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차지.
기사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세 개의 봉인으로 초인의 경지를 뛰어넘은 쿨리크가 차지를 감행하는 순간,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기술보다도 강력한 기술처럼 보였다.
콰릉!
공간이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렌의 목에 다다른 쿨리크의 보검이 당장이라도 아렌의 목을 베어내려는 그때, 아렌의 손이 검면에 닿았다.
“헛!”
쿨리크의 강력한 기세에 비하면 산들바람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손목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검을 빗겨버린 아렌이 이내 다른 손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신묘한 움직임이 일절 없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주먹질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강력한 힘은 전신을 쭈뼛거리게 만들 정도였으니, 대경실색한 쿨리크는 황급히 왼손을 들어 몸에 바짝 붙였다.
쾅!
“큭!”
절묘한 방패술로 아렌의 일격을 빗겨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
당장이라도 주저앉아서 호흡을 정돈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다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아렌의 다리에 쿨리크는 이를 악 물었다.
쩌정!
허벅지를 감싼 갑옷에 아렌의 발차기가 적중했고, 쿨리크는 아렌에게 돌격한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다시 튕겨나갔다.
빛바랜 망토를 날개처럼 펄럭이며 중심을 잡은 쿨리크가 무서운 눈빛으로 아렌을 노려보았지만, 정작 아렌은 쿨리크를 추격하지 않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쿨리크의 보검이 빛을 더하고, 방패가 더욱 굳건해졌으며, 금이 가서 부서지려는 하체의 갑옷에 마기가 달라붙어서 기괴한 광채를 뿜어내던 그 때, 아렌이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기술이구나. 그래. 그게 기사로군.”
아렌이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쿨리크를 바라보았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탐욕에 가득 찬 위선자라고는 하지만 쿨리크는 본래 초인이며 12영웅의 일원이었던 자.
기사로서의 실력만을 따진다면 전 대륙을 통틀어서 저만한 자가 없을 것이고, 덕분에 아렌은 기사들이 가진 기술을 엿보게 되었던 것이다.
방패와 갑옷을 적극 이용한 방어술.
아렌의 주먹질은 바다를 가를 힘이 있었고, 발차기는 산을 무너트릴 정도였지만, 쿨리크는 갑옷과 방패를 이용해 힘의 타점을 무너트리고 최소한의 피해로 그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아렌이 상대했던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약해서 인식하지도 못했던 기술들이 쿨리크의 몸을 통해서 나오고 있으니 아렌도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사실상 기사와의 제대로 된 전투가 이번이 처음인 샘이었다.
거기에 쿨리크는 봉인을 세 조각이나 품은 자.
자연히 재생력도 그에 비례해서 강해졌을 것이고, 그 점을 이용해서 아렌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일단 버티면서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사의 전술상 까다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뭉클거리며 솟아난 마기가 쿨리크의 몸에 상체에 달라붙더니 이내 갑옷의 형태를 이루었다.
처음에 입었던 고풍스러운 갑옷을 그대로 모방했지만, 마기로 번들거리는 표면은 한없이 불길한 기운을 내비치고 있는 흑갑.
“그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쉬운 상대는 없었다.”
용의 얼굴을 형상화한 투구를 품에 앉은 쿨리크가 아렌을 노려보았다.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서 이 자리까지 왔지. 마룡을 잡은 내가 너라고 못 잡을 거 같으냐! 기사는 버티고 버텨서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하는 자다!”
철컥!
마기로 이루어진 투구를 머리에 눌러쓰자, 저절로 움직이며 일체화를 이루니 완전무장한 흑기사가 그 앞에 나타났다.
회색빛 혼원기가 넘실거리는 검과 방패를 들고서 전투태세를 정비한 쿨리크의 입에서 비장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쿨리크다! 기사 중의 기사! 빛의 용사! 이제 너 또한 나의 업적중의 하나가 되리라!”
단호한 선언에 쿨리크를 중심으로 세계가 개변하기 시작했다.
* * *
작은 나라, 작은 영지에서 태어난 영주의 사생아.
쿨리크의 출생은 일반시민보다는 축복받은 것이겠지만, 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저 그랬다.
