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언제나 이길 수는 없고, 패배는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아렌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었으며,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패배와 좌절을 경험했었다.
처참한 패배에 좌절 한 적도 있었고, 비참하게 바닥을 기며 생명을 구걸하기도 했었다.
그 모든 과정을 겪고 지금에 이르렀으니, 단순한 상처 따위로 위축될 리는 없지만, 아렌은 지금 꽤나 놀란 상황이었다.
제법 깊게 가르고 지나간 옆구리의 자상은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이 아니었으면 내장을 드러낼 뻔했고, 재생마저 방해받고 있었으니 아렌이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크하하하! 내 놓아라!”
아렌이 심각한 표정으로 상처를 살피는 사이 기세등등해진 쿨리크가 재차 빛으로 이루어진 무기를 날렸다.
중구난방인 것 같지만 절묘하게 방위를 점유하고 쇄도해 들어오는 공격은 쿨리크가 가진 기량을 짐작하게 했고, 아렌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렌의 손짓 하나하나마다 은밀한 힘의 유동이 일어나면서 빛의 무기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아렌의 생각보다 무기들의 움직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힘의 흐름을 제어하는 권능을 가진 아렌의 힘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고 있다는 증거이니, 쿨리크가 풀어놓은 심상이 그만큼 강대하다는 증거였다.
출혈은 멎었지만 상처에서 음습한 기운이 아렌에게 파고들려하고 있었고, 기세를 더해서 불어난 빛의 무기들은 아렌의 전신을 난도질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거기에 방패를 앞세운 쿨리크도 아렌을 짓이길 듯 쇄도해 들어오니, 아렌이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맞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예기가 살을 가를 듯 하고, 세 개의 봉인이 주는 강대한 힘을 절묘하게 조종하는 쿨리크의 기량은 노련하기 그지없다.
이대로라면 전신을 난도질당하고 육괴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렌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이래야지.”
쩡!
아렌의 발이 힘차게 공중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해보면 아렌은 딱히 전력을 다한 적이 없었다.
위기는 몇 번 있었지만 그것이 아렌의 전력을 완전히 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권능이나 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렌의 기반이자 전력이라 하면 어디까지나 무학.
기나긴 세월동안 그 몸에 쌓은 고절한 절학과 이치를 온전히 풀어낼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으니, 실상 지금까지의 전투는 아렌이 힘으로 밀어붙인 경우가 많았다.
아렌의 경지는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무학의 이치가 녹아있는 경지.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굳이 고절한 절학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적과 상대하고, 마법이라는 이적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아렌의 전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인데, 눈앞의 쿨리크는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로 아렌이 처음 만나는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니, 아렌은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본래 대결이라 함은 피가 튀고 살점이 갈라지며 뼈가 부셔져야하는 치열함이 있어야 하는 법.
욱신거리는 옆구리의 통증이야 말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비릿한 미소는 점점 환해져갔고, 기기묘묘하게 허공을 밟는 발걸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었으니, 순식간에 쿨리크의 앞에 다다른 아렌이 양손을 곧게 뻗었다.
“헛!”
순식간에 무기들의 공세권에서 벗어난 아렌이 눈앞에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쿨리크였지만, 이내 방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전신에서 일렁이는 혼원기가 쿨리크의 몸을 단단히 조였고, 세상 모든 기운에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혼원기가 겹겹이 쌓이며 쿨리크의 몸을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룡 토벌당시 쿨리크는 최전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던 역할을 했었다.
그런 쿨리크의 방어능력은 대륙에서 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
마룡의 일격까지도 버텨내던 그였으니, 아렌의 공격쯤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의 공격을 버텨낸다면 그의 심상이 만들어낸 빛의 무기들이 적을 난도질해 버릴 것이다.
무적의 방패와 막을 수 없는 무기.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졌으니 쿨리크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렌의 그것과 같은 비릿한 미소가 쿨리크의 입가에 떠오르고 충격을 흘리기 위해 정신을 고양시킨 그 순간.
