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아렌의 전신에서 기운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번졌다.
최대한도로 퍼트린 기운이 사방 수십 킬로미터의 모든 정보를 아렌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했고, 과도한 정보의 전달에 아렌의 뇌가 붉게 달아올랐다.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올 정도로 과열된 상태로 두 눈동자에 핏발이 설 정도였지만, 아렌은 멈추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각을 펼쳤다.
그 범위는 거의 백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였지만, 그것도 잠시뿐.
“쯧.”
혀를 차며 아렌은 사방에 퍼트린 기운을 거둬들였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도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쿨리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제아무리 만신창이로 두들겨 맞았다고 하더라도 봉인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초인이니, 금방 회복하고 도주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렌이 품속의 봉인을 꺼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히 굴복되어 있는 봉인의 모습이지만, 아렌은 손에 힘을 주어 봉인을 압박했다.
우드득.
공기가 압축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 같아 보일 정도의 힘이 집중되었고, 과도한 압력에 봉인이 꿈틀거렸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손을 편 아렌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세 개가 아닌 하나로 합쳐진 봉인의 모습이었다.
용의 눈으로 샅샅이 살핀 아렌이 이윽고 하나가 된 봉인을 가슴으로 밀어 넣었다.
둥.
여의주가 크게 맥동하며 새로운 힘을 받아들였고, 하나가 된 봉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여의주로 휩쓸려 들었다.
신성의 씨앗이 호응하며 여의주의 표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고, 전신을 도는 부룡기공의 성질이 바뀌었다.
드드득.
전신의 뼈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더욱 이상적으로 바뀌었으며 강철같이 꼬여있던 근육의 성질이 더욱 촘촘해졌고, 당장이라도 만근의 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탄력을 더하고 더욱더 질겨진 피부는 이제 어지간한 보검을 넘어서 검기에도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피부 표면 위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붉은 기운은 마치 비늘을 전신에 두른 것 같았으니,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용의 비늘이 아렌의 전신을 감쌌다.
양옆의 이마가 간질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우람한 뿔이 뚫고 나올 것 같았지만, 아렌이 그것을 바라지 않았으니, 외향은 여전히 인간의 그것이었다.
찰나 간에 이루어진 변화로 아렌의 신체는 더욱더 진화했고, 아렌은 알 수 있었다.
한 걸음.
이제 한 걸음만 내디디면 아렌의 신체는 용으로 승화할 것이고, 그것은 아렌이 온전한 신격을 획득한다는 것을.
신계의 규칙에 제약받지 않는 새로운 초월자가 이 땅에 강림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렌은 세상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거머쥘 힘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존재로의 승화를 눈앞에 두었으니 마음속에서 조급함이 올라올 만도 하건만, 아렌의 심신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
제아무리 아렌이 이룩한 경지가 대단한 것이고, 몇 번의 기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성취는 아렌 자신의 예상을 몇 배나 넘어서는 것이었다.
외려 너무 빠른 감도 있었으니 조금 성취를 조종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정도.
그렇기에 아렌은 조급해하지 않았고, 이러한 아렌의 마음가짐은 지금의 상황과 온전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분에 넘치는 힘은 자신을 망치는 법.
멀리 갈 것도 없이 방금 전 상대했던 쿨리크가 그러했지 않은가.
현재의 아렌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 자신도 도달한 적이 없는 미지의 그것이었으니, 충분히 자신의 것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아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달은 언제나 같이 고고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고, 밤하늘의 별들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어떠한 감흥이 차오르는 모습에 아렌 역시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두근.
항상 차분했던 심장이 거세게 뛰었고, 영감에 자극받은 여의주가 잔잔하게 울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비췄다.
“…… 이렇게도 되는군.”
성취를 조금 늦출까도 생각했던 것이 방금 전인데, 아렌은 또 다시 전진했다.
이제 반걸음.
쉽게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한 걸음이 반으로 좁혀졌고, 충분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아렌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은 없는 법이니 이러한 성취는 아렌이 그간 충실히 쌓아온 것도 있겠지만, 어떠한 힘이 개입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세상 전체가 아렌의 발전을 돕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아렌의 시선이 다시금 하늘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으로 모자라 세상의 이면까지 보이게 해주는 아렌의 눈동자가 가늘어졌고,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렌은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고 반신이나 마찬가지인 아렌의 정신이 한순간이나마 어질할 정도의 강렬한 존재감에 아렌은 눈가를 찡그렸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을 찾았다.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렌의 몸이 땅으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의지로 행해지는 것이다.”
나직한 중얼거림이지만 굳건하기 짝이 없는 의지를 가진 한 마디가 세상에 새겨졌고, 신들의 시선은 여전히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마치 아지랑이가 일렁거리는 것처럼 공간이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빛과 함께 커다란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렸다.
쿵.
“크헉!”
중무장한 기사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으니, 그 충격음이 사방으로 울렸고 쿨리크는 답답한 신음을 내뱉으며 얼굴을 들었다.
“흐으.”
항상 자신만만했던 표정을 잔뜩 일그러진 채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 정상과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지만 쿨리크는 개의치 않았다.
공포.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가 쿨리크의 온몸을 가득 조이고 있었고, 커다란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떠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며 떨고 있던 쿨리크의 얼굴이 슬며시 들렸다.