풍족한 영주였다면 사생아인 쿨리크에게도 신경을 써주었겠지만, 아쉽게도 쿨리크의 아버지는 그렇게 부유한 자가 아니었다.
거기에 쿨리크 같은 사생아가 한 가득이었으니 실상 쿨리크의 생활은 평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평민보다는 조금 나은 삶을 살아갈 쿨리크였지만, 쿨리크의 아버지는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었으니,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졌고 거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재능.
쿨리크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것이다.
검에 대한 재능은 소드마스터를 논할만했고, 거기에 가문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발현한 혈계능력마저 어린 나이에 발현해버렸다.
후계자는 정해져있었지만,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시골 귀족마저 혹할 정도의 재능은 필연적으로 분란을 불러일으켰고, 쿨리크의 성격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못한 자가 후계자로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고, 소외된 자들이 몰려들어서 그런 쿨리크를 추켜세우니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쿨리크의 부친은 귀족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는 자.
정해놓은 후계자를 굳건히 지지했고, 제아무리 쿨리크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이름을 떨쳤지만, 적자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쿨리크는 사생아이고, 고지식한 귀족인 부친에게 적자를 내치고 사생아를 후계자로 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불편한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후계자는 쿨리크의 재능을 질투하고, 쿨리크는 단순히 핏줄로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을 가지게 된 후계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오러를 발현하고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빛을 사역하는 쿨리크의 전투능력은 작은 시골 영지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섰으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어떻게든 사단이 났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마룡이 강림했다.
작은 영지의 기사이지만 이미 그 명성을 알리고 있는 쿨리크 역시 토벌대의 일원으로 차출되었고, 그렇게 작은 영지에서 불 피바람은 비켜가게 되었다.
모두가 다른 마음을 품었지만 쿨리크의 여정을 축복했고, 그렇게 쿨리크는 위대한 모험을 위해 영지를 나섰다.
하지만 쿨리크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자신의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착실히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찰나에 영지 밖으로 나서게 된 쿨리크의 마음속에는 채우지 못한 갈증이 무럭무럭 불어나서 어느덧 쿨리크를 가득 채워 버린 것이다.
쿨리크는 갈수록 탐욕스러워졌다.
재능만큼이나 똑똑했던 쿨리크는 겉으로는 그 어떤 이보다도 공명정대한 기사를 연기했고, 빛을 다루는 쿨리크의 모습은 모두가 그를 빛의 기사라고 칭송하게 만들었으나, 그 내면에는 세상 모든 것을 빼앗고자 하는 괴물이 똬리를 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전투가 지속되면서 쿨리크는 주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가 즐비한 토벌대에서 그들의 가르침을 훔치고 흡수했으며, 특별해 보이는 비전이 보이면 최선을 다해서 훔쳤고, 강력한 장비를 가진 자의 뒤를 은밀하게 쳐서 손에 넣은 적도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고, 쿨리크보다 상위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모여 있는 토벌대는 그런 쿨리크의 행동을 금세 알아차렸지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한 명의 손이 아까운 전장이었고, 파벌이 갈라진 토벌대의 갈등을 쿨리크는 절묘하게 이용했었으니, 어어 하는 사이에 넘어가버렸고, 토벌대가 쿨리크를 심각한 눈초리로 바라볼 때쯤에는 이미 전장의 최선두에서 일행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룡을 쓰러트리고 12영웅의 한 명으로서 금의환향한 쿨리크는 이번에야말로 자심의 탐욕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가시처럼 남아있는 작은 영지 따위는 이제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영광만이 남아있을 거라고 부풀어 있었던 쿨리크였지만, 세상은 쿨리크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았다.
황제가 봉인체들을 토벌한 것이다.
비참한 꼴이 되어서 끌려간 쿨리크는 세상에 절망하고 분노했고, 수십 년간 이어진 가혹한 실험과 영혼 깊숙한 곳에서 끝없이 속삭이는 봉인체의 유혹은 쿨리크의 탐욕을 세상 그 어디에서도 짝을 찾을 수 없을 크기로 키워버렸다.
