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전쟁을 결정했다면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마계화를 저지하고도 여력이 있는 귀족들을 추리고, 그중에서도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내는데 제법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마르틴과 알코르, 케로베는 몇몇의 이름을 챙길 수 있었고, 은밀히 그들을 불러들였다.
“상황은 이해했다.”
칼로 베어도 피 한방을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냉정한 표정과 말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켰지만, 모두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최소한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눈앞의 중년인이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냉혈의 프라크.
8대 귀족의 일원이며 북부 방위의 중추를 맡고 있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무력집단을 뜻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프라크의 사정은 알 텐데? 우리는 발을 빼지 못해.”
한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 당대 프라크 후작인 노이먼이 알코르와 아렌을 슬쩍 쳐다보았다.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지만 그쪽에서 게하르를 말려 죽이는 통에 여유가 없어.”
제 아무리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은 황제와 공안이지만 북부에서까지 악마를 소환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북부의 방벽을 두들기는 몬스터와 마수의 무리들은 악마 못지않은 위협이었고, 만에 하나 마계화 된 토지를 통해서 마기에 오염이라도 된다면 진지하게 대륙의 생사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북부의 한 축을 담당하던 게하르의 정예가 전멸해버리더니만 게하르로 향하던 모든 물자가 말라버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북부는 북중부를 통해 제국 전역의 지원을 받는 것이 원칙이고,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지만 어디 사람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것만으로 살 수 있는가.
말 그대로 기본적인 물품만을 지원받는 상황에서 그 외의 물품에 대한 거래가 말라버리니 게하르는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을 알아챈 프라크 후작가는 그라인드에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내막을 듣고 나니 그라인드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군대를 몰아서 게하르 자작가를 날려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라인드는 충분히 인내한 것이었으니까.
막말로 아렌이 홀로 방문하기라도 했다면 그 순간 북부의 한 축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흐음. 과연 그런가. 생각해보면 게하르의 움직임은 황제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어. 만약 아렌 공자가 움직여서 게하르를 날려버렸다면 북부에 공백이 생겼을 것이고, 온갖 비난을 받았겠지. 그런 상황에서 황제와 공안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 빨리 이뤄졌을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황제의 계획이 하나가 아니라는 소린데 ······.”
몇 마디의 대화를 듣고서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한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노이먼 드 프라크 후작이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인 것을 알 듯, 이 사내 역시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다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 자네를 이 자리에 부른 건, 혹시라도 북부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잘 감시하라는 의미일걸세. 흐음.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최소 20년 이내의 모든 사건을 다시 확인해 봐야 한다는 건데 ······. 이거 재미있는 유희가 되겠어.”
빙글빙글 웃는 사내의 눈에는 섬뜩한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계속해서 말을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잠깐 조용히 좀 해주지.”
이마를 짚은 마르틴이 마나까지 담아 한 마디를 뱉었고, 그제야 사내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 이거 실례. 몰두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서 말이야. 와이즈너를 왜 부른 것인지는 잘 알고 있네.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자네들도 알다시피 이런 종류의 일은 와이즈너가 가장 좋아하는 일 아닌가.”
환하게 웃는 사내를 보면서 케로베가 인상을 구겼다.
“벌써 손을 썼나?”
“당연하지! 이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와이즈너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되지. 조금만 늦게 연락했어도 황제에게 붙을 뻔했네.”
섬뜩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사내의 모습에 모두가 인상을 구겼지만, 사내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모략의 와이즈너.
제국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8대 귀족의 일원이다.
특별히 강한 혈계 능력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마법이나 오러에 특출한 가문도 아니며, 그렇다고 세력이 강대하지도 않은 와이즈너 후작가가 8대 귀족에 속해있는 것은 타인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모략의 와이즈너라는 이름 그대로 이들은 끊임없이 책사들을 배출해 왔다.
음습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책략에 한해서는 자타공인 누구나 첫손을 꼽는 자들이 와이즈너 후작가의 사람들이었고, 정복전쟁의 와중에서 수많은 적들이 이들의 모략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 신기묘산은 황제도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부터 와이즈너는 황제의 강력한 견제를 받았다.
다른 가문이 황제로부터 착취를 당했다면 와이즈너는 영지 밖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상 와이즈너의 혈족들을 영지라는 감옥에 가둬버린 모양이었다.
그런 와이즈너 후작가의 주변에 소환된 악마만 해도 넷.
황제와 공안이 아예 후작가를 지워버릴 작정으로 악마를 소환한 것이지만, 와이즈너 후작가는 피해가 있을지언정 사태를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뭐. 정말 황제에게 붙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야. 여하튼 황제는 일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은 것을 꽤나 후회하게 될 걸세.”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 뿜어지는 섬뜩한 살의는 숨기지 않고 있었다.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영지는 복구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고, 수많은 혈족들과 가신들이 죽어나갔으니 당대의 후작인 리헐트는 미소 속에 불길을 품고 있었다.
