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기기묘묘한 변화도 없고, 현묘한 이치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기세.
세상 모든 것을 절단 내 버릴 것만 같은 기세만이 가득 차 있었고, 얼굴이 하얗게 변한 쿨리크가 급히 방패를 세워 온 힘을 밀어 넣었다.
콰자작!
“크아압!”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에 방패술을 발휘 할 만도 하건만 쿨리크는 그저 굳건히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하나의 의념만이 가득 찬 일격은 어떻게 빗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을 절단 내 버릴 것만 같은 일격이었지만, 혼원기와 마기를 중첩한 쿨리크의 방패는 단단하기 그지없었고, 비록 방패는 반쯤 가로질러져 엉망으로 변했지만 아렌의 일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크흡!”
크게 숨을 들이 쉰 쿨리크가 눈을 빛내며 시퍼런 예기가 줄기줄기 흐르는 보검으로 아렌을 베어가려는 그때, 아렌의 손은 이미 대도에서 떨어져 있었다.
쾅!
“크헉!”
너덜너덜해진 방패가 수복되기도 전에 가해진 강렬한 일격에 쿨리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방패 너머로 보이는 일격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몸통만한 머리를 가진 거대한 도끼가 그 주인공이었고, 동시에 아렌의 손에 빛이 모여들며 새로운 무기가 생성되고 있었다.
슈카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한 쌍의 륜이 허공을 가로질러 쿨리크의 뒤쪽으로 날아들었고, 그 섬뜩한 기세에 놀란 쿨리크가 급히 머리를 숙이며 피했지만, 아렌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쾅!
벼락처럼 떨어진 일격에 쿨리크의 두개골이 갈라지고, 하얀 뇌수가 보이며 일순간 눈에서 빛을 잃었다.
누가 봐도 절명했음이 분명해보였지만 쿨리크는 봉인체.
쿨리크의 머리를 박살낸 봉을 손에서 놓은 아렌이 다시금 새로운 무기를 불러내었다.
콰직!
“컥!”
사람의 손아귀 모양으로 생긴 구로 쇄골을 찍어 당긴 아렌의 양손에 톤파가 생기는가 싶더니 현란하게 원운동을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쿨리크의 갑옷이 순식간에 우그러졌고, 어느새 나타난 협봉검이 전신의 관절을 쑤셨다.
“끄아아!”
세 개의 봉인이 주는 힘은 강력하기 그지없어서 실시간으로 전신의 상처와 갑옷이 재생되고 있었지만 고통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갈라진 두개골이 정상으로 합쳐지고 눈에 빛이 돌아왔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렌의 공격에 다시금 빛을 잃었다.
거치도가 짐승이 물어뜯은 것 같이 거친 상처를 만들었고, 유성추가 기기묘묘하게 휘어지며 뒤통수를 박살냈다.
손아귀에서 현란하게 움직인 단창이 옆구리로 파고들었고, 은밀하기 그지없이 쏘아진 비수가 두 눈동자를 쑤셨다.
소리마저 초월한 채찍이 전신을 사정없이 후려쳤고, 둔중하기 그지없는 편곤이 양 어깨를 부셨다.
검, 도, 창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기문병기들이 쿨리크의 전신에 꽂혔고 사라져 갔다.
수십 개의 무기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연격을 이어가는데도 그 움직임에 전혀 어색한 부분이 없으니, 그야말로 아렌이 도달한 지고한 경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십방어검은 쿨리크의 무기들을 환벽하게 차단하고 있었고, 쿨리크의 전신은 재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 저!”
“…… 대단하군.”
원견의 마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부르바스와 마크가 입을 쩍 벌렸다.
처음에는 공격이 재생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연속되는 아렌의 공격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재생이 공격에 밀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아렌의 손에서 피어나는 무기의 생성과 소멸이 어찌나 빠른지 쿨리크의 전신이 수십 가지 무기로 뒤덮여 있는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
이대로라면 쿨리크를 고깃덩이로 만들고 잠시간 침묵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쿨리크가 잠시만이라도 침묵한다면 아렌은 어떻게든 봉인에 손을 쑬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 정신이 아늑해지는 상황에서 쿨리크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아. 안 돼!’
이대로라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랐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예감에 간절함이 피어났고, 세 개의 봉인이 호응하며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뿜어냈다.
“크아아아!”
쾅!
괴성과 쿨리크가 만들어낸 수십 개의 무기가 일제히 터지며 그 힘을 사방으로 내뿜었고, 강렬하기 짝이 없는 혼원기의 폭발에 아렌은 눈을 찡그리며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혼원기에 뒤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아렌이 가진 힘의 질은 혼원기보다 명백히 아래에 있었고, 그것이 쿨리크를 확실히 끝장내지 못하고 끝없이 깎아나간 이유였다.
“쯧.”
어느새 거리를 벌리고 재생해버린 쿨리크를 보며 아렌이 가볍게 혀를 찼다.
“아쉽구나.”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히 쏟아 부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다.
너무나도 강해진 아렌의 일격을 막아내는 자가 드물었고, 대부분의 적은 역량만으로 해결이 가능했으니 아렌은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고고한 경지에 걸맞은 정신은 그런 갈증을 아무렇지 않게 누르고 있었지만, 그 갈증을 풀어낼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닌가.
인고의 세월을 걸쳐서 몸에 쌓아올린 기예를 온전히 풀어낼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나 다름없었고, 아렌은 한참 흥에 겨워 있었는데, 그 시간이 끝나버렸으니 절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거다!”
완전히 새것처럼 변해버린 무장을 앞세우고 심상의 무기들을 가득 떠올린 쿨리크가 이를 갈며 으르렁 거렸지만 아렌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아니. 여흥은 끝이다.”
