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조금 변했군.”
“자네도 마찬가지야.”
부르바스는 초췌해 보였다.
항상 꼿꼿이 서 있던 허리는 힘이 빠져 있었고, 자신감이 넘치던 표정은 우울하게 굳어져 있었으니, 예전의 당당하던 대마법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법사도 경지에 이르면 신체의 변화가 오고, 일반적인 사람을 벗어나게 된다.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수명도 늘어나 반쯤 인간을 벗어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초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부르바스가 정신이 불안하다는 이야기였다.
심약한 모습에 아렌이 살짝 놀랐지만, 부르바스 역시 아렌을 보고서 경악했다.
대마법사에 이르러 세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된 부르바스의 눈에는 미약하게나마 아렌에게 자리 잡은 신성의 씨앗이 보였고, 짧은 시간에 또 다시 발전한 아렌을 보면서 놀람을 참지 못했다.
“부르바스님.”
“괜찮다. 레티시아.”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레티시아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부르바스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든 백작가는 할 만큼 했어. 고맙게도 이 쓸모없는 마법사를 위해서 의리를 지켜주었지. 정식으로 감사를 표하마.”
부르바스의 진심이 담긴 말에 레티시아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아렌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부르바스는 제국 마법사들의 우상 같은 사람이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것도 그렇지만, 항상 후학을 위해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고, 그 행보에 거짓이 없으니, 계파를 떠나서 모두가 부르바스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든 백작가도 마찬가지여서, 부르바스가 몸을 의탁해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레티시아는 자연스레 아렌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아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아렌의 행보는 아렌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황제를 어떻게 해결하기 전까지는 수십만의 생명과 함께하는 것이었고, 그 생명의 무게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레이디의 간절한 시선에도 전혀 꿈쩍하지 않는 아렌의 모습에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고, 부르바스는 초췌한 안색을 굳히며 답했다.
“…… 자네의 눈에 발각된 이상 숨는다는 건 의미가 없겠지. 따라오게.”
복잡한 눈으로 아렌을 응시하던 부르바스가 몸을 돌렸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렌이 그 뒤를 따랐다.
“괜찮아요.”
따라붙는 가신들을 만류한 레티시아까지, 셋은 묵묵히 응접실을 벗어나 내성의 복도를 걸었고, 중간에 보이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열려라.”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부르바스가 손으로 벽을 만지니 은밀한 마나의 움직임과 함께 벽이 일렁거렸고, 이내 자그마한 문이 되었다.
“들어가지.”
문을 열고 들어선 부르바스를 뒤따른 아렌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공간이 유리되는 것 같은 감각도 잠시, 어느덧 제법 규모가 있는 방에 들어선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 못 찾은 거군. 공간을 겹쳐서 숨겼어.”
“알아보겠나?”
“그래. 한 수 배웠다.”
부르바스가 가진 마나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아렌이 서든 백작가의 성 전체를 감각권에 넣어도 찾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공간을 다루는 마법사가 극히 드물기도 했고, 마법을 잘 모르는 아렌의 입장에서는 공간을 겹쳐서 반쯤 중간계에서 벗어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알아도 찾기 힘들겠군.”
제아무리 아렌이 끝 모를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것을 찾을 수는 없는 법.
일반적인 은신을 넘어서 세상에서 벗어난 것을 탐색하는 것은 아렌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느낌은 기억했으니 뒤져보면 되겠군.’
다만 공간이 겹쳐지는 미묘한 느낌이 아렌의 기억에 단단히 자리 잡았으니 의심 가는 곳을 다 뒤져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아렌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마치 자기신의 집인 양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아렌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레티시아가 한편에 마련된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따랐다.
찻잔이 놓이고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은 아렌 과 부르바스의 눈이 마주쳤다.
지쳐 보이지만 지혜가 가득한 눈과 그 무엇보다도 단단해 보이는 눈이 마주치는 모습은 레티시아에게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흥을 안겨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둘이 눈을 마주치고 얼마나 지났을까.
“궁금한 게 있다고 했지. 물어보게나.”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힌 부르바스가 입을 열었다.
존경받는 대마법사인 부르바스에게 가르침을 원하는 이들은 많았고, 그런 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자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니, 상대가 무시무시한 아렌이라고 하더라도 부르바스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부르바스의 평정을 깨뜨릴만한 힘이 있었다.
“황제의 약점이 알고 싶다.”
“…… 뭐라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야. 황제가 어떤 경위로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유추가 되었어. 다른 황족들의 재능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맞나?”
담담한 말투로 흘러나오는 컬리넘 가문의 비밀이 부르바스의 눈가를 진동케 했다.
“맞나보군. 그럼 황제는 정상이 아니겠어.”
“…… 어떻게 단언하지?”
떨리는 목소리의 부르바스를 보면서 아렌이 피식 웃었다.
“탄생부터가 정상적이지 않는데, 파탄이 없을 리가 없지. 제아무리 빠른 길을 찾는다고 해도 결국 묵묵히 걸어가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평범한 말이었지만 기이한 힘이 실려 있는 아렌의 말에 레티시아의 눈매가 들썩였지만, 부르바스는 침묵했다.
