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부르바스 드 컬리넘.
방계라고는 하지만 지엄한 황족의 신분인데도 정복전쟁에 종군해서 전투마법사의 기초를 닦고, 12영웅을 상대로 한 봉인 전투에서 활약했다.
그 이후에도 정진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어느덧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고, 유피테르의 교장직을 맡아 훌륭하게 이끌었던 남자다.
비록 유피테르에 숨겨져 있던 온갖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오며 말년에 명성이 금가기는 했지만, 제국을 넘어 대륙의 마법사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의문이었지만 황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느 정도 확신이 서더군.”
다시금 입가를 빙글거리며 리헐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전 왕은 나름대로 괜찮은 통치자였어. 현명한 왕이 닦아놓은 기반을 훌륭하게 다져서 황제로 하여금 정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았지.”
현명한 왕과 현 황제가 워낙에 뛰어난 인물들이어서 그렇지 전대의 왕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화려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업적은 없지만 그저 그런 왕국의 국력을 몇 배로 늘리면서도 외교적으로 주변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며 안정을 구가하였으니, 역사학자들은 전 왕이야말로 이상적인 통치자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황태자도 괜찮은 인물이야. 그 밑의 황자들도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리헐트 자신이 온갖 감언이설과 유언비어를 퍼트렸지만, 유언비어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컬리넘에는 인물이 많아. 대대손손 해먹고 있는 게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야.”
컬리넘 황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방금 리헐트가 나열한 인물들만 봐도, 이들이 보통의 핏줄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리헐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아렌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책사라는 자들은 은연중에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를 좋아하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즐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생에 자신의 세력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자들이 그랬고, 심지어 눈앞의 리헐트는 제국 제일의 수다쟁이라고 까지 불린다 하지 않는가.
이러한 자들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침묵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 최선이다.
“······ 쯧. 재미없구먼.”
묵묵히 경청하며 눈을 맞추고 있는 아렌의 모습에 리헐트는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 여하튼 컬리넘에는 인재가 많아. 그런데 유독 황제의 대에서는 이름 있는 자들이 없지. 끽해봐야 부르바스 정도야.”
아렌은 잘 모르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컬리넘에는 출중한 방계가 가득했다.
전전대의 왕과 전대의 왕의 주변에는 능력 있는 방계가 가득했고, 그들이 각자의 왕을 받들며 제국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황제와 같은 항렬의 방계들은 하나같이 쓰레기들이지. 성만 컬리넘이지, 도저히 황족다운 능력을 찾아볼 수가 없어.”
황제가 워낙에 오래 살고 있으니, 다들 노환으로 죽고 남아있는 사람이 없지만 기록은 존재했다.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도 있고, 개차반 같은 성격을 가진 자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무능했다.
그렇기에 결국 막내였던 현 황제가 왕위를 이어받았고, 제국을 일구어내었으니 전 왕의 결단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황태자의 세대는 괜찮단 말이야. 조금 이상하지. 그런데 황제의 탄생이야기를 듣고서는 바로 가설이 하나 떠올랐어.”
리헐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피렌사의 비결과 컬리넘에 전해 내려오는 비술을 합쳐서 결과를 만들어 낸 거지. 황제라는 결과 말이야.”
위험한 눈빛을 한 리헐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제아무리 연구결과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2세대 만에 황제라는 결과물을 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수백 년이 넘도록 쌓아온 피렌사의 피에 그렇게 간단히 도달한다고? 앞뒤가 맞지 않잖아.”
리헐트의 이야기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세상은 등가교환에 의해 돌아간다.
극고한 경지에 이른 아렌이기에 세상을 이루는 법칙에 대해서 희미하게 알고 있었고, 권능을 손에 넣은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윤곽이 잡힌 상태다.
리헐트의 이야기대로 제아무리 컬리넘이 대단하다고 한들, 피렌사가 지내온 세월을 단기간에 따라잡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황제는 피렌사가 완성하고자 하는 모습에 꽤나 근접했어. 세상에 저런 초인이 어디 있나?”
오러와 마법, 정령술은 물론이고 신성력에도 재능이 있다.
일반적으로 공존하기 힘든 재능들이 한몸에 있는 전대미문의 존재가 황제인 것이다.
그 와중에도 황제는 20대에 소드마스터가 되었고, 대마법사의 경지를 개척하더니만 최상급 정령을 사역하는 정령사가 되었다.
“이야기 속의 전설적인 용사도 이런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어.”
신성력이야 본인이 신이 되려하는 인간이니 넘어가도록 하고.
“그런 와중에 황가의 주변을 살펴보니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지.”
컬리넘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황제는 모종의 비술로 황가 사람들의 재능을 한몸에 모은 거야. 그거라면 방계들이 무능한 것이 설명이 되지.”
아렌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피렌사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서 치러야 할 것은 대가는 막대할 것이다.
연구 결과는 그 길을 조금 더 수월하게 가게 해주는 이정표일 뿐, 결국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 피렌사의 길이다.
헌데 리헐트의 말대로라면 수많은 방계 황족들의 재능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 정도의 대가라면 얼추 저울추가 맞는 것 같았다.
