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 황제의 목적?”
“…… 대륙 통일을 말하는 건 아닌 거 같군.”
황제가 전쟁을 일으킨 지 수십 년.
언제나 일관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목적은 대륙통일이다.
제국의 그 누구도 모르는 이가 없었고, 제국과 국지전을 벌이고 있는 왕국들도 다들 알고 있을 정도로 황제는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고 착실히 그 목적을 위해서 전진해 왔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마르틴이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모두의 생각이 맞았다.
“데미안 드 피렌사요.”
마르틴의 시선을 받은 데미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훤칠한 자태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지만, 그만큼 인간미가 없었다.
아예 인간의 감정이 거세된 것 같은 눈빛과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까지 일으킬 정도였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지만 데미안은 그런 시선들이 익숙한 것인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렌사의 목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나.”
무기질적인 목소리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 크게 떠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렌사는 딱히 비밀로 한 적이 없으니, 호기심 많은 호사가들은 대부분 피렌사의 숙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도 알고 있었고, 그 허무맹랑한 목적을 위해서 수백 년 이상을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도 잘 알았다.
그리고 이 후의 수백 년도 피렌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피렌사의 목표는 신을 만드는 것이다.”
“…… 신?!”
“…… 저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군.”
일반인의 시점으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을 덤덤히 말하는 데미안의 모습은 너무도 이질적이었으니, 어지간한 아렌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것을 위해서 꾸준히 개량을 하고 있지. 일단 피렌사의 목적은 그렇다.”
데미안의 시선이 도리안에게로 슬쩍 향했다가 다시 귀족들에게로 향했다.
“전전 대. 내 조부 시절에 컬리넘과 거래를 했었다. 그때 피렌사의 연구 자료가 컬리넘에게로 넘어갔지.”
황가를 의미하는 컬리넘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모습에 몇몇이 숨을 들이마셨지만, 데미안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피렌사.
전 대륙을 다 뒤진다고 해도 그들만큼 역사가 깊은 가문은 없다.
“현 황제는 피렌사의 자료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뭐?!”
“말도 안 되는!”
“…… 그 불가사의한 능력이 그 이유 때문이었나?”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회의장에 경악이 내려앉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 찼지만 데미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황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고성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히는 목소리가 데미안의 경지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었고, 소란이 잦아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피렌사의 혈족이 열 명 이상 실종되었다. 우리는 조사에 착수했고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어.”
데미안의 무기질적인 얼굴에 감정이 스며들었고, 그것은 보는 순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분노다.
“황제와 공안의 짓이었다. 아마도 황제는 자신의 출생을 좀 더 상세히 확인하고 싶어 한 것이겠지.”
격렬하게 타오르는 분노에 모두가 침묵했다.
피렌사의 기행에 대해서 모르는 귀족은 없다.
귀족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영지와 명예보다도 혈통을 우선시 하는 가문.
그런 피렌사의 혈족이 열 명 이상이나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데미안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두 쪽 나도 전혀 관심 없어하던 피렌사가 왜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났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황제는 신이 될 생각이다.”
무거운 진실이 회의장을 울렸다.
* * *
“…… 말도 안 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신이라고?!”
데미안의 한 마디에 패닉에 빠진 귀족들이 떠들어 댔고, 경지에 올랐거나 몇몇 학식이 깊은 이들은 표정을 굳히며 숙고했다.
“…… 전례가 없지는 않군.”
“…… 하지만 승천은 거의 불가능할 턴데? 신계는 문을 좁힌 지 오래됐어.”
순식간에 시장 바닥처럼 변해 버린 회의장을 나직이 바라보던 데미안이 가볍게 발을 굴렸다.
쿵!
묵직한 마나의 파동과 함께 강렬한 존재감이 내려앉았고, 모두들 말을 멈췄다.
자연스레 돌아간 시선 속에 오연히 서 있는 데미안의 모습이 보였고, 그제야 자신들이 당황했었던 것을 깨달은 귀족들이 저마다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법이군.’
아직 초인의 문을 열어젖힌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데미안은 아렌이 보기에도 꽤나 대단한 힘의 소유자다.
그 전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주었던 용의 눈은 신성의 씨앗이 발아한 지금 더욱 더 많은 것들을 아렌에게 보여 주고 있었고, 데미안의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힘을 시각화시켜 주고 있었다.
아마도 저 힘이 피렌사가 그동안 만들어 낸 힘일 것이다.
그런 아렌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돌아 온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다음 이야기는 루안 주교에게 듣도록 해라.”
말과 함께 자리에 앉은 데미안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루안에게로 향했다.
강렬한 호기심과 감정을 가득 담은 수백 쌍의 시선에 잠시 얼굴을 붉힌 루안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간이 신의 위계에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모두의 표정에 놀람의 감정이 떠올랐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었고, 그것을 신의 첨병이라는 주교의 입으로 들으니 색다른 감정이 든 것이다.
“거의 불가능하지만 방법은 두 가지.”
