의 맹주.
그 그늘에 있는 영지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 아직 교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억눌린 목소리에 담긴 뜻을 케로베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란체스 덕분에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장이 충실한 지역이 북서부이지만, 모두가 소드마스터에 버금가는 전력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악마를 퇴치하는 것은커녕 마계화를 저지하는 것에도 애를 먹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다.
“…… 부상자를 가문으로 호송하고 출정준비를 갖춰라.”
“공작님!”
주변의 기사들이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악마를 퇴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란체스의 피해는 가벼이 볼만한 것이 아니었고, 모두가 지쳐 있는 상황인데, 케로베는 쉬지 않고 전투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었으니 모두가 말리는 것은 당연했다.
“란체스는 북서부의 맹주다.”
신경질적이지만 단호한 의지가 실린 음성이 울렸고, 기사들은 입을 닫았다.
“영주들에게 충성을 받고 우러름을 받은 것은 이때를 위함이니 란체스는 의무를 다할 것이다.”
“기사들은 목숨으로 길을 열 것입니다.”
케로베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며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해온 기사단장이 단단한 표정을 지었고, 기사들 역시 각오를 굳혔다.
전투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았고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하지만 투지를 숨기지 않으니 케로베는 자신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정비는 최소한으로 한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뒤로 빠져라!”
“옛!”
마계화 된 토지의 한가운데에 펼쳐진 신성의 대지 위에서 병력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고, 케로베가 한곳에 모여 있는 사제들에게로 향했다.
“어떻습니까.”
“전언 받은 그대로군요. 여기 보십시오.”
대지여신의 주교가 파헤쳐진 땅을 가리켰고, 케로베는 복잡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마법진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정말이었군.”
신성력으로 억제하고 있는 악마의 핵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새겨진 마법진은 한눈에 보아도 진득한 불길함을 비치고 있었으니, 누가 보아도 이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정밀 분석을 해 보아야겠지만, 메카니가 보내 온 자료와 거의 동일합니다.”
마법사의 말에 케로베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혹시 하는 일말의 기대가 케로베의 가슴속에 없지는 않았다.
제 아무리 제멋대로인 황제라고 할지라도 악마를 소환한다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고, 인간의 감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자신의 백성이고 자신의 토지가 아닌가.
해도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 확실하군.”
기대는 사그라지고 격렬한 분노가 타올랐다.
“이 대가는 어떻게든 치르게 해 주겠다. 황제.”
케로베의 목소리에 모두가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멸의 눈빛으로 마법진과 악마의 핵을 바라보던 케로베가 몸을 돌렸다.
악마를 물리쳤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악마가 많았고, 북서부에서 악마가 모조리 사라질 때까지 케로베는 쉴 수 없었다.
제국 각지에서 이와 동일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대부분의 귀족들은 군대를 일으키기는커녕 자신의 영지를 건사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 * *
– 이렇게 허망하게! 저주하겠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단말마의 의지가 힘이 되어서 모두를 짓누르려 했지만, 아렌은 그저 손을 휘저었다.
– 뭐?!
“시끄럽다.”
세상을 악의로 물들일 것 같은 의념이 지워진 듯이 사라져 버렸고, 심드렁한 아렌의 표정이 악마가 본 마지막이었다.
“와아아아!”
너무나도 간단하게 악마를 소멸시켜 버린 아렌의 모습에 기사들이 검을 치켜들며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마법사와 사제들마저 경이의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며 찬사를 보냈지만, 아렌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군.”
가벼운 손짓에 대지가 움푹 파이고 아직도 빛을 잃지 않은 마법진이 드러났다.
“같은 것입니다.”
노아의 단언에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소환되자마자 돌격해 악마를 때려잡은 아렌 덕분에 마계화 된 토지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피해는 피해.
심지어 악마가 소환된 곳이 헤르메스와 지척인 곳이었으니 만약 아렌이 없었더라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었을 것이고, 수십만의 인구가 상주하는 헤르메스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마계화는 그런 것이다.
생명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피해가 막심해지니 이 일을 진행한 자들의 악독한 심보에 모두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다른 곳은 상황은 어떻지?”
아렌의 목소리에 에드워드가 곁으로 붙었다.
비록 집사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오러를 다루는 경지에 이른 에드워드 역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렌을 호종하기 위해 뒤 따른 것이다.
“디어뮈드경과 알렉세이경, 드웨인님이 잘 해 주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충분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소드마스터도 악마와 싸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라인드 백작가가 보유하고 있는 세 명의 소드마스터는 각자 악마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알코르는 휘하의 영지들에게 지원을 보낸 것이다.
미증유의 위기에 알코르는 황금을 아끼지 않았고 전폭적인 지원은 마탑의 수많은 마법 물품들을 거덜 낼 정도였으니 남동부의 상황은 조금씩 진정의 기미가 보였다.
“그렇군.”
여차하면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던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휘하의 영지들도 엄연히 그라인드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정세에 들어섰으니 조만간 안정될 것 같습니다.”
경애하는 주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에드워드의 말에 가득 담겨 있었고, 그것은 다른 가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복귀를 준비하던 그때, 통신 마법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던 노아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움직였습니다.”
증오스러운 이름의 등장에 모두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