아렌의 양 손바닥이 쿨리크의 방패에 닿았고, 동시에 쿨리크의 온 몸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충격을 흘려내려 했다.
“뭣?!”
쿨리크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분명 강대한 충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방패에 강대한 일격은커녕, 아렌의 두 손바닥이 살포시 닿아있었던 것이다.
마치 물건을 밀어내려는 것 같은 모양에 순간 사고가 정지한 그 순간, 아렌의 진정한 일격이 방패를 넘어 쿨리크의 신체에 파고들었다.
꽝!
“크아아악!”
초인에 이른 육신과 세 개의 봉인이 보조하는 쿨리크의 몸은 공성병기에 직격해도 멀쩡할 정도였지만, 온몸을 울리는 일격은 절로 쿨리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경지에 이른 이후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강대한 충격에 입으로 검은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가는 쿨리크는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렌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무기들을 노려보았다.
격산타우.
장애물 너머의 적을 타격하는 무학의 이치이지만, 아렌 정도의 무인이 전심으로 시전 하니 그 힘은 혼원기와 마기로 이루어진 갑옷을 가뿐히 뛰어넘어 쿨리크의 본신을 타격해 버린 것이다.
쯔아아아악!
수십 개의 빛으로 이루어진 무기들이 아렌의 전신으로 파고들려는 그 순간, 아렌의 오른손에서 길쭉한 것이 솟아나더니, 이내 허공을 가로질렀다.
쫘자자자자작!
붉디붉은 기운이 수정처럼 뭉쳐진 그것은 순식간에 공간을 점했고, 아렌의 주변에 붉은 꽃들이 피어나더니만 이내 화려하게 비산하기 시작했다.
만천화우.
사천당가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비전이 아렌의 손을 빌어서 이 세계에 등장했다.
온 세상이 마치 붉은 꽃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쿨리크가 눈을 부릅떴고, 쿨리크의 무기에 달라붙은 꽃들이 무기의 궤도들을 죄다 비켜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파팡!
어두운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빛 무리의 춤은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부르바스와 마크가 절로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지만, 그 안에 담긴 흉험함과 날카로운 예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빛의 무기와 맞부딪친 붉은 꽃들은 이내 광채를 잃고 시들어갔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고, 아렌은 몸을 돌려 쿨리크와 마주볼 수 있었다.
“…… 뭐지 그건? 어떻게 막을 수 있었던 거냐.”
출혈은 이미 멈추었고, 끝없이 솟아나는 마기는 쿨리크의 신체를 다시금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렸지만, 쿨리크는 멍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혈계능력을 바탕으로 심상을 완성했을 때, 쿨리크는 자신이 무적의 무기를 쥐었음을 깨달았다.
온전히 빛으로 이루어진 무기를 구현하는 쿨리크의 심상은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쿨리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탐욕이 똘똘 뭉쳐서 구현된 무기들은 그 구성자체가 빛으로 이루어져 있는 탓에 방어가 불가능했다.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부정한 영향을 끼치고 몸에 살짝 닿기라도 한다면 생명력과 마나를 갈취해 쿨리크에게 전달하는 탐욕 그 자체의 구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저항하는 방법이라면 오직 오러나 마나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기운마저도 갈취하니 쿨리크가 자신할 만할 능력이었고, 주변의 평가도 그러했다.
거기에 혼원기를 이루어 절대적인 상성마저 이루었으니, 지금의 쿨리크라면 동등한 힘을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마룡과도 일전을 치룰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쿨리크의 심상을 아렌이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내 버렸으니, 심대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힘을 너무 맹신하는 경향이 있더구나.”
그런 쿨리크를 바라보면서 아렌이 두 팔을 늘어트렸다.
“단순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우직하게 이룬 일격이 만기를 제압하는 법이니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대규모의 전쟁과 인간외적인 생물들과의 투쟁, 마계의 존재와의 싸움은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한 기술들 위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의 이치는 깊고도 깊은 법이다.”