이 자리에서 루안보다 신학에 정통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 모두의 눈과 귀가 루안에게로 쏠렸다.
“스스로 신성을 획득하는 것과 타인을 통해서 신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몸에 지니거나, 극고의 경지를 이룩하면 가능하다. 피렌사의 방향성은 그쪽이지.”
데미안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에는 먼 옛날 세상을 구한 용사가 천상의 문을 열고 신의 위계에 올라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영웅담이기는 하지만, 학식이 깊은 몇몇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차원방벽이 허술했던 고대에는 심심치 않게 악마나 마물이 등장했었고, 그런 악을 처단하며 업을 이루어 승천한 자들이 간간히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만신전이 방비를 단단히 하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간의 영역이 워낙에 넓어져서 어지간한 마물은 보이는 족족 군대가 토벌해 버리니 그러한 업을 쌓은 용사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버렸지만.
서로 의견을 교환하던 귀족들을 잠시 바라보던 루안이 말을 이어 나갔다.
“타인을 통해서 신성을 획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지요.”
간단하다는 이야기에 몇몇의 눈가에 위험한 빛이 떠올랐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했으면 세상은 승천하는 자들로 넘쳐났을 터였을 테니까.
“일정 이상의 지성체에게서 신으로 인정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모인 염원이 조건을 갖추면 신성으로 발아하지요.”
“…… 그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군. 역사를 보면 신으로 추앙받은 사람이 꽤 있지 않았나?”
대륙의 역사는 길고, 그 기나긴 시간 속에 세간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사후 성인으로 추존되거나 살아서 성인이 된 자들도 있었지만 그러한 자들도 신이 되어서 승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신으로 섬김 받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한 점의 의문도 있어서는 안 되지요.”
“그러니까 말이오. 신으로 섬김 받아야 한다는 게 …… . 이런 젠장! 그런 이야기였나?!”
“…… 거기에 일정 이상의 지성체라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군. 신성이 발아할 정도면 한두 명 정도로는 어림없을 거고, 최소한 국가 단위의 숫자가 필요하겠어.”
딱 보기에도 학식이 깊어 보이는 귀족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었고,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던 귀족들도 잠시 후 그 의미를 깨닫고는 표정이 변했다.
한 점의 의문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만신전의 신을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티끌만큼의 의심도 없이 신으로 추앙 받아야지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헬리오스는 두 번째 방법을 황제가 추진 중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시간을 기약할 수 없지만, 두 번째는 다르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황제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황제의 위업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거기에 황제의 즉위시기에 태어난 자들은 당대에 제국을 만들어 낸 황제를 신과 같이 공경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으니, 타인의 섬김을 받는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이 시간 천상과 가장 가까운 인간은 황제일 것이다.
아연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던 마르틴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쩡!
단순한 박수라고 하기에는 강하게 공간을 울리는 소리에 모두의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자신에게로 모이는 시선을 느낀 마르틴이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황제가 신이 되건 말건 상관없다.”
마르틴의 목소리에 모두가 집중했다.
“만약에 신이 되어서 천상으로 올라가 버린다면 감사할지도 모르겠군. 솔직히 나는 황제를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라도 사라져 준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시정잡배 같은 거친 말투였지만, 그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마르틴의 눈가가 좁혀졌다.
“과연 신이 된다고 황제가 순순히 천상으로 올라갈까? 자기가 만들어 놓은 제국을 버리고?”
마르틴이 말을 들은 모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신이 되면 수명의 의미도 없어질 테니, 영원히 황제 노릇을 하겠지. 지상에 강림한 신으로 추앙받으면서!”
회의실에 모인 귀족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최소한 나는 그 꼴을 못 본다! 나와 메카니가 겪은 굴욕과 모욕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인데, 그걸 대대손손 자손에게 물려주라고? 그게 말이 되나!”
“…… 그럴 순 없지!”
케로베가 으르렁거렸고, 알코르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8대 귀족은 집중적으로 황제의 견제를 당한 자들이다.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허울을 씌워 놓고 황제가 뜯어 간 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뻗칠 정도.
황제도 나이가 있으니 당대에만 잘 참고 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황제가 영원히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뚜껑이 안 열리면 사람이 아닌 것이다.
다른 귀족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황제는 분명히 위대한 정복군주이고 현명한 통치자였지만, 그의 통치는 귀족들을 강압하는 면이 컸다.
평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문화를 부흥시킨 것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음험하고 권력욕이 가득한 귀족들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쓸개를 씹는 마음으로 그저 황제가 죽기만을 바라며 참고 있었는데, 그 희망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모두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고 서로를 윽박지르며 소란스럽게 떠들기를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메카니에 모인 귀족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황제의 퇴위와 만신전의 감사를 받아들이라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했다.
꼭지가 돌아버린 귀족들이 각자의 영지에서 군대를 일으키려 귀환하고, 메카니와 그라인드의 군대가 진군을 시작하려던 그때.
제국의 각지에서 악마가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