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전쟁터에서 전투 마법사로 명성을 날린 부르바스지만, 타고난 재능은 그를 손쉽게 대마법사의 경지로 이끌었다.
자신을 건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부르바스는 그제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대마법사가 겨우 자신을 건사한 다라.”
마크가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지만, 부르바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파탄이 보이더군. 그래. 아렌 자네의 말이 맞아. 제도의 마법과 황제, 공안은 처음부터 뭔가가 어긋나 있는 게 보였네.”
실험실의 마법사가 아닌,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그만큼의 업을 짊어진 대마법사가 부르바스다.
전장을 전전하는 기사도 하기 힘든 경험을 거듭한 부르바스는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자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을 얻었던 것이다.
그 눈으로 본 황제는 그야말로 불길하기 그지없었으니, 부르바스는 젊은 나이에 황궁을 떠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후.
마룡봉인체들을 상대하고 유피테르에 머무르며 지금까지에 이르게 되었다.
“…… 생각해보면 나도 마룡 토벌대에 참여하는 인선이었지.”
전투마법사로 이름을 날린 부르바스이니 자격은 충분했고, 전장의 흉험함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포함시켰어야 할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공국에 사절로 가게 되었어. 명분은 좋았지. 황족이자 마법사인 내가 가서 상황을 조율하라는 것이었으니까. 덕분에 토벌대에는 참가하지 못했지.”
“그 이후 우리를 토벌했지.”
마크가 빈정거렸지만 부르바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마룡 토벌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 그때만큼 내가 황족이었다는 게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지.”
아렌이 본 부르바스는 선인이다.
비록 자신의 입장 때문에 고뇌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선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지금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황제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어. 대외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황족인 내가 황제를 거역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제국 전체에 금이 가는 모양이었을 테니까.”
한창 정복 전쟁 중이었고, 강력한 절대 권력을 손에 쥔 황제였지만, 그만큼 불만세력도 많았다.
만약 부르바스가 조금이라도 반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반 황제 세력이 순식간에 집결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내전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입장이 그랬으니 황제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지. 다행히 대마법사가 되니 황제도 함부로 하지는 못하더군. 감시의 눈길이 조금 옅어졌었다.”
그렇게 유피테르에 입성하여 후학들을 양성했고, 시설을 관리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의 손에 떨어진 연구 결과들은 그를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국의 마법은 요 몇십 년간 급격하게 발전했네. 굉장히 빠른 속도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겠지만, 결국 봉인체들을 통한 인체실험이 그만큼 효율적이었다는 이야기지.”
부르바스의 말에 마크가 얼굴을 구겼지만, 그의 시선은 허공에 떠올라 있는 화면으로 향해 있었다.
“그 중심에 저게 있다네. 자네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이지.”
큐빅.
아렌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물이었다.
자연계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 농축되어진 영약이 만들어지고, 수백 년 이상을 참오한 영물의 내단은 강력한 힘의 덩어리다.
헌데 그러한 힘을 아득히 능가해서 작다고 하지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려는 힘을 가진 물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은 아렌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크 역시 회환이 어린 눈으로 큐빅을 바라보았다.
그를 비롯한 봉인체들이 수십 년간 고통받아온 결실이었으니, 화면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도 쓴물이 올라올 정도였지만, 마법사의 입장에서 보는 큐빅은 그야말로 놀라운 마도의 정화였으니까.
“유피테르의 모든 결과물은 제도로 전송되었어. 저만한 힘의 덩어리라면 방향을 조금 바꾸어주는 것으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지.”
부르바스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는 큐빅을 완성했을 거야. 그리고 저것을 매개로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모으고 있을 거네.”
“그럼 저것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소리군.”
부르바스의 단언에 아렌이 눈을 빛냈다.
* * *
“황제 폐하 만세!”
“그래. 영지를 잘 추스르길 바라마.”
일그러진 표정으로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귀족들을 바라보며 황제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성의 없는 말에 머리를 숙인 귀족들이 굴욕 어린 표정으로 부르르 떨었지만, 황제는 물론이고 주변에 시립하고 있는 근위 기사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하찮은 것을 쳐다보는 시선에 붉게 달아오른 귀족들이 다급히 대전을 벗어났고, 황제는 비릿하게 웃었다.
“일은 처리되었느냐?”
“특수팀이 투입되었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수습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드라고의 대답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황제를 알현한 귀족들은 마계화가 자리를 잡아버린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다.
메카니에서 열린 귀족회의에 제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참여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한 법.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된 악마 소환을 해결하지 못한 영지들은 존재했고, 자기 앞가림에 바쁜 다른 영주들은 그들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
외려 이 기회를 틈타 사이가 영지를 도모하려는 시도까지 있었으니, 가뜩이나 음험하고 속이 좁은 귀족들은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그들은 황제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제도가 있는 중부는 악마들을 수월하게 정리해서 상대적으로 평안했으니, 병력을 주변으로 돌릴 여유가 있었고, 온갖 공작으로 단련된 공안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업에 들어가니 황제의 손을 잡기 위해 제도로 방문하는 귀족들의 숫자는 알음알음 늘어만 갔다.
하지만 대우가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완전히 갑의 위치에 올라선 황제는 이전보다도 더욱 거만하게 귀족들을 대했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귀족들은 굴욕을 감내했으니, 차후에 이 일로 어떠한 말이 나올지 몰랐다.