우득.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풀리고 완전무장한 기사가 검은 갑옷을 번들거리며 상체를 세우니 절로 위엄이 서렸다.
하지만 일그러진 얼굴에 떠올라있는 분노와 광기 어린 눈빛은 위엄보다는 공포와 포악함만을 퍼트리고 있었으니 빛의 용사라는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퍼석.
쿨리크를 탈출시켜주었던 팔찌형 아티펙트가 가루로 변해서 떨어졌고, 쿨리크의 눈에 독기가 들어찼다.
“…… 다음에는 반드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고,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쿨리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원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은 없다.”
“누구냐!”
나직한 목소리에 크게 놀란 쿨리크가 검과 방패를 들면서 외쳤고, 동시에 마법의 조명이 동굴 내부를 밝혔다.
“큭!”
갑자기 밝아진 광량에 눈을 찡그린 쿨리크의 시선에 동굴 내분의 모습이 들어섰고, 그 순간 쿨리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커다란 공동 모양의 동굴의 중심에 쿨리크의 모습이 있었으며, 빽빽하게 새겨진 마법진이 쿨리크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마법진은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만만치 않았지만 쿨리크가 얼굴을 굳힌 것은 마법진 때문이 아니었다.
마법사들.
하나같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쿨리크를 포위하는 형태로 포진되어 있었고, 하나같이 검은 빛이 번들거리는 완드를 들어 쿨리크를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이지 않나. 쿨리크.”
“비욘!”
그리고 그러한 마법사들 중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는 노인이 쿨리크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고 쿨리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을 내뱉었다.
비욘.
제국 마탑의 탑주를 가리키는 이름이었고, 수십 년간 쿨리크를 비롯한 봉인체에게 무자비한 실험을 감행한 자의 이름이었다.
이빨이 부서져라 가는 쿨리크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도 비욘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꽤나 익숙한 광경이지 않나? 자네가 부서버린 설비를 그대로 복원했는데. 만든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 네놈!”
분노한 쿨리크가 몸을 일으켜 달려나가려는 그때, 쿨리크의 영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붉은 빛이 힘을 발휘했다.
“크헉!”
새된 비명 소리와 함께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쿨리크의 귓가에 비욘의 음성이 박혀 들었다.
“설마 자네가 잘나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던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실망이야. 하긴 그렇게 믿게 만든 우리 탓도 있지만.”
“하하하하.”
“큭큭.”
비욘의 빈정거림에 얼굴을 가린 마법사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화답했다.
수십 년 동안 인체실험을 반복하며 은밀하게 쿨리크의 영혼에 뿌리박은 저주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으니, 세상을 구한 영웅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저열한 욕망을 만족시킨 것이다.
“숙성은 잘 된 모양이군. 이제 적출해도 괜찮겠군.”
“…… 이놈들!”
쿨리크에게 봉인을 몰아넣고 세상에 풀어놓은 이유.
제아무리 수십 년간 정화하고 안정화를 시켰다지만 봉인의 위험성은 여전했다.
때문에 봉인 자체에 강한 저항력을 보이는 쿨리크를 중심으로 봉인을 모았고, 쿨리크라는 신체를 거침으로써 봉인을 길들이려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쿨리크가 자신의 의지로 힘을 휘두를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쿨리크가 시설을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거기다 봉인을 하나 더 모아주기까지 했으니, 자네는 빛의 용사라는 이명이 진짜로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푸하하하하!”
“큭큭큭. 빛의 용사 쿨리크!”
마법사들의 비웃음이 동굴 내부를 가득 울렸고, 쿨리크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가누려 했지만 수십 년간 자리 잡아 완전히 쿨리크에게 특화되어버린 저주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봉인을 뜯어서 폐하에게 바치기만 하면 되 ……. 이게 뭐야!”
비릿하게 웃으며 마법진으로 쿨리크의 상태를 살피던 비욘이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마법사들의 웃음이 멈췄다.
“왜 봉인이 세 개밖에 없지? 뭐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쿨리크!”
비명 같은 비욘의 외침에 대경실색한 마법사들이 웅성거리며 쿨리크의 몸을 살폈고, 경악이 가득 찬 동굴 내부에서 쿨리크는 홀로 웃었다.
“큭! 크하하하하!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이게 이 쿨리크의 운명이란 말인가!”
환희와 비통, 저주, 분노 등등 온갖 감정이 다 담겨있는 쿨리크의 음성에 비욘이 거친 걸음으로 마법진을 건너 쿨리크의 앞에 섰다.
“뭐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마법사치고는 꽤나 정정한 비욘이 쿨리크의 멱살을 잡아 올렸고, 완전무장한 기사를 손쉽게 들어 올리는 모습이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크흐흐흐흐. 재미있는 일이 있었지. 굴욕과 고통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나쁘지만은 않구나.”
“이놈!”
퍽!
분노한 비욘이 쿨리크의 얼굴을 거칠게 후려쳤지만 쿨리크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하하하! 평생 남의 것을 탐했으니 이런 최후에 후회는 없다! 그래도 마지막에 황제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으니 신께 감사해야겠구나!”
“쿨리크!”
비욘의 호통 소리와 쿨리크의 웃음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