방금 전 쿨리크의 심상을 막아낸 아렌의 만천화우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고절한 무학의 이치가 숨어있었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반탄 시키며, 흐름을 끊는 기의 운용이 숨어있었으니 제 아무리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쿨리크의 심상 앞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혼원기라는 상성에 밀려서 금세 사그라졌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렌에게 필요한 것은 한 호흡의 여유였을 뿐이니까.
웅.
“…… 너!”
아렌의 몸 주변으로 떠오르는 붉은 색의 검들을 보고 쿨리크가 이를 악 물었다.
곧게 뻗은 유려한 검들이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아렌의 주변에 떠올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그 숫자는 정확히 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와 함께 아렌의 손에 빛이 일렁이더니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장창이 솟아올랐다.
열 개의 검에 호위 받으며 기다란 장창을 거머쥔 아렌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아렌의 백금발을 흩날리니, 부르바스와 마크, 심지어 쿨리크마저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다.
“너는 이 세계에서 내게 무기를 쥐게 한 최초의 상대다.”
촹!
빙글빙글 돌던 열 개의 검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방위를 점했다.
동시에 아렌이 창을 들어 쿨리크를 가리키니, 단지 그 동작만으로도 첨예한 예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는 쿨리크마저도 안색이 해쓱해질 정도로 첨예하기 이를 데 없는 기운.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건방지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쿨리크가 소리쳤고, 심상으로 이어진 무기들이 부르르 떨면서 살벌한 기운을 쏟아내었다.
중구난방으로 정신없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무기들의 움직임에 아렌이 만들어낸 십방어검이 절도 있게 허공을 점했다.
“그럼 놀아보자꾸나.”
“죽어!”
서로의 무기가 허공으로 쏘아지고, 두 명의 초인이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사방으로 펼쳐진 수십 개의 무기들이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더니만 이내 아렌을 감싸듯이 쇄도해 들었다.
피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점유하는 방식의 공격이었고, 이것을 통제하는 것은 오로지 쿨리크의 정신이니 과연 비범한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렌도 이미 십방어검을 빼어든 상황.
전생의 아렌이 말년에 창안한 이 검술은 심어검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입문조차 할 수 없는 고절한 절학이다.
무학의 이치에서 십은 완전한 숫자를 뜻하고, 십방이라는 것은 점유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말한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목적을 둔 십방어검은 이론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고, 그 능력을 지금 생소한 세계에서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차차차차차창!
“큭!”
밀리지 않는다.
혼원기로 이루어진 무기와 부딪치는 것이니 손실은 있지만, 무수한 이치가 가미되어서 이루어진 어검들은 사그라지는 법이 없이 훌륭하게 쿨리크의 무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쾌괘괘괘괭!
“크아악!”
거기에 아렌의 창.
3미터에 이르는 기다란 창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끊임없이 찔러오니, 쿨리크는 단 한발도 전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봉인체의 재생력을 믿고 그냥 돌격해도 될 법 하건만, 그러기에는 창에 잔뜩 서려있는 붉은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고, 쿨리크의 이런 판단은 옳았다.
혼원기만은 못하지만 아렌의 기 역시 여타의 기운에 대해서 절대적인 상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가까이 접근할 수만 있어도 검을 휘둘러 어떻게든 해볼 텐데, 아렌은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두들겨 대고 있으니 쿨리크는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강호에서 창술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절학인 유성창을 상대로 이렇게 버티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만 쿨리크가 알 리 없으니, 점차 얼굴은 일그러져만 갔다.
“좋구나!”
환희가 잔뜩 실린 한 소리 외침과 함께 창을 놓은 아렌이 두 손을 높이 드니, 거대한 대도가 생성되었다.
콰릉!
천지를 가로지를 듯한 기세로 떨어지는 대도를 향해 쿨리크는 방패를 더욱 단단하게 세우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