그렇게 육신에 다섯 개의 봉인을 박아 넣고 가공할 힘으로 탈출에 성공한 쿨리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자신의 고향.
12영웅의 지위였다면 저 작은 영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영지를 수여받고 그들을 비웃으며 살아갔었겠지만 지금의 쿨리크에게는 아무리 해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덧 부친은 대지로 돌아갔고, 후계자도 희끗한 백발이 보일 나이가 되어서 또 다른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는 모습에 쿨리크는 눈이 돌아가 버렸다.
제국의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날 작은 영지 하나가 통째로 소멸되어버렸고, 쿨리크는 이 모든 원한을 황제에게로 돌렸다.
세상 다시없을 크기로 자라난 탐욕은 황제를 처치하고 그 자리를 빼앗는 걸로 귀결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쿨리크가 본 가장 강한 자는 마룡이었고, 쿨리크는 마룡의 자리를 빼앗기로 결심한 것이다.
원래는 하나였던 봉인들이니 서로 이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다섯 개의 봉인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쿨리크는 봉인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탈출한 봉인체 하나를 추격해 봉인을 빼앗는데 성공했지만, 그 직후 이상함을 느낀 다른 봉인체들이 숨어버렸다.
봉인체들은 하나하나가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니, 작정하고 숨으려 한다면 쉬이 찾을 수 없었고, 그런 시간이 지나던 와중에 마크의 봉인을 느끼고 이 자리까지 찾아온 것이다.
여섯 개의 봉인으로 마룡으로 화할 수 있었고,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을 것만 같았지만 거꾸로 세 개의 봉인을 빼앗겨 버렸다.
쿨리크는 항상 빼앗아 왔다.
그런데 거꾸로 자신의 것을 빼앗겼으니, 머리털이 거꾸로 솟는듯했고, 임계점을 넘어선 분노는 도리어 냉정을 찾게 했다.
적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에 빼앗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득 채우며 쿨리크는 자신의 심상을 세계에 강요했다.
* * *
용의 형상을 한 투구 너머에서 탐욕을 줄기줄기 흘리며 세상에 심상을 새기는 쿨리크의 모습에 아렌도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초인의 심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가치관을 세상에 투영하는 것이니 속마음이 어떨지 누가 안단 말인가.
윅의 쉐도우월드 역시 아렌이 상상해보지도 못한 형태였으니, 쿨리크의 심상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푸화학!
쿨리크의 전신에서 찬란한 빛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무수히 많은 병장기들이 떠올랐다.
마치 고문전문가의 그것처럼 수십 개의 빛으로 이루어진 무기가 쿨리크의 전신을 회전하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회색빛으로 이루어진 무기들은 음울한 분위기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빼앗겠다!”
탐욕이 가득 찬 외침과 함께 수십 개의 무기가 일제히 쏘아져 들어왔고, 쿨리크의 몸 역시 화살처럼 아렌에게 달려들었다.
절묘하게 조율된 공격은 거의 동시에 아렌의 몸에 닿을 것 같았고, 이것을 모두 막거나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정확한 위치를 점유한 무기들은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쿨리크의 전신에서는 세상을 다 부숴버릴 것만 같은 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흠.”
가속된 사고로 결정을 내린 아렌의 전신에 육각형의 비늘이 빈틈없이 떠올랐다.
절대불변의 상징인 용의 비늘이 빛으로 이루어진 무기들을 상대했고, 아렌은 자세를 단단히 한 채 두 손을 내밀어 쿨리크에 맞섰다.
콰릉!
짐승의 팔이 세상에 나타나 쿨리크를 찢어발기려 했지만, 단단한 방패 뒤쪽에 숨은 쿨리크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빛의 무기들이 아렌의 비늘에 도달했고, 그 순간 아렌은 어떤 예감을 느끼며 다급히 발을 놀렸다.
쿨리크를 밀쳐낸 반동으로 절묘하게 몸을 움직인 아렌이 무기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났지만, 이내 안색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 이런 맛이로군! 제법 풍미가 있구나!”
아렌의 옆구리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본 쿨리크가 광소가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