“그래 봤자. 약한 것들이지. 제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것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드라고의 걱정스런 충언에 황제가 웃으며 명치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우웅.
타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잔잔한 진동이 황제의 명치 안쪽에서 끊임없이 맥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감정을 빨아들이며 실시간으로 황제에게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끝없이 쌓이는 힘은 황제의 격을 상승시키고 있었고, 그 와중에 흘러넘친 힘이 헤일로가 되어서 황제의 등에 아른거리니, 대전에 모인 모두는 그런 황제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의 모습으로 헤일로를 등에 두른 채 황금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의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그 기색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격동서린 외침은 파도가 되어서 대전에 번졌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감격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마음을 모으니, 감정은 힘이 되어서 황제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래. 그래.”
흡족한 미소를 지은 황제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애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감정은 배가 되었고, 일순간 대전은 신을 영접하는 신성한 자리가 되었다.
근위기사들과 공안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베일 뒤로 사라진 황제의 뒤를 드라고와 루드비히만이 조용히 따랐고, 몸을 돌린 황제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보고해라.”
약간의 짜증이 섞인 황제의 목소리에 드라고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메카니와 그라인드의 군세가 수를 더하고 있습니다. 현재 25만을 돌파했습니다. 속도를 올리지 않는 것을 보아서 계속 수를 불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알코르와 마르틴은 결코 서둘지 않았고, 애초에 이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군대의 전진은 느렸지만 묵직했고, 그 중심에는 와이즈너의 혈족들과 리헐트가 있었다.
“리헐트 후작이 생존했음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반란군에 몸을 의탁해 접근하기가 불가능합니다.”
“…… 결국에는 살아남았군. 빌어먹을 놈.”
루드비히의 보고에 황제가 뒷목을 잡았고, 이러한 황제의 모습이 당황스러울 만도 하건만 둘은 황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모략의 와이즈너.
그 중에서도 당대의 후작인 리헐트는 그 잔인한 계략과 음습한 모략으로 제국 전역에 명성이 자자했다.
어지간한 군사 전문가를 넘어서는 식견을 가진 황제이지만 리헐트의 지략은 황제마저도 기함할 정도였고, 공신을 죽일 수 없었던 황제가 영지에 가둬놓고 기회만 보고 있었던 것인데, 결국 실패해 버린 것이다.
악마를 직접 퇴치하는 모습을 보이며 몸을 일으킨 황제의 위엄은 압도적인 것이어서 무수히 많은 감정이 황제에게 집중되었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줄었다.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서 힘을 비축하고 있는 황제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정도여서 원인을 조사했고, 공안과 황제는 수많은 헛소문이 제국에 퍼진 것을 파악한 것이다.
어떻게든 소문을 덮고 반전시키려 했지만 독버섯같이 자라난 소문은 멈출 줄을 몰랐고, 설상가상으로 제도에 전염병까지 창궐해버렸으니 황제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다 그놈의 짓이겠지.”
드물게 황제게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리헐트는 그런 자였다.
상대의 수작인 것을 알면서도 딱히 대처할 수 없게 만드는 수완이 있었고, 이를 갈며 정신없이 대처하다 보면 외통수에 몰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편도 두렵게 만드는 그 능력에 황제가 그를 배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 칼이 황제 본인에게로 향했으니, 황제는 두 다리를 편하게 뻗을 수 없었다.
초인은커녕 마스터에도 이르지 못했고, 겨우 오러를 일으킬 정도의 신체능력밖에 가지지 못한 리헐트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위협적인 적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수를 써 봐라. 그놈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플 거야.”
“전략팀이 대응 중입니다. 과거 와이즈너의 수법들을 샅샅이 분석하고 대응책을 만들었으니 지금처럼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힘을 계략으로 풀어헤치는 와이즈너의 능력을 황제가 주목하지 않을 리가 없었고, 공안은 전담부서를 만드는 것으로 황제의 기대에 보답했다.
지금에 와서는 공안의 행동과 공작 전체를 조율할 정도로 커진 전략팀이 리헐트를 상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에 황제는 묵직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봉인체들은?”
조금은 표정이 풀어진 황제의 목소리가 은밀해졌고, 덩달아 둘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쿨리크는 예상한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감시 중이니 필요한 시기에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머지 봉인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인상을 찡그리는 황제에게 드라고가 변명하듯 말을 붙였다.
“마계화가 된 곳이 늘어남에 따라서 탐지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 그건 그렇겠군.”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마기의 연구에 관해서는 대륙 제일을 자부하는 공안이고, 당연히 마기를 탐지하는 수단도 가장 발달해 있었으니 그 범위는 세간의 상식을 가볍게 추월할 정도였다.
마크 정도의 결계술사가 아니라면 그 흔적을 놓치지 않고 감시를 계속했었던 공안인데, 이번의 악마소환으로 인해 마기가 있는 공간 자체가 늘어나다 보니 봉인체들을 특정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확보해라. 결국 그놈들이 조각이 되어서 문을 열어줄 것이다.”
단단한 의지가 담긴 황제의 말에 드라고와 루드비히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 만세!”
작지만 결의가 잔뜩 실린 음성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