“뭐가 말이냐!”
자신을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는 아렌의 시선에 모멸감을 느낀 쿨리크가 외쳤고, 그 순간 아렌이 가볍게 주먹을 내 뻗었다.
인간의 인지를 한참 초월한 공격이었지만 초인을 뛰어넘은 쿨리크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코웃음과 함께 쿨리크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강력한 힘이 방패에 닿는 것과 동시에 쿨리크의 전신이 미묘하게 움직이며 궁극에 이른 방패술을 전개하며 공격을 비껴내려는 그 때.
쾅!
“크학!”
아렌의 일격이 쿨리크의 방패를 정통으로 가격했고, 움푹 들어간 방패와 함께 쿨리크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 뭐. 뭐지?!’
전신을 울리는 격통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지만 쿨리크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완벽하게 비껴냈다고 생각한 공격이 정확히 들어왔던 것이다.
순식간에 재생이 이루어진 방패와 신체는 다시금 최상의 컨디션을 이루었지만 흔들리는 눈빛은 쿨리크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기예가 언제까지 통할 것 같으냐.”
그런 쿨리크의 심경을 짐작한다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아렌이 입을 열었다.
“…… 뭐라고?”
나직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쿨리크를 보면서 아렌이 말을 이었다.
“인상적이기는 했다. 전장에서의 격돌과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대를 이어서 발전해 온 기예겠지. 솔직히 감탄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아렌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들만의 이야기다.”
아렌의 목소리가 엄숙해졌다.
“무학의 이치에 통달하고 힘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이 나에게 그런 기예가 계속해서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나를 모욕하는 것이다.”
아렌의 말에 쿨리크가 눈을 부릅떴다.
“타격의 순간에 힘을 방향을 비틀어낸다면 거기에 맞춰서 흐름을 바꿔주면 그만.”
쾅!
“컥!”
가볍게 흔든 아렌의 손짓에 쿨리크의 방패가 또 다시 움푹 파였다.
차차창!
혼원기에 손상되었던 십방어검이 다시금 그 모습을 되찾고 아렌의 등 뒤에 펼쳐졌다.
“이제 슬슬 끝내자꾸나.”
경악한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는 쿨리크를 향해 아렌이 허공을 밟았다.
* * *
콰콰콰쾅!
“크으윽!”
아렌의 양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쿨리크의 전신을 타격해 들었고, 쿨리크는 그저 몸을 웅크리며 재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과 같이 화려한 공격은 절대 아니었지만, 묵직하기 짝이 없는 아렌의 공격은 쿨리크를 착실히 깎아내고 있었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혼원기도 점차 밀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기운에 절대적인 상성을 자랑하는 혼원기이지만 아렌 역시 기의 운용에 있어서는 극고에 달한 존재.
실시간으로 혼원기를 분석하며 한없이 혼원기에 가깝게 기운의 성질을 바꿔가고 있었으니, 조만간 그 우위도 사라질 것이 뻔했고, 남은 것은 비참한 최후뿐이리라.
결국 쿨리크가 해낸 것은 아렌의 옆구리에 입힌 한 줄기의 상처뿐.
초인을 뛰어넘은 쿨리크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고통보다도 마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었다.
세상을 손에 넣을 거라고 자신했었던 포부는 점차 꺼져갔고, 탐욕이 가득했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것은 절망.
언제 어느 때라도 눈을 빛내며 탐욕스럽게 전진하던 쿨리크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쾅!
발작하듯이 외침 고함과 함께 다시금 무기들이 폭발하며 아렌을 밀어내려 했지만, 십방어검이 현묘하게 움직이더니만 수월하게 혼원기를 밀어냈다.
“한번 본 것이. 두 번이나 통할 것 같으냐.”
콰콰콰콰쾅!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은 채로 기계적으로 쿨리크를 타격하는 아렌의 모습은 어떠한 감흥도 없어보였고, 부르바스와 마크는 그 모습에 등골이 서늘했다.
팔다리가 꺾여나가고 신체의 말단이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면서 어느덧, 양 발목과 손목이 흐릿한 연기로 변했다.
점점 신체의 각 부분이 연기로 변해 재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서 봉인에서 힘을 뽑아냈지만, 별 다른 소용이 없었다.
‘벗어나야 해!’
방금 전 도주하지 않고 대항을 택했던 자신을 쿨리크는 저주했다.
흥이 떨어진 아렌이 혀를 찼던 그때야말로 도망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건만 이제는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호흡의 틈만 만들 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 거라는 확고한 결심이 섰지만, 아렌의 무정한 손길은 쉬지 않고 쿨리크의 전신을 다지고 있었고, 쿨리크의 전신이 연기로 변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득한 절망감이 쿨리크를 가득 채웠고, 극도로 치솟은 공포가 쿨리크의 정신을 하얗게 물들인 그때였다.
우우웅!
“음?”
아렌의 품속에 있던 세 개의 봉인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마기를 피어내기 시작했고, 아렌의 손이 멈췄다.
‘지금!’
아렌에게 형편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쿨리크 역시 수라장을 넘어서 경지에 도달한 초인.
한 줄기 실낱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다급하게 마법의 언어를 외쳤다.
“이스케이프!”
마룡과의 결전에서도 쓰지 않았고, 황제에게 토벌 당했을 때에는 마법 방해 때문에 쓰지 못했던 긴급 탈출 아티펙트가 부셔지며 그 역할을 다했고, 쿨리크의 몸이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뭣?!”
격렬하게 반항하는 봉인을 눌러서 기세를 죽여 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한 호흡.
그 한 호흡 사이에 적을 놓쳐버린 아렌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