“그라인드의 지원이 출발했다.”
“······ 이거 고맙군. 더 열심히 머리를 굴리라는 소리로 알겠네.”
알코르의 말에 리헐트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알코르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어지간한 현자와 마법사를 뛰어넘는다는 머리를 가진 와이즈너의 혈족들은 메카니에 버금갈 정도로 콧대가 높은데, 그런 리헐트가 고개를 숙였으니 알코르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디보자. 8대 귀족 중에 다섯이 이 자리에 있군. 이렇게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머지 셋도 부르지 그랬나. 그랬으면 황제가 뒷목을 잡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킬킬거리던 리헐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나머지 셋은 부르기가 조금 애매했겠지. 하나는 변경을 지켜야 하니 움직일 수 없고, 둘은 성향이 불확실하니 뭐. 황제에게 붙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 같지만 리헐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작금의 정세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고, 알코르와 마르틴은 리헐트를 이 자리에 부른 자신들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가진 병력이라고 해 봤자, 호종하는 기사 몇에 하나같이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허약한 혈족들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둘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정리를 해볼까? 일단 아렌이라고 했지? 자네 황제를 상대할 수 있나?”
리헐트의 물음에 모두가 아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힘을 모으면 제도를 감싸는 성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급자족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제도와 중부지만, 물자를 차단하고 손을 쓴다면 말려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안의 힘과 세력이 어떤지는 누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8대 귀족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칼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면 제 아무리 공안이라고 하더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황제.
초인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초인뿐이니, 이 자리에 아렌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가능하다.”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아렌의 반말에 리헐트의 눈가가 좁아졌지만 이내 다시금 반달을 그렸다.
“확실하지는 않다는 거군.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라 ······. 하긴 그래야 황제지. 그렇다면 할 일은 정해졌군.”
“그게 뭐지?”
붉은 기운이 떠오르는 아렌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리헐트가 웃었다.
“최대한 자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지.”
리헐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황제의 위엄이 제국 전역에 전달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공안이 마계화 된 토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한 지금 황제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때마침 뿌려진 황제의 초상화와 빛의 기둥을 일으키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불티나게 팔렸고, 백성들은 황제의 초상화를 향해 기도와 경외의 감정을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때.
몇 개의 소문이 독버섯처럼 자라더니만 이내 제국 전역을 강타해 버렸다.
– 황제와 공안이 마기에 물들었다!
– 상식적으로 마기에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안들은 멀쩡하지 않는가!
– 둘째 황자가 군대를 좋아하는 것은 남색을 즐기기 때문이다!
– 넷째 황자가 첫째 황녀와 금단의 사랑을 하고 있다더라!
– 황제는 가짜다! 사람이 저렇게 젊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
– 사실 황제는 고자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자들이 저렇게 무능할 리가 없다!
온갖 악질적인 루머와 헛소문이 제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고, 대경실색한 공안이 손을 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이미 자체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한 소문들은 살을 붙여서 점점 커져만 갔다.
그와 동시에 제도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질병이 제도의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헬리오스와 척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도는 갑작스런 질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으니, 민심이 곤두박질치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 봐라! 황제가 악마랑 붙어먹었다!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나!
거기에 호응하는 루머까지 곁들이니 황제를 거의 신처럼 숭상하던 제도의 시민들까지도 의욕이 꺾일 정도.
보고를 받은 리헐트가 비열하게 웃었다.
“신앙으로 힘을 얻는다고? 그럼 신앙을 꺾어주면 그만이야!”
낄낄거리는 리헐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모두는 그저 감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보조직을 요구하는 리헐트에게 아렌의 사조직이나 다름없는 정보길드의 바인드를 소개해준 것뿐인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황제에 대한 여론을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지간한 아렌조차 리헐트의 모략을 옆에서 보다보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고, 왜 황제가 와이즈너를 세상에서 지우려 했는지 절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적이라고 판단되면 같은 제국민을 대상으로 가차 없이 전염병을 살포하는 독심과 명예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소문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퍼트리는 실행력은 일반적인 귀족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실시간으로 행군하고 있는 군대를 정밀하게 조율하며 중간에 거치는 영지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으니 아렌은 리헐트를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 황제의 전력증강은 막았고 ······. 이제는 약점을 찾아야겠구만.”
양손을 비비는 모습이 얄밉기 그지없었지만 아렌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담히 마주했다.
“내가 할 일이 있나보군.”
“······ 그 말투는 어떻게 안 되는가 보네. 뭐 좋아.”
리헐트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부르바스를 찾아가. 그라면 황제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그의 입을 열어.”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아렌이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