“부르바스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 가설에 신빙성이 더해지지. 다른 황족들이 제도에서 밥만 축내면서 황제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 때, 홀로 전장에 나갔어. 거기에 제국의 굵직한 사건에는 언제나 나타났지. 제 아무리 방계라지만 황족이 그 정도의 업적을 이뤘으면 말년에는 편안히 대우받으면서 쉬는 게 정상인데, 부르바스는 절대 쉬지 않았지.”
부르바스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절대로 황족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함의 연속이다.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제국을 떠돌았고, 결혼도 하지 않아 후사도 없었다.
유피테르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을 때도 그는 정력적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이렇게 보니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은 모양이지 않은가.
“확실해. 부르바스는 뭔가를 알고 있고, 최소한 그것은 황제의 비밀로 이어질 거야.”
“······ 부르바스는 재능을 뺏기지 않은 건가?”
아렌의 의문에 리헐트는 피식 웃었다.
“부르바스는 황제보다 많이 어려. 늦둥이인 셈이지. 비술이 언제 행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부르바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행해졌을 거야.”
황당한 가설이었지만, 아직 아렌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술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리헐트의 이야기는 앞뒤가 들어맞았으니 못 믿을 이유가 없었다.
타인의 재능을 인위적으로 하나에게 집중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존재하고 신이 되려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니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당장 아렌부터가 용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아렌은 리헐트의 이야기에 납득했다.
“부르바스는 어디 있지?”
리헐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네와도 인연이 있는 곳이지.”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지도를 가리키며 리헐트가 말했다.
“서든 백작가. 그곳에 부르바스가 숨어있다고 하더군.”
* * *
제국의 귀족이라면 제각각 뛰어난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서든 백작가도 그랬다.
중남부에 위치한 서든 백작가는 간신히 백작령에 걸칠 정도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백작령이라고는 조금 못 미칠 정도의 기사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일대에서 서든 백작가의 위세를 의심하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마법의 명가.
서든 백작가는 대대로 뛰어난 마법사를 배출해왔고, 현 서든 백작은 물론 영주 대리를 맡고 있는 후계자 역시 뛰어난 마법사였으며 미모로 이름난 늦둥이 딸마저도 천재마법사로 사교계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으니 그 저력을 무시하는 이는 애초에 귀족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마법사의 가문답게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모든 사태를 마주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키니, 서든 백작가는 일대의 중재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어머나!”
“어쩜! 저런 귀공자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
“허어! 내 평생 저런 미남은 처음 보는구먼.”
그는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는 그 모습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어느덧 눈앞에 나타나 있었고, 훤칠하고 조각 같은 미모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감탄사를 내뱉기에 바빴다.
화려한 백금발을 찰랑이며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에 시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길을 비켰고, 무심한 시선이라도 닿을라치면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성안의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그의 느릿한 걸음을 따라 뒤를 따랐으니, 마치 목자를 쫓는 양 떼와도 같아 보였다.
그렇게 성 하나를 마비시키면서 걸음을 옮기길 얼마나 됐을까.
어느덧 서든 백작가의 내성 앞까지 다다른 사내는 걸음을 멈췄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오러를 끌어올려 정신을 굳건히 한 기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비록 종자 하나 없이 두 발로 걸어온 남자였지만, 기사는 눈앞의 사내가 귀족이라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용모와 행동, 위엄과 존재감.
생각나는 모든 단어가 눈앞의 귀공자가 고위 귀족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으니까.
문제라면 마치 양 떼를 몰 듯 시민을 몰고 온 눈앞의 사내가 선한 의지로 백작가를 찾아왔느냐 하는 것이다.
서든 백작가 역시 악마와 상대했다.
평소에 꾸준히 비축해둔 마력이 빛을 발해서 악마를 물리치고 마계화를 저지할 수 있었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았고 가뜩이나 저 남부에서 일어난 군대가 중앙을 향해 진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뒤숭숭한 상황에서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사내의 출현은 절로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법의 문자가 빛나는 내성에는 어느덧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긴장한 표정을 한 채로 사내를 주시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손을 쓸 각오로 각자의 무기를 잡아가는 병력을 바라보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기특하다는 듯한 태도에 모두의 긴장이 풀릴 만도 하건만, 모두는 더욱 마음을 굳게 잡았다.
악마가 소환되는 세상이다.
눈앞의 사내가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일 수도 있었고, 마치 홀린 것 같은 시민들의 모습은 그런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고 있었다.
“기개가 있구나. 서든 백작가는 제법 쓸 만한 자들을 하인으로 두고 있군.”
나직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박혀들었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레티시아를 불러라.”
“······ 아가씨를 말입니까.”
기사의 대답과 함께 모두의 몸에서 첨예한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수상쩍은 사내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백작가의 금지옥엽을 찾는다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솟구쳐 오른 분노가 존재감을 밀어내고 모두가 전투를 준비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간다면 아가씨는 물론 가문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으니, 이들은 전력으로 백작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결의했다.
이런 반응을 일부러 유도한 사내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려던 그때.
“멈춰요.”
영롱한 목소리가 마나를 가득 담아 울려 퍼졌고, 동시에 성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마법사를 상징하는 로브와 함께 마법이 걸린 가죽갑옷을 받쳐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등장에 모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위험한 자 같습니다. 아가씨! 일단 안으로 ······.”
“괜찮아요.”
가벼운 손짓으로 기사들을 물린 레티시아가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오랜만이네요. 아렌 공자.”
“그렇구나.”
사내, 아렌의 모습을 바라보며 레티시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