“당연히 취약한 부분이 있겠지. 그걸 알고 싶다.”
너무도 당당하고 뻔뻔한 요구에 레티시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부르바스는 표정을 굳혔다.
“…… 내가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나? 나도 명색이 컬리넘의 일원인데.”
제아무리 황제와는 거리를 두고 겉돌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르바스 역시 황족이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고 아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알려줄 거야. 나는 어떻게든 대답을 듣겠다고 다짐했고, 자네가 나를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일순간 방 안을 짓누르는 아렌의 존재감에 부르바스와 레티시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안 해도 자네는 알려 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아렌의 말에 부르바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 왜지?”
“자네가 대마법사니까.”
부르바스의 표정이 굳었다.
* * *
“그게 무슨 말이죠? 부르바스님이 대마법사라서 알려준다는 게.”
얼굴 가득 의문을 담은 레티시아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질문을 한 아렌과 질문을 받은 부르바스는 일순 말이 없었다.
“…… 이유를 듣고 싶군.”
짧은 침묵 끝에 나온 부르바스의 말에 아렌이 피식 웃으며 레티시아와 부르바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자로 삼았나보군. 가르침을 주려는 건가? 뭐. 나쁘지 않겠지.”
레티시아가 부르바스를 벅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둘 사이에 교감이 있었음을 깨달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요구하는 부르바스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니 당연했다.
“이런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황제는 탄생 자체가 잘못되었어.”
아렌이 가볍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혈족의 재능을 뺏어서 한 몸에 집어넣었으니 자연스럽지 못하지. 탄생부터가 남의 것을 탐하며 시작됐으니 황제는 평생 빼앗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
운명론을 그다지 믿지 않는 아렌이었지만, 이곳은 마법과 신의 기적이 실존하는 곳이다.
신성의 씨앗을 발아하고 세상의 이면을 훔쳐볼 수 있게 된 아렌은 자연스럽게 인과율을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걸어온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지. 제아무리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복 전쟁을 시작하고 제국을 일궈냈다. 업적을 부인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시간동안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 희생됐지.”
황제의 업적은 분명 위대한 것이지만, 그 과정 속에 죽어나간 생명의 숫자는 수를 헤아리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수없이 많은 생명의 가능성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업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거기서 멈추면 다행인데. 이제 또 다시 빼앗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
아렌의 말이 계속될수록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생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났으면 각자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이고, 황제의 목표가 그것이라면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 어찌되었든 인류 전체를 위한다는 대의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으니까.”
전생의 아렌이 살던 곳은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 간의 전쟁은 물론 문파간의 전쟁, 자잘하게는 마을끼리의 전쟁도 있었으니 그 끝없는 분쟁의 소용돌이는 무수한 인명피해와 증오의 고리를 낳았다.
그러한 무수한 원한과 생명이 사멸하는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대의를 아렌은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방법이다. 황제는 희생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 뭐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사자가 되고 보니 영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제국에서 암약하는 공안은 상황에 따라 살인을 주저하지 않았고, 결국 그 칼날은 귀족들에게까지 닿았다.
로티컬이 죽었고, 악마가 소환되어서 세상을 오염시키니 작은 희생이라고 여기기에는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신이 되려고 하는 방법도 문제지. 신앙을 모아서 신으로 추앙받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백성의 감정을 강제로 끌어당기는 모양이지 않는가.”
자발적인 섬김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황제가 추앙받는 방식은 인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지금도 이런데, 황제가 신이 되어서 대륙을 통일하면 그대로 멈출까?”
아렌이 자세를 바로하며 부르바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난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때는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뺏기 위해서 움직이겠지. 그렇다면 결국 고통 받는 것은 인간 전체가 될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인류의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본성은 변하지 않아. 그것은 신이 되고 초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결국 초인의 심상이나 신의 권능은 근본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뺏으면 태어났고, 계속 뺏어왔으며, 앞으로도 뺏을 것이 분명했으니, 황제가 신이 된다면 강탈이나 탐욕의 신이라는 이명이 붙을지도 몰랐다.
“대마법사는 현자라고 불린다고 들었다.”
마법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학문이다.
자연히 마법사는 학식이 깊은 학자인 경우가 많았고, 대마법사 정도면 세상에 보기 힘든 지식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같은 무식쟁이도 할 수 있는 생각을 대마법사가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거기다 자네는 꽤나 깊이 얽힌 사람이잖은가.”
초인의 경지에 올라 세상의 이면을 훔쳐보는 아렌을 무식쟁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부르바스와 레티시아는 아렌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했다.
“자연스럽게 빼앗아서 올라선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탄생부터가 파탄이 있었고, 행하고 있는 방법도 자연스럽지 못해. 결국 완전해지기 위해서 계속 무리를 할 테고, 그것은 수많은 희생을 부르겠지.”
정종의 무공은 느리지만 바른 길이기에 어긋남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경지에 올라선다.
마공은 파격적이기에 강대한 힘을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경지를 넘어서기 힘들다.
하지만 사공은 이치를 저버리기 때문에 쉽게 강해지고 경지에 들어설 수 있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을 희생시킨다.
아렌은 황제를 사법의 결정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자네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다고?”
아렌의 말에 부르바스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